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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카프카 (2021.12.7)

클리오56 2021. 12. 7. 11:55

 

내용 및 소감

- 프란츠 카프카: 1883년~1924년 체코 프라하 출신.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 짧은 기간 제외하곤 평생을 프라하 거주, 여동생들 유대인 수용소에서 사망

- 등장인물: 그레고르 잠자(출장 영업사원)

- 변신: 주인공 변신 (인간 -> 벌레: 가족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비참하게 죽음) + 가족 변신 (모두 무직 => 부친: 은행안내인, 모친: 바늘질, 여동생: 가게 점원 => 경제적 독립지향)

- 카프카 문학 특유의 부조리성(주인공이 출장영업사원 직업상 겪는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 현실) 또는 파라독스 구조(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는 책임감과 사랑, 하지만 익숙한 가족은 돈 벌어오는 존재로만 여길 뿐 가족간의 따뜻한 교감이나 인간적 대화는 없음 => 삶은 황폐화, 기계화, 비인간화, 하여 그레고리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일벌레, 돈 버는 기계로 전락, 즉 그레고리의 변신은 자본주의 아래 소시민적 가정의 물화된 삶을 배경 ), 과장된 제스처와 희극적인 동작 묘사 (사과 폭탄 세례, 바이올린 연주 때의 소동)

- 변신은 현실 자체인가 아니면 현실로 부터의 탈출인가? 현실 자체라면 현실의 폭압적 힘에 의해 인간적 알맹이를 상실하고 비인간적 껍데기만 남게된 동물적 인간존재를 형상화, 탈출이라면 벌레는 비인간적 현실에 의해 아직 훼손되지 않고 물질과 돈의 힘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인간의 고유한 부분, 즉 본래의 자아라고 할 수 있다. 이 경우 변신은 일종의 해방적 의미

- 변신은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를 주제로 하는 일종의 현대적 우화

- 카프카 부자 갈등의 부분적 노출: 아들의 변신 후 직업을 가지고 아들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 노출, 사과 폭탄

- 가장 가까웠던 여동생 마저 앞장서서 벌레의 죽음을 재촉

 

- 일당백 시즌 1 EP 94 

* 거대한 기계, 조직 속에서 인간의 존재 위축, 그런 상황에서 변신하여 벌레충으로 변신. 현대 상황도 그러하지 않을까?

* 자수성가 부친 + 명문 모친 => 아버지와의 갈등, 유대인 갈등, 독일어 사용 갈등(체코 상류층 10%는 독일어 사용)

* 프라하: 프라하의 봄 (동유럽 자유물결, 구소련의 강제진압), 종교개혁 (루터 100년전 야누스를 화형 => 주민들 봉기 => 시의원을 창밖투척), 영주가 카톨릭 주장 (2차 창밖투척 => 30년 전쟁의 도화선), 1948년 3차 창밖투척 (소련의 사주를 받아 외무장관을 창밖투척, 당시는 자살로 발표).

* 프라하는 유럽의 중간 위치라 오히려 잘 보호, 전쟁은 경계에서 많이 이루어지니깐.

* 3번에 걸쳐 약혼과 파혼, 평생 결혼은 없었음. 옷 벗는 여자에 대한 두려움. 작가로 살려면 결혼을 할 수 없다고 생각.  죽기 4년전 유부녀와 교류. 죽기 1년 전 다른 여인 만나 동거. 일기: 성생활은 함께 있는 행복에 대한 벌이다. 최대한 금욕적으로 살아야 한다. 

* 아버지로 상징되는 부르조아(시민성)와 대립, 본인은 예술가를 추구. 아버지는 사냥꾼, 엄마는 사냥개, 본인은 사냥감. 카프카가 에민하게 과잉반응한 측면도. 자기 통제 보다는 남 통제가 쉽다, 하지만 부모가 쪼지만 사랑이 더 크다. 부모와의 갈등이 있기에 카프카의 문학이 나오지 않았을까...  결혼하지 않은게 가부장이 되기 싫어서가 아닐까도 생각

* 헤르만 헤세는 카프카의 책을 보고 '우리시대의 지진계'라고 호평   

* 카프카는 산업재해보험공사에 근무했는데, 노동자들이 사고를 당하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 

* 아침에 일어나니 벌레, 출근해서 영업해야 하는데...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데, 사장이 해고하지 않을까 걱정. 말도 나오지 않고... 지배인까지 찾아오고... 나가서 말을 할려는데... 벌레를 보고 놀라고 도망. 처음부터 벌레를 잠자로 인정. 방에 갇혀지내고, 여동생이 먹거리 갖다줌. 가족들은 편하게 해준다며 방 가구를 빼내려하고... 하지만 엄마는 잠자가 돌아오면 헷갈린다며 반대하기도. 잠자는 액자만은 안된다며 버티고, 엄마는 쓰러지고. 혼란한 방 상황에 부친이 돌아오고 사과 폭탄 세례, 하나가 벌레 등에 박혀 고통스런 부상. 아무도 사과를 등에서 빼주려 않음. 부친, 모친, 여동생 모두가 취직하고, 잘 지냄. 벌레가 회사 못가면 가족이 어려워질거라고 생각했는데. 방 하나를 하숙치고... 여동생이 바이올린 연주하는 중, 벌레가 나와서 하숙생들이 놀라게되고, 계약 위반이라며 하숙 중단. 사과에 부상당하고 끼니도 먹지 않아 잠자는 결국 죽음. 벌레는 할머니 파출부가 치웠다고 하지만 가족들은 관심도 없고 휴가받아 교외로 놀러감. 

* 카프카의 위장된 자서전. 가족이 벌레가 된 순간(노동력 상실), 기생충 처럼 취급받는 현실. 시민혁명은 더 이상 벌레가 아니고 인간이라고 했는데,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벌레가 됨. 벌레가 파멸이냐, 해방이냐??? 내 자아가 원래 벌레다. 혹은 현실의 압력으로 인간을 상실하고 벌레가 되었다.  => 카프카 소설의 무서운 점은 출구가 없다는 것. 실직, 병을 얻으면 완전히 죽음과 같은 상황 초래하는 현대의 문제점. 현대의 변신은 무섭다.... 무의식

* 관료제(공산주의 포함)는 안된다. 만병통치는 없다. 하나의 원리로 해결하려마라. 일단 의식해봐라.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바닥?)를 깨뜨려야 한다.  

* 기타 소설: 성, 실종자    

 

책소개

카프카의 <변신>이 아르헨티나의 아티스트 루이스 스카파티의 삽화가 담긴 새로운 번역본으로 출간되었다. 루이스 스카파티는 <변신>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더 없이 '카프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다른 색은 전혀 쓰지 않고 검은색으로만 처리했다.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시각적으로 그려냈다고 해도 무방할 삽화들과 함께 독자들은 자기 존재와 지금의 내 현실에 대해 새로운 의문을 던지게 된다.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1883.7.3~1924.6.3)는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태어나 폐결핵으로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사십일 년간 프라하를 떠나지 않았다. 부유한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지방 보험국 직원으로 근무했던 그의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도, 죽기 직전 이 개월간의 요양기간과 짧은 국외 여행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떠나지 않았던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특이한 환경의 소산이다.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은 카프카의 문학은 무엇보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 인간 존재의 불안과 무근저성을 날카롭게 통찰하여,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변신』 외에 대표작으로 『심판』 『성城』 『실종자』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등이 있다.
 

출판사 서평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등에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휜 각질의 칸들로 나위어 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질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본문에서


한 남자가 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저 타성처럼 살아가며 정말 내 삶이 단지 그냥 한 마리 벌레보다 나은 게 무엇인지 간혹 섬뜩한 공포로 다가온다. 그런 맥락에서 카프카의 「변신」은 단지 기괴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인간 실존의 허무와 절대 고독을 주제로 하는 「변신」은 바로 이렇게, 사람에서 벌레로의 ‘변신’을 말한다.
「변신」은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현대 문명 속에서 ‘기능’으로만 평가되는 인간이 자기 존재의 의의를 잃고 서로 유리된 채 살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다. 그레고르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은 그의 기능과 존재가 인정되지만 그의 빈자리는 곧 채워지고 그의 존재 의미는 사라져 버린다. 인간 상호간은 물론, 가족간의 소통과 이해가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


현대문학의 신화가 된 카프카의 불멸의 단편!
카프카의 소설 「변신」은 20세기 문학의 신화라 불린다. 그 이전까지 서양소설사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던 리얼리즘의 성채는 「변신」 이후 요란한 파열음을 내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는 카프카의 작품을 두고 ‘검은색의 기이한 아름다움’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카프카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렇지만 「변신」은 쿤데라의 이러한 표현에 더없이 적합할 듯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대인의 삶,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삶 속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불안한 의식과 구원에의 꿈 등을 「변신」에서 카프카는 군더더기 없이 명료하고 단순한 언어로, 기이하고도 아름답게 형상화하고 있다.

나는 마구간에서 말을 끌어내오라고 명령했다. 하인은 내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았다. 나는 직접 마구간으로 가 말에 안장을 놓고 올라탔다. 멀리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나는 물었다. 하인은 알지 못했다. 그에게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문 앞에서 하인은 나를 잡고 물었다.
“어디로 가십니까?”
“나도 몰라. 단지 여기를 떠날 뿐이야. 여기서 나가는 거야. 어디까지라도 가는 거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어.”
“그럼 가실 데가 있으시군요?”
하인이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그럼, 물론이지. 방금 말하지 않았나. 여기서 나가는 것, 그것이 내 목표라고.”
--프란츠 카프카,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