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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여행 24일차: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 -> 우수아이아 항공 이동 (2024.3.7)

클리오56 2024. 3. 25. 10:39

일자: 2024.3.7

코스: 엘 칼라파테 ~ 우수아이아 (항공이동)

거리: 604.8km
 

엘 칼라파테에서의 마지막날. 아침 식사는 6시반 부터, 그리고 숙소에서 공항 이동은 10시라 아침에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하여 이른 아침 부근의 습지원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숙소에서 라군 니메츠 그리고 아르헨티노 호숫가를 거쳐 숙소로 볼아왔다. 거리는 5.4km, 1시간15분 정도 소요되었다. 

니메츠 호수   

습지원 본부  

아르헨티노 호숫가, 잠시 호숫가에 손을 담궈보았다.  

숙소 

 

우수아이아로 항공이동 하는데, 캐리어의 무료 중량은 15kg이다. 하여 무거운 물건은 배낭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였고, 그래도 약간은 초과한 15.8kg이었는데 그정도는 충분히 양해받을 수 있는 중량이다. 단체객이라 그런지 2kg 초과한 경우에도 별말이 없었다. 출국 심사대에서 맥가이버 칼을 압수당했는데, 세면도구 속에 넣어두었는데 중량 체크하면서 배낭으로 옮기고 잊어버린 부주의한 탓이었다. 어떤 일행은 등산 스틱을 압수당했는데, 국내에서는 양해되는 품목이지만 해외에서는 어림도 없는 품목이다.

 

항공 이동 중 기내에서 잠시 독서를 즐겼다. 이번 여행 중 처음이다.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해외여행을 가면 자주 들고가는 책인데, 어느 챕터를 읽어도 독립적으로 읽어지는 책이며, 여행 중 일어나는 일을 기술한 것이라 이해하기도 쉬워 자주 찾는다. 더구나 옆 좌석 모두 책을 본다. 'Cause of death' 책의 타이틀도 굉장하다.   

 

이번에는 '숭고함에 대하여'라는 부분을 읽었는데 금번 여행과 관련하여 잠시 생각해보았다. 네팔에서는 대자연을 보면서 신을 느꼈는데, 남미에서는 왜 느껴지지 않을까. 아마도 인간의 삶이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이곳 파타고니아의 대자연에서는 여러 차례 트레킹을 즐겼지만 인간이 연상되지 않기에 신과 연결되지 못했다. 물론 페루에서는 잉카문명과 연결되었다. 내가 무뢰한이라서? 이곳에도 어떤 스토리가 있었을까? 토레스 델 파이네와 피츠로이에서~

우수아이아 공항에 착륙하자 기내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우수아이아는 아마도 내가 올 수 있는 가장 남쪽지방. 그럼에도 엘 칼라파테 보다도 기온이 높다는게 신기하다. 

 

우수아이아는 대륙의 끝이다. 이주하는 인류(저자: 샘 밀러)에 따르면 인간의 가장 긴 여행은 티에라 델 푸에고로 가는 여정이었고 처음 도착은 약 만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주민들의 조상은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아시아를 지나 알래스카, 아메리카 대륙을 통과해 내려가 남극에 가장 근접한 인간 정착지인 남위 54도 이남에 도달했다. 그리고 최근까지는 수렵민족이 내륙을 따라 왔을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재의 가장 설득력있는 가설은 사냥꾼들이 아니라 해안선으로 이동한 어부들이라는 것이다. 이 초기 이주민들이 야간족(야마나족)들이다. 티에라 델 푸에고의 뜻이 불의 땅인데, 마젤란이 이곳을 지나쳐갈 때 야간족들이 서로 경고하기 위해 피워올린 수많은 봉화를 보고 그런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1829년 비글호가 원주민 네명을 영국으로 데려가 한명은 천연두로 사망하고 3명은 교육후 야간족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라는 임무를 받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때 찰스 다윈이 함께 승선하여 원주민 제미와는 친구가 되었다. 비글호 방문 이후 가 티에라 델 푸에고는 황폐해졌는데, 유럽인들은 선교사와 함께 질병과 무기를 들여왔던 것이다. 2022년 2월, 야간족 언어를 사용하는 마지막 인물이 사망했다. 
 
1890년 유럽 이주민(주로 크로아티아인)이 가난과 차별을 피해 대규모로 밀려왔는데 이때 야간족은 약 3,000명이었으며, 20년이 지난 1910년에는 100명만이 살아남았다는데 특히 아르헨티나는 순혈의 백인나라로 만들겠다며 파타고니아에서 인종청소를 자행했다고 한다. 
 
우수아이아(Ushuaia)는 아르헨티나의 티에라 델 푸에고주의 주도이다. 남극에서 가장 가깝고, 길이 닿는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이다. 1884년 마을이 생겼고, 인구는 약 63,280명(2010년)이다.

호텔 대신 아파트형에 투숙했는데, 시설이 너무 낙후되고 더구나 아침밥도 주지 않는다. 괜한 신청이라는 후회가 뒤따르지만, 아무튼 저녁과 아침은 우리가 챙겨야 했다. 팀의 베테랑을 믿으며 그런대로 잘 챙겨들었다. 


우수아이아 시내투어를 다녀왔다. 크지 않은 도시라 1~2시간 정도만 걸어도 충분할 정도이다. 저렴한 우수아이아 티커 한장을 구입했다. 이곳은 예전 감옥이 위치한 탓으로 죄수복을 판매까지 한다. 이런 것을 기념품으로 구입하는 경우가 있다는게 놀랍다.  

우선 말비나스라는 지명이 눈에 띄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지명으로는 포클랜드 섬이다. 아르헨티나가 영국과 전쟁을 벌였는데, 사실 당시 아르헨티나는 군부 독재의 실정을 감추고자 급작스럽게 일으킨 전쟁이고 결국 패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는 애국심을 고취시키려는 목적으로 거창하게 벌여놓았다. 

평소에는 평범한 도시 이름 안내판이지만 '세상의 끝'에 있어서 너무도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다. 밤에는 컬러로 변하여 더욱 멋지다고 한다.  

우수아이아 도시의 모습이 이채롭다. 특히 산세를 보면 좌우대칭의 첨봉, 손가락 모양 봉우리 등 이색적이다. 앞 바다는 비글해협이니 피츠로니 선장이 비글호를 이끌고 지나갔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전에는 이곳이 선박의 중간기착지로 아주 흥했다고 한다. 

아주 이쁘게 장식된 '세상의 끝' 표지판에서 인증사진을 남겼다.

우수아이아와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흉상이 나란히 세워져있다.   

여기서도 아사도를 맛볼 수 있다. 우리도 킹 크랩 대신 아사도를 맛보았다. 지금이 킹 크랩의 시즌도 아니고 보잘 것없는 사이즈를 고가에 판매하며 맛본 한국인들이 절대 먹지마라는 충고도 전해졌다. 

세상의 끝 박물관은 문을 닫았지만 정원에서 몇 가지 유물을 볼 수 있었다.  

야마나 박물관(Museo Yamana)이 폐업하였다. 야간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의 생활상과 우수아이아 탐험 및 발견사 유물 및 사진 특히, 중남미 원주민들의 조상들이 아프리카에서 시원해 아시아대륙을 지나고 태평양을 건너 중남미에 도달했다는 이동 경로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일파는 한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해 태평양을 건너 마침내 중미에 이르렀다고 확연한 화살표로 적시했다고 한다. 

우수아이아의 명물 중 하나, 죄수복  

그리고 또 다른 명물 펭귄. 내일 비글해협에서 펭귄 투어를 가질 예정이다. 

Ramos Generales El Almacén 베이커리이다. 우수아이아에서 100년 넘은 카페로 유명한 커피, 디저트 맛집이다. 구글 리뷰를 보니 1903년에 오픈한 103년 전통의 카페 빵과 케이크가 맛있으며 특히 초클릿과 리커를 따뜻한 우유에 넣어 만든 Yellow Submarino를 권한다. 우리도 시식해보았고, 먼저 자리를 잡고있던 가이드의 추천에 따라 맥주 3종도 맛보았다. 

화장실 입구 남녀 표시가 이채롭다....

누구 벽화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무튼 인상적인 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