(74) 이상 "절벽" [애송시 100편 - 제 74편] 절벽 이 상 문태준·시인 꽃이보이지않는다. 꽃이향기롭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거기묘혈을판다. 묘혈도보이지않는다. 보이지않는묘혈속에나는들어앉는다. 나는눕는다. 또꽃이향기롭다. 꽃은보이지않는다. 향기가만개한다. 나는잊어버리고재차거기묘혈을판다. 묘혈은보이..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4
(73) 김영승 "반성 704" [애송시 100편 - 제 73편] 반성 704 김영승/ 정끝별·시인 밍키가 아프다 네 마리 새끼가 하도 젖을 파먹어서 그런지 눈엔 눈물이 흐르고 까만 코가 푸석푸석 하얗게 말라붙어 있다 닭집에 가서 닭 내장을 얻어다 끓여도 주어보고 생선가게 아줌마한테 생선 대가리를 얻어다 끓여 줘 봐도 며칠째 잘 안 먹..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3
(72) 천양희 "마음의 수수밭" [애송시 100편 - 제 72편] 마음의 수수밭 천양희 (문태준·시인)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2
(71) 김소월 "진달래꽃" [애송시 100편 - 제 71편] 진달래꽃 김소월 정끝별·시인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1
(70) 손택수 "방심(放心)" [애송시 100편 - 제 70편] 방심(放心) 손택수 문태준·시인 한낮 대청마루에 누워 앞뒤 문을 열어 놓고 있다가, 앞뒤 문으로 나락드락 불어오는 바람에 겨드랑 땀을 식히고 있다가, 스윽, 제비 한마리가, 집을 관통했다 그 하얀 아랫배, 내 낯바닥에 닿을 듯 말 듯, 한순간에, 스쳐지나가버렸다 집이 잠시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31
(69) 신경림 "농무" [애송시 100편 - 제 69편] 농무 신경림 정끝별·시인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주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9
(68) 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애송시 100편 - 제 68편] 이탈한 자가 문득 김중식 문태준·시인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8
(67) 황인숙 "칼로 사과를 먹다" [애송시 100편 - 제 67편] 칼로 사과를 먹다 황인숙 정끝별 시인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는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8
(66) 이정록 "의자"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의자 이정록 문태준 시인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6
(65) 유치환 "생명의 서(書)" [애송시 100편 - 제 65편] 생명의 서(書) 유치환 정끝별·시인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