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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수염 외: 이어령 (2022.6.21)

클리오56 2022. 6. 21. 23:51

 

1. 문학사상사 출판

(1) 등장인물: 김철훈(신문사 카메라 기자), 나신혜, 나 목사(나신혜 부친), 박 형사, 나(작가)

 

(2) 문장

* 35쪽: 유언에도 그 함과 함께 묻어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 함속에는 땅문서와 지적도가 들어 있을 것이다. 아! 땅, 토지, 논과 밭과 그리고 붉은 산들 - 그러나 지금은 시효를 잃고 한낱 휴지쪽이 되어버린 땅문서를 끌어안고 아버지는 눈을 감은 것이다. 땅은 우리의 운명이었다. 형님을 내쫓게 한 땅, 아버지를 미치게 만든 그땅. 해방이 되던 그 다음날부터 우리는 땅의 피해자였다. 

 

* 41쪽: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범인을 잡아 재판을 해야 되는 겁니다. 생명에 매달려 숨쉬고 있는 생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이죠. 그것이 기쁠 희자의 장식이 붙은 함이었든지, 이마의 인두 자국이었든지, 비가 내리는 한밤중에 끌려가는 사람의 부름 소리였든지.... 나는 김철훈을 죽게 한 그 범인을 찾아내고야 말겠습니다. 그는 분명히 삶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도록 강요당한 것입니다. 

 

* 49쪽: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순수성도 또한 모른다. 그러나 신혜의 경우에는 어떤 악마도 그를 타락시킬 수 없는 딱딱한 순결성을 풍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정조를 잃어도 여전히 동정녀일 수 있는 신비한 여자가 세상에는 가끔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 50쪽: 그이(김철훈)는 나를 환상 속에서만 사랑하려고 했어요. 할퀴면 상처가 나고, 잠이 들면 코를 고는 현실의 나에게선 도망치려고 애썼습니다. 그이는 다만 그 자신의 꿈들만을 껴안고 산 겁니다. 그이 앞에 나서면 꼭 나는 휘발유처럼 온 몸이 증발되어 가는 느낌이었어요. 소설도 상상만으로는 써지지 않는 모양인데, 상상만으로 남녀가 깊이 사랑을 비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 53쪽: 아버지는 아내와 두 아들을 잃은 겁니다. 그리고 유난히도 운이 나쁘신 분이었어요. 철훈씨는 그러한 아버지가 좋았던 거예요. 홀로 떨어져 있고 반신불수가 되고 남들에게서 영영 망각된, 그래서 유령처럼 밀실에 누워서 사는 아버지가 좋았던 거예요. 

 

* 55쪽: 그 이마의 상처가 안됐다고 생각했죠. 저에게도 그런 상처가 있었으니까요. 자신을 갖고 여자에게 사랑을 하자고 덤벼드는 그런 뻔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이의 말대로 이마의 흉터는 남을 해칠 줄 모르는 고독의 휘장 같은 것이라 생각했어요. 숙명적으로 현실적일 수는 없는 관계였죠. 

 

* 61쪽: 아! 신혜, 그런데 이진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 피를 흘리고 있었어. 내가 엎드려 있던 그 수문, 다른 데보다 가장 안전하리라 믿었던 그 수문 속에서 그는 죽어가고 있었던 거야. 그는 내 이름을 부르며 죽어갔지. 흰자위의 눈으로 나를 찾고 있었어. 너 때문에 죽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어. 신혜... 그것이 나의 헌신적인 우정의 결과였단 말야. 그는 나 때문에 내게로 오는 총탄을 맞은 거지. 신혜! 이것이 내 고해야. 

 

* 63쪽: 고해성사 놀이는 마르셀 카르네 감독의 영화 <위험한 고빗길>의 한 장면에서 힌트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참고) 영화 위험한 고빗길: 프랑스 감독 마르셀 까르네의 1958년 연출작. 주연 : 파스칼 푸티. 잭 사리에. 장 폴 벨몽도. 1950년대를 풍미하였던 실존주의 분위기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삶을 외치는 반항적인 젊은이들의 초상을 그린 작품.

 

* 67쪽: 여직공들도 돌아와 있었어요. 이젠 살았다고 하면서, 재수가 좋은 편이라고 기뻐하고들 있었어요. 알고보니까 그들은 미리 그것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한 밀약 조건이었던 것을 내게 감춘 것뿐이었습니다. 얼어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나은 것이라고 위로를 해주는 친구도 있었지요. 내 처녀성을 차표, 맞아요, 차표 한 장과 바꾼 셈이었지요. 나는 화차 안에서 그 대학생에게 - 그는 아마 죽었을 거예요 - 그 대학생에게 사죄하고 있었습니다. 

 

* 68~69쪽: 우리는 이렇게 둘이 있잖아. 우리는 노새처럼 바라다볼 순 없는 거야. 인간의 눈을 뜨고 말이지. 서로 인간의 눈을 뜨고 이렇게 서로 지켜보고 있지 않아. 나는 신혜와 나 사이에 어떤 공간도 남아 있지 않게 끌어안았다. 나이 서른에 처음 여인을 포옹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철훈이 어째서 신혜를 좋아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은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신혜의 눈에서 그는 자기와 타인을 가로막고 있는 두꺼운 벽에 뚫려져 있는 비밀의 출입구를 - 그렇다. 그것은 비상구 같은 것이었겠다 - 그 통로를 찾아냈던 것이다. 신혜가 멜로드라마틱하게 상실했다는 처녀성은 그에게 있어 한 상처처럼 느껴진 것이고 그는 그 상처를 비집고 신혜의 마음으로 파고들려고 했을 것이다. 철훈은 오랫동안 자기의 상처와 함께 타인의 상처를 요구하고 있었던 것 같다. 

 

* 69쪽: 이진은 중요한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과 서로 섞이려면 같이 범죄를 저질러야 한다는 것을 그는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술이나 도박이나 계집질이나... 사실 이런 것들은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켜 주는 힘이 된다. 그러나 그는 몰랐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악에 의하여 뭉쳐지는 결합은 이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 끈은 해가 지면 곧 사라지고마는 그림자 같은 것이다. 

정말 인간이 타자와 결합되기 위해서는 아픈 상처를 서로 만지는 데에 있다. 나는 나목사처럼 예수교인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해하고 있다. 예수가 제자와 그리고 온 인류와 결합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손에 못 박힌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는 도마에게 예수는 손을 내밀고 못 자국과 그리고 옆구리의 창검 자국을 만져보라고 했다.  

 

* 74쪽: 그렇다면 2월18일 나목사와 신혜를 다 같이 알고 난 철훈은 고독의 허물을 벗었는가? 그는 직장에서 다른 친구들과도 어울리게 되었을까? 그가 쓰려던 장군의 수염도 그 주제가 바뀌어져야 하지 않았을까? 그 주인공은 남들처럼 수염을 기르면서 그 수염과 싸워가는 것으로 되어있지 않았을까?

 

* 92쪽: 다만 미친 것처럼 그리고 폭풍처럼 말예요, 뜨겁고 격렬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죠. 하지만, 안에서는 불꽃이 일고 있는데 문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열쇠가 잠겨진 문 말예요. 폭발할 것 같은 지열이 분화구를 찾듯이 말예요. 나는 그 두꺼운 문을 열어주는 열쇠를 갖고 있는 사람을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누군가 한 번, 딱 한 번 열쇠를 꽂고 돌려주기만 하면 생명은 폭발하고 분출하고 안에 갇혀있던 불꽃은 모든 것을 불태우며 멋지게 흘러나갔을 거예요. 

 

* 95~96쪽: 신혜는 점점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몽유병자나 백일몽을 꾸는 것 같은 철훈의 표정이 두려웠다. 추장놀이를 할 때에는 그래도 절박감 같은 것이 없었지만, 고해놀이는 언제나 비통하고 우울한 것이었다. 사물과 화해하려고 애쓸수록 철훈은 자기 학대 그리고 신경쇠약에 가까운 자기결백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 106쪽: 수염 때문에 나는 죽는 거다. 나는 암살을 당한 거다. 아 수염을 기르지 않은 최후의 인간이 죽어가고 있는거다. 나는 변하지 않는 인간, 수염을 달기 이전의 그 사람의 얼굴을 간직한 유일한 인간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교통사고라 할 것이다. 우연한 교통사고라고 할 것이다.

 

* 109쪽: 닥터 윤의 말에 의하면 철훈은 오이디푸스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장군의 수염이란 소설만 해도 그렇다는 것이었다. 수염은 무의식 심리를 분석할 때 아버지를 상징하는 것이고, 그것은 권위를 뜻하는 것이라 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가 눈물을 흘릴 수 없었던 것도 결국은 오이디푸스콤플렉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조정력을 상실한데서 정신분열증이 일어난 거고 신혜는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대상이었지만 시골에서 올라온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두 이미지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을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는 말하자면 무의식 속에서 발작적으로 자살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는 거다...

 

(3) 단어

* 조바위: 추울 때에 여자가 머리에 쓰는 물건의 하나. 모양은 아얌과 비슷하나 볼끼가 커서 귀와 뺨을 덮게 되어 있다. 

* 반자: 지붕 밑이나 위층 바닥 밑을 편평하게 하여 치장한 각 방의 윗면

* 육조방: 다다미를 뜯어낸 마루방

* 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 둔사(遁辭): 관계나 책임을 회피하려고 꾸며서 하는 말. 예) 일이 잘못되자 그는 교묘히 발을 빼려고 둔사를 피웠다.

* 동서(同棲): 정식으로 혼인하지 않은 남녀가 한집이나 한방에서 같이 살아감. (=동거)

  참고:   깃들일 서 부수 木 총획 12획 1. 깃들이다 2. 살다, 거처하다(居處--) 3. 쉬다, 휴식하다(休息--)

* 국궁(鞠躬): 윗사람이나 위패(位牌) 앞에서 존경하는 뜻으로 몸을 굽힘국궁 배례.

참고: 공 국/국문할 국, 궁궁이 궁, 부수 (가죽혁) 총 획수 17획, 1. (공 국/국문할 국)  2. , 가죽 공  3. 국화(菊花)

        몸 궁, 부수 (몸신) 총 획수 10획, 1. , 신체(身體)  2. 자기(自己), 자신(自身)  3. , 팔뚝

* 데포르마시옹 (déformation, 데포르메, 변형):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실 묘사에서 이것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왜곡하여 변형시키는 미술기법.

 

* 탐 카린스(Tom Collins): 카린스는 레몬과 라임의 향이 상쾌해 진과 믹스한 탐 카린스, 위스키와 믹스한 존 카린스가 유명

* 맥(貘) 부수 (갖은돼지시ㆍ갖은돼지시변) 총 획수 17획, 1. 짐승의 이름  2. 맹수(猛獸)의 이름  3. 표범의 딴 이름

1. 동물 맥과의 포유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 몸의 길이는 2~2.5미터, 어깨의 높이는 1미터 정도이며, 몸은 굵고 꼬리는 짧다. 코는 입술과 연결되어 있으며 뾰족하다. 앞다리에 네 개, 뒷다리에 세 개의 발굽이 있다. 초목의 열매를 먹으며 밀림의 물가에 사는데 말레이 지방, 중남미에 분포한다.

2. 악몽을 먹는다는 맥. 중국 전설에 전하는데 곰같이 생겼고, 코는 코끼리, 눈은 물소, 꼬리는 소, 발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한다.

 

(4) 황도경 작품해설: 수염의 음모, 소설의 구원

- 액자구성과 두 개의 이야기

* 일제강점기-해방-전쟁-군사혁명의 급격한 사회, 정치적인 변화의 흐름 속에서 순수한 청년이 어떻게 서서히 상처 입고 파멸해가는지 확인 => 한 인간이 사회와 집단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 복잡다변한 현실 속에서 진정한 존재 의의와 가치는 무엇인지 => 결국, 지난 역사적 현실에 대한 탐색이자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이고도 실존적인 물음

* 특이한 점은 김철훈이라는 인물의 사인을 추적해가는 나의 이야기로 진행, 박형사가 소설가인 나를 찾아오며 시작

* 나는 김철훈이 쓰고자 했던 장군의 수염의 내용을 추적하며 자신의 소설을 함께 완성해 간다

 

- 수염의 음모와 낙원으로의 탈주

* 혁명군이 모두 수염을 기르고 있어 그후 모든 사람들이 수염을 기르기 시작, 끝내 수염을 기르지 않은 주인공은 그 때무에 회사에서 쫓겨나고 사회로 부터 추방되었다는 내용

* 장군의 수염은 어느 순간 우리의 삶을 비집고 들어와 우리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어두운 힘, 좀 더 확대하면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우리를 조종하고 우리를 굴복시키는 주체 =>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에게 젖을 물린 채 밤늦도록 인두질을 하게 한 노할머니의 무서운 권위,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결코 소작인들에게 물려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확고한 신념, 친구를 위해 숨을 곳을 내주었다가 오히려 그를 죽이고 만 운명의 아이러니, 암으로 죽어가는 아내에게서 동료기자를 빼앗을 수가 없어 문제가 된 사진을 자신의 것이라 하고 대신 끌려갔다가 오히려 문제만 커지고 권고사직당한 일 

* 장군의 수염을 거부하여 사회로부터 추방당하며 받는 상처와 고독이 있어야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 고문당하여 유령처럼 밀실에 누운 나목사 => 예수의 손에 못 박힌 상처로 인하여 온 인류와 결합 가능 => 구원과 낙원

* 김철훈과 나신혜, 둘은 모두 상처 입은 영혼이라는 점에서 서로 닮아 있는 존재

* 나신혜는 불의 여인으로 대지기업사 취직하며 떠나고, 김철훈이 쓰던 소설 주인공은 장군의 수염으로 얼굴을 덮은 운전사가 모는 차에 치여 죽는 것으로 소설을 결말  => 현실의 삶은 결국 장군의 수염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함

* 철훈은 어머니가 서울로 올라와 자신을 만나려는데, 그 전날 죽음. 최후의 보루인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온다는 상징은?

 

- 존재의 비밀과 소설의 구원

* 김철훈의 사인을 추적해가는 두 인물은 박형사와 소설가인 나. 형사는 법의 질서를 위해서, 나는 생의 질서를 위해 사인을 탐색. 만일 김철훈이 자살을 한 것이라면 형사의 임무는 거기에서 끝나지만, 정작 소설가의 탐색은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

* 자살 이유에 대하여 각자는 다른 견해: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생긴 흉터 때문에 비뚤어진 성격 탓, 누이는 형사에 끌려가며 자신을 부르던 형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한 자책, 편집국장은 실직에 따른 생활고, 정신병원장은 오이디푸스콤플렉스에 기인한 무의식적 발작. 

* 남은 하나의 희망인 아이들마저 수염을 달고 있어 그때 주인공은 비로소 완전히 죽게 된다  

* 남들의 죽음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쓰고 새롭게 사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철훈 군의 죽음도 그냥 끝난 것만은 아닐 겁니다. => 소설이 구원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러한 물음과 마주하게 한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2. 영화 장군의 수염 (출처: 위키백과)

감독 이성구, 각본 김승옥

출연: 신성일 - 김철훈 역, 윤정희 - 나신혜 역, 김승호 - 형사 역, 정애란, 문오장, 여운계, 이일웅

- 개봉일: 1968914(충무로 명보극장)

- 특징:

 *  감독 이성구는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을 사용하여 극적 분위기를 일전시키는 등 새로운 시도를 보였다.

 * 1960년대 최고의 영화로 오발탄을 꼽을 수 있고, 그 다음으로 장군의 수염이 차지할거라는 평. 모더니즘적 영화 

 * 장군의 수염은 검은 색으로 억압, 정치. 반면에 크리스마스의 산타는 하얀색, 자유, 종교로 대비

- 줄거리: 사진기사 김철훈(신성일 분)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이에 노련한 민완형사 김승호가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김철훈이 살아있을 때 접촉했던 사람들을 차례로 만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던 중 김철훈과 한때 동거했던 댄서 출신 신혜(윤정희 분)를 만나게 되고, 그가 고해(告解)놀이를 비롯한 비현실적인 망집(妄執)의 사나이였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가 현실에 적응할 수 없자 자살을 택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일단 수사의 마무리를 짓는다.

 

 

3. 영화 장군의 수염 (출처: 네이버 백과)

- 해설: ‘일월’, ‘메밀꽃 필 무렵’(1967)에 이은 이성구의 문예물. 당대 지성의 대표로 일컬어지던 문학평론가이자 시인, 소설가이면서 논객이던 이어령이 1966년에 발표한 동명 장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각색 김승옥.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되는 대담한 양화풍의 영화”(동아 68. 9. 17)로 미스터리적 구성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 지식인의 죽음과 그의 사인을 밝히는 형사로 하여금 주인공의 죽음을 먼저 제시하고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그 원인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내러티브를 구조화하고 있다.

즉 주인공 김철훈은 “삶의 현장에 있으면서도 그것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제3자적 존재로 설정한 후 신동헌의 애니메이션을 영화 속 영화로 삽입해 실험영화적인 특징을 살리고 있다.

소설 제목 『장군의 수염』은 쿠데타에 성공한 장군이 기르고 있던 수염을 전 국민이 따라 기르는 와중에서 유일하게 수염을 기르지 않고 있던 한 사람만이 사회로부터 따돌림과 냉대,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일단 형식면에서 추리소설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르면서도 분명한 해결을 보여주지 않는다. ‘60년대 한국 누벨바그의 기수’로 지칭되는 이성구는 이 영화로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백마상에서 감독상을 수상, 관객 10만 명 이상 동원으로 흥행에도 성공했다.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 100선’ 선정.

 

- 줄거리: 사진기자 김철훈이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이 사건을 담당한 박 형사(김승호)는 그의 사인을 규명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철훈의 애인 신혜(윤정희)를 만난다. 그리고 철훈은 사진기자이면서 『장군의 수염』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는 소설가 지망생임을 알아낸다.


형사는 이 소설을 통해 그의 특이한 고독감은 유년시절부터 형성된 것이며 그는 획일화된 근대사회를 조망하기 위해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아왔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너무나 깊이 소설에 빠져든 나머지 망집과 환상에 사로잡혀 소설과 현실을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철훈이 소설에서 획일화되는 사회적 억압을 거부했듯이 박형사는 “현실적응 능력이 없는 그는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한다.

 

 

4. 유튜브 일당백의 정박님 추천작 

(1) 수필 어머니와 귤

수술을 받기위해서 어머니는 서울로 가셨다. 이른바 대동아 전쟁이 한창 고비였던 때라 마취제도 변변히 없는 가운데 수술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런 경황에서도 어머니는 나에게 예쁜 필통과 귤을 보내주셨다. 필통은 입원 전에 손수 사신 것이지만, 귤은 병문안 온 손님들이 어렵게 구해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귀한 것이라고 머리맡에 놓고 보시다가 끝내 잡숫지 않으시고 나에게 보내주신 것이다.

그 노란귤과 함께 어머니는 하얀 상자속의 유골로 돌아오셨다. 물론 그 귤은 어머니도 나도 누구도 먹을 수 없는 열매였다. 그것은 먹는 열매가 아니다. 그 둥근 열매는 사랑의 태양이었고 그리움의 달이었다. 그 향기로운 몇 알의 귤은 어머니와 함께 묻혀졌다.

서울로 떠나시던 마지막 날, 어머니는 나보고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열 한 살이었으니까 이젠 어머니의 다리를 주무를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성장한 것이다. 정말 다리가 아프셔서 그러셨는지, 혹은 막내라고 늘 걸려하셨는데 그 만큼 자란 것을 확인하고 싶으셔서 그러셨는지, 혹은 내손을 가까이 느끼며 마지막 작별을 하려고 하신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다리를 주물러 달라고 하셨다.

왜 그랬던가. 나는 어머니에게 숙제를 해야 한다고 꾀를 부리고는 제대로 다리를 주물러 드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나는 어머니의 신병이 무엇인지 잘 몰랐던 것이다. 그것이 정말 마지막인지 몰랐던 것이다.

나는 더러 산소에 갈 때 귤을 산다. 홍동백서에는 지정되어있지 않은 색깔이지만 제상에다가 귤을 고인다.

그리고 귤을 살 때마다 나는 귤 값이 너무 싼 것에 대해서 절망을 한다. 분노를 한다. 어머니가 머리맡에 놓고 가신 그 귤은 지폐 몇 장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 이제 어디가 그 귤을 구할 것이며, 내 이제 어디가 어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릴 수 있을까?

 

(2) 수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하나의 공간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그만 이파리 위에 우주의 숨결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내가 혼자인가를 알았다.

푸른 나무와 무성한 저 숲이 실은 하나의 이파리라는 것을 제각기 돋았다 홀로 져야 하는 하나의 나뭇잎, 한 잎 한 잎이 동떨어져 살고 있는 고독의 자리임을 나는 알았다. 그리고 그 잎과 잎 사이를 영원히 세월과 무한한 공간이 가로막고 있음을.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왜 살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왜 이처럼 살고 싶은가를, 왜 사랑해야 하며 왜 싸워야 하는가를 나는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은 생존의 의미를 향해 흔드는 푸른 행커치프 태양과 구름과 소나기와 바람의 證人(증인) 잎이 흔들릴 때, 이 세상은 좀 더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의 욕망에 눈을 떴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들었다.

다시 大地를 향해서 나뭇잎은 떨어져야 한다. 어둡고 거칠고 색채가 죽어 버린 흙 속으로 떨어지는 나뭇잎을 본다.

 

피가 뜨거워도 죽는 이유를 나뭇잎들은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생명의 아픔과, 생명의 흔들림이, 망각의 땅을 향해 묻히는 그 이유를 그것들은 말한다. 거부하지 말라.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大地는 더 무거워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끈끈한 引力(인력)이 나뭇잎을 유혹한다. 언어가 아니라 나뭇잎은 이 땅의 리듬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는다. 별들의 運行(운행)과 나뭇잎의 파동은 같은 질서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우리들의 마음도 흔들린다. 온 우주의 공간이 흔들린다.

 

<참고>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또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 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인데,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 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풍습이라고 한다.

* 좋은 작품에는 반드시 죽음이 들어가지 않으면 안된다. 항상 이것이 좋은 것이고 너는 잘 될 것이고 이런 글은 좋은게 아닌거다. 속이는 글이다. 좋은 것은 반드시 메멘트 모리라고 하며 죽음이 있다. 아무리 너가 지금은 영화롭지만 타 죽음을 생각해 이렇게 끊임없이 알려주고 일깨워 주는 것이다. 끊임없이 경계한다. 

 

(3) 名文의 조건

-명문은 頭痛을 낫게 한다
曺操(조조)는 두통이 날 패마다 陳淋(진림)의 글을 읽었다고 한다 그의 글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아픈 것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袁紹(원소)의 편에서 자신을 비방해 오던 陳淋이 포로로 잡혀 왔을 때에도 벌하지 않고 문서계로 둥용시켰다. 중국에서는 그래서 名文을 쓰는 일을 傾國之大業 (경국지대업)이라고까지 했다.

-달이 밝다와 달은 밝다의 차이
名文을 쓰려면 우선 「달이 밝다」와 「달은 밝다」의 그 차이부터 알아야 한다. 「이」와「은」의 조사 하나가 다른데도 글의 기능과 그 맛은 전연 달라진다. 「달이 밝다」는 것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달이 환히 떠오른 것을 나타내는 描寫文(묘사문)이다. 그러나 「달은 밝다」는 달의 속성이 밝은 것임을 풀이하고 정의하고 있는 설명문이다.이태백의 詩에 「내 어릴 적 달이라는 말을 몰라 이름지어 부르기를 “백옥의 쟁반”라고 했느니」라고 노래한 것이 있다. 묘사문은 마치 달이라는 말을 모르는 아이가 달을 처음 대하는 것처럼 그렇게 쓰는 글이다.

-습관이나 고정관념의 굳은살을 때내면 늘 보던 사물들도 새롭게 보일 것이다.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기”
이것이 묘사문의 효과이며 그 특성이다. 그리고 그 글들은 항상 「지금」 「여기」라는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個體(개체)로 존재한다. 그러나 설명문은 정반대로 「낮선 것」을 「낯익은 것」으로 만들어 주는 글이다.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고쳐 주고 모르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옮겨놓는 사전의 낱말 풀이같은 글이다. 「지금」 「여기」의 특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떠오르는 달이 아니라 백과사전의 圖解(도해) 속에서 運行(운행)되고 있는 세계의 달, 무한 속의 달이다.

그러니까 기행문은 묘사문이요 여행 안내서는 설명문이다. 어느 때 묘사문을 쓰고 어느 때 설명문을 써야 하는지, 그것을 분별할 수 있게 되면 글쓰기의 반은 이미 터득한 셈이다.

-文體는주제이다
듀폰의 유명한 정의 「문체는 인간이다」라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같은 인격체라도 편지글을 쓸 때와 일기를 쓸 때 그리고 수필을 쓸 때와 소설을 쓸 때의 그 文體(문체)는 달라진다. 사람에 의해서 文體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 따라서 文體는 변화하다. 文體는 외출할 때 옷을 입는 것과 같다. 일하려고 나가는 것인지,파티 장에 가는 것인지, 혹은 가는 데가 장례식장인가 결혼식장인가에 따라 옷의 선택이 전연 달라진다. 文體는 사람이 아니라 주제이다. 그리고 그 주제는 문장의 형식과 내용이잘 어울릴 때 비로소 그 특성을 나타낸다. 형식에 치우친 글은 불꽃과 같은 것이고 내용에만 치우친 것은 수풀과 같은 것이다. 내용과 형식이 서로 긴장관계를 이루며 손바닥과 손등처럼 서로 뗄 수 없는것이 될 때 진정한 文體는 획득된다 불꽃도 숲도아닌 「불타오르는숲」 미국의 비평가 마크 숄러가 한 말이다.

-병렬법을 활용하라.
'달처럼 보이다가 별처럼 보이다가, 나비처럼 보이다가 티끌처럼 보이다가 염치고개를 넘어간다,
춘향이가 이도령과 이별하는 장면을 읊은 판소리의 한 대목이다. 멀어져 갈수록 점점 작게 보이다가 고개 너머로 사라져 버리는 이도령의 모습이 불과 네 개의 단어로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달이 별처럼 작아진 다음에 어째서 별보다 큰 나비가 등장하는가. 선형적인 글에만 익숙한 사람들은 그 대목을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달은 별과 짝이 되어 이도령의 얼굴 모양을 나타내고 나비는 티끌과 대비하여 이도령의 걸어가는 동작을 나타낸 竝列(병렬) 구조로 파악하면 그 절묘한 표현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된다.

달과별은 靜態的(정태적)인 것이고 나비와 터끌은 날아다니는 것으로 動態的(동태적)이다. 크고 작고 정태적이고 동태적인 네 단어의 병렬적 구조에 의해서 멀어져가는 이도령의 모습과 작아져 갈수록 커져 가는 춘향이의 別離(별리)에 대한 정감이 아무런 설명 없이 직물적으로 묘사된다.

詩든 散文이든 명문의 조건은 지엽적인 비유나 수사보다도 궁극적으로는 글의 구조에 의해서 결정된다. 용비어천가의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 역시 완벽한 병렬법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무는 열매로 응축되고 샘물은 바다로 퍼져가는 결정과 응축의 절묘한 대비가 이루어진다. 병렬법은 야콥슨이 지적한대로 동양철학과 동양 시학의 기본을 이루고 있는 구조이다.

-예수의 修辭學
예수는 똑같은 주제를 각기 다른 세 가지 우화로 보여준다.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이야기와 짐을 버려두고 땅 위에 떨어진 한 알의 곡식을 줍는 농부의 이야기와 그리고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오자 오히려 더 성대한 잔치를 열어주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똑같다. 그러나 첫번째 이야기는 양치는 遊牧民(유목민)의 경우를 예로 든 것이며 두 번째 이야기는 곡물을 가꾸는 農耕民(농경민)의 경우를 두고 한 소리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식을 키우는 어버이의 심정을 예로 든 것이다. 생산양식이 다르고 생활양식과 그 문화가 달라도 다같이 느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유명한 세 가지 우화는 메시지보다도 메시지를 받는 사람(청자)을 더 중시했던 예수님의 修辭學(수사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名文이란 어느 때 어디에서 누가 읽어도 감동을 받을 수 있게 한 글이다. 시대와 생활공간이 달라도 제가끔 자신의 체험으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교가 세계의 종교가 된 것도 바로 유목민이나 농경민의 어느 특정한 부류에 한정시키지 않고 모든 문화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보편성과 다원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일반화가 아니라 개별적이고 토착적인 문화에 修辭의 밑뿌리를 둔다. 詩人 예이츠는 번역권을 보류한다고 했지만 참으로 좋은 글은 번역을 해도 역시 좋은 글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어느 나라에서나 베스트 셀러가 된 聖書(성서), 그래서 聖書의 글들은 名文의 典範(전범)이 된 것이다.

-상 목수는 못질을 하지 않는다.
참으로 기량이 있는 상 목수는 못질을 하지 않는다. 못 하나 박지 않고 집 한 채를 짓는다. 억지로 못질을 하여 나무를 잇는 것이 아니라 서로 아귀를 맞추어 균형과 조화로 구조물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문장과 문장을 이어가는 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서틀 글일수록 「그리고」 「그래서」 「그러나」 -와 같은 접속사의 못으로 글을 이어간다. 그런 글을 읽다보면 못을 박는 망치 소리처럼 귀에 거슬린다. 잘 다듬어진 글의 이미지와 리듬은 인위적으로 접속사를 붙이지 않아도 자석처럼 서로 끌어당기고 어울려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글의 앞머리만이 아니다. 글을 맺는 종지형도 마찬가지이다. 서툰 글일수록 「것이다」로 끝맺는 일이 많다. 한글에 「것이다」를 몇번 썼는가. 「그리고」 「그러나」와 같은 접속사를 얼마나 많이 썼는가 기계적 인 통계만으로도 惡文과 名文을 쉽게 가려 낼 수가 있다.

-I like Ike.
가장 짧은 名文의 본보기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선거 표어인 「아이 라이크 아이크」일 것이다. 더 이상 짧을 수 없고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구조이다. 세 단어로 된 문장이지만 글자 종류를 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like"의 알파벳 넉자 속에 "I like Ike"의 모든 글자가 다 포함되어 있다. 그러니까 네 글자만 가지고 한 문장을 만들어낸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 짧은 글 속에 頭韻(두운:initial rhyme) 胸韻(흉운:internal rhyme) 그리고 末韻(말운:end rhyme)의 다양하고 절묘한 운율을 모두 구사한다. 「아이」의 두운은 「아이크」의「아이」와 짝을 이루고 동시에 「라이크」의 융운과 겹쳐진다. 「라이크」는 또 「아이크」의 말운과 맞물려 있다. 소리와 의미가 마치 메아리처럼 얽히면서 짧은 문장 속에 변화와 반복, 차이성과 동일성을 준다.

그래서 누구나 이 표어를 한번 들으면 평생 동안 잊혀지지 않게 된다. 名文이란 외우려고 해서 외워지는 것이 아니다. 저절로 머리 속에 가슴속에 刻印(각인)된다. 희랍 사람들은 진실의 반대말을 허위가 아니라 망각이라고 했다. 이 표어를 가슴속에 달고 다닌 아이젠하워의 선거원들이나 유권자들은 진실로 그를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

-歐陽修의 베개
옛날 문장가들은 名文을 쓰기 위해서 구양수 베개를 베었다. 구양수 베게란 울통불통한 옹이가 많이 박힌 木枕(목침)을 뜻한다. 그것을 베면 편안치가 않아서 깊은 잠에 빠지질 않는다. 어렴풋한 선잠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의 그 한가운데서 보통 때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문장들이 떠오른다. 구양수의 名文들은 실제로 비몽사몽 간에 적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구양수 베개는 “名文章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쉬는 것같의 상상의 불수의 근육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남들이 높은 베개를 베고 편안한 잠에 취해 있을 때 눈 떠 있는 자. 그 불면의 밤 속에서 어둠 속에서 名文은 알을 까고 나온다.

인터넷으로 지금 글쓰기가 다시 세계적으로 번져가고 있다. 이메일, 채팅, 그리고 게시판과 자료실에 글을 씨서 올리는 기회가 날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글쓰기의 소중함과 그 힘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 曹操가 아니라도 名文을 읽으면 머리가 맑아진다. 누구나 曺操가 되고 누구나 陳淋이되는 세상이 와야 한다. 그것이 인터넷 시대의 진정한 즐거움이요 행복이다.

 

 

(4) 소설 암살자 (1969년 영화화) - 출처 나무위키

* 헤밍웨이 소설처럼 아주 드라이하게 전개.

* 줄거리: 8.15 해방 직후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공산당은 찬탁에서 반탁으로 입장을 바꾸고 공산당을 탈당한 남호천(박암) 장군이 군중에게 반탁 연설을 하기 전에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암살자(장동휘)를 고용한다. 그는 9년 전 자신이 죽인 남자의 어린 딸인 신애(전영선)와 함께 살고 있다. 춘천 호반의 별장에 서 머무르고 있는 남호천 장군을 암살하기 위해 암살자는 공산당의 하수인인 당원 1호(남궁원)와 동행하게 되고, 남호천 장군은 자신의 연인과 별장에서 사랑을 나눈다. 한편 암살자의 집에서는 암살자의 "조그만 천사"인 신애를 제거하기 위해 도착한 당원 2호(오지명)가 천진난만한 그녀와 옛날 얘기를 주고받으며 놀고 있다. 암살자는 남장군을 죽이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 당원 1호에 의해 살해되고, 1호 역시 공산당에 의해 살해된다.

 

(5) 소설 전쟁 데카메론: 전쟁의 본질, 전쟁으로 망가진 청춘의 이야기, 4명의 주인공 등장

 

(6) 희곡 세번은 짧게 세번은 길게(1979년, 영화화 1981년) - 출처 나무위키

* 줄거리: 효과맨인 김종실은 아랍 갑부와의 거래를 성사시켜 백지수표를 받았다. 백지수표를 받은 종실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고 친구들과 술을 거하게 마신 뒤 술에 취해서 집에 갔는데 엉뚱하게도 본인의 집인 805호가 아니라 윗집의 창녀가 사는 905호였다.


자기가 잘못 들어온 것을 알고 집을 나가려던 차, 문이 고장났던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창녀의 집에 머물렀다. 이 때 창녀는 본인이 창녀라는 사실을 숨기고 남편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종실을 속였다.

한편 종실의 아내는 종실이 단 한번도 외박을 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들어 실종신고를 하게 되고 심지어는 뉴스에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창녀의 집에서 나왔다는 소문을 들으면 창녀의 이미지도, 종실의 이미지도 깎이는 일. 그래서 본의 아니게 창녀의 집에 머물렀다.

종실은 창녀의 집에 있는 수많은 연락처를 발견하고 자신을 속였다고 화를 냈다. 그냥 미리 보내줬으면 자신이 실종신고를 겪지도, 평판이 깎일 리도 없었을건데 괜히 자기를 유부녀라 속여 여자의 평판을 위해 창녀의 집에 머무르게 됐다는 것이다.

창녀는 이 말을 듣고 화를 내며 자기가 집을 나가겠다고 하자 그녀 동정심을 느껴 창녀를 나가지 못하게 하고 같이 일시적으로 살았다.

그러는 동안 종실이 백지수표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익을 노리고 실종신고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졌고 심지어는 종실이 죽었고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떠도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종실은 이러한 세태에 실망하고 창녀와 계속 동거하며 여행을 갔다가 이에 분노하고 자신의 추모식이 열리던 교회에 찾아가 자기는 살아 있다는 것을 밝히고 그들 앞에서 백지수표를 찢는 거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