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곳저곳 해외여행

일본 큐슈 여행 2일차: 구마모토성, 스이센지, 아소산 (2024.4.17)

클리오56 2024. 4. 20. 20:14

* 일자: 2024.4.17
* 2일차 일정: 아사쿠라 ~ 구마모토성 ~ 스이센지 ~ 아소산 ~ 아소 숙소 (유메오이소 료칸)
* GPX 트랙은 램블러 아이디 goclemens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있습니다. 

여행 가면 항상 지키는 습관 중의 하나가 아침 산책이다. 더구나 일본은 안전한 국가라 별 어려움없이 주변 동네를 산책할 수 있다. 여행 기간 중 세번의 산책 기회를 가졌는데 인적이 없다는 것과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개나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물론 소도시라 거주하는 사람이 적기는 하겠지만. 가이드하는 김 대장에게 물었더니 아침과 밤에 조용하게 지내며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5시30분경 산책을 나가면 20여분 뒤 일출이라 어둡지 않다. 숙소에서 보이는게 강인줄 알았더니 현재 물 흐름이 없다. 길을 따라 우측으로 돌아가니 어제 고라산에서도 보이던 지쿠고 강이다 

지쿠고 강. 강 너머 산쪽에서 일출의 빛이 드러난다. 

강물이 불어나면 배도 다니게되는지 천변에 배가 놓여있다. 

큰 나무의 노란꽃이 아름답다. 다음에서 꽃이름 검색하니 너무 엉뚱하여 소개조차 못하겠다. 

공원, 거리의 보도, 벽화 그리고 가로등에까지 가마우지의 모습이 보이는데, 예전에는 많이 서식했고 낚시에 사용되었다. 

등나무 꽃 

아침 식사 후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구마모토성 ~ 스이센지 ~ 아소산을 거쳐 아소시에 도착하여 숙박한다. 첫 방문지는 도중의 수령 1500년 녹나무. 하지만 다음 날 수령 2천년, 3천년의 녹나무를 대하게 되니 천년의 세월이 순간인 듯하다.  

물레방아. 수차 세개가 연이어 세워졌다. 1789년 설치되어 주변 평야에 물을 공급하여 농사가 가능하였다. 

 
구마모토 성은 예전에 방문한 적이 있지만 이미 아득한 옛날. 나무위키의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오사카 성, 나고야 성과 함께 일본 3대 성으로 불린다. 경우에 따라 나고야 성 대신 히메지 성이나 히코네 성을 꼽기도 한다.
 
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에 참전하면서 얻은 축성술을 바탕으로 만든 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완전히 새로 지은 성은 아니다. 그 이전에 지바 성(千葉城)이란 이름으로 이미 축성되었고, 여러 번 영주가 바뀌는 과정에서 '구마모토 성'으로 이름도 바뀌게 되었는데, 이때는 한자가 '隈本'으로 약간 달랐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통일 후 1591년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로 전봉하게 된다. 가토는 기존의 구마모토 성 주변 구릉 일대에 성벽을 두르게 하였고, 이때 구마모토의 한자를 지금의 '熊本'으로 고치도록 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참전 후 축성의 달인이 되어 돌아온 후부터는 울산성 전투 당시 식량과 식수 부족에 고생한 경험을 살려, 식용 가능한 토란 줄기로 만든 다다미를 짜고 성벽에는 조롱박으로 도배를 했고, 은행나무와 소나무를 심었다. 심지어 성의 밧줄과 흑벽에 넣는 짚에도 토란줄기를 사용했으며, 흙바닥에도 토란 등의 작물을 심었다. 식수 부족을 막기 위해 성 안에 우물도 120개나 팠다. 구마모토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사람 중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납치한 조선인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구마모토 성의 기와는 조선식에 가깝다. 지금도 구마모토 현의 구마모토 시에는 울산정역(우루산마치역)이 있는데, 울산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토 기요마사가 열과 성을 다해 지은 구마모토 성은 그의 아들 시대에 영지를 뱉어내야 했고, 이후 호소카와 가문에서 영주를 맡게되고 현재 남아있는 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개축한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후에 들어온 호소카와 가문에 의해 10년에 걸쳐 80곳을 수리한 것이다. 1623년에 큰 지진 이후 수차례 대지진을 겪었고특히 1854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서남전쟁에서 정부군이 반란군을 진압하러 나섰지만 패배하고 구마모토 성으로 퇴각하여  57일간 농성을 벌였다. 전투 3일 전에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 대, 소천수각을 비롯한 저택 등 혼마루의 건물들이 불에 타서 소실되었다. 이후 1889년에는 또 한 차례 대지진으로 성은 크게 파손되었고, 60개였던 야구라(방어용 탑 櫓)은 이때 4분의 3이 무너졌다. 그러나 거의 보수하지 않고 방치되었다.
 
1927년에 들어서야 우토 야구라가 복원되었고, 전후인 195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성의 복원 활동이 일어나자 이 흐름에 맞춰 구마모토 성도 본격적으로 복원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대부분은 이때의 복원 작업으로 성을 거의 새로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천수각도 1960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외형만 복원한 사실상 현대 건축으로 내부는 건축 당시의 모습을 느낄 수 없는 일반적인 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2016년 4월 14일 구마모토 전역에서 발생한 규모 6.8과 규모 7.3의 지진으로 인해 성곽이 일부 붕괴되고 성 전체에서 먼지 구름이 치솟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천수각은 버텨냈으나 떨어져 나간 기와와 돌담 복구에 3년, 무너진 성벽과 망루 등 성 전체를 복구하는데는 20년이 걸린다는 보도가 나왔다. 현재는 많이 복원되어 재개장하였다. 
 

 

복원 전의 천수각 지대 

천수각 꼭대기에서의 조망  

성을 둘러싼 해자  

가토 기요마사. 우리에게는 임진왜란의 침략군 선봉장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구마모토 영주이자 성 축성자로 기억된다. 동상 옆에 안내문이 있지만 이웃나라 침략시 선봉장이었다는 언급은 물론 없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구마모토 시내 모습 

점심은 회전스시에서 식사. 물론 회전 중인 스시를 잡아내는 스타일은 아니었고, 태블릿을 통해 주문하면 서빙되었다. 

접시의 숫자와 색상으로 음식값이 집계되었다. 1인당 평균 3만5천원이 지불되었다. 

스이젠지 조주엔(水前寺成趣園): 일본 특유의 정돈, 정제된 정원이다. 중앙의 동산 모습은 후지산 가산이다.

큐슈에 오면 반드시 방문하는 아소산은 활화산이다. 이 날도 멀리 처음에는 한 줄, 나중에는 검고 흰 연기 두 줄기가 피어오른다. 우선 나무위키에서의 설명을 옮겼다.

아소산(阿あ蘇そ山さん)은 일본 규슈 지방 중앙부, 구마모토현의 아소시(阿蘇市), 아소군(阿蘇郡) 및 키쿠치시(菊池市) 일대에 위치한 활화산이자 복합 화산(complex volcano)이다. 최고봉인 다카다케(高岳; 1,592 m)와 현재 활동 중인 분화구가 있는 나카다케(中岳; 1,506 m) 외에 네코다케(根子岳), 에보시다케(烏帽子岳), 기시마다케(杵島岳)의 5개 봉우리(아소오악) 및 이를 둘러싸고 있는 외륜산(外輪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소산의 거대한 칼데라는 동서 16km, 남북 27km에 달한다. 아소시를 둘러싸고 있는 외륜산까지의 분지 지형이 칼데라인데, 이는 과거 화산 폭발로 붕괴된 지형이다. 흔히 아소산이라 부르는 오악은 아소산의 칼데라 안에 새로 생긴 중앙 화구구(中央火口丘)로, 거대한 화산이 붕괴되어 만들어진 칼데라 이후 새로 형성된 신생 화산이다. 따라서 아소산은 복합 화산 구조이다.

미치노에키 아소보노사토 구기노(道の駅 あそ望の郷くぎの)라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아소 5악을 조망하였다.

그리고 5악의 언저리에 위치한 미나미아소 파노라마 라인 전망대에서 다시 외륜산을 조망하며 거대한 칼데라를 느껴본다.

파노라마 촬영~~

아소산 정상 광장에 도착하여 연기가 피어나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오늘은 저 능선까지 오르는 근접이 허락되지 않는다.

박물관 뒷편으로 쿠사센리 전망대에서 또 다르게 조망한다. 넓직한 초지가 펼쳐지기도 한다. 쿠사센리의 의미가 '천리에 이르는 풀밭'이라는 이름답게 넓게 펼쳐진 초원 위를 걷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되지 않는다.

연기가 더 피어오르는 듯하다.  

미총을 조망~ 쌀 모양의 무덤처럼 생겼다. 제주 오름을 대하는 느낌. 올라가는 길이 있고 분화구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게 보인다.  

산의 왼쪽 툭 튀어오른 부분이 다이칸보이다. 내일 방문하여 아소산을 또 다르게 조망할 예정이다.

아소시에 소재한 숙소 유메오이소 료칸에 도착하였다. 

다다미 방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곳은 모두 침대였는데.... 

여기 식사는 쇠고기에 집중된다. 구글 리뷰를 보더라도 최고의 쇠고기를 무한 시식하였다는 평이 주류를 이룬다. 우리 역시 그 길을 따라갔다. 음식 차림도 깔끔하고 술도 종류가 다양하며 사케를 데워주기도 한다. 

식사후 족탕에 함께 발을 담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