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구석구석 국내여행

부여 장하리3층석탑 (2019.8.25)

클리오56 2019. 8. 25. 21:20

부여 장하리 3층석탑 (2019.8.25)


장하리 3층 석탑의 현장에 도착하니 때마침 공사중이라 온전한 탑 모습은 촬영이 불가,
하여튼 백제의 대표적인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본뜬 양식이라지만
탑신이 훨씬 날렵한게 오히려 불안정한 느낌이 들 정도.

김희태 지음 '문화재로 만나는 백제의 흔적'에서 백제계 석탑의 계승 사항을 인용한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옛 백제의 땅인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형태를 계승한 백제계 석탑이 만들어졌다.
특히 고려 때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백제계 석탑을 두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 순수 백제석탑의 형태: 정림사지 5충석탑과 유사한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 특
             => 대표적인 사례: 부여 장하리 3층석탑, 정읍 은선리 3층석탑
- 절충 양식 석탑: 백제계 석탑의 양식에 일부 신라계 석탑의 양식을 혼용
=> 진도 금골산 오층석탑, 정읍 천곡사지 칠층석탑으로 전라도에서 성행했다는 특징

이처럼 백제계 석탑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유추해보면
고려 때도 백제계 석탑이 만들어질 만큼 지방의 문화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실상 지역의 특색이라고 볼 수 있는데, 비록 백제는 멸망했지만 백제인이라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고 오래 남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에서 신라 때 백제계 석탑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홋날 고려의 통일 과정에서 두각을
드러낸 충청, 전라 지역의 호족들에 의해 백제계 석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부여 장하리 3층석탑: 보물 제 184호

(안내 설명: 이 석탑은 백제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의 양식을 본딴
높이 4.85m, 지대석 너비 3.2m의 고려 초기 작품이다.
기단은 3단의 장판석재로 지대석을 깔았고,
초층탑신은 엔타시스형 방주를 4개의 별석으로 세우고 그 사이에 장판석을 세웠다.
옥개석은 탑신에 비하여 광활하다.
3층탑신은 1,2층과 달리 통석으로 이루어졌으며
탑신 북쪽면에 불상을 모시는 방을 의미하는 깊이 4.5cm의 장방형 감형을 새겼다.
상륜부에는 방형의 노반이 하나 놓여있다.
1931년과 1962년 초층 및 3층 탑신에서 사리구, 상아불상, 목제소탑 등 고려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