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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2023.12.7)

클리오56 2023. 12. 7. 20:32


일자: 2023.12.7
코스:  혜화역~서울대암병원~홍화문~명정전~함인정~관천대~경춘정~통명전~

영춘헌~자경전터~성종태실~춘당지~대온실~홍화문~혜화역 
거리: 5.91km
소요시간 2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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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몇번 다녀온 적이 있지만 최근 수년간 찾지못했던 창경궁을 다녀왔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에 수록된 창경궁 편을 사전 지식으로 무장하였다.

여기 글들은 거의 대부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옮겨왔기에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 서울편 I
제4부 창경궁
외조와 치조
 영조대왕의 꿈과 한이 서린 궁궐
창경궁 조망 / 명정전 / 창경궁의 역사 / 홍화문과 영조의 균역법 /
옥천교와 주자소 / 문정전과 숭문당 / 사도세자와 정조

내전
 전각에 서려 있는 그 많은 궁중비사
함인정 / 환경전 / 소현세자 / 경춘전과 정조·순조의 기문 / 통명전 /
인현왕후와 장희빈 / 양화당과 내명부의 여인들 / 영춘헌과 집복헌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춘당지 연못에는 원앙이 날아든다
자경전 / 혜경궁과 『한중록』 / 풍기대 / 앙부일구 / 성종 태실 /
명나라 석탑과 식물원 / 춘당대 관덕정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내려 서울대병원을 통과하는데

서울대암병원 건물의 4층 옥상에 위치한 행복정원을 우선 찾아 창경궁 전체를 조망하였다. 

정문인 홍화문, 정전인 명정전, 그리고 그 너머 내전 건물의 지붕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창경궁은 왕비와 왕대비의 생활공간이었기 때문에 고공기의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다.

각각의 건물이 독립성을 갖고 자연지형에 맞춰 배치됨으로써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과 구조를 살피는 데에는 더 유리하다. 
 
세종은 즉위하면서 상왕으로 물러난 아버지 태종을 모시기 위해 1418년 창덕궁 곁에 수강궁을 지었다.

이것이 창경궁의 시작이다. 그뒤 성종은 무려 세분의 대비를 모시게 되었는데, 이에 수강궁을 중건하고

정전인 명정전, 정무를 보는 문정전 등을 지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고 창경궁이라 했다.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은 보물 제384호로 조화를 넓힌다는 뜻이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과 마찬가지로 화자에 운을 맞춘 이름이다. 우진각 지붕으로 중층다포집이다. 

 

옥천교 

홍화문을 들어서면 금천을 가로지르는 옥천교를 만나게 되는데, 이는 성종 때 창건된 모습 그대로다. 
동자기둥 4개 사이에는 한 장의 돌로 만든 풍혈판을 끼워 맞췄다.

난간 양끝에는 법수라는 돌기둥을 세우고 지킴이로 동물 조각을 세웠다. 

 

다리 아래를 보면 2개의 홍예가 떠받치고 있다. 
두 홍예 사이로 난 역삼각형 공간에는 귀면을 돋을새김으로 조각한 돌이 장식되어 있다. 

 

명정문

 

명정전

명정전으로 들어가는 명정문 안에는 박석을 깐 넓은 마당 한가운데로 어도가 나 있으며 좌우로 품계석이 늘어서 있다.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은 이만 후 광해군 8년(1616)에 지은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5대 궁궐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국보 제226호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근정전, 인정전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건물이 외따로 있지 않고

왕이 일상 업무를 보던 문정전과 경연이 열리던 숭문당에 처마를 맞대고 바짝 붙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천장의 봉황 조각이 아주 뛰어나고, 닫집도 우수한 공예품처럼 정교하게 조각되었으며 창살 문양도 매우 아름답다. 

 

 

문정전

문정전은 편전으로 지어졌지만 임금이 창경궁에 잠시 들렀을 때만 사용했으며,

국상을 당했을 때 혼전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왕이 업무를 보는 치조의 핵심 공간이다. 규모가 작고 기둥도 둥근 원주 대신 네모로 다듬은 각주를 썼다. 
2006년 화재가 났지만 재빨리 진압되었는데 이때 범인이 나중 숭례문 방화 사건을 일으킨다.  

 

영조의 원비인 정성왕후의 신주를 문정전에 모시고 건물을 휘령전이라 불렀다.

 휘령전에서 사도세자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사건의 현장이 되었다. 
사도세자는 생모인 영빈 이씨가 영조에게 '세자를 처분해 세손을 보호하라'며 세자의 비행을 낱낱이 고발했다.


숭문당

숭문당은 임금의 서재이자 신하들과 경연을 열던 곳이다.

누각형 건물로 앞쪽 툇마루로 출입했으며 영조 친필의 현판이 달려있다. 


빈양문

명정전 뒤쪽에 딸려 있는 복도각을 따라가다보면 함인정으로 통하는 빈양문을 만난다.

궁궐 건축에서 회랑은 참으로 멋지고 그윽한 공간이다. 


함인정

오늘날의 함인정은 앉아서 느긋이 쉬어가기 제격이다.

사방이 훤히 뚫려 창경궁의 구조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이다.

 

 함인정 천장 아래에는 사방으로 四時라는 유명한 오언절구가 현판에 새겨져 있다.  

 

마루 한가운데에는 한 단 높이 상석이 설치되었는데, 아마도 임금의 자리이다.  

 

노송 향나무: 19세기 초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주목: 2023년 고사하였으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여 방부처리되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데 굳이 방부처리가 필요할까? 

 

동궁 터 일원: 왕세자가 거처하며 활동했던 곳  

 

관천대: 보물 제851호

관천대는 천문을 관측하는 기구로 창경궁 관천대는 숙종 14년(1688)에 만들어진 화강석 축조물이다.  

 

환경전

기쁘고 경사스럽다는 뜻을 지닌 환경전은 임금의 침전으로 왕과 왕세자를 위한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현판은 순조의 글씨로 글씨가 반듯하고 임금다운 권위도 엿보인다.
중종이 이 환경전에서 세상을 떠났다. 중종은 오랫동안 중풍과 합병증으로 고생하면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이곳으로 옮겨와 치료를 받았다. 이때 중종을 간호하고 치료한 주치의가 대장금이다. 

 

경춘전

경춘전은 왕비와 왕대비의 공간이었다. 지금은 경춘전과 환경전의 두 건물이 기역자로 배치되어 있지만

옛날에는 회랑으로 구분되어 있었고 지금처럼 휑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현판은 순조의 글씨로 아주 아름다운 액틀에 들어있어 그 옛날을 증언한다. 
혜경궁 홍씨가 둘째 아들 정조를 이곳에서 낳았고, 그 자신 또한 여기서 세상을 떠났다.

 
경춘전 화계: 어느 궁궐에나 뒤편 언덕에 꾸민 화계는 우리나라 조원의 특징과 멋을 동시에 보여준다.

화계를 꾸미지 않았으면 이 공간이 어떻게 되었을까.


 통명전

통명전은 창경궁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남향으로 앉아 있으며 창경궁 답사의 하이라이트이다.

내전의 법전답게 높직한 기단 위에 올라앉아 있고 정면에는 넓은 월대가 설치되어 있다. 

통명전은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28칸 규모이다.

가운데 6칸은 대청으로 삼고 좌우로 2칸씩 온돌방을 들였으며 사면으로 툇간이 돌아간다. 


열천과 연지

통명전 뒤에는 맑고 찬 물이 솟아나는 천연샘인 열천과 정성스레 조성한 연지가 아기자기한 정원을 이루고 있다.

못 가운데는 2개의 괴석과 석주로 장식했다. 

 
양화당

왕비의 침전 바로 옆에 있어 왕비가 손님을 접견하는 공간으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나

건물이 번듯해서 임금이 시용하기도 했다. 


양화당 뒤뜰의 화계

 

양화당 바로 곁에 우람한 너럭바위가 있고, 그 뒤편으로는 언덕위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그 너머 춘당지로 이어진다.

이 암반 위에 정일재라는 서재가 있었다. 바위를 자세히 보면 배수를 위한 홈이 길게 뻗어 있다.


 영춘헌과 집복헌

후궁들의 처소. 겉보기에도 소박한 인상을 준다. 안으로 들어가면 작은 ㅁ자 정원을 중심으로

집복헌과 영춘헌 두 건물이 둘려 있어 궁궐이 아니라 어염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집복헌에서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가 사도세자를 낳았고,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가 순조를 낳았다.

영춘헌에서는 정조가 등창을 치료받다 세상을 떠났다. 특히 정조는 수빈 박씨가 좋아 자주 머물렀다. 

 

영춘헌 현판: 예서 풍으로 또박또박 쓴 것이 아주 조신하고 느낌이 있어 누가 썼을까 궁금했다.

낙관을 확인해보니 헌종의 도장이었다. 


자경전 터

돌계단 위를 오르면 나타나는 반듯한 언덕배기.

여기가 정조가 즉위하면서 어머니 혜궁경 홍씨를 모시기 위해 지은 자경전 자리다.

여기가 한중록의 집필 현장이라는 의의가 크다. 
정조가 어머니 혜궁경 홍씨를 모시기 위해 지은 자경전의 옛 터는 창경궁 답사의 끝이다.

자경전 터에서 내전 쪽을 내려다보면 늠름한 전각들과 아름다운 나무들이 궁궐의 아름다움과 위용을 보여준다.


풍기대: 보물 제846호.

풍기대는 풍향을 측정하는 깃발을 꽂는 받침대로 1732년(영조 8면)에 세워진 것이다. 


앙부일구: 세종 때 만든 해시계 앙부일구(보물 제845호)의 복제품이다.

앙부일구는 우리 과학사의 위대한 발명품이다. 


성종태실: 자경전 터에서 춘당지로 가다보면 성종 태실이 나타난다.

조선시대 왕자와 공주의 태는 백자항아리에 담아 태지석과 함께 명당에 묻고 불가의 승탑 모양으로 장식했다. 


 춘당지

일제가 창경원을 조성하며 만든 일본식 연못이다. 

 

소춘당지


춘당지 석탑

춘당지를 끼고 연못을 돌자면 갑자기 이국적이고 낯선 8각7층 석탑이 나온다.

창경궁 내에 이왕가 박물관을 만들 때 골동상이 만주에서 가지고 온 것을 매입하여

옥외전시물로 세워놓은 것으로, 1470년에 세워진 명나라 탑이다. 

유홍준 교수는 생긴 것도 이상하고 분위기에 맞지도 않은 것을 왜 구입했고, 왜 나라의 보물로 지정했으며,

왜 아직도 여기에 두는지 도저히 이해못하겠다고 했다. 


식물원

일제에 의해 동식물원으로 개조된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꿨으나,

해방 후 동물원은 과천으로 이전되고, 식물원 자리만 남아 옛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관덕정

전국 활터에 있는 정자의 이름은 모두 관덕정인데,

창경궁 관덕정은 일반 개방되어 있지만 안내코스에는 들어있지 않아 대개는 그냥 지나친다. 

 
창경궁에는 중국에서 가져와 심은 백송 세그루가 있다.

창경궁 관람로엔 궁궐의 우리나무가 즐비하다.

그 숲길을 걷는 것이 다른 궁궐에서는 가질 수 없는 창경궁의 큰 매력이다. 


회화나무와 느티나무가 이어진 연리목 

 

답사를 마치고 정리를 하는 중 몇가지 놓친 것이 있는데, 우선 좌우 십자각이다.

특히 남십자각에는 조선의 마지막 주자소가 있었다. 활자를 보관하던 곳이다.

통명전은 문을 닫아두어 내부는 볼 수 없었다.

식물원 대온실은 내부 공사중이라 내부 관람이 되질 못했다. 
그리고 이미 초겨울이라 화계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놓친 셈이다. 좋은 꽃 시즌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되기를...   

 

서울대암병원: 이곳 4층에 행복정원이 있어 창경궁을 조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