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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폐사지 석탑: 장항리사지 석탑, 천군동 동서삼층석탑, 황복사지 삼층석탑 (2019.11.11)

클리오56 2019. 11. 11. 21:50

경주 폐사지 석탑: 장항리사지 석탑, 천군동 동서삼층석탑, 황복사지 삼층석탑 (2019.11.11)

 

빼빼로 데이라는 오늘, 정말 분주하게 움직인 하루이다.

울진을 출발하여 동해안 일출을 감상하고 7번 국도를 따라 영덕과 포항을 경유,

경주에 접어들어 기림사와 골굴사, 장항리사지 석탑, 불국사, 천군동 동서삼층석탑,

진평왕릉, 황복사지 삼층석탑, 국립경주박물관까지 둘러보았으니...

 

여기에서는 장항리사지 석탑, 천군동 동서삼층석탑, 

그리고 황복사지 삼층석탑 등 모두 폐사지의 석탑들을 모아보았다.

유홍준교수가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자신에게 경주를 가르쳐준 분은 

경주박물관장을 두번 역임한 소불 정양모선생이고, 소불선생이

'경주를 알려면 이 세 곳을 보라'하였으니 진평왕릉, 장항사지, 그리고 에밀레종를 꼽았다고 한다.  

 

그 중의 하나인 장항사지에 왔으니 주차장에서 바라보면 개울건너 언덕에 두 탑이 보여진다.

유 교수는 답사기에서 맑고 넓은 냇물을 징검다리로 예닐곱 번은 건너야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도로가 잘 닦여 주차장에 당도하여 다리 한번만 건너면 도달할 수 가 있다..

 

 

 

서 오층석탑과 동 석탑

 

 

서 오층석탑 (국보 제 236호)

약 9.5m 높이인 서쪽 오층석탑은 몸돌 하나하나가 거대한 한 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돌 색깔이 부드러운 살색에 가까워 따뜻한 느낌을 준다.

첫번째 몸돌에는 문 모양과 함께 힘찬 인왕상이 조각되어 있다.

그 조각의 우수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고선사탑과 그 수법과 크기가 비슷하여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인다.

 

 

동탑

일제강점기 시절 도굴꾼이 다이너마이터로 탑을 허물고 사리장치를 훔쳐갔고

 그 잔재가 대종천에 방치되었다가 1966년에 수습되어 현재의 자리에 놓인 것이다.

 

장항리 절터 불대좌

비록 도괴범에 의해 깨어졌지만 지금도 대좌 곳곳에는 아름다운 조각들이 남아 있다.

 

이 불대좌의 불상은 특이하게도 좌불이 아니라 입불이라는 점이다.

이 입불상은 두 팔이 잘리고 허리 윗부분과 광배만 남은 채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앞뜰에 서 있다.

산산이 조각 난 것을 시멘트로 붙여놓았는데 광배와 연화문 등의 잔해로 미루어

석굴암의 대불과도 견줄 만한 대작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장항사지의 석탑과 불상은 통일신라 초기, 아마도 문무대왕 시절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기백과 의지만은 역력히 서려 있는 곳이고 신라 고찰의 품격이 살아있는 곳이다는 유 교수의 평이 있다. 

 

이를 뒤로하고 천군동 동서삼층석탑을 찾아가는데 보문호수에서 가히 멀지 않으며

수령 5백년이 넘은 느티나무 보호수 아래 차를 주차시키곤 백여미터 걸어갔다.

천군동 동서삼층석탑 (보물 제168호) 

양탑은 거의 같은 양식으로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전형적인 신라양식의 석탑이다.

시기적으로는 경주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 이후 왕경() 내에 건립된 가장 이른 시기의 쌍탑으로

8세기 초반 신라석탑의 양식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탑으로 평가된다.

서탑은 탑 꼭대기의 장식이 일부 남아있고 동탑은 장식이 없어졌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국보 제37호)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면서도 전기 석탑 건축양식의 변화 과정이 담겨 있는 유물로 평가된다.

한편, 이 석탑을 해체·복원할 때 발견된 사리함 안에서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국보 79)과

경주 구황동 금동여래입상(국보 80)이 함께 발견되었고,

절터에서는 귀부() 2기를 포함한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날 석탑 주변으로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라 가까이로는 접근이 불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