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하찮게 산// 사람의 생(生)과 견주어 보아도// 시(詩)는 삶의 사족(蛇足)에 불과"('詩')하지만 시인은 시를 써서 세상의 돈을 쥔다. 끙끙대고 밤을 새우며 쓴 노력에 비하면 원고료는 박하고, 몇 년 만에 펴내고 받는 인세로 꾸리는 생활은 기궁하다.
그러나 이 가난한 시인은 원고료와 인세를 교환하면 쌀이 두 말, 국밥이 한 그릇,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이나 되니 든 공에 비해 너무 많은 게 아닌가라고 묻는다. 쌀이 두 말이 되기까지의 노동, 한 그릇의 국밥이 되기까지의 노동, 굵은 소금 한 됫박이 되기까지의 노동에 비하면 내 노동의 대가는 얼마나 고맙고 큰 것인가 라고 말한다. 땡볕 속에서 몸으로 얻어낸 그것들에 비할진대. 이 세상 정직한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에 비할진대.
함민복(46) 시인의 초기 시는 거대 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공포를 노래했다.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이 아닌가"('자본주의의 사연')라고 노래했고, 서울을 문명을 주사하는 '백신의 도시'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996년 그는 보증금 없이 월세 10만원인, 마당에 고욤나무가 서 있는 강화도 동막리 폐가 한 채에 홀로 살림을 부렸다. 동네 형님 고기잡이배를 따라다니며 망둥이, 숭어, 농어를 잡고, 이제는 뻘낙지를 잡을 줄도 아는 어민후계자 시인이 되었다. 뻘에 말뚝을 박으려면 힘으로 내려 박는 것이 아니라 "뻘이 말뚝을 품어 제 몸으로 빨아들일 때까지/ 좌우로 또는 앞뒤로 열심히 흔들어야 한다"('뻘에 말뚝 박는 법')는 것도 배웠고, 그물 매는 것을 배우러 나갔다 배를 타고 돌아오면서 "경진 아빠 배 좀 신나게 몰아보지/ 먼지도 안 나는 길인데 뭐!"('승리호의 봄')라며 농담을 할 줄도 안다.
강화의 서해 갯바람과 갈매기와 뻘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시는 단단한 문명에 맞서는 '부드러움의 시학'으로 나아가면서 우리 시단에서는 한동안 드물었던 '섬시(詩)' 명편들을 낳고 있다. 강화도의 '물때달력'을 오늘도 들여다보고 있을 시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