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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동 (1) (2016.9.6)

클리오56 2016. 9. 6. 22:18

효자동 (2016.9.6)

책 따라하기: 이장희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경복궁의 오른편은 북촌이라하여 널리 알려져있지만 왼편에 해당하는 서촌은 유명세가 덜하며

오늘 다녀온 효자동은 조용한 서촌에 해당한다.

 

효자동의 유래는 임진왜란때 모친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형제를 기리기 위하여

효자문을 세웠고 이를 쌍홍문으로 부르다가 쌍효자거리로, 다시 효자동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코리아트레일 삼남길 47구간을 다녀온 후 경복궁역에 내려 사직단을 둘러보는 것으로 

효자동 답사를 시작하였는데 이후 단군성전, 서울 최초의 공공도서관인 종로도서관,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용 도서관인 종로어린이 도서관을 거쳤다.

 

배화여고 정문의 담을 따라서 필운대 각자를 확인하고자 했으나

아마도 배화여고 내부에 있는 듯하여 다음 기회를 보기로 하였다.

 

큰 길로 나오니 필운대로, 아마도 그 필운 각자에서 따온 길이름이겠지 생각하며

천천히 북쪽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거리의 몇몇 가게들이 개성있고 이쁘게 단장되어 있다.

자하문로 7길과 연결되어 삼거리를 이루는 그 중앙에 희한하게 원두막 스타일의 정자가 세워져있는데

앉거나 아예 누워있는 할머니가 다수, 그리고 몇몇 할아버지로 만원을 이룬다.

 

이장희 저자는 이 부근이 석함집 이야기의 배경이라 많은 애정을 가졌으니 간략히 소개하면

석함 즉 돌 상자이니 여기에 보물을 담아 땅속 깊이 묻어두었는데

모친은 그 석함을 발견했으나 더 깊이 묻어두고 이사를 했다는데

자식들이 이를 믿고 노력없이 재물을 취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르기 때문이라 한다.

 

좀 더 북쪽으로 걸음을 이어가면 좌측 길에 송석원터라는 표지석이 있으며

그 설명에 따르면 인왕산 깊은 계곡의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는데

지금은 온전히 주택단지라 상상이 가질 않는다.

 

필운대로를 계속 따르면 이번에는 우측에 자수궁터라는 동판이 벽돌담에 붙어있는데

조선태조의 일곱째 아들 무안대군 방번이 살던 집으로 문종때 세종 후궁들이 거처로 삼은 이후

궁궐에서 나온 후궁들이 살았다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 이장희는 소현세자와 함께 북경에 있었던 명나라 출신 궁녀 굴씨의 이야기를 첨언하는데 

그녀는 조선에 귀화하였고 효종의 북벌계획을 듣고는 청나라 정벌하러 가는 모습을 볼수 있도록

큰 길 옆에 묻어달랬다는 유언을 남겼다면서 밋밋한 설명의 표지석에 묻어나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발길을 돌려 원두막 삼거리로 돌아와서는 자하문로7길을 걸어가면

우측에 대림정이라는 한옥 식당이 있는데 이 한옥이 아마도 65년 역사의 헌책방 대오서점으로 짐작된다.

 

 

 

사직단 정문

사직단(社稷壇)이란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게 국가의 안녕과 풍년을 위해 제사지내는 곳을 말한다했으며

좌묘우사라하여 정궁인 경복궁의 좌측에는 종묘를, 우측에는 이 사직단을 두었다고 한다.

 

 

 

사단과 직단

(낮은 담으로 둘러친 경내 가운데 낮은 석축을 쌓고 중앙에 다시 두 개의 사단과 직단을 쌓았다)

 

사직단을 지나 뒷쪽으로 층계를 올라가면 단군성전이 있으며 매년 개천절에 단군제를 올린다고 한다.

 

단군성전

 

 

 

종로도서관

(서울 최초의 공공도서관, 1920년 개관)

경성도서관을 세운 이범승 선생,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종로 어린이 도서관

(1979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용 도서관)

 

 

삼거리 원두막 정자

(부근에 석함집 이야기 전설이 남아있다) 

 

송석원터 표지석

윤덕영의 호화저택 잔해(길 좌우의 돌기둥) 

표지석이 세워진 건물들 틈으로 인왕산이 드러난다.

 

자수궁터 동판

자수궁터가 지금은 아파트...

 

65년 역사의 헌책방 대오서점이 지금은 대림정 식당으로 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