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소감 및 내용
저자는 가이드 등반에 참가하여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지만 함께 참여하였던 고객뿐만 아니라 가이드, 셰르파 등이 목숨을 잃는 참사현장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책을 완독하느라 새벽 3시반에 잠자리 들었을 정도로 생생한 현장 묘사, 그리고 안타까움으로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었다.
가이드 등반은 상업적 목적이라 그 자체가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에베레스트 등반 자체가 본질적으로 통제불가능한 요소가 개입된다는 것이다. 이 사고가 난지 불과 며칠 후 남아프리카 팀이 등정하였고, 그중 한명은 오후 5시에 정상에 도달하였고 결국 하산 도중에 사망하게 된다. 가이드 등반팀은 하산 타임을 2시로 정하였지만 지키지 못하여 참사가 도래했는데, 불과 며칠 후 등정팀 역시 그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은 통제불가능인가?
또한 이와 별도로 동시간대에 티벳을 거쳐 인도팀과 일본팀이 에베레스트산에 등정하는데, 바로 옆에 죽어가는 조난자를 두고서도 정상 도달이라는 유혹에 빠져 돌보지 않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일본 등정팀원이 나중에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했다. "그 사람들은 우리하고는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말도 걸지 않았고. 그들은 고산병 증세가 심해 목숨이 위태로와 보이더군요". "우리는 너무나 피로해서 도와줄 수가 없었어요. 8,000미터 이상되는 곳에서 도덕적인 원칙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정상 도달 성공의 유혹은 도덕을 초월할 정도로 이만큼이나 큰 것이다. 인자요산지자요수는 어디갔는지?
1장 정상에서
- 나는 정상으로 다가오고 있는 두명의 등반대원에게 렌즈의 초점을 맞추다가 이제까지 용케 내 시선을 피한 뭔가를 발견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쾌청했던 남쪽하늘에 걸린 구름 한 자락. 그 구름은 이제 푸모리와 아마 다블람, 그리고 에베레스트 주위에 늘어서 있는 좀 더 낮은 봉우리들을 감싸고 있었다.
- 기상이 악화되기 시작했는데 어째서 산 정상으로 오르던 사람들이 그런 불길한 징후들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냐고. 어째서 베테랑급 히말라야 가이드들이 안전하게 에베레스트에 오르게 해주는 대가로 한 사람당 65,000달러라는 거금을 지불한 미숙한 아마추어들을 계속 정상으로 오르게 해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는가?
- 10미터 아래에 있는 힐러리 스텝 밑바닥에서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죽 늘어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닌가. 세 사람은 이미 내가 타고 내려가려 한 밧줄을 붙잡고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리를 풀고 옆으로 비켜섰다.
- 그 기나긴 하루가 끝날즈음에는 1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생사를 좌우할 만큼 소중한 것이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2장 가장 높은 꿈
- 1852년 데라 던의 인도 삼각측량국의 직원이 가장 높은 산을 발견: 15봉의 해발이 8,840미터라고. 그리고 9년이 흘러 그 15봉은 에베레스트 산으로 명명. 티베트에서는 '이 세상의 여신이자 어머니'를 뜻하는 초모룽마, 네팔에서는 '하늘의 여신'을 뜻하는 사가르마타로 이미 불리우고 있음에도.
- 1909년 미국인 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북극점에 도착했고, 1911년 로알 아문센이 노르웨이팀을 이끌고 남극점에 이른 뒤 이른바 제3극에 해당하는 에베레스트는 탐험의 영역에서 가장 매혹적인 대상으로 떠올랐다.
-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건 '인류가 시도해 봐야 할 보편적인 과제요, 그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크나큰 대의'라 선언
- 1852년 시크다르가 그 산이 지상의 최고봉임을 밝히고 나서 101년이 지난 뒤에야, 그리고 열다섯에 이르는 원정대들이 거듭 시도를 하고 그 와중에 스물네 명이 목숨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인류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첫발을 내디뎠다.
- 1953년 5월 29일 정오 직전에 힐러리와 텐징은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다음 6월2일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대관식이 열렸고, 우연히 동시에 일어난 그 두 사건은 영국인들이 신비로운 현상으로 생각하고 크게 기뻐했다.
- 1963년 5월 22일, 32세의 미주리 출신 의사 톰 혼베인과 36세 오리건 출신 신학교수 언술드는 이전에 그 누구도 오르지 못한 서쪽 능선을 통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 등산사에 위대한 업적의 하나로 기록
- 산악인들은 산 정상에 오르는 일 자체보다 어떤 식으로 그 곳에 올랐는가가 훨씬 더 중요했으므로 가장 험난한 루트를 최소한의 장비를 갖고서 가장 대담한 방식으로 도전한 사람들만이 높은 명성을 얻었다.
- 1985년 등산 경험이 얼마없는 딕 배스라는 55세 부유한 텍사스 사람이 데이비드 브리셔즈라는 뛰어난 젊은 산악인의 안내를 받아 에베레스트에 올랐음 => 딕 배스는 일곱 봉우리 모두를 오른 최초의 인물이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음
3장 낯선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 로브 홀: 35세 어드벤쳐 컨설턴츠 등반대 대장.
. 1990년 에베레스트 첫 등정, 1994년 두달 동안에 에베레스트, K2, 로체 등정
. 1994년 12월12일 7대륙 최고봉 등정 성공
- 홀의 전문산악인 직업의 장기적 전망에 대한 비관적 생각: 우리 산악인들이 기업체들로부터 계속 후원을 얻으려면 판돈을 자꾸 높여야해요. 다음 등반은 먼저번보다 좀 더 어려운 것이 되어야하고 좀 더 극적인 것이 되어야 하죠. 그건 일종의 악순환 같은 것이 되어 결국에 가서는 더 이상 등산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 등산 가이드 회사 설립
. 1992년 5월 첫 가이드에서 6명의 고객들을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게 함. 1995년까지 39명 등정 성공
- 1996년3월31일: 등반대원들은 카트만두에서 루클라로 헬기 이동
- 등반을 할 때 동료들을 신뢰한다는 건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어느 한 사람의 행위가 팀 전체의 안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하지만 동료들을 신뢰한다는 건 가이드가 딸린 등반 고객으로 서명한 사람들로서는 기대할 수 없는 사치다. 그들은 동료들 대신 가이드를 믿을 수밖에 없다. 나는 홀이 능력이 의심스러운 우리 고객들을 신중하게 선별했기를, 그리고 우리 각자가 서로의 부족함으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게 할 만한 방책을 마련해 놓았기만을 빌었다. 그걸 나만큼이나 간절히 바란 사람이 또 있었을까?
4장 여신의 발치로 다가가다
- 히말라야: 북위 28도 선상에 위치
- 셰르파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이 붙는 가장 부러워하고 탐내는 자리는 전문적인 등반 기술을 지녀 외지의 산악인들과 함께 높은 봉우리를 오를 수 있는 세르파들의 자리다. 두달간의 위험한 작업을 하는 대가로 1,400달러에서 2,500달러를 받을 수 있는데 1인당 연수입이 160달러밖에 안 될 정도로 혹심한 가난에 허덕이는 네팔에서는 대단히 많은 돈이다.
- 히말라야 구조협회가 운영자금을 대는 진료소가 생기면서 그 이전에는 500명당 고산병 사망자가 대략 한두명 꼴로 나왔으나, 그 사망률이 3만명당 한명도 안되는 비율로 떨어졌다.
- 우리가 고용한 셰르파들은 이쪽 방면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서구의 기준으로 봐서는 얼마 안되는 돈을 받는 대가로 아주 어려운 일을 수행합니다. 우리가 그 사람들의 도움없이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점을 모두들 명심하셔야 합니다.
5장 베이스 캠프 도착
- 베이스 캠프에 도착 후 6주동안 등정 준비 및 등정하면서 고산생활 유지
- 가이드 산행 수수료가 65,000불인데 저자의 경우 10,000불만 받고 그 나머지는 저자가 근무하는 잡지사에 광고 지면을 얻는 것으로 대치하자는 협정을 맺었으며, 그 광고가 겨냥하는 대상은 건강한 신체에 모험심에 불타는 마음을 지닌 상류계층이라 말했다. => 그 독자들은 미국 독자들이며, 로브 홀은 미국 시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 베이스 캠프의 대기에는 해수면 대기 산소량의 대략 반 정도만이 존재하며, 정상에 이르면 그 양은 해수면의 삼분의 일로 줄어든다.
6장 얼음 궁전으로의 첫 나들이
- 3명이 베이스캠프에서 새등산화를 꺼내는 것을 보고 은근히 놀라고 또 걱정이 되었다. 나 역시 20년 전에 새 등산화를 신고 등반길에 올랐다가 길이 들지 않은 무겁고 딱딱한 등산화가 발에 큰 손상을 줄 수 있다는 혹독한 교훈을 얻은 바 있었다.
- 그들 중에 지난 해에 한두번 이상 등산할 기회를 가져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들 당당한 체구를 갖추고 있었지만 현실적인 여건상 실제로 산을 오르기 보다는 헬스 클럽이나 체육관 같은데서 신체단련 하는 것으로 그쳤다.
7장 사고의 예감
- (준비나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노르웨이 청년, 타이완 팀, 그리고 남아프리카 팀, 이런 무자격자들이 에베레스트에 이렇게 많이 몰려들었으니 아무래도 큰 사고없이 이번 시즌을 보내기는 틀린 것 같아요
8장 셰르파들과 백만장자
- 셰르파들은 고산병에 걸리고 공개적으로 그것을 인정할 경우에는 요주의 인물로 찍혀 그 후 다른 등반대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앙가왕이 하산하라는 피셔의 지시를 무시하고 그날 밤을 보내기 위해 제 2캠프로 올라간 것도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이었다. => 결국 앙가왕은 나중 카트만두로 이송되었지만 사망
9장 제3캠프 도전 실패
- 4월28일 제 2캠프 해발 6,492미터: 새벽 4시경 2인용 텐트 안의 온도는 영하 22도
=> 바람과 살인적인 강추위로 제3캠프 도전 실패
- 나에게 에베레스트 산은 신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정식으로 결혼한 남편과 아내가 함께 자는 건 괜찮다. 하지만 X와 Y가 함께 잠을 잔 건 우리 팀에게 불길한 징조였다.
10장 준비완료
- 4월29일 로체사면 해발 7,132미터
- 그러다 우연히 산에 오르기 시작했소. 그리고 등산은 내가 민간인 생활에서 잃어버렸던 것들의 대부분을 채워줬어요. 어려움에 대한 도전, 동지애, 사명감 같은 것들을.
- 등반이 끝난 후 TV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기자가 팀에 낀것에 대하여 참여자 왈 " 이 친구가 곧 제 나라로 돌아가 몇 백만명이 읽을 이야기를 쓰겠지하는 생각 때문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괜히 그 등반대에 낀 죄로 그 사람 글에 올라 놀림감이 된다면 고약한 일 아니겠습니까. ~ 괜히 내 행동에 신경이 쓰이고 좀 더 열심히 올라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이 사람들을 부추겨 정도 이상으로 행동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점 때문에 걱정이 됐습니다. 그리고 가이드들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럴 수 있죠. 그 사람들은 신문 잡지에 자기네 얘기가 나와 심판을 받게될 가능성이 있으니깐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산 정상에 올려놓고 싶어하거든요"
- 제3캠프에 도착하여 하루밤을 자고 제2캠프로, 다시 하룻밤 지낸 후 정상 공격을 하기 위항 힘을 되찾기 위해 베이스 캠프로 하산 => 공식적인 고도 적응 훈련 완료
- 정상 능선에서 심한 교통 체증이 일어나는 위험스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 베이스 캠프에서 다른 등반대 리더들을 소집해 대규모 회의를 가져 팀별 일자를 조정
11장 첫 번째 죽음을 등지고 정상으로
- 노르웨이 청년은 사우스 서미트 바로 아래인 8,748미터 지점에 이르렀다, 이제 60분만 더 오르면 정상인데 그는 더 올라갈 경우에는 너무 지쳐 안전하게 하산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아깝게도 거기서 돌아서기로 결정했다. - 그 정도로 정상 가까이 접근한 상태에서 돌아선다는 건... 크로프 같이 젊은 사람으로서는 참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대단히 현명한 판단을 내린 거예요. 난 감명을 받았어요. 그 사람이 계속 더 올라가 정상을 밟았다 해도 이보다 더 감동스럽지는 않았을 겁니다.
- 충분한 결단력만 갖고 있으면 어떤 바보라도 정상에는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좀 더 중요한 건 살아서 돌아가는 겁니다.
- 이 정도 이상의 높은 고도에서 머물 때 여러분의 몸과 마음의 기능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꾸 더 악화됩니다 => 보조산소
- 타이완 팀의 한 명이 사고로 사망 => 타이완 팀은 오케이라는 말만 할 뿐 정상 목표를 그대로 밀고감
- 우리 대부분은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열병에 사로잡혀 있어 우리 중의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해 차분히 성찰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나중에, 정상에 올랐다가 하산한 뒤 차분히 돌이켜봐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12장 쌓여간 작은 잘못들
- 5월9일 제3캠프 해발 7,315미터
- 정상 공격하던 몬테네그로 팀은 폭풍 때문에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힐러리 스텝 바로 밑에서 퇴각
- 그날 밤 사우스 콜에서는 다닥다닥 붙은 텐트들 속에 50명도 넘는 사람들이 숙박을 하고 있었으나 모두들 낱낱이 동떨어진 것 같은 묘한 분위기가 서려 있었다.
- 예전에 다른 사람들과 많은 산을 오르내렸지만 그렇게 심한 절연감을 느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제서야 우리가 이름만 한 팀이라는 서글픈 자각이 찾아왔다. 몇 시간 내에 우리는 한 팀으로서 캠프를 떠날 테지만 밧줄이나 혹은 그 어떤 연대감으로도 묶이지 않은 채 각자 개별적으로 오를 것이다. ~ 예를 들어 나는 더그가 정상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만 그가 돌아선다 해도 나는 계속 온힘을 다해 오를 테니까.
- 정상 출발 홀의 팀 인원은 15명. 가이드 3명, 고객 8명, 셰르파 4명. 자정 25분전 산소 마스크에 헤드램프를 켜고 출발
- 당일 다른 팀 인원들과 하여 모두 33명이 정상 향하여 출발
- 홀의 팀 고객 2명이 도중에 하산: 프랭크는 일진이 안좋다는 느낌으로 4번째 등정 시도 무산, 더그는 춥고 느낌이 안좋아서
=> 뒤에서 올라오던 로브가 더그와 얘기 나눈 후 더그는 다시 합류
- 문제점: 앞뒤 대원들을 가시 거리내에 유지하기 위하여 선두들은 상당 시간 추위 속에서 기다림. 타이완 팀을 포함하여 3팀이 서로 뒤섞여 하나의 긴 대열을 이룸. 여성 샌디 피트먼을 셰르파가 짧은 줄로 잡아당겨며 힘겹게 비탈을 올라옴
=> 저자는 계속 기다리는 상황에서 다른 팀들이 추월함
- 나는 34년에 걸쳐 산을 타면서 우리가 등산을 통해 얻는 가장 큰 보상은 그 스포츠가 강조하는 원칙들, 곧 자기를 신뢰해야 하고, 스스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적절히 다스려야 하며,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한다는 원칙들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일단 고객으로 오르겠다고 서명할 경우 그 모든 걸, 아니 그 이상을 포기해야 한다. 책임감있는 가이드는 늘 고객의 안전을 위해 자기가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들며, 그것은 각 고객이 독자적으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는 걸 뜻한다.
- 다른 팀의 셰르파 롭상이 맨 먼저 가서 밧줄을 설치해야 하는데 중간에서 맨 뒤에 처지고 토하기 까지 함
=> 전 날 오후 제3캠프에서 제4캠프로 올때 36kg이나 엄청난 짐을 짊어졌는데, 불필요한 위성통신 장비를 억지로 가져왔기 때문. 또한 당일 짧은 밧줄로 피트먼을 끌고 올라가느라 피로를가중시킴
=> 피트먼이 정상에 오른다면 그녀는 분명 TV 토크쇼에 나올 것이고, 그럴 경우 명성과 팡파레 속에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계산??
13장 반환점
- 5월10일 동남능선 해발 8,412미터
- 정상 접근로에 밧줄이 없어 설치하느라 지체: 고객 3명은 1시까지 정상에 오를 가능성이 희박하여 11시반 현명하게도 하산 결정
-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부딪칠 수밖에 없는 딜레마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혹독하게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면 죽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8,000미터 위에서는 적절한 열정과 무모한 정상 정복열의 경계선이 아주 모호해져 버린다. 그리하여 에베레스트 산비탈에는 시체들이 즐비하다.
- 애초에 나는 그 산 정상에 이를 때면 온 마음이 벅찬 환희로 들끓어 오를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결국 어린 시절 이래 줄곧 꿈꾸고 열망해 온 목표를 막 성취했다. 하지만 그 정상은 반환점에 불과했다. 앞으로 길고도 위험스런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 암담한 기분에 자축을 하고 싶은 충동 같은 건 완전히 사그라들고 말았다.
14장 재난의 서막
- 5월10일 오후 1시12분 정상 해발 8,848미터
- 노련한 항공기 조종사였던 애덤스는 그 별탈 없어 보이는 수증기 덩어리들이 사나운 소나기구름의 꼭대기 부분이라는 걸 정상에 이르자마자 즉각 눈치챘다.
- 내가 해발 8,810미터 지점에서 보조산소도 없이 한 시간 이상을 허비한 뒤에야 겨우. (계속 올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린 끝에 하산)
- 정상으로 오르던 날 아침에 나는 하산할 때 도움이 될만한 지형지물들을 찾아내려고 자주 주위를 둘러보면서 이 일대의 길을 계속 면밀히 관찰해뒀다. => 이런 습관이 에베레스트에서 내 목숨을 구해줬는지도 모른다.
-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나는 모든게 다 순조롭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9명의 남녀들이 폭설로 그 산에 묶여 있고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다는 것을
15장 악몽의 사우스 콜
- 5월10일 오후 1시25분 정상 해발 8,848미터
- 예정된 하산시각은 2시, 그 이전에 정상 도착은 저자 포함하여 6명. 만일 피셔와 홀이 사전에 정해둔 원칙을 준수했다면 그 밖의 사람들은 모두 정상에 이르기 전에 돌아서야 했으리라.~~ 피셔는 3시40분, 한센은 4시가 지난 다음에야 정상에 도착했다.
16장 믿을 수 없는 착각
- 5월11일 새벽 6시 사우스 콜 해발 7,925미터
- 저자 보다 몇 발자국 앞서 제4캠프의 텐트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던 앤디는 실제로는 텐트 직전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 실종
=> 이 또한 애덤스로 밝혀졌고 그는 생존하였다.
- 긴급상황 속에서 강력한 무전기를 빌려달라는요청을 거절한 제 2캠프의 남아프리카 팀
17장 저 위에 그가 아직 살아 있다
- 한센은 4시가 되어서야 정상에 올라왔는데, 왜 홀은 그 이전에 2시 하산시각을 지키지 않았는지? => 전년도에도 한센은 홀의 고객이었는데 정상과 아주 가까운 지점에서 2시30분 하산 결정을 내려 못내 안타깝게 여겼다.
- 앤디는 내게 로브와 더그한테 산소통을 날라다주면 50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 팀 대원들을 돌봐야 할 입장이었다. 스콧을 돌봐야 했고, 그래 나는 앤디에게 안 된다고 말하고 서둘러 내려갔다. => 저자가 두 시간 전에 앤디를 만났을 때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면 이 무렵에는 그 증상이 한 층 더 심해졌을 것이다. 그건 영웅적인 행동이었으며 그로 인해 앤디는 목숨을 잃는 대가를 치렀다.
- 오후 8시경, 고 역시 피셔만큼이나 기진맥진한 상태라 띠처럼 연속된 까다로운 혈암 지대를 내려갈 수가 없어 그의 셰르파들은 고를 롭상과 피셔 곁에 앉혀두고는 자기네끼리만 내려가 버렸다.
- 롭상은 사우스 콜에서 수직으로 400미터 위에 있는 바위 선반에 피셔와 고를 남겨둔 채 폭풍설을 뚫고 힘겹게 하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정상적인 코스를 벗어났다가 다시 거슬러올라 간신히 제4캠프에 도착했고, 아나톨리에게 위에 피셔가 몹시 아파서 걸을 수가 없음을 알려주고 나가떨어졌다.
- 로브에게 고객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건 참으로 파렴치한 짓이죠. 나도 그렇다는 건 잘 압니다. 하지만 그 무렵 더그를 포기하는 것 외에는 달리 길이 없다는 게 명백했거든요. 그러나 홀은 한센을 버려두고 내려가려 들지 않았다.
- 오전이 되어 구조팀이 올라갔을 때 피셔는 가망이 없어 그대로 두고 타이완 고는 데려왔다.
- 홀을 구조하기 위하여 두 사람이 올라갔으나 최소한 8-9시간이 소요됨. 설혹 구조하더라도 밤이되어 내려오기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홀에 대한 충직한 믿음 가진 두 명이 악조건 속에서도 출발했으나 되돌아 옴 => 그로부터 12일 후사우스 서미트 얕은 얼음구덩이에 모로 누운 홀을 발견했다. 그의 상체는 바람에 날린 눈으로 덮여 있었다.
18장 조난자를 버려두고 오른 사람들
- 5월10일 동북능선 해발 8,702미터
- 인도 라다크 지방 출신 3명이 악화된 기상 상태하에서 티벳쪽에서 에베레스트 등정했다고 자신들 캠프에 연락하였고 인도 수상에게까지 자랑스럽게 전했다. 하지만 정상을 착각한 것이었고 이들은 조난을 당하였다. 또 다른 일본팀 2명과 셰르파 3명이 등정을 진행중, 이들 조난객을 만나지만 그를 돕다가는 정상에 오르지 못하게 될까 봐 그를 버려두고 내처 올라갔다. ~ 제2스텝 꼭대기를 넘어서자 라다크 사람 2명을 만나는데 "죽기 일보 직전이었고 다른 한사람은 눈밭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 일본인들은 그들에게 말 한 마디 걸지 않았고 물이나 음식, 산소통도 건네주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내처 나아가다 수직으로 50미터쯤 올라간 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산소통을 새것으로 교환했다"
- 일본인 왈: 그 사람들은 우리하고는 안면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말도 걸지 않았고. 그들은 고산병 증세가 심해 목숨이 위태로와 보이더군요. "우리는 너무나 피로해서 도와줄 수가 없었어요. 8,000미터 이상되는 곳에서 도덕적인 원칙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 이들 일본인들은 오전 11시45분에 강풍이 몰아치는 정상에 올랐다. 하산길에 다시 인도인 2명을 만났을 때 한명은 아직 살아 있기는 했으나 고정 밧줄에 뒤엉켜 꼼짝하지 못했고, 일본인 팀의 셰르파가 밧줄에서 풀어내 주기만 하고서는 계속 능선을 따라 내려갔다.
- 그 이레 뒤, 인도팀은 2명과 셰르파 3명이 동료들의 시신을 발견하였고 시신을 현장에 그대로 눕혀둔 채 계속 전진해 오전 7시40분에 정상에 도착하였다.
19장 벡 웨더스의 기적적인 생환
- 5월11일 오전 7시30분 사우스 콜 해발 7,925미터
- 벡과 야스코는 얼굴과 상반신은 눈으로 덮이고 팔다리만 밖으로 나와 있었다. 얼굴에서 얼음 껍질을 떼어내자 놀랍게도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다. 거의 죽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 베테랑 셰르파 락파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벡과 야스코를 제자리에 그대로 놔두라고 권했다. 설사 그들이 제4캠프까지 가는 동안에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베이스 캠프에 이르기 전에 죽을게 분명했고, 괜스레 그들을 구하려 들었다가는 사우스 콜에 있는 다른 대원들의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할 우려가 있었다. 콜에 있는 대원들 대부분은 몹시 지치고 약해져 제 자신 하나만을 돌보기에도 벅찬 상태였으니까.
=> 벡과 야스코는 자연의 필연적인 흐름에 맡기고 약간만 도와주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팀의 자원을 아끼자. 그것은 비상시 우선 순위결정의 고전적인 예였다.
- 하지만, 벡은 나중 스스로 일어나 기적적으로 캠프로 돌아왔다. 그는 두 시간 동안이나 도와달랐고 외쳤지만 폭풍이 그의 외침을 삼켜버렸다. 저자가 우연히 그의 텐트를 찾아갔을 때 무너진 텐트 바닥에 누워 와들와들 떨고 있었다.
20장 이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 5월12일 오전 9시45분 제네바 스퍼 해발 7,894미터
- 벡과 타이완 고를 헬기로 카트만두 이송
21장 끝나지 않은 비극
- 5월13일 에베레스트 베이스 캠프 해발 5,364미터
- 등산은 본질적으로 파멸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매혹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매혹적이라는 확고한신념을 갖고 있었다.
- 아마 지나친 자심감이 그 참사의 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홀은 등반 능력을 제대로 갖춘 산악인들을 이끌고 에베레스트를 오르내리는데 익숙해져 있어 약간 자만하지 않았나 싶다.
- 홀은 그 해 전까지만해도 줄곧 예외적이라 할 만큼 좋은 날씨만 만났으며 그것은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 시간은 날씨 못지않게 그 참사와 많은 관련을 갖고 있다. 시간을 무시한 건 좀처럼 변명하기 어려운 중대한 과오일 것이다. 고정밧줄을 설치하는 일이 지체된 건 사전에 미리 대비해서 충분히 예방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또 사전에 정해진 돌아서는 시간을 무시한 것 역시 돌이킬 수 없는 과오였다.
- 돌아서는 시간이 연장된 데는 피셔와 홀의 경쟁심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1921년에서 1996년 5월까지 총인원 630명이 정상을 밟았는데 그 중 144명이 사망했으니 대략 정상을 정복한 4명에 한명꼴로 사망한 셈이다. 그런데 지난 봄에는 정상을 밟은 총인원이 84명이고 사망자 12명이니 일곱 명에 한명 꼴로 사망한 셈이다. 이런 역사적인 기준으로 비춰볼 때 1996년은 평균적인 해보다 훨씬 더 안전한 해였다고 볼 수 있다.
- 우리 동료 네명이 죽은 건 로브 홀의 시스템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실 그 누구의 시스템도 그의 것보다 더 낫지 않았다) 에베레스트에서는 본질적으로 모든 시스템이 철저히 붕괴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 이러한 사고를 목격하였던 남아프리카 팀의 헤로드는 오후 5시 직후에야 정상에 올랐고 캠프와 교신하였지만 결국 그는 다음날까지도 아무런 연락이 었었고 결국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 시즌의 열두번째 사망자로.
교보문고 책소개
에베레스트에서 조난당한 18명의 남녀가 희박한 공기 속에서 벌인 자신과의 투쟁!
잡지 [아웃사이더]의 기자였던 저자는 상업화되어 가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취재하기 위해 1996년 5월 10일, 로브 홀이 이끄는 최고 수준의 가이드 등반대 '어드벤처 컨설턴트'에 참여하여 에베레스트의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18명의 남녀로 이루어진 등반대는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무사히 올라갔다.
그러나 한조각의 엷은 구름이 정상을 덮으면서 악몽이 시작됐다. 그리고 결국 12명은 에베레스트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살아남은 저자는 에베레스트에서의 비극의 순간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체험뿐 아니라, 생존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때 그곳에서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재구성해내고 있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존 크라카우어
목차
1장 정상에서
2장 가장 높은 꿈
3장 낯선 사람들과 한 팀이 되어
4장 여신의 발치로 다가가다
5장 베이스 캠프 도착
6장 얼음 궁전으로의 첫나들이
7장 사고의 예감
8장 셰르파들과 백만장자
9장 제3캠프 도전 실패
10장 준비 완료
11장 첫 번째 죽음을 등지고 정상으로
12장 쌓여간 작은 잘못들
13장 반환점
14장 재난의 서막
15장 악몽의 사우스 콜
16장 믿을 수 없는 착각
17장 저 위에 그가 아직 살아 있다
18장 조난자를 버려두고 오른 사람들
19장 벡 웨더스의 기적적인 생환
20장 이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
21장 끝나지 않은 비극
22장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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