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역사 속 성 문화, 史色

클리오56 2024. 5. 16. 10:28

내용 및 소감 

오랫만에 일당백 유튜브를 접했다. 주로 고전 문학서를 소개받았는데 이번에는 성담론이다. 재미있는 주제라 진도가 잘나가겠지~ 하지만 읽어야 할 책들이 자꾸 쌓이고, 둘레길도 걷고, 쌍둥이 손자손녀도 돌보고, 요즘은 맨발걷기가 어떨까싶어 도전 중이다. 이래저래 시간이 다양하게 할애되니 책읽기가 쉽지는 않다. 하여 이 책에 대해서도 전체가 아닌 몇 장만 다루기로 한다. 

 

프롤로그부터 크게 실망한게 있으니 여기서 말하는 성은 섹스이니 한자로는 性으로 표기해야 하는데, 김씨, 이씨하는 성(姓)으로 적고있다. 프롤로그에 괄호안에 한자로 성을 두 군데 사용하는데 모두 그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아무리 한자를 배우지 않은 젊은 세대(1988년생)라고는 하지만 신문사 기자로서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있는 사람이 이러한 수준이다. 카카오페이지에서 연재되는 소설들도 간혹 한자를 사용하는데 틀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그런 삼류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하지만, 신문사 기자가 쓰고 인물과사상사라는 좀 알려진 출판사에서 챙기는데도 이런 수준인게 안타깝다.   

 

1. 그리스 석상의 성기는 왜 이렇게 작나

* 고대 그리스 석상의 남성 성기는 유달리 작다. 근육질의 몸매와 대조적이다.
* 고대 그리스 사회가 작은 성기를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큰 성기를 야만적이라고 여겼다.
* 고려에서도 작은 성기는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뜻으로 통했다. 불교 문화의 영향이다.
* 작다고 우울해하지 말지어다. 우린 고대 그리스와 불교에서 알아주는 남자들이다. 

 

- 왜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만 성기를 유독 작게 그렸을까요? 그리스 석상의 작은 성기는 학자들에게도 ‘핫이슈’였습니다. 수많은 미술사학자가 이 주제에 천착해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격론이 오갔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작은 성기를 매우 아름답다고 여겼다”고요.

 

- 그들의 사고방식을 좀 더 들여다볼까요. 고대 그리스는 철학의 나라였습니다. 이들에게 남성성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신체 단련을 통한 근육질 몸매와 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이성이었습니다. 근육질 몸매와 이성은 서로 극명히 다른 요소로 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의지로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하나로 연결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굴의 의지로 섹시한 근육질 몸매를 만든 사람과 이성과 철학을 겸비한 시민을 최고의 남자로 쳤던 것입니다. 반면 이들에게는 원초적인 욕망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교양 있는 그리스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성기는 욕망의 지표였기에 그만큼 작아야 했지요.

- 고대 로마시절 여성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그린 모자이크 작품. 브래지어를 한 모습이 최초로 그려진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로마에서는 작은 가슴을 가진 여성들이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로마 풍자시인 마르티알리스: "여성의 가슴은 한 손으로 잡을 수 있어야 한다" 

 

- 나체로 앉아있는 왕건? 태조 왕건이 왕건(?)이 아니었다고?

1992년 북한에서 청동조각상 하나가 발견되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을 묘사한 동상이었다. 조각이 나체이고 또한 남근이 아주 작았다. 이에 대한 해명을 국립세종도서관의 소개에서 알아본다. 

그러나 막상 왕건상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낯선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나체상이라는 것이 걸린다. 왜 고려의 창업주인 왕건을 벌거벗은 몸으로 앉아있는 나체좌상으로 조각했을까. 고려사세가·신종“1203(신종 6) 9월 무신정권 지도자인 최충헌(1149~1219)이 봉은사에서 태조의 진전에 제사를 올리고 겉옷과 내의를 바쳤다고 했다. 왕건상이 나체를 염두에 두고 제작한 것이 아니라 옷을 입히는 이른바 착의형 나체상이었다는 뜻이다. 1992년 첫 발굴 당시에도 동상의 표면에는 비단 조각과 금박편, 옥띠장식 등은 붙어있었다. 왕건 동상이 매장될 때도 옷을 입고 금도금관을 썼으며, 허리에는 옥띠를 두르고 있었다는 뜻이다.

 

오그라든 남근의 의미는?

나체인 점은 그렇게 해명되었다고 치자. 그런데 남근의 표현이 또 보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체격은 성인 남성과 같은데 남근의 크기는 2cm에 불과하다. 그 조차도 가로로 주름을 새긴 오므라든 형상이다. 아무렴 고려인들이 숭상하는 개국시조를 조각한 것 치고는 너무 외람되지 않은가.

이 대목에서 그럼 그렇지하는 해석이 등장한다. “왕건상에 불가 에서 말하는 ‘32대인상(三十二大人相)’을 반영했을 것(노명호 교수)”의 추정이다. 대체 ‘32대인상은 무엇인가. 부처가 갖추고 있다는 32가지의 뛰어난 신체특징을 일컫는다. 특히 고대 인도의 신화에 등장하는 전륜성왕의 신체특징을 불교가 채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32가지 특징 가운데 마음장상(馬陰藏相)이 있다. ‘마음장상은 말()의 남근()처럼 오그라들어 몸 안에 숨은() 형상()을 뜻한다. 전생에 자신의 몸을 삼가 색욕을 멀리함으로써 성취한다는 것이다. 7세기의 불서인 법원주림마음장상은 대단히 커질 수도 있지만 작을 때는 8살 동자의 것과 같다고 했다.

 

 

2. 아이를 낳은 여자 교황이 있었다?

* 가톨릭에서는 여교황 요안나의 전설이 전해진다. 여성의 몸으로 교황에 오른 뒤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다.
* 가톨릭은 금녀의 영역이기에 불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요안나의 전설을 믿었다.
* 중세 유럽에서 몇몇 여성이 교황들과 문란한 관계를 맺고 교황청을 흔들던 이야기들이 요안나의 전설로 이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 현대의 많은 여성이 가톨릭 서품을 받기 위해 도전 중이다. 언젠가는 여교황이 진짜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여교황 요안나가 길거리에서 아기를 낳는 모습을 묘사한 삽화

(조반니 보카치오가 신화적, 역사적 여성에 대해 쓴 전기 모음집 '유명한 여서'(1362)에 수록되었다.) 

=> 종교개혁가들이 이런 여교황 이야기를 무기 삼아 가톨릭을 정면 비판하며 공세를 강화

(가짜 뉴스, 혹은 조작 뉴스르 상대방을 공격하는 거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하지만 대중들은 재미있었겠다) 

- 이 사건 이후부터 가톨릭에서는 교황 즉위에 사용할 의자를 만들었습니다. 변기처럼 가운데를 뚫어 교황 후보자의 고환을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의자의 이름은 세디아 스테코라리아. 하위 성직자가 교황 후보자의 고환을 확인하고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 분은 두개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은 제대로 늘어져 있노라" 

- 교황 레오 6세는 마로치아라는 귀족 여성이 애인이었고 그녀의 입김으로 교황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 다른 이성과 또 다른 관계를 맺는게 마로치아에게 발각되었고, 이에 마로치아는 레오 6세를 가둬 교살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교황청 섹스 스캔달이 여교황 전설의 모티브가 되었을 거라는 주장... 

 

- 2002년 6월, 헝가리에서 7명의 여성을 로마가톨릭 사제로 서품, 이들을 다뉴브 세븐이라고 칭함. 하지만 로마교황청은 즉각 파문헸다. 대한성공회에서는 2001년부터 20년 동안 여성 사제 24명을 배출. 

 

3. 성스러운 사원에서 매춘을?

- 인간의 욕망을 통제하던 시대, 중세 유럽 수도원은 그 욕망을 분출하는 창구 노릇을 했다. => 사회구성원들이 이를 묵인

 

- 기원전 2400년 수메르 우루크에서는 사제들이 매춘업소를 운영했다는 기록. 고대에는 聖스러움과 性스러움이 구별되지 않았다. 성의 생식능력은 자연이 준 선물로 주술적 힘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신전에서 신이 주신 능력을 찬양하면서 성적 관계를 맺는 건 자연스러운 이리었다. 이를 신성매춘이라고 부름 

 

- 그리스 코린토스 소재의 아크로코린토스에 있던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매춘행위가 이루어짐. 그곳 신전의 유녀들은 헤타이라로 불렸는데, 신전에서 몸을 팔고 그 돈을 아프로디테에게 봉헌. 반면에 돈없는 이들은 찾는 유곽은 포르노이라 불렀고, 단골손님들의 생활, 습관, 행동을 기록함 기록물이 포르노그래피이다. 현대의 포르노라는 단어가 이에서 파생되었다. 

 

- 고대 로마제국에서는 정복지 여성들을 노예시장애서 전시해놓고 판매했다. 팔기 위해 전시한다는 뜻의 라틴어 프로스티투테가 매춘부를 의미하는 프로스티튜트로 변용되었던 배경이다. 

 

-  중세 유럽에서 매춘은 변화를 겪는다. 매춘을 악으로 규정하고, 유녀들에게 특별한 옷을 입히는데, 줄무늬 망토나 후드를 입었다. 구약에서 '두 직물로 직조한 옷을 네 몸에 걸치지 말라'가 있어 여러 직물로 만든 줄무늬 옷이 악마의 옷이라 생각. 하지만 성매매를 필요악으로 생각하여 배척하기 보다는 관리를 하게되어 유곽을 두게되었다. => 1161년 영국 윈체스터 주교는 매춘업 허가 권한을 받았고, 이에 매춘부를 뜻하는 속어 '웬체스터 구스'의 어원이 되었다. 수익성에 눈이 먼 신부와 수녀들은 그들의 건물을 성매매 장소로 대여하기도 했다. 

 

- 매독과 종교개혁이 매춘에 타격을 가하다: 콜롬부스 신대륙 발견 이후 성병 매독이 등장하고 전쟁 등으로 확산. 가톨릭의 방종한 성생활을 비판한 종교개혁이 퍼지면서 매춘업 위축. => 최근에는 섹스 로봇과 섹스 인형까지 등장   

 

4. 나치가 포경한 남자를 찾아 나선 이유

* 포경은 고대 이집트에서 행해질 정도로 유서 깊은 행위였다.
이들의 신 '레'는 포경을 한 존재로 여겼기에 신전에 입장하려고 하는 모든 남자는 할례를 한 사람이어야 했다.
* 고대 그리스인들은 귀두 노출이 시민답지 못한 행위라 여겼다. 이들이 할례를 한 유대인들을 혐오한 배경이다.
* 나치가 학살을 위해 유대인을 찾을 때 포경 여부로 그들을 색출하기도 했다.
* 현대에서는 포경 논란이 유희의 상징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차별의 징표였다. 

- 2500년전 피타고라스가 이집트 여행중 신전에 입장할 때 포경여부를 확인해야 했고, 포경이 아니라 입장이 되지 못했다. 

 

- 첫할례는 1만5천년전으로 추정. 첫 등장은 부족간 전쟁에서 패한 남성들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였다. 할례는 에티오피아를 시작으로 이집트 문명까지 퍼진 것으로 분석. 이집트는 신 '레'를 숭배하여 신에 대한 복속의 증거로 포경. 

 

- 유대인: <창세기> 모든 남자는 할례를 해야 한다. 너는 포피를 잘라내야 할 것이니, 그것이 너와 나 사이 약속의 증표가 될 것이다. 너희 중에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아라. 남자는 포피를 베어내지 아니하면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 그리스인의 나체에는 원칙이 있었다. 전부 벗되, 귀두는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 운동할 때  귀두가 드러나지 않도록 표피 끝을 키노데스메라는 끈으로 묶었다. 

 

- 그리스가 절대 강자로 부상할 때 유대인들은 차별과 생존을 위해 귀두를 다시 덮는 에피파스모스라는 수술을 단행하였다. 역사가 반복되어 2000년 후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할 때 포경 수술 여부로 유대인을 확인하였다. 학살이 가장 많이 일어난 폴란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포피 재건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5. '호랑이 힘' 콘푸로스트가 자위 방지용이라고?

* 세계인이 사랑하는 아침 식사 콘플레이크는 금욕주의자 존 하비 켈로그가 만들었다.
* 그는 곡물로 된 음식이 자위를 방지하고 속을 편안히 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 당시 미국에서는 금욕주의적 음식 열풍이 불었다. 그레이엄 크래커 역시 그중 하나였다. 
* 존 하비 켈로그의 콘플레이크로 돈을 번 사람은 존의 환자 포스트와 동생 윌 켈로그였다. 

‘막아야 해... 반드시... 그들의 자위행위를.’ 1877년 미국 미시간주의 한 요양원. 말쑥하게 생긴 한 젊은 의사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환자들의 ‘은밀한 손장난’을 막을 방법을 찾느라 데 무진 애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욕과 식욕은 만악의 근원이자 건강의 적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었습니다. ‘자위행위가 건강에 안 좋다’는 견고한 믿음도 있었지요. 이 두 욕망을 절제시킬 수 있다면, 요양원에 모인 미국 최고 부호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깊은 믿음을 토대로 식욕(과 성욕) 억제를 위한 메뉴 개발에 나섭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시리얼의 일종 콘플레이크의 시작입니다. 이를 개발한 젊은 의사의 이름은 존 하비 켈로그. “호랑이 힘이 솟아난다”는 콘플레이크의 시작이 “자위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켈로그의 ‘숭고한’(?) 목적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 미국은 청교도가 세운 나라, 하여 종교계가 템퍼런스 운동을 주도, 대상은 알코올 절제, 매춘 근절, 육식 자제까지 나아가는 범탐욕운동. 이런 가운데 실베스터 그레이엄 목사는 그레이엄 크래커라는 비스킷을 만들었다. 그를 이어 존 하비 켈로그가 콘플레이크와 땅콩 버터를 개발하여 성공. 이를 본받아 요양원 고객이었던 포스트가 표절품을 판매하여 성공. 

 

6. 자위 막고자 칼날 든 속옷까지 입었다. 

* 고대 신화에서 자위는 탄생 신화에 자주 등장할 정도로 신성한 행위로 여겨졌다.
* 중세유럽에서 기독교가 들어서면서 자위가 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 계몽주의 시절에는 자위가 죽음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설명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칼날 찬 자위 방지용 정조대도 개발되었다. 
* 과학자들의 자위는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빌표가 수십년간 이어져서야 자위는 해방됐다. 

- 소년은 종일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젯밤 문득 욕정이 일어 수음(자위행위)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이웃 마을 처녀를 생각했기에 죄책감은 더욱 컸지요. 꽃과 동물을 사랑했고 종교에 신실했던 그였습니다. 신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늘 되새겨 왔었기에 자신을 더욱 용서할 수 없었지요. 날이 밝자 그는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겸허히 고백합니다. “목사님, 제가 수음의 죄를 범했습니다.” 목사가 말합니다. “회개하라, 주님의 어린 양이여. 너를 용서하노라. 다만 이걸 차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도록 하게.” 소년은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건넨 속옷 안에 날카로운 칼날이 ‘그곳’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 자위는 신의 선물이라 했던 시절: 수메르 문명에서는 문명의 젖줄이 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은 물의 신 엔키의 자위행위로부터였다. 이집트의 창조신 아툼은 역시 자위행위를 통해 탄생되었다.

 

- 국제 자위의 날 제정, 매년 5월7일. (아래의 관련 신문 기사 참조)

 

7. 성기 자르고 자랑스러워한 사람들

* 과거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에서는 사이비 종교가 거의 없었다. 교황의 말씀을 무조건 따랐기 때문이다.
*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교파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이단도 독버섯처럼 번졌다.
* 18세기 러시아에서 유행한 기독교의 한 종파인 스콥치는 성기를 절단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 이성과 끊임없는 사색만이 사이비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 스콥치를 주창한 이는 18세기 러시아 서부지역에 살았던 콘드라티 이바노비치 셀리바노프이다. 그는 마태복음 19장 12절을 가리킨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 개인 숭배, 집단자살, 극단으로 치닫는 사이비 종교: 1954년 짐 존스가 창건한 인민사원 => 1974년 남미 가이아나에 존스타운을 세우고, 결국 907명 집단자살 

 

8. 민주주의를 만든 포르노

* 프랑스 혁명시기 시민들은 야설 작품을 탐닉했다. 대혁명의 아버지들도 야설을 자주 썼다. 
* 그들은 야설을 통해 전제성의 모순을 깨닫고, 성의 자유에 눈을 떴다.
* 대한민국 4.19 혁명 직전에도 '자유부인'이 대한민국 정치가들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해석됐다.
* 민주주의의 기둥에는 포르노가 켜켜이 쌓여 있을지 모른다. 

- 혁명의 아버지들이 포르노를 쓴 이유는 간단합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포르노가 종교와 정치의 권위를 비판하기 가장 좋은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끈적하게 묘사한 난잡한 성관계 이야기는 삽시간에 대중에게 퍼졌습니다. 그만큼 절대 왕정에서 벌어지는 귀족들의 비도덕성을 공격하는 데 탁월했지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철학 서적은 그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지요. 야한 웹툰이나 영상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됩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요. 문자도 잘 모르는 시민들이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책을 통해 체제의 모순을 파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왕과 왕비 귀족과 성직자의 문란한 성관계를 폭로하는 포르노야말로 전제정을 무너뜨릴 가장 좋은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 특히 루이 16세의 부인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포르노의 주인공으로 이름이 많이 올랐다. 국가에 대한 불만을 오스트리아 출신 외국인 왕비에게 푼 것이었다. 그녀는 포르노 속에서 시종들과 수시로 잠자리를 한 여인으로 묘사된다. 아들과 근친상간까지 벌였고 실제로 이 혐의로 처형된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지만 혁명의 아버지들은 이를 개의치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세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 아이러니한 건 혁명세력이 포르노에 대한 입장을 번복했다는 것이다. 정권을 잡기 시작한 무렵인 1791년 7월 국민의회는 포르노를 규제하는 조치를 시행하려고 한다. 또 한번 정치적 포르노가 자신들의 집권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9. 동상 세우고 행운을 빌었다

* 고대 로마에서는 남자 성기상이 액운을 쫓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 기독교가 퍼진 유럽에서도 가고일과 같은 괴물들을 성당의 외부장식으로 활용했다.
그리스도는 괴물보다 위인 상위의 존재로 포교하기 위해서였다.
* 우리나라 궁에서도 액운을 쫓는 잡상이 있었다. 궁 추녀마루 위 잡상들은 서유기의 캐릭터다.
* 미국 워싱턴 대성당에는 스타워즈 다스베이더상도 있다. 현대에도 변용이 이뤄지는 셈이다. 

- 고대 로마의 파시눔은 부적과도 같았다. 남근상을 귀히여겨 집 앞에도 걸어두고, 몸에 소지하는 펜던트로 활용했다. 남근이 악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남성 성기는 다산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가고일: 성당 외벽에 용이나 사자 처럼 생긴 이상한 모습의 괴물이 붙어 있는데, 이를 가고일이라고 함. 글을 모르는 문맹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한 힘으로 그런 괴물을 물리쳤다고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현실적인 포교 방법
한국의 궁궐 지붕 위 추녀마루에 잡상 설치하는데 건물의 위엄을 더하고 화재나 액을 막아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잡상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등이다.  
워싱턴국립대성당(성공화성당)의 북서쪽 탑에 위치한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다스 베이더 

 

 

교보문고 책 소개

인간의 본능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나
성 문화로 역사와 교양을 읽는다
‘그리스 석상의 성기는 왜 이렇게 작나’에서부터 ‘60세 연하에게 청혼한 괴테’에 이르기까지 성의 역사와 문화를 전방위로 다룬다. ‘매춘, 포경, 자위, 포르노, 성기, 키스, 나체, 누드, 불륜, 목욕탕, 동성애’ 등 성과 관련된 직접적인 주제를 적나라하게 노출시키면서도 인문학적 요소를 가미해 품격 있는 성 담론을 펼친다. 또한 화가들의 그림과 고대 건축물 등 화려한 예술 작품을 삽입해 읽는 재미와 보는 맛을 한층 고조시킨다. 나아가 교과서에서는 보지 못했던 색다른 역사들에도 현미경을 들이댄다. 위대한 왕, 귀족, 예술가들의 사생활은 물론 불륜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영국의 이순신’ 넬슨, 프랑스의 역사를 구한 왕의 정부 아녜스 소렐에 관한 이야기 등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들도 미처 알지 못했던 풍부한 지식과 교양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글) 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다. 1988년 초봄 경기도 남양주시 작은 서점에서 태어났다. 날 때부터 책에 둘러싸여, 책을 선생님과 친구로 삼으며 자랐다. 책이 풍기는 향기가 좋았고 종이의 질감에 편안함을 느꼈다. ‘글밥’을 먹으며 살고 싶다고 오랜 기간 생각했다. 언론사에 입사해 ‘작은 꿈’을 이뤘다. 본업으로는 새로운 소식인 ‘뉴스’를 다루고, 부업으로는 옛날얘기인 ‘사색’과 동물의 성을 다룬 ‘생색’을 쓰고 있다. 책에서 받은 통찰과 재미를 독자와 공유하고 싶다. 어떤 책에서도 보기 힘든 내용이 담긴 ‘맛있는 책’을 요리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하여 종이책이 멸종 위기에 처한 지금, 작은 파수꾼이 되고자 한다.

 

목차

  • 프롤로그

    주제 편

    1. 그리스 석상의 성기는 왜 이렇게 작나
    2. 아이를 낳은 여자 교황이 있었다?
    3. 성스러운 사원에서 매춘을?
    4. 나치가 포경한 남자를 찾아 나선 이유
    5. ‘호랑이 힘’ 콘푸로스트가 자위 방지용이라고?
    6. 자위 막고자 칼날 든 속옷까지 입었다
    7. 성기 자르고 자랑스러워한 사람들
    8. 민주주의를 만든 포르노
    9. 성기 동상 세우고 행운을 빌었다
    10. 악어똥까지? 기상천외한 피임법
    11. 고대 목욕탕에서 이루어진 성매매
    12. 사회주의자들은 왜 남자끼리 키스하나
    13. 어린이 인형이 매춘부를 모델로?
    14. 왜 자위와 몽정은 죄악이었나
    15. 왜 서양에는 나체주의자가 많을까
    16. 월경 여성들은 어떻게 차별받았나
    17. 대지진이 일어난 리스본에서 매춘 업소만 무사했다

    인물 편

    18. 때리며 쾌감 느낀 남자 - 사드 후작
    19. 상관 부인과 아이 낳은 영웅 - 허레이쇼 넬슨
    20. 프랑스를 구한 불륜녀 - 아녜스 소렐
    21. 프랑스 리더의 불륜 평행이론 - 앙리 2세
    22. 부인을 두 명이나 공개 처형한 왕 - 헨리 8세
    23. 성매매 업소에서 살았던 화가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
    24. 인류를 구한 영웅은 동성애자? - 앨런 튜링
    25. 남편 친구와 누드 사진을 찍은 소설가 - 마리 드 레니에
    26. 약에 취해 글 썼더니 명작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27. 60세 연하에게 청혼한 대문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책 속으로

왜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만 성기를 유독 작게 그렸을까요? 그리스 석상의 작은 성기는 학자들에게도 ‘핫이슈’였습니다. 수많은 미술사학자가 이 주제에 천착해 연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격론이 오갔고, 결론이 나왔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작은 성기를 매우 아름답다고 여겼다”고요. 그들의 사고방식을 좀 더 들여다볼까요. 고대 그리스는 철학의 나라였습니다. 이들에게 남성성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신체 단련을 통한 근육질 몸매와 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이성이었습니다. 근육질 몸매와 이성은 서로 극명히 다른 요소로 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의지로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하나로 연결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굴의 의지로 섹시한 근육질 몸매를 만든 사람과 이성과 철학을 겸비한 시민을 최고의 남자로 쳤던 것입니다. 반면 이들에게는 원초적인 욕망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교양 있는 그리스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성기는 욕망의 지표였기에 그만큼 작아야 했지요.
〈1장 그리스 석상의 성기는 왜 이렇게 작나〉 (본문 13∼15쪽)

‘막아야 해... 반드시... 그들의 자위행위를.’ 1877년 미국 미시간주의 한 요양원. 말쑥하게 생긴 한 젊은 의사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환자들의 ‘은밀한 손장난’을 막을 방법을 찾느라 데 무진 애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욕과 식욕은 만악의 근원이자 건강의 적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었습니다. ‘자위행위가 건강에 안 좋다’는 견고한 믿음도 있었지요. 이 두 욕망을 절제시킬 수 있다면, 요양원에 모인 미국 최고 부호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깊은 믿음을 토대로 식욕(과 성욕) 억제를 위한 메뉴 개발에 나섭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시리얼의 일종 콘플레이크의 시작입니다. 이를 개발한 젊은 의사의 이름은 존 하비 켈로그. “호랑이 힘이 솟아난다”는 콘플레이크의 시작이 “자위행위를 막아야 한다”는 켈로그의 ‘숭고한’(?) 목적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5장 ‘호랑이 힘’ 콘푸로스트가 자위 방지용이라고?〉 (본문 53∼54쪽)

소년은 종일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젯밤 문득 욕정이 일어 수음(자위행위)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이웃 마을 처녀를 생각했기에 죄책감은 더욱 컸지요. 꽃과 동물을 사랑했고 종교에 신실했던 그였습니다. 신의 말씀을 따라 살겠다고 늘 되새겨 왔었기에 자신을 더욱 용서할 수 없었지요. 날이 밝자 그는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겸허히 고백합니다. “목사님, 제가 수음의 죄를 범했습니다.” 목사가 말합니다. “회개하라, 주님의 어린 양이여. 너를 용서하노라. 다만 이걸 차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도록 하게.” 소년은 놀란 표정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목사님이 건넨 속옷 안에 날카로운 칼날이 ‘그곳’을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지요.
〈6장 자위 막고자 칼날 든 속옷까지 입었다〉 (본문 63∼64쪽)

혁명의 아버지들이 포르노를 쓴 이유는 간단합니다. 18세기 프랑스에서 포르노가 종교와 정치의 권위를 비판하기 가장 좋은 무기였기 때문입니다.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끈적하게 묘사한 난잡한 성관계 이야기는 삽시간에 대중에게 퍼졌습니다. 그만큼 절대 왕정에서 벌어지는 귀족들의 비도덕성을 공격하는 데 탁월했지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철학 서적은 그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지요. 야한 웹툰이나 영상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게 됩니다. 프랑스혁명 당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요. 문자도 잘 모르는 시민들이 어려운 용어로 가득한 책을 통해 체제의 모순을 파악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왕과 왕비 귀족과 성직자의 문란한 성관계를 폭로하는 포르노야말로 전제정을 무너뜨릴 가장 좋은 수단이었던 것입니다.
〈8장 민주주의를 만든 포르노〉 (본문 9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