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장영희교수 영미문학

암흑의 오지

클리오56 2008. 7. 3. 11:09
  • [문학의 숲, 고전의 바다] 암흑의 오지
    • 무심히 신문을 뒤적이다가 충격적인 사진을 보았다. 마치 고기잡이에 쓰는 것과 흡사한 커다란 그물로 사람을 잡고 있는 사진이었다. 기사 내용인즉슨,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불법체류 외국인을 단속하기 위해 ‘그물총’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압축된 공기를 이용해 쏘면 사방 10m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물을 씌워 붙잡을 수 있는 발사 장치라고 했다. 그래서 마치 짐승을 포획하듯이 사람을 그물을 뒤집어 씌워 꼼짝 못하게 해서 잡는다는 것이다.

      참으로 할 말을 잃는다. 도대체 인간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가. 그러니까 또 생각나는 게 있다. 베트남 사람들이 사용하는 한국어교본은 “나도 인간이에요, 때리지 마세요”를 한국에서 일할 때 꼭 알아두어야 할 관용표현으로 가르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 사는 친구의 말을 빌리면, 현지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야반도주하는 고용인들 중 태반이 한국사람들이라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눈만 뜨면 떠드는 ‘세계화’는 실상 자존심도 오기도 없는 ‘강국화’일 뿐, 힘없고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짐승, 버러지만큼도 취급하지 않는 것이 진정 ‘세계화’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불과 30여년 전만 해도 우리 부모 형제들도 바로 지금 우리가 인간취급도 안 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그때 간호사로 광부로 낯선 나라에 가서 고된 노동으로 고향에 부친 달러는 겨우 우리가 인간과 짐승도 구별 못하는 ‘부자’가 되는 데 일조했을 뿐인가.

    • ‘지옥의 묵시록’이라는 제목으로 코폴라 감독의 영화로 만들어졌던 조지프 콘라드의 ‘암흑의 오지’(Heart of Darkness:1899)는 바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에 관한 주제를 다룬 소설이다. 선원 말로우는 아프리카 상아를 수집하는 회사의 오지출장소 소장 커르츠를 귀환시키는 임무를 맡아 배를 타고 콩고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말로우는 가는 곳마다 백인들로부터 커르츠에 대한 칭송을 듣는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그의 적까지도 ‘인간애와 과학, 그리고 진보 정신의 사절’로 평가하는 커르츠에 관한 말로우의 호기심은 점차 커간다. 문명을 선도하는 백인으로서 원주민을 교화, 개선해야 한다는 위대한 명분을 주창하며 암흑의 오지 콩고로 떠난 커르츠가 그곳에서 무엇을 이룩하고 어떻게 원주민을 구원했는지 말로우는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막상 현지에 도착하니 상황은 말로우가 상상했던 것과 판이했다. 커르츠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람이었다. 문명의 계율을 벗어난 ‘암흑의 오지’에서 그는 온갖 무자비한 수단을 다하여 상아를 긁어모으고, 총으로 제압한 원주민들로부터 살아 있는 신으로 숭배받고, 불복종하는 원주민들을 죽여서 목을 잘라 장대에 꽂아 울타리를 치는 등 악의 화신이었다. 커르츠는 여전히 자신의 위대한 명분을 웅변으로 떠들며 ‘야만인들의 씨를 말려라’라고 적혀 있는 문서를 말로우에게 준다.

      그러나 커르츠는 콩고강 귀항선상에서 “정말 끔찍하다, 끔찍해”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열병으로 죽는다(영미문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언이다). 문명의 가면을 벗은 인간의 악마성과 19세기 제국주의, 인종차별의 광기를 상징하는 인물 커르츠는 죽음의 순간에야 자신의 삶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에 다다른 것이다. 그래서 ‘암흑의 오지’는 결국 인간의 내면탐구 여행이며 우리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악의 그림자에 대한 경고이다.

      시인 박노해는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노래했다. 맞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는 사람만이 절망이기도 하다.

      장영희·서강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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