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삼국유사: 일연 (2022.4.26)
*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으니, 용은 “비유하건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대도 역시 합한 후에야 소리가 나는 것이요... 또한 대왕은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사라졌다. 왕이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부니 나라의 모든 걱정 ·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 유기체적 세계관이 잠복
* 고대인의 사유와 삶의 모습이 담겼음
* 민속적인, 철학적인, 인류학적으로 완벽한 국제적인 책
* 보면 볼수록 깊이와 가치가 느껴지는 오래된 미래, 730여년 전 출간
* 원형과 본질을 지키며 투명하게 저술
- 단군왕검 (삼국유사 고조선, 권 제1, 기이 제2)
* 아주 먼 옛날 하늘을 다스리는 신의 아들 환웅은 3000명의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마루 신단수 아래 신시를 세우고 여러 신과 세상을 다스렸습니다. 이때 사람이 되고 싶은 곰과 호랑이의 간청에 환웅은 쑥과 마늘만으로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참을성 많은 곰은 이를 견뎌내 여인이 되었고, 환웅과 혼인하여 아들을 나았다. 그 아들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단군입니다. 국호를 조선이라 정한 단군은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이후 아사달로 천도하여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의 이야기를 기록한 최초의 책, 삼국유사가 없었다면 우리는 역사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을까?
- 경북 군위는 삼국유사의 고장
* 아미타여래 삼존석굴(국보 제109호, 7세기 중엽~말): 경주 석굴암 보다 100년 이상 앞섬
* 한밤마을: 집터에 돌을 처리하기 위해 돌담을 쌓아 땅의 경계를 삼아 멋스러움을 대표
* 최근 삼국유사 속 설화, 작품, 인물 등을 만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 => 삼국유사 목판 인출 체험
- 삼국유사의 시작은 단군
* 고조선부터 시작하여 후삼국시대, 고려의 건국까지 연표가 나타납니다. 최초의 국가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에 건국. => 우리나라의 역사가 중국에 비해서 결코 뒤지지 않고 대등한 위치. 삼국유사는 단군신화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 있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높다. => 고조선의 건국이 만주지역의 비파형동검이라는 청동기 문화 기반 위에 성립. 그러면 고구려, 백제, 신라는 초기철기문화 기반 위에서 성립. => 이러한 만주와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고대 국가들의 다양한 건국의 모습들,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건국 신화의 차이를 볼 수 있다.
* 신화에 등장하는 호랑이와 곰은 고조선의 중심 세력이 된 종족의 상징이라는 견해. 곰 토템을 중심으로하는 제의문화와 철기, 즉 예족(濊族)과 맥족(貊族)의 예는 예(濊)자가 삼수를 빼면 해 세(歲)자. 그게 바로 철기를 상징한다. => 예 국은 쇠 문화이다. 철기 문명과 곰 토템의 문명 예족과 맥족이 합쳐서 내려와서 마한 진한 변한의 한족과 합쳐서 우리 한민족을 형성.
- 일연 선사 (1206~1289)
*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를 세운 단군 이야기로 역사의 자주성을 일깨움. 매년 8월이면 군위 인각사에서 보각국사 일연 추모 다례제가 거행. 선사는 1206 년 장산군, 오늘날 경산에서 태어났으며, 어머니의 몸에 해가 비추는 꿈을 4일 동안 꾸고 태어났다고 하며, 법명은 견명.
* 1214년(9세)에 전라도 해양(海陽) 무량사(無量寺)에서 대웅 밑에서 학문을 닦았다. 1219년(14세) 설악산 진전사에서 출가해 승려가 되었다. 계속 공부하다가 1227년(22세) 승과 시험에 급제해서 22년 동안 비슬산 대견사에서 초임 주지를 지냈다. 1237년(32세) 삼중대사, 1246년(41세) 선사가 되었는데 이 시기는 몽골제국이 본격적으로 고려를 침략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1249년(44세) 경남 남해군 정림사에서 대장경을 판각하던 분사대장도감에 3년간 참여했다. 세계유산 팔만대장경 제작에도 일연이 일정 부분 기여한 셈.
1259년(54세) 대선사가 되었고 1261년(56세)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군 선원사의 주지가 되어 보조국사 지눌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 1264년(59세)에 경상북도 포항에 있는 오어사로 옮겨 후학을 가르쳤다.
1268년(63세) 운해사에서 대덕 1백여 명을 모아 대장경 낙성회를 조직해 맹주가 되었다. 1277년(72세) 운문사 주지가 되었으며 당시 경주에 와 있던 충렬왕의 부름을 받아 충렬왕을 1년 가까이 모시면서 충렬왕에게 법을 강론했다.
1283년(78세) 충렬왕을 따라 개성으로 돌아가 국존으로 추대되고 원경충조의 호를 받았다. 그러나 노모를 모신다는 이유로 고향에 가기를 청해 반 년 동안 살았지만 그해에 어머니는 아흔여섯 살로 숨을 거두었다.
1284년(79세)에 경북 군위의 인각사를 중건하고 궁궐에서 구산문도회를 열었다. 1289년 군위군 인각사에서 세수 84세로 입적했다. 이후 나라에서 보각국존(普覺國尊)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생전에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군위 인각사에서 삼국유사를 집필하여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삼국유사는 고대 한국 신화, 설화, 향가를 집대성한 책으로 현대에서도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삼국사기와 더불어 귀중한 자료이다. 대표작인 삼국유사 이외에도 조파도 2권, 대장수지록 3권, 제승법수 7권, 조정사원 30권, 선문염송사원 30권, 어록 2권, 게송잡저 3권 등 많은 불교 저서를 남겼다.
- 그런데 왜 삼국유사를 썼을까요?
* 선사가 태어난 1206년은 대외적으로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건설해 세력을 확장해 나갔고, 대내적으로는 무신정권 시기이었다. 몽골은 1231년 고려를 침입한 이후 강화를 맺을 때까지 30여년간 고려를 뒤흔들며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당시 최우는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로 옮겼다. 강화의 고려 궁지는 고종 19년부터 원종 11년까지 39년간 머물렀던 궁궐터이다. 고려 고종은 불심으로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라 명을 내렸고 강화도에 대장도감을 설치한 뒤 남해의 분사 대장도감에서 대장경을 조성하기 시작한다.
* 최우가 창건한 강화 선원사는 팔만대장경 조성을 위해 대장도감을 설치했던 호국사찰이다. 거란의 침입을 극복하기 위한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진 후 다시 한 번 불심으로 외침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추진된 팔만대장경 목판 조성은 연인원 150만 명의 인력이 16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평판이 조성되는 시기에 남해 정림사 주지였던 일연 역시 남해 분사 대장도감에서 팔만대장경 감수에 관여했다.
* 팔만대장경 외에 고려에는 국난 극복의 희망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신라 진흥왕 때 왕궁을 지으려다 기묘한 황룡이 나타나 절로 바꿔 지었던 바로 황룡사였읍니다. 신라 최대 가람 황룡사에는 9층 목탑이 있었죠. 당대 최고의 건축 기술로 조성한 9층 목탑은 왕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국력을 한데 모으는 호국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9층 목탑은 몽골의 침입으로 화마에 휩싸여 무참히 무너졌습니다. 삼국을 통일하고 외세의 침입을 불심으로 막아내고자 했던 황룡사 9층 목탑이 눈앞에서 사라졌을 때 알연 선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 황룡사는 신라 뿐만이 아니고 이후에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 왕조, 우리 국가를 보위해주는 호국의 중심지라는 의식을 지닌 중심적인 사찰입니다. 황룡사가 불타버리고 소실되어버린 현장의 어떤 참담함, 일연스님이 여기 와서 보았던 것이 삼국유사를 편찬하는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 선사가 삼국유사를 쓰게 된 또 다른 계기는 유교적 관점으로 쓴 삼국의 역사서 삼국사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에는 한민족의 국조라고 하는 단군왕검에 대한 내용도 없고, 북부여에 대한 것도 없고, 발해에 대한 건 더더욱 없고 가락국기도 없었다. 그러니까 삼국사기로만 보면은 기원전 57년까지 밖엔 역사가 거슬러 올라갈 수가 없었다. 너무 답답한 거죠. 삼국유사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수록된 이야기 마다 흥미와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 삼국유사
* 삼국유사는 2책 5권 9 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편목 구성 또한 독특하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일연 스님이 수집한 자료에 실려 있는 내용들을 쭉 소개하는 그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보로 승격된 파른본은 다른 곳에서 전하지 않는 삼국유사의 제일 앞부분 왕력편을 포함하고 있다.
* 주몽이 알에서 태어난다라고 하는 이런 류는 이미 중국에서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알이 처음 탄생하게 된 이야기를 하면서 햇빛이 쫓아와서 어머니 유화가 알을 갖게 됐다는 이런 식의 이야기는 사실 중국에서도 잘 보이질 않습니다. 단군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또 그 중에 곰이 사람이 되었다. 그 사람이 환웅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 이런 이야기는 중국에도 많은 건국 신화가 있지만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우리만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들을 일일이 뽑아내서 건국신화로 자료를 정리했던 것, 이것이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우리 건국신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삼국유사 첫 권에는 신라 고구려 백제 가락국 순으로 배열하고, 그 뒤로 후삼국의 연대가 기록된 왕력이 있습니다. 삼국사기 연표와 다른 점은 역대 왕의 출생, 즉위, 시세를 비롯해 저자의 의견도 간간히 덧붙여 놓았다는 점입니다. 기이편에는 고조선 이하 여러 고대 국가의 흥망과 신화 전설 신앙 등에 관한 유사 36편을 기록했고, 권2에서는 편목을 따로 두지 않고 문무왕부터 경순왕까지의 신라 왕조와 백제 후백제 및 각국에 관한 유사를 다뤘습니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보면 이게 완전히 다른 게 아니고 삼국사기를 보완하면서도 역사에서 제대로 이야기되지 않는 부분들을 종교적 차원에서 이야기되는 神異史觀에서 이야기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단순한 역사서라기 보다는 대안사서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 최근 국보로 승격된 또 다른 삼국유사를 만나러 부산 범어사를 찾았습니다. 범어사 소장본 삼국유사 권 4~5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 판본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해 다른 지정 본의 훼손되거나 빠진 내용을 보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한 서체 규격 행간에 있어 후대에 간행된 1512년 판본과 밀접한 양상을 보여 판본학적으로도 중요한 사료입니다. 삼국유사 권5에서 주목할 것 중 하나는 인각사에서 주지 일연이 지은 것이라 표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삼국유사 권 3, 4, 5는 삼국의 불교 전래와 발전 고승의 행적과 전탑의 유래 등 불교 사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습니다.
*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가 우리나라의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이렇게 방대하고 이렇게 정교하게 연구가 많이 돼서 남아 있고 이런 책이 자기들에게 전해지고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워 하면서 오히려 한국으로 이 삼국유사와 월인석보를 배우기 위해서 유학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이것이 인도에 가서 또 다른 불교의 르네상스를 일으킬 수 있는 동아시아의 기록으로서도 굉장히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 : 일연
역자 : 리상호
002. 기이
003. 흥법
004. 탑과 불상
005. 의해
006. 신주
007. 감통
008. 피은
009. 효도와 선행
출판사 서평
……이 책에는 아득한 원시 시대를 포함한 우린 선조들의 고대 사회, 경제, 문화, 사상, 생활의 단면들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소박한 신화와 전설들을 비롯해 오늘날까지도 직접 우리들의 생활문화 속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민속적 자료들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이와 같은 기록들은 우선 오늘날 우리나라의 고대 사회경제사 연구를 비롯한 원시고고학, 원시사상사, 민속학 등의 연구사업에서 가장 귀중한 문헌적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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