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트러스트: 에르난 디아스 (2024.5.27)

클리오56 2024. 5. 27. 18:16

 

<평론가 이동진의 유튜브 해설>

 

<내용 및 소감>

참으로 독특한 소설이다. 처음에는 소설, 전설적 투자가의 자서전, 그 자서전을 쓰던 여성의 회고록, 투자가 부인의 일기, 이렇게 형식을 달리하며 진실을 밝혀내도록 한다. 마지막 일기가 진실처럼 보이는 듯 하지만 그 일기도 진실일까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남는다. 소설이 경험을 간접적으로 취득하는 지름길이라 헸는데, 이런 인간들의 여러 다양한 면모를 보니 그 말은 확실하다.  

저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무엇을 믿을 거냐’고 묻는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생각한 것이 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1. 채권

 

- 69쪽: 평생 자족적으로 살아왔다는 점을 자랑으로 삼던 사람이 문득 세상을 완전하게 만드는 건 친밀함이라는 걸 깨달으면, 친밀함은 참을 수 없는 짐이 될 수 있다. 축복을 발견하면 그 축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과연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권리가 있는지 의심한다.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숭배를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상대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서는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드러났을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모든 의문과 걱정의 무게에 허리가 굽어져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동반자 관계에서 새로 발견한 기쁨 탓에 이제는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고독을 더욱 깊이 표현하게 된다.

 

- 88쪽: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승리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이지만 실패에 있어서는 수동적 객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승리하는 건 우리지만, 실패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때문에 망가지는 것뿐이다. 

- 135쪽: 헬렌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적막한 폐허와도 같았다. 무언가 망가지고 버려졌다. 존재가 소진되었다. 그녀의 눈은 벤저민을 보지 않았다. 그저 벤저민이 안쪽의 잔해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벤저민은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그을린 이마에 입을 맞춘 뒤 그녀가 무척 용감했다고, 잘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미소 짓고 있는 것이기를 바랐다. 

 

2. 나의 인생
* 남편 앤드루 베벨이 쓴 자서전

- 162쪽: 진정한 신사는 여가를 즐기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주는 금융업은 사교계에서 입에 담아서는 안될 화제였다. 그래서 나의 증조부는 어색한 처지에 놓였다. 사람들은 증조부의 서비스를 무척 고맙게 여겼지만, 증조부는 그로 인해 혜택을 보는 사람들에게 기피 대상이 되었다. 이런 위선적 경향을 교정하는데 삼 세대의 시간이 걸렸다. 지금도 그런 경향이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다. 

 

- 162쪽: 당시의 경험(제퍼슨의 금수조치)은 윌리엄의 마음 깊이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번째 교훈은 사업을 벌이기에 이상적인 상황은 절대로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기회는 만들어야만 했다. 처음에는 금수조치가 증조부의 꿈을 산산이 조각냈으나 증조부는 이런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바꾸는 방법을 찾아냈다. 두번째 교훈이자 가장 큰 깨달음은, 제대로 방향을 잡기만 한다면 이기심이 공동선과 꼭 분리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었다. 

 

- 173쪽: 모든 금융업자는 팔방미인이 되어야 한다. 금융이란 인생의 모든 측면을 관통하는 실이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금융은 인간 존재의 이질적인 가닥들이 모두 엉키는 매듭이다. 사업은 모든 활동과 산업의 공통분모이다. 따라서 사업가에게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업가에게는 모든 것이 중요하다. 사업가는 진정한 르네상스적 인간이다. 그것이 내가 역사와 지리학에서 부터 화학과 가싱학에 이르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의 지식을 얻고자 한 이유다. 

 

- 174쪽: 이번 장에서는 교육만큼 높은 배당금을 낳는 투자는 없음을 보여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 기준에 따라 살고 있으며, 나 자신을 영원한 학생이라고 여긴다

 

- 179쪽: 윌리엄은 1807년 금수조치에서 기회를 찾았다. 나는 1907년 공황에서 기회를 잡았다. 우리 둘 다 이러한 위기에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당시에 윌리엄은 망설임없이 가족 부동산의 몇 배나 되는 담보대출을 일으켰고 그 돈 전부를 모험적인 사업에 투자했다. 윌리엄과 똑같이, 나도 윌리엄이 획득했고 나의 조상들이 수십년에 걸쳐 늘려온 자본을 활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 201쪽: 모든 인생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삐걱거리다 멈추게하는 소수의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된다. 다음번에 강력한 순간이 찾아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런 사건들의 결과로 혜택을 보거나 괴로워하며 그 사건들 사이에 세월을 보낸다. 한 사람의 가치는 자신이 직접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처럼 결정적인 상황의 수에 따라 정해진다. 늘 성공을 거둘 필요는 없다. 패배에도 위대한 영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서사시든 비극이든 결정적인 장면의 주연이야 한다. 과거가 우리에게 무엇을 건네주었든 정해진 형태가 없는 미래라는 블록으로부터 현재를 조각해내는 건 우리들 각자에게 맡겨진 일이다. 

 

- 213쪽: 하지만 1929년에는, 한편으로는 증권거래소 일을 혼란스럽게 하는 타락한 탐욕에 역겨움을 느끼고 한편으로는 연방준비은행의 무절제한 간섭주의에 동요하여 공매도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단지 사업가로서 합리적인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나라를 걱정하는 시민으로서 시장을 교정하고 숙청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나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책임감을 가지고 만들어낸 수익는 공동선과 함께 간다는 점을 증명했다. 

 

- 214쪽: 나의 행동이 미국의 산업과 영업을 수호했다. 나는 우리 경제를 비윤리적 투기꾼들과 신뢰를 파괴하는 자들로부터 지켜냈다. 나는 또한 연방준비은행이라는 독재적인 존재로부터 자유기업을 보호했다. 내가 이러한 행동으로 이익을 얻었느냐고? 당연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해적질과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해방된 우리나라도 혜택을 볼 것이다. 

 

3. 회고록을 기억하며

* 회고록을 썼던 비서 아이다 파르텐자가 집필 당시의 진실을 밝히면서 자신의 가족 얘기도 서술

 

- 248쪽: ( 비서 아이다 파르텐자의 아버지) 돈은 공상적인 상품이야. 돈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세상의 모든 음식과 옷을 나타내지. 그래서 돈이 허구라는 거야. 바로 그 점 때문에 돈은 우리가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된다. 무슨 뜻이냐고? 그 말은 돈이 보편적 상품이 된다는 거야. 하지만 기억하거라. 돈은 허구야. 순전히 공상적인 형태의 상품이지, 그렇지? 금융자본은 더더욱 그래. 증권, 주식, 채권 같은 것들. 강 건너의 저 노상강도들이 사고파는 것에 뭐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증권이나 주식 같은 그 모든 쓰레기는 그저 미래 가치에 대한 주장일 뿐이야. 그러니까 돈이 허구라면 금융자본은 허구의 허구인 거지. 저 범죄자들이 거래하는 건 그것뿐이다. 허구.

 

- 255쪽: 이탈리아인 무정부주의자의 딸인 독학생이 베벨 투자회사에 들어가다니 어림도 없었다. 

 

- 267쪽: 베벨 투자회사에서 시험과 면접을 보는 동안 나는 평생 여러 차례에 걸쳐 확인할 기회가 생긴 한가지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되었다. 권력의 근원에 가까워질수록 주위가 조용해진다는 것이다. 권위와 돈은 침묵으로 스스로를 둘러싸고, 사람은 누군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그들을 둘러싼 침묵의 두께로 측정할 수 있다. 

- 305쪽: “내 일은 정답을 맞히는 거야. 언제나. 조금이라도 틀리면, 나는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서 내 실수가 더이상 실수가 아니게 되도록 하네. 현실을 조정해서 내 실수에 맞도록 구부리지.” 

- 311쪽: 그 남자들 각각의 개인적인 특징은-카네기의 자족적인 독실함, 그랜트의 근본적인 품위, 포드의 딱딱한 실용주의, 쿨리지의 수사적 검약 등등-당시 내가 생각하던 그들 모두의 공통점 앞에 무너져내렸다. 즉, 그들은 모두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의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자신들의 결점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고. 그들 모두가 내 아버지에게 있던,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베벨이 글로 옮기고 싶어하는 확신이라는 걸 알았다. 

 

-329쪽: 책이 팔리는 한, 배너 씨는 현재의 계약에 묶여 있을 걸세. 책은 계속 팔릴 테고. 인쇄될 때마다 내가 다 사버릴 테니까. 그리고 전부 곤죽으로 만들어버릴거야. 

 

- 372쪽: 내가 경력을 쌓는 내내 직관은 늘 큰 도움이 되었네. 내가 명성을 얻은 건 많은 부분 그 덕분이야. 과학과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에 대한 객관적 해석을 이런 직관에 더한 것이 내 능력의 원천이네. 이런 독특한 조합이 내가 늘 티커 테이프보다 한발 앞서도록 해주었지. 

 

4. 선물

* 아내 밀드레드 베벨의 일기를 통해 드러나는 또 다른 진실 

- 453쪽: 급등 때나 폭락 때는 티커가 늘 한참 뒤처졌다. 바닥의 매도가와 티커 액수 사이에는 최대 10포인트까지 격차가 발생할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지연을 내 것으로 만들기로 했다. 지나치게 큰 물량을 거래하고 + 대중의 광기가 폭발하도록 부추김으로써 나는 그런 지연을 만들어냈다. 티커는 나를 따라오지 못했고, 몇 분 동안 나는 미래를 소유했다. .... 이처럼 결함이 있는 메커니즘이 차익을 낼 기회를 만들어냈다. 전에는 이런 지연에서 이득을 취할 생각을 아무도 하지 못했다니 해괴한 일이다. 나는 그런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 나는 4명의 키보드관리자 중 1명에게 뇌물을 줘서, 기계에 입력하기 전에 모든 시세를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상상해보라고 했다. 그러면 시간 지연 덕분에 들키지 않고 이런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고. .... 이런 작전은 겨우 몇 달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헤아릴 수 없는 돈을 벌어들였다. 앤드루 베벨의 신화는 그가 신이 될 때까지 자라났고. 

 

- 467쪽: 대실패가 임박했는데도 그는 내 계획에 회의감을 보이며, 시장은 충격을 방지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재앙이 그저 시간문제라는 걸 알았다. 나는 공매도 입장을 취하기 시작했다. 9월 초, 몇달 동안 자산 가치를 상승시켜 온 나는 그 자산을 유동화해 갑작스럽게 처분했다. 투자자들은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쇠퇴기에 주식을 팔기 시작했고, 이는 뻔하게도 1929년 10월 마지막 주의 결과로 이어졌다. 

 

교보문고 책소개

20세기 초 월 스트리트를 지배했던 인물
그에 대한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
첫 작품 『먼 곳에서』(2017)가 퓰리처상 최종후보에 오르며 단숨에 미국 문단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젊은 거장 에르난 디아스. 그가 두번째 장편소설 『트러스트』로 국내에 첫선을 보인다.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작품은 연말 각종 언론 매체가 선정하는 올해의 책 리스트에 거의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타임〉에서 올해의 책 top 10으로 선정된 것을 포함해 〈뉴요커〉 〈보스턴 글로브〉 〈가디언〉 〈보그〉, NPR 등 서른 개가 훌쩍 넘는 매체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올해의 책으로 뽑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커커스상을 수상하고 부커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과 작가의 탁월함을 입증했다.

1920년대 월 스트리트를 주요 배경으로 한 『트러스트』는 금융계에서 전설적인 성공을 거두며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 부부에 대해 네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펼쳐나가면서 경제, 금융, 돈, 권력, 계급 등 오늘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소설의 제목 ‘트러스트(Trust)’는 신뢰, 신탁, 위탁, 기업합동 등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로, 같은 인물에 대한 여러 이야기 중 어느 이야기가 신뢰할 만한지, 어느 서술을 믿을 것인지 등의 질문을 담은 중의적 의미로 쓰였다.

‘트러스트’라는 제목이 신뢰와 믿음이라는 가치뿐 아니라 기업합동이라는 경제적 개념을 의미하듯, 이 소설 또한 여러 영역의 ‘트러스트’를 모두 탐구한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텍스트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어떤 내러티브를 믿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앤드루 베벨과 밀드레드 베벨의 결혼생활을 통해 부부 사이의 신뢰를 이야기하며, 인간사 전체에서 신뢰와 배신이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그러는 한편으로 작가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전능함을 가졌지만 동시에 비실재적이고 허구적인 존재로서의 ‘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철저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20세기 초 주식시장과 금융계를 사실적으로 그리며 월 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자본의 특성과 그 추상적인 구조를 파헤치고, 부와 권력이라는 신화의 허상을 우리 앞에 낱낱이 드러낸다. 그리고 자본주의, 금융, 권력, 계급과 같은, 시대를 초월해 현재에도 여전히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이야기한다.

목차

  • 채권
    해럴드 배너 _009

    나의 인생
    앤드루 베벨 _149

    회고록을 기억하며
    아이다 파르텐자 _221

    선물
    밀드레드 베벨 _421

    감사의 말 _477
    옮긴이의 말 _479
추천사
  • 여기 퍼즐처럼 연결된 네 개의 이야기가 있다. 소설 속의 소설, 자서전, 회고록, 일기. 이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화자의 욕망에 따라 때로는 진실을 때로는 거짓을 담보한다. 나는 규칙에 따라 퍼즐을 맞추듯 소설을 읽었다. 절대 속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각각의 이야기에 걸려 넘어졌으며 마지막에는 내가 읽은 모든 것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트러스트』는 광란의 시대라 불리는 1920년대 미국의 금융시장과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다. 부와 성공이라는 신화, 돈과 사랑이라는 허상, 그리고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 작가 에르난 디아스는 우아한 춤을 추듯 그 사이를 빠져나가며 우리에게 무엇을 믿느냐고 되묻는다. 지독히 현실적이면서 놀라울 만큼 환상적인 소설이다.
  • 라쇼몽식 서사는 이제 익숙한가? 이 소설을 읽으면 달리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작가는 다층 서술을 종횡으로 구사하여 먼저 외로웠던 한 인물의 초상을 보이고, 동시에 다른 각도에서 각종 ‘트러스트’들을 살핀다. 내러티브에 대한 믿음, 가족과 연인 사이의 신뢰, 고용주의 신임, 신탁 재산, 1929년 월 스트리트 대폭락을 불러온 제도, 금융이라는 추상적인 구조에 대한 신용까지. 진실은 우리의 믿음 안에서 만들어지는 것일까, 밖에 놓인 것일까. 믿음 그 자체가 현실이라면, 믿음을 조정하고 구부리는 일에 나서야 하는가, 혹은 막아야 하는가. 깊고 지적인 질문을 매끄러운 이야기에 담아낸 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 에르난 디아스는 내러티브의 천재다. 폭넓은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문장들은 힘있고 유연하다. 『트러스트』는 절묘하고 여유롭게 독자적인 세계와 캐릭터를 구축했다. 정말이지 반짝이고 심오하고 감동적인 소설이다.
  • 에르난 디아스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전능하면서도 비실재적 물질로서 돈이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지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의 소설 『트러스트』는 경이와 지식과 미스터리로 반짝인다. 플롯은 아르 데코 기하학처럼 날카롭고 초현실적인 반면 그 구조 안에는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인물들이 존재한다. 아주 고전적이면서 아주 독창적이며, 발자크와 보르헤스가 모두 자랑스러워할 만한 소설.
  • 과거 뉴욕을 배경으로 펼쳐지지만 오늘날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한다. 돈, 권력, 계급, 부부 사이의 그리고 부모 자식 간 관계, 인간사에서 신뢰와 배신이 맡고 있는 역할. 선택한 주제에 대한 작가의 전개는 매우 통찰력 있다. 영리하게 구성되고 놀라움이 풍부한 이 훌륭한 소설은 아름답게 구성된 모든 페이지에 진지한 아이디어와 진지한 즐거움이 가득하다.
  • 멋진 퍼즐 같은 이 소설은 계속해서 시점을 바꿔가며 20세기 초 어느 가문이 소유했던 대단한 부의 시작에 대해 다른 이야기들을 펼쳐나간다. 훌륭하고 인상적인 재능으로 써내려간 소설로 페이지마다 긴장감이 넘쳐나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에르난 디아스는 다시 한번 미국의 신화를 해체하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에 대해 곱씹게 해주었다.
  • 희귀한 보석 같은 책.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놀랍다. 세상이 소란한 가운데 나는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디아스의 탁월함에 빠져든 채 며칠을 통째로 보냈다.
  • 레이어가 겹겹이 쌓인 절묘한 소설. 이야기 속에서 이야기가, 그 속에서 또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아하게 쓰인, 탁월한 작품.
  • 정교하고 복잡하며 한결같이 놀랍다. 이 소설의 즐거움은 예측할 수 없다는 데서, 챕터를 하나씩 읽어갈 때마다 연달아 놀라움이 찾아온다는 데서 기인한다. 흥미진진하고 지적인 소설.
  • 이 작품에서 확실한 것은 오직 작가 디아스의 탁월함, 그리고 꼭 읽어야 하는 이 책의 가치다. 우아하면서도 유혹적인 퍼즐 같은 이 소설은 단순히 역사와 전기가 쓰인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를 보여준다. 결말에 가면 독자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화자는 디아스뿐이다.

책 속으로

평생 자족적으로 살아왔다는 점을 자랑으로 삼던 사람이 문득 세상을 완전하게 만드는 건 친밀함이라는 걸 깨달으면, 친밀함은 참을 수 없는 짐이 될 수 있다. 축복을 발견하면 그 축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과연 행복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권리가 있는지 의심한다. 사랑하는 상대가 자신의 숭배를 지루하다고 느낄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상대에 대한 갈망이 그들로서는 직접 확인할 수 없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드러났을지 몰라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 모든 의문과 걱정의 무게에 허리가 굽어져 자신의 내면을 보게 되고, 동반자 관계에서 새로 발견한 기쁨 탓에 이제는 떨쳐버렸다고 생각했던 고독을 더욱 깊이 표현하게 된다. 본문 69쪽

사람들은 대부분 각자가 승리에 있어서는 적극적 주체이지만 실패에 있어서는 수동적 객체일 뿐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승리하는 건 우리지만, 실패하는 건 우리가 아니다-우리의 통제력을 벗어난 힘 때문에 망가지는 것뿐이다. 본문 88쪽

헬렌이 그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적막한 폐허와도 같았다. 무언가 망가지고 버려졌다. 존재가 소진되었다. 그녀의 눈은 벤저민을 보지 않았다. 그저 벤저민이 안쪽의 잔해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벤저민은 허리를 숙이고 그녀의 그을린 이마에 입을 맞춘 뒤 그녀가 무척 용감했다고, 잘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자기가 미소 짓고 있는 것이기를 바랐다. 본문 135쪽

“돈은 공상적인 상품이야. 돈은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지만 세상의 모든 음식과 옷을 나타내지. 그래서 돈이 허구라는 거야. 바로 그 점 때문에 돈은 우리가 다른 모든 상품의 가치를 매기는 척도가 된다. 무슨 뜻이냐고? 그 말은 돈이 보편적 상품이 된다는 거야. 하지만 기억하거라. 돈은 허구야. 순전히 공상적인 형태의 상품이지, 그렇지? 금융자본은 더더욱 그래. 증권, 주식, 채권 같은 것들. 강 건너의 저 노상강도들이 사고파는 것에 뭐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니?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증권이나 주식 같은 그 모든 쓰레기는 그저 미래 가치에 대한 주장일 뿐이야. 그러니까 돈이 허구라면 금융자본은 허구의 허구인 거지. 저 범죄자들이 거래하는 건 그것뿐이다. 허구.” 본문 248~249쪽

“내 일은 정답을 맞히는 거야. 언제나. 조금이라도 틀리면, 나는 모든 수단과 자원을 동원해서 내 실수가 더이상 실수가 아니게 되도록 하네. 현실을 조정해서 내 실수에 맞도록 구부리지.” 본문 305쪽

그 남자들 각각의 개인적인 특징은-카네기의 자족적인 독실함, 그랜트의 근본적인 품위, 포드의 딱딱한 실용주의, 쿨리지의 수사적 검약 등등-당시 내가 생각하던 그들 모두의 공통점 앞에 무너져내렸다. 즉, 그들은 모두 아무런 의심 없이 자신의 이야기는 들을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자신들의 말이 누군가의 귀에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자신들의 결점 없는 삶에 관한 이야기는 반드시 전해져야 한다고. 그들 모두가 내 아버지에게 있던, 바로 그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야말로 베벨이 글로 옮기고 싶어하는 확신이라는 걸 알았다. 본문 3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