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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이어령 (2022.6.19)

클리오56 2022. 6. 19. 20:43

 

1. 유튜브 일당백, 이어령 특집 (2022.5.20)

- 1933년12월 출생, 서울대 국문과 52학번, 디지로그 용어 창시, 첨단기기 사용의 얼리 어답터

* 르네상스형 지식인, 문학평론가, 극작가, 작가, 문명비평가, 문화기획, 문화의 전분야 망라 => 다만, 시대의 지성이라는 면에서는 약간의 반발있지만, 당시 시대를 감안하면 충분한 자격. 수평적으로는 많이 뻗어가지만 수직적으로는 부족하지 않는가하는 비평. 자신의 저작은 자신의 읽을거리.  

 

- 1956년(22세)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 소설가 김동리 등 다수 문인 및 비평가, 시인을 우상으로 몰아 강도 높은 선언문

* 참고(나무위키) 이어령은 이 글에서 당시 문단의 거두였던 소설가 김동리, 모더니즘 시인 조향, 소설가 이무영을 각각 '미몽(迷夢)의 우상', '사기사(詐欺師)의 우상', '우매(愚昧)의 우상'이라고 비판했다. 당시 이어령은 겨우 22세였기 때문에 '뭐 신인이고 하니까 조그맣게 나오겠지' 싶었는데 한국일보는 이 논설을 전면에 실어버린다. 4면 신문에서 한 면을 통째로 쓴 셈이다. 당시에는 작가들이 대중 사이에서 스타 역할을 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어령은 그야말로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그 이후로도 황순원,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1959년에는 한 경향신문 지면을 통하여 김동리와 이른바 '비문 논쟁'을 벌였다.

1950년대--또다시 아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의 깃발은 빛나야 한다.
무지몽매한 우상을 섬기기 위하여 그렇듯 고가(高價)한 우리 세대의 정신을 제물로 바치던 우울한 시대는 지났다. 그리하여 지금은 금 가고 낡고 퇴색해 버린 우상과 그 권위의 암벽을 향하여 마지막 거룩한 항거의 일시(一矢)를 쏘아야 할 때다.
우리는 조소한다. 고루와 편협을 자랑하는 아나크로니스트들의 가소로운 독백과 관중의 덧없는 박수 속에 '자기(自己)'와 '트릭'마저 상실해 버린 마술사의 비극을 조소한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그 공허한 우상의 자태--그것은 우리 사색(思索)의 선혈을 흠씬 빨아먹고 교만한 웃음을 웃는 기생충의 모습이다.
그러나 구경(究竟) 낡은 유물은 그 낡은 구세대의 시간과 더불어 소진(消盡)되게 마련이며 혹은 박물관의 진열장 속에 정좌한 골동품으로서의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우상은 우리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는다. 표피(表皮)를 스치고 지나가는 일진의 광풍에 불과하다.
우리의 정체를 감추기 위하여 그 거추장스런 달팽이의 껍데기를 등에 지고 다닐 필요는 없다. 혈혈단신 물려받은 유산도 없이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작업을 개시해야 한다. 50유년의 신문학 시대 그것을 과도기나 초창기의 혼란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지루하고 긴 세월이었다. 우리는 이 문학 선사 시대의 암흑기를 또다시 계승할 아무런 책임도 의욕도 느끼지 않는다.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로이 출발해야 될 전환기인 것이다. 우상을 파괴하라! 우리들은 슬픈 아이코노클라스트, 그리하여 아무래도 새로운 감격이, 비약이 있어야겠다.

-한국일보, 1956년 5월 6일

- 1962년  경향신문 연재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한국사회의 저변을 흐르는 그 문화적 바탕, 특징, 한계가 무엇인지? => 당시 10만부 베스트 셀러

* * 60년 전의 작품으로 요즘과는 맞지 않는 사례들: 헬렌은 지조가 없고, 춘향의 정절 강조는 최근의 성풍속과 판이함. 밥상 문화 => 우리의 전통과 역사를 끌어내어 의식화하려는 시도는 우리의 성숙한 사회를 위한 걸작

 

- 소설 '장군의 수염' (1975년), 암살자, 전쟁 데카메론, 축소 지향의 일본인(1982년)

 

- 1965년 소설가 남정현의 분지 필화 사건에서 변호인으로 적극 옹호. 선고유예 판결

* 참고(나무위키) 변호인 측 증인이었던 이어령은 소설적인 기법을 강조하며 이 소설을 적극 변호했다.

변호인 : 이 소설은 반미적인가?
이어령 : 이 소설은 우화적 수법으로 쓴 것이므로 친미도 반미도 아니다.
변호인 : 현실 그 자체를 그린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어령 : 그렇다. 이 작품에서 한국 여성과 미군의 관계는 미국 문화가 한국 문화에 접촉하는 과정을 비유한 것이다. 계급의식이란 것도 빈부의 차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관해서 작품 안에 언급이 없으므로 단순히 약자에 대한 동정으로 해석된다. 군 복무의식을 해이시켰다는 문제도 지엽적인 상황 설정이지, 그것이 목적이 아니므로 인정될 수 없다.
변호인 : 이 작품에서 작가는 어떤 저항성을 보이고 있는가?
이어령 : 그에게는 저항성의 일면과 도술, 은둔 등 동양적 풍류사상의 양면성이 있다.
변호인 : 이 작품이 북한 공산집단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공격을 받고 있는데?
이어령 : 달을 가리키라는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남씨가 가리키는 달은 주체적인 한국 문화이며 '어머니'로 상징되는 조국이다.
검사 : 이 소설을 처음부터 상징으로 보았는가?
이어령 : 어머니를 강조한 데서 그렇게 느꼈다.
검사 : 작가의 내심까지 알 수는 없지 않은가?
이어령 : 작품은 자기가 썼지만 일반에게 발표가 된 뒤에는 작가만의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독자가 멋대로 해석해서도 안된다. 작품 속에 담긴 상징성은 그대로 존중되어야 한다.
검사 :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는데 증인은 용공적으로 보지 않았는가?
이어령 : 나는 놀라지 않았다.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고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신문기사가 아니다.
검사 : 증인은 반공의식이 약해서 이처럼 증언하는 것 아닌가? 
이어령 : 나의 저술과 나를 비평하는 글들이 그 점에 대한 증거가 될 줄 믿는다.

- 조선 3대 구라: 백기완(지난해 타계방배추·황석영
* 참고 (중앙일보, 2022.5.8): 지난 5.6일이 방배추의 미수. 구라의 조건은 학벌이 변변치 않아야 하고, 주먹이 세지만 쓰지 않는 진짜 주먹이어야 하며, 구라 내용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어야 한다는 것.
* 3대 교육방송 구라: 이어령, 김용옥, 유홍준
 

2. 문학사상 출판 (신판 2002년)

(1) 소개

- 이어령(1934~2022?): 충남 아산, 서울 문리대 및 동 대학원, 1956년 우상의 파괴 발표, 1972년 문학사상 주간, 1967년 이화여대 강단,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회식,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1999년 새천년준비위원회 위원장

-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2년): 일간지 연재(1962.8.12~10.24) 되었던 글에 주해를 달아 실은 것. 40년 만에 개칠

* 한국의 자화상: 앵무새처럼 자신을 향해 부리로 쪼고, 맹수처럼 자기의 상처를 자기 혓바닥으로 핥는다. 우리의 성장은 밤 속에서 그리고 폭풍 속에서 역리의 거센 환경 속에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니 먼저 아파해야 된다는 것, 그 아픔의 감각이 있어야 한다는 것 - 그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내용의 전부이다.

 

(2) 내용

- 16~17쪽(여는 말, 풍경 뒤에 있는 것)

*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는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것을 다시 잡으려고 뒷걸음친다. 하마터면 그때 차는 그들을 칠 뻔했던 것이다.

 

* 누렇게 들뜬 검버섯의 그 얼굴, 공포와 당혹스런 표정, 마치 가축처럼 둔한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쫓겨갔던 그 뒷모습, 그리고... 그리고 그 위급한 경황 속에서도 서로 놓지 않으려고 꼭 부여잡은 앙상한 두 손.... 북어 대가리가 꿰져 나온 남루한 봇짐을 틀어 잡은 또 하나의 손.... 고무신짝을 집으려던 그 또 하나의 손.... 떨리던 손....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난 것이다. 쫓기는 자의 뒷모습을....

 

* 악운과 가난과 횡포와 그 많은 불의의 재난들이 소리 없이 엄습해 왔을 때 그들은 언제나 가축과도 같은 몸짓으로 쫓겨가야만 했던 것일까! 그러한 표정으로, 그러한 손길로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안되었던가! 우리의 피부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이 있다.  

 

- 22쪽 (울음에 대하여)

* 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울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그리고 어떻게 그 눈물을 미화했으며, 생활화했으며, 또 어떻게 그 울음 속에서 우리의 모럴을 빚어 만들어내었던가? 우리의 예술과 문화가 이미 수정알 같은 눈물에서 싹터 그 눈물에서 자라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 23쪽 (굶주림의 그늘)

* 우리의 슬픔과 그 울음은 대부분이 가난과 굶주림에서 온 것이었다. 서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속담 가운데도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것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아이들의 장구배는 우수의 상징

 

* 황새야 황새야 뭘 먹고 사니 / 이웃집에서 쌀 한 됫박 꿔다 먹고 산다 / 언제 언제 갚니 / 내일 모레 장 보아 갚지

 

* 먹는다: 나이, 더위, 공금, 욕

 

- 37쪽 (동해의 새우등)

* 불행히도 이 반도는 남북 양대륙이 만나는 경계선에 자리했기에 슬픈 새우등이 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그렇다. 토끼가 아니라 그것은 새우였다. 이 새우 등이 터지지 않으려면 양대 세력의 저울대를 재빨리 일고 강한 쪽으로 들러붙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사람들은 사대주의라고 욕했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한시도 동해의 그 외로운 새우는 연명할 수가 없었다. 

 

- 47쪽 (눈치로 산다)

* 일본을 정탐하러 간 사신들은 반년이나 그곳에 머물러 있었으며서도 기껏 보고 온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뿐이었다. 그야말로 눈치만 보고 온 것이다. => 황윤길: 그의 눈이 광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우리나라로 쳐들어올 것 같다 / 김성일: 그의 눈이 쥐새끼처럼 생겼으니 결코 쳐들어올 인물이 못된다.  

* 참고(나무위키): 황윤길은 당시 조총 2자루를 일본에서 사오는 등 전쟁 가능성을 명확히 인지한 행위

 

- 52쪽 ("사람 살려"와 "헬프 미")

* 구원과 자주성: 영국인 헬프 미(나를 도와달라), 일본 다스케테쿠레(도와달라), 한국 (사람 살려) => 영국과 일본은 주체적인 힘을 잃지 않고 어디까지나 힘을 좀 보태달라. 한국의 살려달라는 완전한 절망과 무력과 자기 포기, 즉 100% 구원 

 

- 78~81쪽 (김유신과 나폴레옹)

* 나폴레옹: 코르시카의 몰락한 귀족 출신에서 포병장교를 거쳐 황제로 오르는데 현실을 자기에게 적응시킴. 자객을 살려 줌. 출정 중 거울이 깨지자 조세핀에 돌아감. 외로운 섬 세인트헬레나에서 죽음 =>  서양의 영웅은 어딘지 모르게 비극적인 냄새를 풍긴다. 운명의 벽을 뛰어넘는 격렬한 투쟁의 뒷모습에는 낙조와 같은 장엄한 몰락의 그늘이 숨어 있다. 

 

* 김유신: 여동생 문희를 김춘추와 관계를 맺도록 유도하여 신라 왕실에 접근. 자백한 자객을 죽임. 천관녀 집으로가자 말을 죽임. 호국신으로 추앙 => 한국적 영웅은 순응하고 인종하며 화합하는 영웅이었다. 비통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순수한 영웅들이었다. 지평 밖으로 나가는 모험이 아니라 지평안에서의 투쟁, 그것은 현상을 뛰어넘는 영웅이 아니라 현상을 지키는 영웅들이었던 것이다. 

 

- 117쪽 (백의 시비)

* 우리는 백의의 유래에 대해서 이렇게 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엄격한 의미에서 백색은 색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난에서 온 사실이다. 이 두개의 시점에서 우리의 백의를 보지 않으면 안 된다. 백색 옷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옷감 그대로의 자연색이었음을 부정할 길이 없다. 즉, 물감을 들이지 않고 그냥 입었다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백의의 정체인지도 모른다. ......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살려고 했듯이, 백의는 곧 순응의 색체였던 것이다. 

 

- 151~156쪽 (우리와 나)

* 일본: 와타쿠시 4음절 => 자아의 관념 부족아닌가 / 한국: 나, 하지만 우리라는 말을 많이 사용, 우리 마누라... 주체성의 빈약. 다만 우리는 죽을 순간에 가서야 나를 느꼈던 것 같다. 죽을 때만은 '아이고 우리 죽는다'하지 않고 '아이고 나 죽는다'라고 했으니까. 

 

- 198쪽 (화투와 트럼프)

* 비광: 버드나무를 뛰어오르는 개구리와 괴상한 옷차림에 삿갓 같은 우산을 받고 서 있는 사람의 모습 => 서도의 대가 오노도후, 버드나무 가지로 매달리려는 끈질긴 개구리의 그 점프에서 서도의 경지를 터득하고 있는 참

* 화투는 6 16세기 말 서구의 카드에서 힌트를 받아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

* 참고 (나무위키): 16세기 후반, 일본이 포르투갈과 대대적으로 무역을 시작한 시절 포르투갈 선교사가 가져온 라틴식 플레잉 카드가 있었는데, 도박성 때문에 금지령이 떨어진 이후 규제를 피하기 위해 완전 다른 그림들을 그려서 사용한 것이 지금의 화투다. 인덱스는 꽃과 식물로 바뀌고, 모양(수트)은 광열단피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1:1로 대응되지는 않았으므로 이 과정에서 화투만의 독창성이 생겼다. 오노노 도후라는 서예가가 모티브를 제공했다고 한다.

 

그림이 복잡하고 구체적인 사물이 그려져 있는 것은 규제를 피하기 위함으로, 지금은 농담으로 화투를 지칭하는 '동양화 감상'이 그때는 안 잡혀가려고 하는 처절한 변명이었던 것이다. 물론 막부 등에 발각된 탓인지 화투 역시 금지령이 수차례 떨어지기도 했다. 나중에는 화투를 가지고 마음껏 놀아도 되는 대신, 화투 공장에 세금 폭탄을 얹는 등 완화되기도 하다가, 끝내 규제고 뭐고 다 폐지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임진왜란 때 이미 일본에서 전래되었다는 설도 있지만, 한국에 이 화투가 전해진 것은 대략 조선 후기인 듯하다. 1902년 황성신문에 실린 잡화 광고의 품목 중에 화투도 있으므로 일제강점기 이전에 이미 보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20년 기준 한국에 도입된 지 최소 120년은 되었다는 뜻이다.

 

- 218쪽 (지게를 탄식한다)

* 어찌해서 길을 넓힐 생각은 하지 않고 지게부터 만들었는가 하는 원망이다. 마차가 없었을 리 만무하다. 우리에게도 수레는 있었다. 그러나 수레가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길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그들은 지게를 만들었던 것이다. 길을 넓히려 들지 않고 좁은 길에 그대로 자기를 순응시켰다. => 현실을 타개하는 적극적인 사고보다는 주어진 현실에 나를 맞추고자 한 데에서 바로 그러한 지게가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게는 한국의 모든 비극을 상징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 227쪽 (완구 없는 역사)

* 이상의 수필 권태: 시골 아이들이 길가에 죽 늘어 앉아서 뒤를 보는 이야기

* 우리나라에 완구가 없었다는 것은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 => 곧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었다는 말 

 

- 237쪽 (피라미드와 신하 오릉)

* 재일 학자 유종열: 대륙(중국)과 섬나라(일본)와 반도(한국) 가운데 하나는 땅에서 안식하고, 하나는 땅에서 떠나려 한다. 

제1의 길은 강하고, 제2의 길은 즐겁고, 제3의 길은 쓸쓸하다. 강한 것은 형을, 즐거운 것은 색을, 쓸쓸한 것은 선을 선택하고 있다. 강한 것은 숭앙받기 위해서, 즐거운 것은 맛보기 위해서 그리고 쓸쓸함은 위로를 받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한국의 역사가 고민의 역사였기에, 한국인의 생활이 비애에 젖어 있었기에, 지상을 떠나 피안을 그리워하는 그 쓸쓸한 선에, 위안의 선에 의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게다.  

 

- 286~287쪽 (맺는 말 - 서낭당 고개에 서서)

* 흙에 묻은 마음조차도 간직할 수 없이 된 어려운 세상이다. 일어서든지 부서지든지 무엇인지를 하나 선택해야 될 때가 온 것이다. 뜨뜻미지근한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살아온 이 민족의 마음에 불을 지를 때가 온 것이다. 바보 온달이 아리따운 공주를 맞이하고 치욕의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그 내일을 위해 우리들의 서낭당 기도는 눈물을 거두어야 한다. 

 

교보문고 책소개

이 책은 울음, 굶주림, 윷놀이, 돌담, 하얀 옷, '끼리끼리' 등 일상적 소재 속에서 한국 문화의 본질, 한국적 정서의 심층을 탐구하는 이어령 에세이집이다. 열등의식과 좌절감 속에 빠진 한국인에게 민족적 긍지와 정체성을 일깨워, 그간 250만여부의 최장기 스테디셀러로 기록된 이어령 교수 에세이집의 발간 40주년 기념 개정판이다.

저자 : 이어령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이화여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문화도시 조직위원회 명예위원장이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조선일보』『중앙일보』『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의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으로 편집을 이끌었다.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을 주관했으며 초대 문화부장관을 지냈다. 대표 저서로 『지성에서 영성으로』『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흙 속에 저 바람 속에』『축소지향의 일본인』『생명이 자본이다』『젊음의 탄생』 등이 있고, 소설 『장군의 수염』『환각의 다리』와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를 펴냈으며, 희곡과 시나리오 「기적을 파는 백화점」「세 번은 짧게 세 번은 길게」「사자와의 경주」 등을 집필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2022년 2월 26일 타계했다.
 

목차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의 신판을 내면서
여는 말 풍경 뒤에 있는 것

울음에 대하여
굶주림의 그늘
윷놀이의 비극성
동해의 새우등
풀 이름·꽃 이름
눈치로 산다
"사람 살려"와 "헬프 미"
'해와 달'의 설화
귀의 문화와 눈의 문화
돌담의 의미
기침과 노크
김유신과 나폴레옹
독재자와 아리랑
군자의 싸움
음료 문화론
의상에 대하여
날개야 돋아라
한복 바지·양복 바지
백의 시비
모자의 논리
장죽 유감
'끈'의 사회
'끼리끼리'사는 것
두 개의 고도
밥상으로 본 사회
'우리'와 '나'
누구의 노래냐
사랑에 대하여
기나긴 밤의 노래
달빛의 풍속
한국의 여인들
'시집살이'의 사회학
논개냐 황진이냐
화투와 트럼프
《토정비결》이 암시하는 것
'가게와 '장날'과
지게를 탄식한다
좌냐 우냐
완구 없는 역사
기차와 반항
춘향과 헬렌
피라미드와 신라 오릉
바가지와 형태미
색체미에 대하여
허스키 보이스의 유래
'멋'과 '스타일'
팽이채를 꺾어라
'가래질'이 의미하는 것

맺는말 서낭당 고개에 서서
저자후기 어느 벗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