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쪽: 인간은 그 자신의 밀실에서만은 살 수 없어요. 그는 광장과 이어져 있어요. 정치는 인간의 광장 가운데서두 제일 거친 곳이 아닌가요? 외국 같은 덴 기독교가 뭐니 뭐니 해도 정치의 밑바닥을 흐르는 맑은 물 같은 몫을 하쟎아요? 정치의 오물과 찌꺼기가 아무리 쏟아져도 다 삼키고 다 실어가버리거든요. 도시로 치면 서양의 정치 사회는 하수도 시설이 잘돼 있단 말이에요. 사람이 똥오줌을 만들지 않고는 살 수 없는 것 처럼, 정치에도 똥과 오줌은 할 수 없지요. 거기까지는 좋아요. 허지만 하수도와 청소차를 마련해야 하지 않아요?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 바늘 끝만 한 양심을 지키면서 탐욕과 조절을 꾀하자는 자본주의의 교활한 윤리조차도 없습니다.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을 을러댑니다. 한국 경제의 광장에는 사기의 안개 속에 협박의 꽃불이 터지고 허영의 애드벌룬이 떠돕니다. 문화의 광장 말입니까? 헛소리의 꽃이 만발합니다..... 이런 광장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뿐입니다.
- 62쪽: 오, 좋은 아버지, 인민의 나쁜 심부름꾼,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습니다. 밀실만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습니다. 각기의 밀실은 신분에 맞춰서 그런대로 푸짐합니다. 개미처럼 물어다 가꾸니깐요. 좋은 아버지, 프랑스로 유학 보내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
- 74쪽: 경찰서를 나선다. 서의 뒷편에 잇닿은동산에 올라간다. 나무 그늘 밑에 쭈그리고 앉는다. 초여름 한창 길어가는 햇살은 아직도 창창하다. 셔츠 앞자락이 온통 피투성이고 보면 거리를 걸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 몰골을 한 채로 돌아가라고 그를 내보낸 형사의 처사가, 얻어 맞았을 때보다도 더 분했다. 한사람 시민이 앞자리에 핏물을 들인 채 경찰서 문을 나서는 걸 그들은 꺼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모습대로 걸어가서 온 천하가 다 봐도 아무 상관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몸을 떤다. 빨갱이 새끼 한 마리쯤 귀신도 모르게 해치울 수 있어. 어둠에서 어둠으로 거적에 말린채 파묻혀 가는 자기 주검이 보인다. 나는 법률의 밖에 있는건가. 돈과, 마음과, 몸을 지켜준다는 법률의 밖에있는 어떤 길.
- 87쪽: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은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들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 135쪽: 그는 만년필을 손에 낀 채, 두 팔을 벌려서 책상 위에 둥글게 원을 만들어, 손끝을 맞잡아봤다. 두 팔이 만든 둥근 공간, 사람 하나가 들어가면 메워질 그 공간이, 마침내 그가 이른 마지막 광장인 듯했다.
3. 문학평론가 김현: 사랑의 재확인, 광장 개작에 대하여 (1976년)
-정치사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 소설사적인 측면에서는 광장의 해
* 지적으로 충분히 세련된 문체, 이데올로기와 사랑에 대하여 언급
* 가면고, 구운몽, 회색인 등등 => 전후 최대의 작가로 인정
* 구운몽: 1960년 11월 '새벽'에 발표, 최인훈이 남다른 애정을 가져 벌써 다섯번째 고쳐씀 => 중요한 의미는 무엇? 서두와 말미의 갈매기가 갖는 의미의 변모, 구성상 이명준이 갖는 연대기적 애매모호성이 상당히 제거
- 광장 서두의 변모, 문체에 세심한 신경
* 신구판: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쉬고 있었다.
=> 전형적인 재래의 소설 문장.
* 민음사판: 바다는 숨쉬고 있다.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좋은 계절 철학 공부하는 친구는 보람을 위함도 아니면서 코피를 흘렸는데 조국의 하늘은 매양 곱구나
좋은 계절 철학 공부하는 친구는 보람을 위함도 아니면서 코피를 흘렸는데 조국의 하늘은 곱기가 지랄이다
좋은 철 궁리질 공부꾼은 보람을 위함도 아니면서 코피를 흘렸는데 내 나라 하늘은 곱기가 지랄이다
- 갈매기의 표상
* 전집판에서 딸이 등장하는데, 낙동강 전투 때 은혜가 임신의 사실을 말하며 자기는 딸을 낳을 것임을 말해주기 때문에 가능. 은혜 = 어머니 = 바다로 연결되면서 이명준을 편안하게 바다로 보내기 위한 것.
* 은혜는 바다이며, 그녀가 수태한 아이는 그가 뿌리내린 물고기이다. 그녀의 배에서는 짭사한 바닷물 맛을 맛볼 수 있다. 은혜를 바다와 동일시하고, 마침내는 그녀와 그녀의 딸을 큰 새와 꼬마 새로 표상했다는 것은, 작자의 의식이 그 이전의 판본에서와는 상당히 먼 거리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 이명준의 죽음을 사랑을 확인하는 행위로 묘사했는데, 그 이전의 판본에서는 이데올로기적인 죽음으로 처리하였다. 작가 자신은 이데올로기 대신에 사랑을 택한 것이다. => 미국에서의 회의와 방황 끝에 광장만을 개작
4. 줄거리: 김세라 작가
* 주인공은 철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이명준,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고 좌익 성향으로 해방이 되자마자 월북, 어머니는 얼마 안 있어서 세상을 떠남.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명준을 보살펴 준 사람은 아버지 친구인 변성제였고, 그는 예전에 아버지에게 신세를 진적도 있었고 현재 은행 지점장. 변성제에게는 자녀가 둘인데, 태식과 영미. 태식은 명준과 동갑으로 가장 친한 친구 사이였고, 영미는 친동생과도 같았다. 이들 남매는 부자집 애들이 갖고 있는 너그러움이 있었고, 그냥 지내면 좋은 사람들이지만 사무치는 이야기 같은 것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 명준은 두 가지 얼굴을 갖추지 않을 수 없었는데, 태식 남매와 시시덕꺼릴 때 얼굴과 혼자만의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의 얼굴이다. 그런 자기가 뭘 찾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사람들과 일상에는 겉돌았다. 그래서 그가 열심히 한건 삶을 참스럽게 생각하고 간 사람들이 남겨놓은 좋은 책을 죽어라고 읽어대는 거다.
* 대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그는 정 선생이라는 사람을 자주 찾아가는데, 명준이 광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상도 바로 정선생이었다. 명준은 광장에 대한 자기만의 개념을 갖고 있었는데, 애초 광장이라는 건 모두의 헌신과 인간적 관계가 잘 되는 곳이어야 하는데 그게 안되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가장 아끼는건 자기의 방 밀실뿐이라는 거죠. 결국 현실은 개인만 있고 국민은 없는거고, 밀실은 푸짐하고 광장은 죽었다고 말한다. 밀실이 푸짐한 이유는 밀실에 개미처럼 뭔가를 물어다 열심히 가꾸기 때문이구요. 아무도 광장에 머물지 않으며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비는 죽은 곳이 되는데 이곳이 바로 남한이라고 한다.
* 정선생은 대부분 명준의 말을 대꾸없이 그러나 맞장구치지 않고 들어줍니다. 명준은 영미를 통해서 영미의 친구 윤애라는 여대생을 알게 되고 연애를 시작합니다. 처음이라 관계의 설정에 어색하면서도 그런 방식으로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알아갑니다. 그러나 윤애는 손에 잡히지 않은 허상처럼 가까운 듯 하면서도 내편이라는 확신이 오지 않아요.
* 그리고 어느 날 북으로 간 아버지의 그늘이 크게 다가옵니다. 영미 아버지는 의혹으로 형사가 찾아왔더라는 말을 전해주면서 북으로 간 아버지가 요즘 대남 방송에 나온다는거다. 경찰에 불려 갈 때 불려가더라도 이름 좀 바꾸고 사는게 어떻겠냐는 말을 합니다. 명준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은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이미 그의 삶에서 떨어져 있었거든요.
* 8.15 그해 북으로 간 아버지는 먼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북으로 간지 얼마 안되서 돌아가신 어머니, 어머니 생각은 가끔 나도 아버지는 살아서 지척에 있었건만 정히 보고 싶지도 생각나지도 않았다. 고아라 다름없는 신세였는데 살붙이가 그리운 생각이 난 적도 없다. 아마 까닭은 그의 나이였으리라.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쉬운 나이가 아니었다. 부모가 없는 탓으로 먹고 살기가 뭔지 일찍 눈이 떠지는 일도 없이 영미 부친의 살림 아래서 필요한 지급을 받고 있었다. 밥을 먹고 잠자리를 받고 학비를 타고 책을 사고하는데 쓰이는 돈이라는 물건을 한번도 자기라는 것의 살갗 안에 있는 것으로 느껴본 적이 없는 그였다. 그는 젊고 가난한 철부지 책벌레다. 아버지가 만나지는 광장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다. 아버지가 모습을 나타내는 광장은 다른 동네에 자리잡은 광장이다. 그리고 그 사이엔 기관총이 걸려있다. 애당초 그리로 갈려지 말아야 했고 가고 싶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광장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질 어떻게 맞이했으면 좋을까. 어리둥절한 어떤 풍문과 같다.
* 명준은 경찰서 취조실에서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들은 명준이 철학을 전공하는 것도 마르크스와 연결시켜서 불온한 사상의 승계로 물아간다. 아버지 소식을 자주 듣는가를 위압적으로 물어 그들이 뭘 알고 싶어 하는지도 정확하지 않았어요. 명주는 모른다 못들었다는 대답을 반복하고요. 이걸 반항으로 받아들여 마구잡이로 매를 맞습니다. 맞으면서 명준은아버지를 처음으로 몸으로 느껴요. 실컷 두들겨 맞은 후에 경찰서를 나온다.
* 경찰서를 나선다. 서의 뒷편에 잇닿은 동산에 올라간다. 나무 그늘 밑에 쭈그리고 앉는다. 초여름 한창 길어가는 햇살은 아직도 창창하다. 셔츠 앞자락이 온통 피투성이고 보면 거리를 걸어갈 수가 없었다. 그런 몰골을 한 채로 돌아가라고 그를 내보낸 형사의 처사가, 얻어 맞았을 때보다도 더 분했다. 한사람 시민이 앞자리에 핏물을 들인 채 경찰서 문을 나서는 걸 그들을 꺼려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모습대로 걸어가서 온 천하가 다 봐도 아무 상관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몸을 떤다. 빨갱이 새끼 한 마리쯤 귀신도 모르게 해치울 수 있어. 어둠에서 어둠으로 거적에 말린채 파묻혀 가는 자기 주검이 보인다. 나는 법률의 밖에 있는건가. 돈과, 마음과, 몸을 지켜준다는 법률의 밖에 있는 어떤 길.
* 그 이후 경찰서를 더 다녀오고, 명준의 삶은 무너지고 말았어요. 어느새 꼬리가 붙은 범죄자가 되어 있었죠. 그를 따르는 검은 감시 그림자가 있었구요, 그런 삶이 일상이 되고 말았던거죠. 정치 광장에서 온 칼잡이가 그의 침실 앞을 서성이게 된 거였어요. 명준은 남쪽에서 살아야 할 자격을 잃은거고 그가 설 곳이 없어졌다고 느낍니다.
* 가장 가까운 타인인 윤애는 그의 고뇌를 이해하기엔 삶의 규칙이 까다로운 여자였고, 분명히 나란히 서있다고 생각한 광장에서 빛나는 웃음을 지었는가하면, 손댈 수 없는 그녀의 밀실로 도망치곤 했지요. 그를 잡는 것이 없는 남쪽이었어요. 명준는 그녀가 살고 있는 인천보다 더 위쪽으로 올라가서 밀수선을 타고 북으로 넘어갑니다. 윤애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 말하지도 않은 채 어느 날 훌쩍 북으로 넘어가버렸다.
* 명준이 북에서 맞는 것은 잿빛공화국이었다. 그가 넘어오자마자 당은 얼씨구나 하고 그에게 강연을 시켰어요. 그 대목을 읽어 드릴게요. 학교, 공장, 시민회관, 그 자리를 채운 맥빠진 얼굴들. 그저 앉아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무 울림이 없었다. 혁명의 공화국에 사는 열기 띤 시민의 얼굴이 아니었다. 가락 높은 말을 쓰고 있는 자신이 점점 쑥스러워지는 것이었다. 강연 원고만 해도 그랬다. 몇 번이나 당 선전부의 뜻을 받아 고쳤다. 마지막으로 결재가 났을 때, 그 원고는, 코뮤니스트들의 늘 하는 되풀이를 이어붙인 죽은 글이었다. 명준이 말하고 싶어 한 줄거리는, 고스란히 김이 빠져버리고, 굳이 명준의 입을 빌려야할 아무 까닭도 없는 말로 둔갑해 있었다.
* 명준은 노동신문 본사 편집부에 근무하도록 배정을 받아요. 그는 북에서의 새로운 일과 삶의 의욕을 갖습니다. 일이 끝나고도 신문사의 도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를 했어요. 볼쉐비키 당사를 일주일에 걸쳐 읽어냈죠. 그곳에서 교양이라는 것은 명준이 그동안 써오던 말이 아니었으므로 모조리 고쳐야 했지만, 그들의 말에는 색깔도 냄새도 없었어요. 그는 결국 호랑이굴에 스스로 걸어 들어온 자신을 저주하면서 이 숨막히는 공기 속에서 자기는 무얼 해야하나 진땀만 흘렸어요. 게다가 더욱 그런 좌절감에 빠진건 아버지도 한 몫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새장가를 들고 있었다.
* 민주주의 민족통일전선 중앙선전 책임자인 그의 부친은, 모란봉 극장에 가까운 적산 집에, 새 아내와 살고 있었다. 평안도 사투리가 그대로 구수한 조선의 딸이었다. 예 그대로인 조선 여자의 본보기, 그저 여자였다. 머릿수건을 쓰고 아버지가 벗어놓은 양말을 헹구고 있는 그녀를 보았을 때, 명준은 끔찍한 꼴을 본 듯 얼굴을 돌렸다. 명준 또래의 의붓어머니, 그것은 지옥이었다. 평범이란 이름의 진구렁. 그 풍경은 반일 투사이며, 이름 있는 코뮤니스트였던 아버지의 터전일 수는 없었다. 부친의 재혼을 마다 하는 건 아니었다. 아버지처럼, 믿음을 위해서 젊음을 어두운 골목과 낯선 땅 벌판에서 보낸, 어느 여류 코뮤니스트와 맺어졌다면, 그런 의붓어머니에게 어리광까지도 피웠을거다. 그러나 이 여자, 그를 도련님 받들 듯하는 이 조선의 딸, 도대체 어디에 혁명이 있단 말인가. 일류 코뮤니스트의 집에서, 중류 부르주아의 그것 같은 차분함이 도사리고 있는 바에야, 혁명의 싱싱한 서슬이 어디 있단 말인가.
* 명준은 아버지에게 자신이 북에 와서 목격한 처참한 체험을 악에 바쳐 쏟아낸다. 나의 월북은 형사의 고문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보람있게 청춘을 불태우고 싶었던 것이다라던가, 남쪽엔 보람을 느끼면서 살수 있는 광장이 없었다, 또 있긴 해도 더럽고 처참한 광경이었다. 남에서는 어디를 둘러봐도 정열이 없었고 비루한 욕망과 탈을 쓴 권세욕과 섹스 뿐이었다. 서양에 가서 소위 민족주의를 배웠다는 놈들이 돌아와서는 자기 몇 대조가 무슨 판서, 무슨 참판을 지냈다는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인민의 등에 올라앉아 구둣발로 그들의 배를 걷어 차고 있었다. 일본놈들 밑에서 벼슬을 지내고 애국자를 잡아 죽이던 놈들이 무슨 국장, 무슨 처장, 무슨 청장 자리 앉아서 인민들을 호령하고 있더라. 그런데 월북해서 본 건 더한 참상이었다. 자기 정권을 세운 기쁨으로 넘치는 웃음을 지닌 인민이 없더라. 바스티유 감옥을 부순 날에 프랑스 인민 처럼 셔츠를 찢어서 공화국 만세를 부르는 인민이 어디 있더냐. 노동 신문기자로 들어가서 프랑스 혁명 해설 기사를 썼다가 그건 인민의 혁명이 아니라 부르주아 혁명이었으니 잘못된 거라며 욕을 먹고 자아 비판을 해야 했었다. 그때 말하고 싶었던 건 프랑스 인민의 가슴에서 끓던 피와 붉은 심장의 설레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으며, 그게 바로 자본주의와 다른 단 하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여기선 당이 주인이더라. 인민은 복창만 하면 되는거더라. 그저 기껏해야 일찌기 스탈린 동무가 말하기를, 일찌기 레닌 동무가 말하기를로 시작하면 되던데, 그게 맞더라. 이미 위대한 동무들이 말해버렸으므로 인민은 이제 위대할 필요가 없는거더라.
* 명준은 이런 말들을 쏟아내며 엎드려 울었어요. 부친은 묵묵히 명준의 말을 듣기만 했습니다. 그날 밤 명준의 방에 부친이 소리없이 들어왔고 명준은 자는 척했다. 부친은 그의 머리 맡에 쭈그려 앉아서 어깨 언저리의 이불깃을 여며주고 나갔습니다. 명준은 고작 이런 사랑밖에 줄 수없는 아버지로 인해 슬픔을 느끼고 이제 그들 부자는 남이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하숙을 정하고 아버지 집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여자를 만나는데, 그녀의 이름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국립발레단에 소속되어 있는 발레리나이고, 그들은 곧 연인이 됩니다. 꼭두각시 밖에 없는 이곳 광장에서 스스로 사람임을 믿을 수 있는 건 그녀와의 사랑 뿐이었어요.
* 명준은 남만주 지역의 취재를 가요, 거기에는 조선인 꼴호즈가 있는데, 집단농장으로 중국 측이 쌀 증산을 위해서 만주에 흩어진 조선인들을 모아둔 곳이었어요. 이 꼴호즈를 알리기 위해 명준이 일주일동안 파견된거 였어요.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엄청난 땅덩어리가 동양척식회사의 차지였으나, 이제 주인에게 돌아갔다고 생각하니 명준의 가슴은 벅찼다. 그러나 농민들은 땅을 얻고 기뻐하지 않았어요, 이유는 농토는 나라 땅 이었으므로 사고 팔수 없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들은 지주영감의 소작인에서 나라의 소작인으로 옮겨간 것뿐 이었어요. 소시민이 부자가 될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없었고 노동자들은 인민 경제의 초과달성이라는 이름으로 공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인민공화국이 잘 되고 있다는 소문은 요란했으나, 정작 그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었죠. 인민이 주인이라는 멍에를 씌우고, 주인인데 몸을 아끼냐고 채찍질을 하는 식이었어요. 명준은 그곳에 다녀온 후 자아비판을 받게 됩니다. 이유는 그가 쓴 보고서의 내용 때문이었는데요. 꼴호즈 사람 중에 일본 군대의 군복을 견장만 떼고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고, 신발은 지까다비가 제일 많았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생활이 물질적인 향상을 가져오려면 더 많은 땀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보고서로 썼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어요. 편집실에 소환된 명준에게 편집장은 꼴호즈 생활을 현지 보도 함에 있어서 이명준 동무는 부르주아적인 판단의 낙후성으로 동포들의 영웅적인 증산 투쟁의 모습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으며 주관적 판단을 기초로 한 그릇된 보고를 했다고 질책했다. 명준은 대들려고 했다가 그를 향하고 있는 증오의 얼굴들을 봅니다. 자신을 향해있는 그 미움에 일그러진 새디스트의 얼굴을 본 순간 자신이 가져야할 몸가짐을 깨닫습니다. 덮어놓고 비는 것이죠. 명준이 사무친 낯빛으로 장황한 인용을 해가며, 허물을 씻고 이제부터 당과 정부가 바라는 일꾼이 되겠다고 다짐하자 그들의 얼굴은 안도감과 승리의 빛으로 바뀌었어요. 명준는 자신이 터득한 요령이 슬픈 깨달음인 것을 알고, 이건 알고 싶지 않은 슬기임을 느낍니다. 그리고 가슴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들어요.
* 은혜가 3~4개월 정도 모스크바로 순회공연을 떠나게 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명준은 그녀가 없는 평양을 견딜 자신이 없었고 그녀를 보내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는 생각으로 절박함을 느껴요. 은혜는 꼭 어느 사회가 아니면 못산다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그녀가 사상을 아랑곳하지 않는데 명준은 가끔 놀라지만, 오히려 그것이 좋았어요. 그는 은혜에게 가지 말아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모스크바로 떠났고, 은혜를 만나지 못한 채로 6.25 전쟁이 시작됩니다.
* 1950년 8월 명준은 공산군으로 서울의 s서에서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태식과 마주 앉아 있게 됩니다. 그곳은 예전 명준이 취조를 받던 곳이었다. 명준은 내무성 직속 수사기관 정치보위부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태식은 소형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으며 공산군 시설을 찍은 필름을 갖고 있었죠. 태식은 그사이 윤애와 결혼해 있었고, 명준에게 고문을 견디기 힘드니 죽여달라고 말합니다. 태식은 명준의 변화를 비웃고 명준은 태식을 때리고 밟아댑니다. 그를 만나러온 윤애에게도 험하고 과격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 명준는 그들을 몰래 놓아줍니다. 이후 그는 그곳에서 잡혀온 포로들에게 가학의 열정에 사로잡혀 무자비한 고문을 하죠. 그는 자신만의 전쟁을 그렇게 가열차게 치러다가 낙동강 전선으로 보내집니다.
* 그곳 사령부에서 간호병이 되어 있는 은혜를 만납니다. 명준은 자신이 찾아놓은 동굴이 있었어요. 그 동굴은 길고 좁은 오르막을 지나 있었는데, 작고 눈에 띄지 않았어요. 어쩌다 틈이 생기면 이곳에서 누워있다가 가곤 했었지요. 그는 은혜와 이곳에서 만남을 갖습니다. 은혜는 모스크바를 간 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어요. 모스크바에서 재미도 없었고 전쟁으로 급히 귀국해 간호병으로 지원했다. 이제 만났으니 죽어도 괜찮다고 말해요. 그들은 매일 만납니다.
* 그들은 거의 날마다 만났다. 밤일 때도 있고 낮일 때도 있었다. 약속하지 않은 때도 명준은 불현듯 그녀가 동굴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피하여 산을 넘어가면 대개 틀림없이 동굴 안쪽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그녀를 보기가 일쑤였다. 격식이라든가 미묘한 예절의 번거로운 같은 것이 짜증스럽고 뜻 없어 보이는 싸움터였다. 모습없는 죽음의 그림자와 맞서서 지내야 하는 나날, 그들은 서로의 몸뚱아리에서 불안과 안타까움을 나눠줄 힘을 더듬었다. 어느날 그래서 만났을 때 그녀는 한 손에 가위를 든 채였고, 명준은 전초소에서 들어온 적정 보고서를 쥐고있었다. 그들은 손에 하나씩 죄의 증거를 들고 있었다. 은혜의 손에 들린 가위가 이런 시간에 이런 자리에 와 있는 탓으로 몇 사람의 병사가 혹시 살았을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르며, 명준이 들고 있는 보고서에는 우군의 한 사단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어떤 움직임의 낌새가 적혀 있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죽을 힘을 다해 만났구요, 동굴은 지름 3m의 광장, 그들이 살아있음을 다짐하는 마지막 광장이었어요.
* 명준이 곧 총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은혜에게 알려 주었을 때, 그녀는 죽기 전에 부지런히 만나자는 말을 하면서 웃어요. 그리고 다음날 은혜는 부지런히 만나자는 다짐을 어기고 전사합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명준은 포로수용소에 있었어요. 포로 소환이 있을 때 그는 북으로 돌아갈 생각이 아예 없었죠.
* 아버지가 전쟁 중 어떻게 되었는지 소식을 알수는 없었으나, 설령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 한가지 만으로 북을 택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살테지, 효도 같은걸 하기엔 현실이 너무나 무거웠다. 이제 그가 북으로 갈 아무 까닭도 없었다. 거기엔 아무도 없다. 은혜도 없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회에 들어있다는 것은 풀어서 말하면 그 사회 속에 어떤 사람과 맺어져 있다는 말일텐데, 맺어질 아무도 없는 사회의 어디다 뿌리를 박을 것인가. 더구나 그 사회 자체에 대한 믿음 조차 잃어버린 지금, 믿음 없이 절하는 것이 괴롭듯이, 믿음 없이 정치 광장에 서는 것도 두렵다.
* 송환등록이 시작되었을 때 남도 북도 아닌 제3국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을 듣자 명준은 바로 자신을 위해 마련된 미끼라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그는 중립국을 선택합니다. 그는 중립국에서 자신의 삶을 상상합니다. 그 대목이에요
* 중립국.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병원 문지기라든지, 소방서 감시원이라든지, 극장의 매표원, 그런될 수 있는 대로 마음을 쓰는 일이 적고, 그 대신 똑같은 움직임을 하루 종일 되풀이만 하면 되는 일을 할테다. 수위실 속에서 나는 몸의 병을 고치러 오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나는 문간을 깨끗이 치우고 아침 저녁으로 꽃밭에 물을 준다. 원장 선생이 나올 때와 돌아갈 때는 일어서서 경례를 한다. 간호부들이 시키는 잔심부름을 기꺼이 해줘야지. 신문을 사달라느니 모퉁이 과자집에서 초콜렛 한개만 사다 달라느니 따위 귀여운 부탁을 성심껏 해준다. 그러면 그녀들은 봉급날이면 잔돈푼을 모아서 싸구려 모자나 양말같은 조촐한 선물을 할 게다. 나는 고마와하며 허리를 굽히며 받는다.
* 중립국을 택한 명준는 인도의 캘커타로 가는 타고르호에 승선 합니다. 타고르에는 선장과 선원들과 명준과 같은 석방 포로들이 타고 있었어요. 석방 포로들이 목적지가 같았고 처지도 같았으며 선원이나 선장이나 다 한 배에 탄 사람들이었지만 그곳에서도 그들의 광장은 한마음이지 않습니다. 모두 각자의 욕망을 뱉아냈고 그 욕망들은 품위없거나 세속적이었죠. 희망의 뱃길, 새 삶의 길이었어야 했음에도 마음을 송두리채 흔드는 허전함이 곳곳에 있었어요. 석방 포로들은 중간 정착지에서 배를 내리지 못하는 원칙이 있었는데, 그들은 홍콩에서 내리려고 했고 그게 무산되자 마카오에서 내리겠다는 아우성을 쳤어요. 그들은 명준이 그들의 대표격으로 선원들과의 사이에서 중재를 원했지만 명준은 그걸 거부하죠. 그러니 이제 이름 없는 수억명중의 한 사람으로 살고 싶었고 그러려고 중립국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으나 알 수 없는 장애들이 현실에서나 상상에서나 자꾸 보였어요. 그는 배 안에서 그를 따라다니는 흰 새의 환영을 봅니다. 그걸 피하기도 하고 따라 가기도 하면서 심한 배멀미에도 시달려요. 그러면서 점점 자신의 광장은 좁아지다 못해 끝내 그의 두 발바닥이 차지하는 넓이가 되고 말았다는 절망감에 빠집니다. 갑자기 새가 보이지 않았구요, 새를 찾아 나왔을 때 그의 눈앞에 펼쳐진 푸른 광장을 봅니다. 그걸 여태껏 보지 못했다는게 이상했지요. 큰 새와 작은 새는 좋아서 그 광장을 날고 있었어요. 명준은 마음이 놓입니다. 그리고 그날밤 선장에게 명준이 행방불명 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옵니다. 소설은 여기서 끝입니다.
* 어떻게 귀하고 빛나는 한 인간의 인생이 이렇게 될 수 있을까요. 이념의 뿌리는 결국 살아보면 모순 뿐 허상일텐데, 그게 무기도 되고 명분도 되었던 현실이 과연 거기서 막을 내린 건 사실일까요. 이명준는 아프고 아픈 우리들의 역사입니다. 사랑도 학문도 부질 없던 그 시절은 그저 지금 이 그때가 아니었으므로 다행스러운 계속 그러기를 바랄뿐이죠. 앞에서 말한 최인훈이 2010년 증쇄본에서 새로 고쳐 쓴 부분은, 전쟁이 나고 서울에 와서 태식을 만나는 부분이에요, 거기에 간단히 말씀드릴게요.
* 명준이 전쟁이 나고 공산군으로 서울에 왔을 때 살던 집을 찾아갔다가 동네 사람에게 태식의 소식을 들어요. 그가 카메라로 공산군 시설을 찍다가 체포되었다는 거죠. 명준은 태식을 구해주기 위해서 아버지가 서울에 가서 도움이 필요할 때 만나라고 알려졌던 사람을 찾아 가지만 자리에 없어서 만나지는 못해요. 태식도 못만나고 윤애도 못 만난 채 낙동강 전선으로 가게 되었구요. 전쟁이 끝난 남쪽의 수용소에서 명준은 매일밤 무서운 꿈을 꾸는데요, 꿈속에서 태식과 윤애를 만나요. 꿈에서는 1950년 8월이고 서울 s서에서 태식을 취조하고 윤애를 험하게 대하는 상황을 생생하게 꿈으로 꿉니다. 잠에서 깨어나면 이것이 꿈이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죠. 이렇게 이 부분이 바뀌었어요. 증쇄본에서 최인호는 독자에게 이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걸 들으면 아쉽긴 하지만 왜 그것을 수정 했는지 조금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 그 본문을 읽어 드리면서 마치겠습니다. 지난봄 증쇄본에 새 개정 부분을 만들어 넣었습니다. 주인공이 그 당시 마음과 바깥 세상의 관계가 좀더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하자면 어떻게 묘사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독자에게 다가설까 하는 생각을 따라가 본 끝에 나온 교정 입니다. 초반 본의 그 부분에 전혀 개연성이 없다 할순 없겠지만 주인공에게 좀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운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줄곧 있어 왔기 때문입니다. 초판본에서 뜻한 효과가 다 사라지지는 않으면서 너무 강조되지는 않게 보이는 쪽으로 고치는 것이 주인공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무쪼록 이후에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2010년 가을 저자
5. 유튜브 일당백 시즌 1 EP 30 (2020.1.3)
- 최인훈 (1936~2018): 1960년, 25세 육군 장교시절에 광장 발표, 깊은 사상과 세계사적 인식과 철학
*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소련군 진주하면서 재산 몰수당하고 원산으로 이사, 미군 철수선에 탑승하여 목포로 이주
- 이 책을 선택한 이유? 지금 남북 화해의 시대, 과연 70년 분단의 시대가 끝날 수 있는지.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서 원인을 살펴 가야지 미래를 우리가 여는 열쇠를 얻을 수 있으니까. 남과 북 어느 쪽에도 갈 수 없었던 주인공 이명준이라는 한 지식인을 통해서 살펴본다.
- 한국현대문학에서 최인훈의 사유의 깊이를 넘어서는 작가는 없다. 회색인, 구락부, 라울전, 화두(소련이나 사회주의가 몰락한 걸 가지고 문명사적인 입장에서). 관념소설에서 우뚝. 70년대 초 중반까지 아주 활동을 하시다가 그 이후로 절필을 하셨어요, 미국에 4년간 다녀온 후 희곡으로 방향을 돌린다.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 문학 평론가 김현: 1960년은 정치사적으로는 학생의 해이지만, 문학적으로 광장의 해.
* 문학 평론가 김윤식: 광장을 다 읽었을 때 새벽 두부 장수의 요령 소리가 들렸다.
* 60년 10월에 새벽이라는 잡지에 발표. 2공화국이 없었더라면 발표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 광장의 의미: 서구 민주주의의 산물. 아테네에서 시작했는데, 그 아고라에서 연설도 하고 의견을 채택, 지도자 선출, 독재자 위험인물 추방 등 공동체의 의사가 이루어지는 곳이 광장, 그래서 민주주의의 상징. 도시국가에는 광장이 있고 시계탑이 있는데 항상 표준, 약속, 기준을 생각한다. 시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같은 공동체라는 느낌을 지닌다. 하지만 공동체로서만은 살 수 없다. 그래서 밀실이라는 프라이버시 공간도 필요하다. 광장은 공동체, 밀실은 개인. 남쪽은 광장이 없고, 북쪽은 있지만 앵무새로 같은 소리만 한다.
- 이명준이 기자 생활을 하면서 자아비판을 받음. 태백산맥에서의 사례: 어떤 폭격을 맞고 딸을 잃은 엄마가 있다, 그럼 보통 기사를 미제의 폭격으로 인해서 어린 딸을 잃은 어머니는 가슴을 태우는 눈물을 흘리고 이렇게 썼는데 비판을 받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아니라는 것. 그냥 하나의 어떤 카메라로 찍은 밖에 안되고 사회주의의 당성을 감안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미제의 폭격으로 인해서 자기 자식을 잃었지만, 이 어머니 마음속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미제에 대한 치떨리는 분노와 원한을 가지고 다시 해방 혁명 투쟁에 나선다, 이런식으로 해야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이 된다.
- 명준은 만주의 조선인 꼴호즈를 방문한 후 기사 작성하였지만 혹독한 자아비판. 나도 보람있게 삶을 살고 싶었다, 근데 남쪽에는 광장이 없다. 북쪽에 오니까 공기가 항상 무겁다. 인민이 어디있냐? 프랑스 인민처럼 자기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힘을 가지고 해야 되는데 인민이 하는게 아무 것도 없다. 앵무새만 있다. 남조선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자기 밀실에서 이익만 가지려하고, 북조선은 결국 뭐냐, 당이 주인공이라 당만 생각을 하고 판단한다. 이런 건 말이 안된다. 어떻게 왜 진리를 당이 결정하냐, 개인의 생각은 사라지고 어디있냐, 한마디 말해서 북조선의 공산당원들은 치사하고 비굴하고 게으름 개들이고, 인민들은 양들이다. 이 양들과 개들을 데리고 있는 위대한 김일성 동무는 인민공화국의 수상이다, 하하하~~ 완전히 불경스럽게 비웃는거다. 아버지는 이제 아무 말 안하고 그날 밤 몰래 들어와 자고 있는 명준의 이불을 덮어주고, 부정을 그렇게 표시 했다. 결국 명준은 갈데가 없다. 남쪽은 돈과 섹스만 있고, 북쪽은 기계처럼 손발만되라, 지식인은 갈 곳이 없다.
- 그러면서 나중에 북쪽과 남쪽 사회를 비교한다. 기독교와 스탈린이 같다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에덴 시대를 상징하는데, 공산주의는 원시공산사회에서는 착취가 없었고, 사유재산이 없었다. 근데 이제 에덴동산이 타락하듯이, 원시공산사회에 사유재산이 발생하면서 타락하게 된다. 인류에게 원죄가 남게되고, 또한 계급이란 원죄가 있다. 구약시대에 유태 민족이 수난을 당하듯, 마찬가지로 노예 봉건 자본주의 시대에 인민은 수난을 당한다. 그런데 누가 나타나느냐, 칼 마르크스가 나타나서 예언자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제 십자가는 사회주의의 낫과 망치이다. 북한은 낫과 망치 사이에 붓이 있다. 낫은 농민, 망치는 노동자, 붓은 지식인. 고해성사는 자아비판. 바티칸 궁전은 크레믈린 궁전, 마지막에 기독교에서는 천년왕국이 오고, 공산사회가 온다. 이렇게 비슷하지 않는냐. abc이론이라고 있는데, a는 army, b는 볼세비키, c는 크리스트 기독교, 그들의 조직이 같다는거다. 군대나 공산주의는 명령으로 이루어지는데, 기독교도 교황도 그런 조직이다. 의견을 반대하면 교회에서는 이단이 되고, 볼세비키에서는 반동이 되고, 군대에서는 반역이 된다.
- 김일성은 수령이라고 하는데, 항일 유격대 활동을 했기 때문에 두령이라고 했는데, 브루스 커밍스라는 미국의 한반도 문제 연구학자는 수령이란 말이 고구려에서 가장 최고 지도자에게 붙여졌다고 한다. 스탈린이 사회주의 전체에서 수령이고, 어느날 김일성이 위대한 수령 어쩌구하면서 불려진다. 다음은 한격 낮게 지도자로 부르는데, 김정일의 경우이다. 여담인데, 김일성이 출생한 날이 타이타닉이 침몰한 날로 1912년 4월 15일이다.
- 주인공 명준은 전쟁 중 친구와 윤애를 만난다. 낙동강 전선에서 은혜를 다시 만나고 동굴이란 밀실에서 만난다. 이후 거제 포로 수용소에 간다. 제네바 협약으로 만들어졌고, 최대 17만명까지 달했다. 중공군이 2만명, 북한군 약 15만명. 북한군 내에서 친공파, 반공파로 나뉘어 싸움이 일어났는데, 이 와중에 미국 준장이 포로가 되어 3일만에 풀어진 사건 발생. 2001년에 나왔던 배창호 감독, 이정재 이미연 주연의 흑수선이란 영화가 포로수용소를 배경. 시인 김수영이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포로수용소에 있었다.
- 중립국 선택, 인도로 갔다가 브라질로 갔다고 함. 다큐멘터리 76인의 포로. 항해중 포로들과의 갈등, 갈매기 두 마리가 따라오는게 보인다. 처음에는 남북에서 각각 사귀었던 애인을 생각했는데, 하나가 작으므로 은혜와 배속의 아이로 생각. 남쪽의 밀실이 싫어 북으로 갔는데 거기에도 광장은 없어 3국행. 자신을 받아줄 곳이 없다. 결국 갈매기와 하나가 되는 죽음의 길 선택. 미소의 싸움의 피해자이기도. 아마 민간인이 가장 많이 죽은 전쟁.
-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분할되지 않고, 한국이 분할되었는데 한국 전쟁 연구의 가장 1인자인 연세대 박명림 교수의 주장으로 일반 명령 1호 체제라고 한다. 한반도를 분할하여 북은 소련, 남은 미국.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무력화시켜서는 안된다고 생각. 일반 명령 1호와 체제와 얄타 체제를 폭력으로 해체해서 통일하겠다는 명분을 세운 것이 김일성놈이다. 한국 전쟁으로 우리가 피해를 입었지만, 결국 이 전쟁으로 인하여 동북아 평화와 세계 평화가 깨진 측면이 분명히 존재. 나중 베트남 전쟁으로 연장. 한국 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국의 전체 전략이 바뀐다. 2차 전쟁중 미군의 규모가 7~8백만명. 한국전 발발 당시에는 5~60만. 한국전쟁을 계기로 국방비 4배, 제한적 봉쇄전략에서 십자군 전략으로 변경. 메카시즘 부활. 냉전의 장기화 계기로 일본은 전범 처단이 안되고 샌프란시스코 강화회담을 계기로 일본의 전범 처리가 약화되고 일본 중요성 부각. 일본으로 소련과 중국을 막는 전략. 독일과 터키는 완전히 축소된 것과 전혀 다름.
- 통일은 내부적인 해결을 못보고는 통일도 없다. 중국과는 간도 문제가 이슈 가능. 2004년 송환이라는 다큐멘터리는 비전향 간첩 이야기. 아직 우리 국군 포로들도 못돌아 온 분이 많다.
6. KBS 특선 드라마 광장
- 1985.6.25 방영
- 1954.2월 중립국 88명 선택, 중공군 12명 포함.
교보문고 책소개
세대를 거쳐 거듭 읽히며 사랑받고 있는 전후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연 기념비작!
해방 후 한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살아 있는 지식인의 표상, 최인훈의 대표작 『광장 구운몽』. 《광장》은 해방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와 궤를 같이하는 주인공 이명준의 깊은 갈망과 고뇌를 그린 작품으로 남북 간의 이념, 체제에 대한 냉철하고도 치열한 성찰을 담고 있다. 삶의 일회성에 대한 첨예한 인식, 개인과 사회·국가 간의 긴장과 갈등, 인간의 자유와 사랑 같은 본질적인 주제에 대한 폭넓은 성찰을 담아낸 한국 현재 문학사 최고의 고전이다. 《구운몽》은 한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의 억압된 무의식을 보여준 소설이다. 실패한 혁명의 이야기이지만 여덟 겹 꿈속에서 사랑을 찾아내는 사랑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최인훈은 1936년 함북 회령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 법대에서 수학했다. 1959년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이 『자유문학』에 추천되어 등단했다. 1977년부터 2001년 5월까지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작품 집필과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주요 작품으로 『광장/구운몽』 『회색인』 『서유기』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태풍』 『크리스마스 캐럴/가면고』 『하늘의 다리/두만강』 『우상의 집』 『총독의 소리』 『화두』 등의 소설과 희곡집 『옛날 옛적에 훠어이 훠이』, 산문집 『유토피아의 꿈』 『문학과 이데올로기』 『길에 관한 명상』 등이 있다. 동인문학상(1966), 한국연극영화예술상 희곡상(1977), 중앙문화대상 예술 부문 장려상(1978), 서울극평가그룹상(1979), 이산문학상(1994), 제1회 박경리문학상(2011) 등을 수상했다. 『광장』이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중국어 등으로, 『회색인』이 영어로, 『옛날옛적에 훠어이 훠이』가 영어와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 간행되었다. 현재 서울예대 명예교수로 있다.
목차
[서문]
광장 구운몽
[해설] 사랑의 재확인·김현
출판사 서평
광장이 없는 밀실과 밀실이 없는 광장-남과 북의 분단과 대결을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이념적으로 접근한 현대 한국 문학의 고전. 주인공 이명준의 비극과 갈망은 우리 자신, 우리 민족의 바로 그것이다.
이 전집판이 가로쓰기로 바뀌게 되었다. 그 동안 차츰 자리잡아온 가로쓰기의 관행에도 맞추고, 새로 나온 표기법에도 맞출 수 있게 된 이번 판이 독자들에게 더욱 가까운 형식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판에서도 몇 군데 내용이 고쳐졌다. 언제나처럼 큰 흐름에는 영향이 없고 그 흐름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게 하려고 하였다.
이 작품의 첫 발표로부터는 30년, 소설 속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날로부터는 4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 겪은 운명의 성격 탓으로 나는 이 주인공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주인공이 살았던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정치적 구조 속에 여전히 필자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준은 그가 살았던 고장의 모습이 40년 후에 이러리라고 생각하였을까-이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당자가 아니기에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 현실의 결과보다는 훨씬 낙관적인 전망을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는 한국 사람이 인생에 대해서 그 어느 때보다 유보 없는 꿈과 희망에 휩싸인 시대를 산 사람이다. 그의 생전에 결국 그런 꿈과 희망이 쉽사리-적어도 그의 감각만큼은 그렇게 유보 없을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된 것이지만, 40년이 지난 다음에 지금 같은 상태라고는 다시금 짐작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이다. 주인공의 무의식을 짐작해보는 일은 그렇다고 하고, 작가인 필자의 사정을 말해본다면, 이 작품을 쓸 당시에 주인공이 그렇게 힘겨워한 일들의 뒤끝이 이토록 오래 끌리라고는 예감하지 못하였다. 필자 자신의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확실히 떠올릴 수 있어서가 아니고, 어렴풋이-지금 돌이켜 생각해봐서 그런 느낌이 든다. 주인공이 마주친 인생 문제도 상대적으로 시대와 더 관련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해보지만 그 두 부분이 깨끗이 나누어진 모양으로 제출되는 것이 인생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문제’라는 표현은 다만 비유적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는 먼저 이렇게 저 문제는 다음에 저렇게, 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 인생 ‘문제’의 성격이다. 그 성격에 비교적 어울리는 형식이 소설이기도 하기 때문에 주인공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독자로서의 자기와 만난다는 자기 인식으로 돌아온다.
이번 판에서 고친 부분에서도 그 무렵의 주인공의 능력과 자연스러움에 변화를 주는 일 없이 그 무렵의 그만한 젊은이의 생활과 생각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다.
1989년 4월 30일, 최인훈 [전집판 서문]
이번 개정판에서 고친 것은 한자어를 모두 비한자어로 바꾼 일이다. 예술로서의 소설 문장의 본질은, 표기법에 따라서 높고 낮아지는 것은 아니며, 또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표기를 가지고 나타내고자 하는 심상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관례적 표현과 어떤 심상이 오래 결합되어 쓰이고 보면, 심상의 형성 과정-의식과 현실 사이의 싱싱한 갈등의 자죽이 관례적 표현으로서는 나타내기가 미흡해 보이는 때가 올 수 있다. 이럴 때는 그 표현이 낡아진 것이 아닌가 알아보는 것이 좋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은 여럿 되겠지만, 그 한 가지는 의식이 보다 더 깊게 현실과 어울리는 힘을 가지게 될 때다.
『광장』은 이번으로 다섯번째 개정인데, 나는 이 여러 번의 개정이라는 과정을 거쳐, 적어도, 『광장』이라는 이름의 작중 현실에 대해서는, 처음 쓸 때보다 훨씬 익숙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문에, 이번 개정에서는 보태야 할 데라든지, 빼야 할 데, 플롯에서 중요한 데를 바꾸고 새로 맞춰넣어야 할 데가 거의 저절로 떠올랐다.
다음에 고친 것이 한자어를 모두 비한자어로 고친 일이다. 우리 소설 문장은 한자어를 한글 표기로 하기 때문에, 예술로서의 언어 표현의 본질인 의식과 현실의 갈등이라는 과정을, 이미 만들어진 한자어에 밀어버리고도 그런 줄 모르게 될, 표기에서 오는 함정을 감추고 있다. 이 문제를 풀자면, 반드시 비한자어로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즉 그 한자어를 문맥 속에서 더 꼼꼼하게 정의하는 것도 좋겠지만, 너무 번거로워진다.
이 판에서는 비한자어로 바꾸는 길을 골랐다. 그러나 관습에서 너무 멀어져야 할 때는 거기서 그치도록 했다. 그러나 부피로 보면 그대로 둔 데는 얼마 되지 않는다.
이 같은 표기상의 바꿈 말고도, 표현도 바꾸는 것이 좋다고 느낀 데는 눈에 띄는 대로 바꿨다. 작자의 사정으로, 이런 일을 하기에 넉넉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
위와 같은 개정 내용들이, 나의 짐작으로는, 이명준의 사람됨과 그의 걸어간 길을 독자에게 좀더 가깝게 느끼게 하는 데 조금은 보탬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976년 7월, 저자
[일역판 서문]
이 땅 위에 사람이 살기 비롯한 것도 오래 되거니와, 앞으로도 사람은 오래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살아가는 누구나, 이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 저마다 짐작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런데 이 짐작이 얼마쯤 뚜렷한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때도 있다. 사람은 초목이나 짐승과는 달라서, 이 짐작이라는 것을 나면서 몸에 지니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에 저편에서 가르쳐주고, 제가 깨달아간다는 것이 사람의 삶의 어려움이다.
그런데 그 삶의 짐작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깨닫기는, 혼자서 태어나기가 어려운 만큼이나 어려운 시대라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이렇게 되면 사람은 허둥지둥하게 된다. 짐작이 안 가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상이 없어져버리거나 끝나는 것도 아니다. 그대로 세상은 버티고 있다.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짐작을 가지고 살고 있건 아니건, 아랑곳없다. 그럴 때 사람은 산다느니보다 목숨을 이어간다는 말이 옳겠다. 다시 말하면, 초목이나 짐승처럼, 알지 못하는 힘에 밀려서 때와 공간을 차지한다. 그런 삶을 탐탁지 못해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짐작을 알아내보려고 애를 쓴다. 머릿속에 있는 골이라는 기관을 짜본다든지, 몸을 놀려본다든지 한다. 그러나, 골을 짠다든지, 몸을 놀렸을 때 그들은 철조망이나 시멘트 벽에 부딪히기가 일쑤다. 울타리 너머를 기웃거리기나 하려 들면 대뜸 몸을 다치게 된다.
여기서 주저앉아버리면, 그 사람은, 산다는 일을 무언가 신비한 도깨비 놀음처럼 알게 된다. 무서운 낭떠러지 언저리 따위에는 얼씬도 않으려 들고, 눈익고, 발에 익은 골목만 골라 다니면서 하다못해 푸근한 인정이나마 놓치지 말자고 든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또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철조망이나 시멘트 벽 쪽을 골라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짐작이 들었노라고 스스로 믿는다. 그러나 거의 모두, 그들의 짐작이라는 것은, 함부로 버리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그런 짐작이다. 버린 것-그것은 무엇일까? 귀한 어떤 것이다. 버리기 어려운, 버려서는 안 될 어떤 것이다. 그것을 잃지 말자는 마음을 버리고서야 비로소 얻어지는 그 짐작이 가져다주는 평화에, 선뜻 몸과 마음을 내키지도 못하는 사람들 또한 있다.
이 얘기의 주인공도 그런 사람이다. 초목처럼 살기도 싫고, 그렇다고 계산이 다 되지도 않은 데를 잔인하게 잘라버리고 사는 데도 내키지 않는 사람이다.
위대한 사람이라면 이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는 힘이 있으리라. 그러나 이 주인공에게는 그런 힘이 없다. 그리고 이 주인공과 시대를 함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런 힘이 없다. 그래서 그가 한 자리 얘기의 주인공이 된 것은 그가 위대해서가 아니다. 되레 그렇지 못한 탓으로, 많건 적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의 표징으로서 이 소설 속에 나타난 것이다.
이 주인공이 만난 운명은 그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갑작스러웠다는 것, 힘에 부쳤다는 것-이런 까닭으로 이 주인공은 파멸로 휘말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 일 또한 주인공 한 사람의 생애라는 말로 끝나지 않는다. 이 국토에 시대를 함께한 숱한 사람들이 만난 운명이다.
소설의 주인공이란, 정말 사람보다는 얼마쯤 분명한 걸음걸이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뜻에서 이 주인공이 걸어간 길도 그 나름대로 상황을 밝혀내는 몫만은 해낸 셈이라 볼 수 없을는지.
남은 일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스스로 풀지 않으면 안 될 숙제다. 그저 막연히, 산다고 절로 풀릴 숙제일 리 없지만, 어쨌든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소설이 아니라 역사에 들어간다.
살아 있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작자는 이 소설의 주인공에 대해서 큰소리칠 자리에 있지 못한다. 그가 쓰러진 데서 한걸음인들 내디뎠다는 믿음을 못 가졌기 때문이다. [일문판: 김소운 역, 『광장』(동수사, 1973)]
[1973년판 서문·이명준의 진혼을 위하여]
나는 12년 전, 이명준이란 잠수부를 상상의 공방(工房)에서 제작해서, 삶의 바닷속에 내려보냈다. 그는 ‘이데올로기’와 ‘사랑’이라는 심해의 숨은 바위에 걸려 다시는 떠오르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나를 탓하였다. 그 두 가지 숨은 바위에 대한 충분한 가르침도 없이 그런 위험한 깊이에 내려보내서,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를 세상 버리게 한 것을 나무랐다. 사람들은 옳다. 그러나 숨은 바위에 대해 알고 있다면 누가 잠수부를 내려보낼 것인가. 우리가 인생을 모르면서 인생을 시작해야 하는 것처럼, 소설가는 인생을 모르면서도 주인공을 삶의 깊이로 내려보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살아오는 경우 그의 입으로 바다 밑의 무섭고 슬픈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것이요-돌아오지 못하는 경우는, 그의 연락이 끊어진 데서 비롯하는, 그 밑의 깊이의 무서움을 알게 된다.
이명준은 그 암초를 피하지는 못했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사이의 바다 밑 지리며, 심도에 대해서는 송신해주었다.
이명준 이후로 나는 연이어 적잖은 수의 잠수부를 같은 해역에 내려보냈다. 말할 것도 없이, 지금이라면 이명준이 혹시 목숨을 보전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만큼의 심해 정보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슬프다, 그런들 한번 간 사람에게야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그저 마음을 달래볼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잘 쓰기만 하면 숱한 잠수 벗들에게 유익할 수 있는 심해 정보의 쌓임이 이명준에서 비롯되었고, 그는 안내 없는 바다에 내려간 용사였음을 다짐하는 일이다. 12년 전에 내가 『광장』을 쓴 것도 바로 용사의 기념비였고, 묘비명의 뜻이었다. 그 세월이 지난 지금 나는 이 묘비명에 보탤 것도 깎을 것도 없다. 다만 바람먼지에 얼마쯤 파묻힌 비면(碑面)의 때를 씻어내는 일을 하였다. 이명준, 나의 친구여. 그제나 이제나 다름없는 나의 우정을 받아주기를. 그리고 고이 잠들라. 1973년 7월 1일, 저자
[1961년판 서문]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 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서 거상(巨象)의 자결을 목도한 사람도 있고 민들레 씨앗의 행방을 쫓으면서 온 사람도 있다.
그가 밟아온 길은 그처럼 갖가지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아주 당치 않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이명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떻게 밀실을 버리고 광장으로 나왔는가. 그는 어떻게 광장에서 패하고 밀실로 물러났는가. 나는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으며 다만 그가 ‘열심히 살고 싶어한’ 사람이라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그가 풍문에 만족지 않고 늘 현장에 있으려고 한 태도다. 바로 이 때문에 나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것이다. 1961년 2월 5일, 저자
[서문]
‘메시아’가 왔다는 이천 년래의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죽었다는 풍문이 있습니다. 신이 부활했다는 풍문도 있습니다.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하리라는 풍문도 있습니다.
우리는 참 많은 풍문 속에 삽니다. 풍문의 지층은 두텁고 무겁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르고 문화라고 부릅니다.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풍문에 만족지 않고 현장을 찾아갈 때 우리는 운명을 만납니다. 운명을 만나는 자리를 광장이라고 합시다. 광장에 대한 풍문도 구구합니다. 제가 여기 전하는 것은 풍문에 만족지 못하고 현장에 있으려고 한 우리 친구의 얘깁니다.
아시아적 전제의 의자를 타고 앉아서 민중에겐 서구적 자유의 풍문만 들려줄 뿐 그 자유를 ‘사는 것’을 허락지 않았던 구정권하에서라면 이런 소재가 아무리 구미에 당기더라도 감히 다루지 못하리라는 걸 생각하면서 빛나는 4월이 가져온 새 공화국에 사는 작가의 보람을 느낍니다. 『새벽』, 1960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