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김광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애송시 100편 - 제 84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문태준·시인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23
(83) 김승희 "솟구쳐 오르기 2" [애송시 100편 - 제 83편] 솟구쳐 오르기 2 김승희 정끝별·시인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날게 하지 않으면 상처의 용수철 그것이 우리를 솟구쳐 오르게 하지 않으면 파란 싹이 검은 땅에서 솟아오르는 것이나 무섭도록 붉은 황토밭 속에서 파아란 보리가 씩씩하게 솟아올라 봄바람에 출렁출렁 흔..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23
(82)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애송시 100편 - 제 82편]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함형수 문태준·시인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14
(81) 한하운 "보리피리" [애송시 100편 - 제 81편] 보리피리 한하운 정끝별·시인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 닐니리.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還)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ㄹ 닐리리.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 닐니리. ▲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13
(80) 신용목 "갈대 등본" [애송시 100편 - 제 80편] 갈대 등본 신 용 목 문태준·시인 무너진 그늘이 건너가는 염부 너머 바람이 부리는 노복들이 있다 언젠가는 소금이 설산(雪山)처럼 일어서던 들 누추를 입고 저무는 갈대가 있다 어느 가을 빈 둑을 걷다 나는 그들이 통증처럼 뱉어내는 새떼를 보았다 먼 허공에 부러진 촉 끝처..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11
(79) 이하석 "투명한 속" [애송시 100편 - 제 79편] 투명한 속 이하석 정끝별·시인 유리 부스러기 속으로 찬란한, 선명하고 쓸쓸한 고요한 남빛 그림자 어려온다, 먼지와 녹물로 얼룩진 땅, 쇠 조각들 숨은 채 더러는 이리저리 굴러다닐 때, 버려진 아무 것도 더 이상 켕기지 않을 때, 유리 부스러기 흙 속에 깃들어 더욱 투명해지..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10
(78) 최승자 "일찌기 나는" (78) 일찌기 나는 - 최승자 문태준·시인 일찌기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9
(77) 조태일 "국토서시(國土序詩)" [애송시 100편 - 제 77편] 국토서시(國土序詩) 조 태 일 정끝별·시인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8
(76) 정완영 "조국(祖國)" 애송시 100편 - 제 76편] 조국(祖國) 정 완 영 문태준·시인 행여나 다칠세라 너를 안고 줄 고르면 떨리는 열 손가락 마디마디 애인 사랑 손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 둥기둥 줄이 울면 초가삼간 달이 뜨고 흐느껴 목 메이면 꽃잎도 떨리는데 푸른 물 흐르는 정에 눈물 비친 흰 옷자락. 통곡도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7
(75) 김광섭 "성북동 비둘기" [애송시 100편 - 제 75편]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정끝별·시인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