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함민복 "긍정적인 밥" [애송시 100편-제38편] 긍정적인 밥 - 함민복 문태준·시인 시(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20
(37) 고은 "문의 마을에 가서" [애송시 100편-제37편] 문의(文義)마을에 가서 - 고은 정끝별·시인 겨울 문의(文義)에 가서 보았다. 거기까지 닿은 길이 몇 갈래의 길과 가까스로 만나는 것을. 죽음은 죽음만큼 길이 적막하기를 바란다. 마른 소리로 한 번씩 귀를 닫고 길들은 저마다 추운 소백산맥 쪽으로 벋는구나. 그러나 삶은 길에서..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20
(36)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애송시 100편-제36편] 우리 오빠와 화로 - 임화 문태준·시인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 무늬 질화로가 깨어졌어요 언제나 오빠가 우리들의 ‘피오닐’ 조그만 기수라 부르는 영남(永南)이가 지구에 해가 비친 하루의 모―든 시간을 담배의 독기 속에다 어린 몸을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18
(35) 오세영 "그릇 1" [애송시 100편-제35편] 그릇1 - 오세영 정끝별·시인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와 균형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魂) 깨진..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18
(34) 정현종 "어떤 적막" [애송시 100편-제34편] 어떤 적막 - 정현종 문태준·시인 좀 쓸쓸한 시간을 견디느라고 들꽃을 따서 너는 팔찌를 만들었다. 말없이 만든 시간은 가이없고 둥근 안팎은 적막했다. 손목에 차기도 하고 탁자 위에 놓아두기도 하였는데 네가 없는 동안 나는 놓아둔 꽃팔찌를 바라본다. 그리로 우주가 수렴되..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14
(33) 김경주 "저녁의 염전" [애송시 100편-제33편] 저녁의 염전 - 김경주 정끝별·시인 죽은 사람을 물가로 질질 끌고 가듯이 염전의 어둠은 온다 섬의 그늘들이 바람에 실려온다 물 안에 스며 있는 물고기들, 흰 눈이 수면에 번지고 있다 폐선의 유리창으로 비치는 물속의 어둠 선실 바닥엔 어린 갈매기들이 웅크렸던 얼룩, 비늘들..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13
(32) 김기택 "소" [애송시 100편-제32편] 소 - 김기택 문태준·시인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12
(31) 허수경 "사라진 혼자 가는 먼 집" [애송시 100편-제31편] 사라진 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정끝별·시인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11
(30) 나희덕 "사라진 손바닥" [애송시 100편-제30편] 사라진 손바닥 - 나희덕 문태준·시인 처음엔 흰 연꽃 열어 보이더니 다음엔 빈 손바닥만 푸르게 흔들더니 그 다음엔 더운 연밥 한 그릇 들고 서 있더니 이제는 마른 손목마저 꺾인 채 거꾸로 처박히고 말았네 수많은 창(槍)을 가슴에 꽂고 연못은 거대한 폐선처럼 가라앉고 있네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10
(29) 김종길 "성탄제" [애송시 100편-제29편] 성탄제 - 김종길 정끝별·시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러히 잦아지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 지혜/조선일보 현대시 100편 2008.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