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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 (2023.11.8 / updated 12.9)

클리오56 2023. 12. 10. 20:24

23. 11. 8. 18:5

 
일자: 2023.12.9
코스:  돈화문~금천교~진선문~인정문~인정전~선정전~성정각~낙선재~숙장문~돈화문 
거리: 2.73km
소요시간: 1시간 41분 (휴식 6분 포함)

Track_2023-12-09_서울_창덕궁.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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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2023.11.8
코스: 창덕궁 돈화문 ~ 인정전 ~ 선정전 ~ 희정당 ~ 낙선재 ~ 후원
거리: 5.19km
소요시간 2시간 37분(휴식 24분 포함)
 
지난 달에도 다녀온 적이 있지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에 수록된 창덕궁' 편에 맞추어 부족한 부분을 채워보았다.
여기 글들은 거의 대부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옮겨왔기에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지난 달 사진과 내용을 살릴 부분은 살리면서 금일의 내용을 보완하였기에
한 달 사이의 계절적 변화가 뒤죽박죽되는 어색한 부분도 있겠다. 
지난 달에 후원 파트는 사진만 올렸지만 이번에는 아예 삭제하였는데
지난 3월에 후원 파트를 상세히 기술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 서울편 I
제2부 창덕궁
돈화문에서 인정전까지
 인간적 체취가 살아 있는 궁궐
궁궐의 도시, 서울 / 5대 궁궐 / 경복궁과 창덕궁 / 「동궐도」 / 돈화문 /
내병조와 ‘찬수개화’ / 금천교 / 인정전 / ‘검이불루 화이불치’
선정전과 희정당 조선 건축의 모든 것이 창덕궁에 있다
창덕궁의 구조 / 내전의 파사드 / 빈청과 어차고 / 선정전 / 유교 이데올로기와 경연 /
희정당 / 선기옥형과 하월지 / 창덕궁 대화재와 복구 / 내전 벽화 프로젝트
대조전과 성정각 조선의 왕과 왕자들은 이렇게 살았다
대조전 / 경훈각 뒷간 / 대조전 화계 / 중희당 / 성정각 / 희우루 / 관물헌 / 승화루 서목
낙선재 문예군주 헌종과 이왕가의 여인들
헌종 / 낙선재 / 『보소당 인존』과 낙선재 현판 / 허련과 헌종의 만남 /
낙선재 뒤란 / 이왕가 여인들 / 이구와 줄리아

입구에 비치된 팜플렛의 도움을 받으면서~~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이다. 경복궁의 정문이 광화문이듯이. 

돈화문 앞 월대는 제법 크고, 옆면이 잘 다듬어진 장대석으로 둘려있어 번듯하다. 

 

돈화문에서 진선문 가는 길

돈화문을 통해 창덕궁으로 들어와 진선문 쪽으로 가자면

경복궁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대신 편안함과 인간적 체취가 물씬 풍긴다. 

 

창덕궁의 가을 단풍

금천 좌우로는 물길 따라 늘어선 갯버들과 알맞게 큰 단풍나무가 철마다 다른 빛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회화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

 

 유홍준 교수는 서울을 하나의 임팩트있는 캐치프레이즈로 부른다면 '궁궐의 도시'라 했다.

그중에서도 조선 궁궐의 멋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창덕궁이다. 

그리고 현재 서울의 5개 궁궐 중 오직 창덕궁만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제2차 왕자의 난을 일으켜 왕권을 차지한 태종이 1405년 한양으로 환도하면서 새로 창덕궁을 지었다.

태종으로서는 나쁜 기억이 남은 경복궁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창덕궁의 궐내각사

창덕궁 안은 정원 같은 편안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나무들 너머로 보이는 전각들이 궁궐임을 확실히 느끼게 한다. 

 

 내병조 건물

궁궐 안에 근무하던 병조 관리의 출장소 같은 곳이다. 궁궐 안에 있는 병조라고 해서 내병조라 부른다.

지금은 창덕궁 관리소 사무실로 사용하며 공사중이라 내부 관람이 되질 못했다. 

 

금천교

창덕궁 금천을 가로지른 금천교는 한양 건설을 도맡았던 전설적인 토목건설 기술자 박자청이 설계 시공한 명작이다.

개울물이 흐를 때 반대편에서 사진을 찍으면 좀 더 나을텐데 그쪽에서는 나무에 가려져 전체가 나오질 않았다. 

 

금천교 기둥의 돌짐승 조각들

금천교 양쪽 기둥엔 네 마리의 동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어떤 동물도 마주치기만 하면 도망치고 만다는 전설 속 백수의 왕인 산예이다.

 

금천교를 받치고 있는 쌍무지개 아치를 보면 북쪽엔 돌거북이,

남쪽엔 홍예 사이의 부재에는 귀면이 조각되어 있다. 

 

금천교 양쪽 기둥의 산예 조각

 

금천교 아래의 돌짐승 조각들

 

이번 목적은 단풍이었는데 아주 멋진 모습  

 

금천교와 진선문  

삐뚜름히 놓인 금천교가 궁궐의 정연함을 흩트려놓았다.

금천교를 복원하면서 진선문과 일직선을 이루게 하지 않고 금천 호안석축과 직각이 되게 했기 때문에 나온 실수였다. 

 

진선문 안쪽

진선문에서 숙장문을 바라보면 왼쪽엔 인정문과 인정전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긴 회랑이 펼쳐진다.

이 회랑 자리에는 본래 오늘날로 치면 경호실인 호위청과 총무과인 상서원이 있었다. 

 

세번째 문은 왼쪽으로 꺽어 인정문  

 

 

인정전
창덕궁의 정전으로 국가의 중요한 의식을 치르던 곳이다.
용마루에 이씨 왕조의 상징 오얏꽃(자두꽃) 문양이 5개 있다. 대한제국을 상징하여 창살문을 황금색으로 칠하였다.  

 

창덕궁의 하이라이트는 인정전이다.

부감법으로 내려다보면 인정전은 회랑으로 둘려 있어 품위와 권위가 살아나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 5칸의 중층 팔작지붕으로, 품위 있고 듬직하고 잘생겼다. 

낮은 듯 높게 쌓은 석축위에 올라앉아 있어 대지에 내려앉은 안정감이 있다. 

 

인정전 내부의 용상

일제강점기 근대식 알현소로 개조되었던 인정전은

현재 복원되어 용상의 단을 높여 세웠으나, 마룻바닥은 그대로 두어 상처의 흔적을 남겼다.

인정전 내부에서 일월오봉도와 화려한 전등을 볼 수 있다. 

 

인정전 천장

천장엔 왕의 공간임을 상징하는 봉황 한쌍이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 솜씨가 대단히 뛰어나고 채색이 매우 아름답다. 

하지만 나의 사진엔 봉황의 몸통과 날개가 부분적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문화재청에서 다운로드한 인정전 천장

 

 

선정전

인조반정으로 인한 창덕궁 대화재로 소실된 선정전을 복원하면서

인왕산에 있던 인경궁 건물을 옮겨와 창덕궁 전각중 유일한 청기와 집으로 남았다. 

 

선정전 내부

보물 제814호인 선정전은 치조의 핵심 건물로 오늘날로 치면 국무회의나 비서관 회의 등이 열렸던 곳이다.

조선의 임금들은 여기서 매일같이 대신들과 정치에 관해 논의했다. 

 

宣政殿 현판

베풀 선(宣) 자, 정사 정(政) 자를 쓴 선정전이라는 이름에는

임금이 정치를 베푼다는 뜻이 담겨 있는데, 옛날엔 이를 청정(聽政)이라고도 했다.

 

 

 

대조전

궁궐 한가운데 있는 지밀한 곳이기 때문에 겹겹이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에는 별도의 대문까지 있다. 

 

대조전

대조전 건물은 정면 9칸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앞에는 넓고 높직한 월대가 있어 장중함을 더한다. 

 

대조전의 실내장식은 1920년 복원 때 근대식으로 바뀌었다.

창호지 대신 유리창과 무쇠로 만든 고전적인 전등이 달렸고, 기둥과 창방에는 예쁜 봉황 조각이 장식되어 있다. 

 

대조전 벽화 '백화도'

유홍준 교수가 소개하고 있지만 대조전에서 볼 기회는 없었다. 문화재청에서 다운로드하였다.

 

대조전 뒤쪽으로 대조전 화계와 경훈각이 있는데 유홍준 교수의 저서에 많은 설명이 있지만

현재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으니 다음 기회에는 허락되어지길 바래야지~~

 

희정당

 앞쪽에 새로 신관까지 지어 창덕궁 어느 건물보다도 화려하다.
순종황제 때는 자동차가 신관 뮨앞까지 들어오도록 신관 정면에 캐노피 건물을 세웠다. 

 

희정당
희정당은 본래 임금의 서재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지 않았으나
순조가 희정당을 편전으로 삼으면서 창덕궁의 핵심건물로 부상해 규모가 커졌고,
순종황제 때는 손님을 맞이하는 접견실로 쓰이면서 더욱 위상이 높아졌다. 


희정당 전각
보물 제815호인 희정당 건물은 정면 11칸, 측면 5캉의 팔작지붕 집으로
기단부를 장대석 5단으로 거의 담장 높이까지 높직이 올려쌓아 자뭇 장중하다. 

 

 

 

희정당 내부
전소된 내전 건물을 복원하면서 전각 내부를 우리나라 화가들이 그린 벽화로 장식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국미술사에서 전례없는 장대한 미술 프로젝트가 시행되었다.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 그리고 총석정절경도이다. 아래 사진은 살짝 보이는 부분을 찍었다. 

 

문화재청에서 다운로드한 금강산만물초승경도, 그리고 총석정절경도

 

성정각
왕세자의 독서와 서연이 이루어진 건물로,
동궁의 정전인 중희당은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내면서 헐리고 맨 서쪽에 있는 성정각만 남았다.

 

성정각 누각 머리에는 봄이 오는 것을 알린다는 뜻을 담은 보춘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동쪽 머리에는 희우루라는 현판이 걸려있는데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하다는 뜻이다. 
정조 1년 날이 매우 가물었는데 이 누각을 중건하는 공사를 시작하자 비가 내렸고,
가물다가 누각이 완성되어 정조가 행차하자 다시 비가 내려 희우루라 이름지었다. 

 

관물헌과 집희 현판
관물헌은 세자가 공부하며 생각에 잠기는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서까래 아래에 집희라는 작은 현판이 붙어 있다. 고종이 쓴 글씨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입궐해서 여기에 머물렀고, 고종의 아들 순종이 이 집에서 태어났다. 
갑신정변 때 개화당의 김옥균, 박영효 등이 고종을 모시고 피신하여 청나라 군사의 공격에 대비한 곳도 여기였다. 

 

성정각 담장 밖 후원 가는 길가의 홍매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오랜 노매이다.
사진의 홍매가 맞는지 모르겠다. 이 홍매가 천연기념물이라는 표식을 보질 못했기 때문이다.

 
승화루
동궁의 동쪽 끝에 해당하는 서화 수장고로, 규장각의 주합루에 비견하여 소주합루라고도 불렀다.
안타깝게도 이 승화루의 서화들은 모두 망실되었

 
낙선재 권역
헌종은 문인 학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그들의 삶을 동경하여
1847년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에 문인들의 사랑채를 본뜬 낙선재를 지었다. 
 
낙선재 화계
화계는 5단으로 아주 가파르게 짜였고, 아래쪽에는 괴석과 돌수조가 진열되어 있다.
대조전 화계가 장대하다면 여기서는 아기자기한 멋을 느낄 수 있다.

 

낙선재
낙선재는 문기있는 선비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할 만한 사랑스런 집이다.
앞마당이 널찍하고 장대석을 5단으로 쌓은 석축 위에 건물이 높이 올라앉아 있어 번듯한 인상을 준다. 

 

낙선재 빙벽 문양
낙선재 누마루 아래로는 아궁이가 보이지 않게 가벽을 치고 이를 빙렬무늬로 장식했는데,
화재 예방의 의미를 담은 일종의 추상 벽화이다. 
 
낙선재의 창살들
작선재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창살이다. 수직 수평선만 사용하는 창살이지만
격자, 만자, 마름모꼴 능화, 사방연속무늬 등을 두루 사용하여 모두 다르게 디자인했다.

 
낙선재 현판
청나라 금석학자이자 추사의 친구인 섭지선이 쓴 현판이다. 
당시 청나라의 신문물을 적극 받아들였던 징표이기도 하다. 

 

석복헌 화계에서 낙선재 뒤뜰까지
왕비가 기거한 석복헌과 대왕대비가 기거하던 수강재 뒤뜰은 아름다운 화계로 연결되어 있다. 
앞쪽은 세 채가 담으로 막혀있으나 뒤란은 하나로 트여 있다. 

 

 
금강연지와 소연주
화계 앞 돌수조에는 고운 전서체로 금사연지라 새겨져 있는데,
거문고를 연주하고 역사책을 읽는 벼루같은 연못이라는 뜻이다. 
괴석을 올려놓은 육각형 석함에는 반듯한 해서체로 소영주라 새겨져 있는데, 작은 영주산이라는 뜻이다.

 

상량정 등 낙선재 권역의 다른 부분도 많이 언급되고 있지만
현재 출입이 되지 않는 지역이 있어 낙선재 이야기는 여기서 마친다. 

 

 
후원 스토리는 이미 지난 3월8일 상세히 남긴 바가 있어 생략한다. 
https://goclemens.tistory.com/15710860

창덕궁 후원: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 (2023.3.8)

일자: 2023.3.8 코스: 창덕궁 후원 답사로: 후원 입구 ~ 부용정/영화당 ~ 불로문 ~ 애련지 ~ 연경당 ~ 존덕정 ~ 취규정 ~ 옥류천 ~ 향나무 소요시간: 1시간 40분 도상거리: 2.84km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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