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과 정맥/백두대간 (완료)

백두대간 38/39 구간: 화방재 - 함백산 - 건의령 (2008.03.15)

클리오56 2008. 3. 16. 19:38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 산행일자: 2008.03.15

** 산행지: 백두대간 38/39 구간: 화방재 - 함백산 - 매봉산 - 건의령

** 산행로: 화방재(950M) - 수리봉(1,214M) - 만항재(1.330M) - 함백산(1,572.9M) - 은대봉(1,442.3M) - 싸리재(1,268M) - 금대봉(1,418.1M) - 비단봉(1.279M) - 매봉산(1,303.1M) - 피재(920M) - 건의령(840M) - 상사미교

** 산행거리: 28.35Km (마루금 27.85Km + 연장 0.5Km)

** 산행시간: 총620분 (산행 555분 + 중식 및 휴식 65분)

** 산정산악회(김)

 

23:20 양재출발 (화방재 도착 03:30)

03:40 산행들머리 화방재 출발

04:04 수리봉

04:55 만항재

05:49 함백산 (휴식 5분)

06:44 안부 2쉼터

07:20 은대봉 (조식 10분)

07:42 싸리재

08:08 금대봉 (휴식 5분)

08:45 휴식 (10분)

09:26 비단봉 (휴식 5분)

10:33 매봉산 (휴식 5분)

11:22 피재 (휴식 20분)

13:01 휴식 (5분)

13:48 건의령

14:00 산행날머리 상사미교

15:00 상사미교 출발 (양재 도착 19:00)

 

 

 

오늘은 38구간과 39구간의 2개구간을 한번에 산행하는데, 지금까지의 대간산행 중 최장구간이 되는 셈이다. 한계령에서 공룡능선을 통과하여 신흥사 주차장에 도달하던 50구간이 23Km, 12시간, 성삼재에서 세석까지의 지리산 종주가 23Km, 11시간, 그리고 최근의 구룡령-조침령 21Km, 11시간 소요되었는데, 이번의 화방재-피재-건의령은 28Km, 10시간 이상인데 눈을 감안하면 2-3시간이 추가될 수 도 있으니, 그만큼 산행의 긴장도가 높아진다.  

 

양재를 출발한 이동캠프는 중도에 제천에서 휴식을 가진 후 03:30에 화방재 도착하였다.  음력 8일이라 노란 상현달이 하늘에 걸려있고, 별은 촘촘하게 무수히 빛난다. 화방재 유래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월간 산(2006.3월호)에서 옮겨본다.

 

화방재는 어평재라고도 불리는데, 고갯마루 서쪽 기슭의 어평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됐다 한다. 태백산신이 된 단종의 혼령이 어평에 이르러 ‘이곳부터 내 땅(御坪)’이라 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한편 <태백의 지명유래>라는 책에는 고갯마루 기슭에 진달래와 철쭉이 많아서 화방재라 불렸다고 적고 있고, 혹자는 ‘꽃방석고개’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산행기를 남긴 고 김장오 선생의 글에는 일제 강점기 때 설치된 ‘방화선’의 한 부분이어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쓰고 있다. 나는 김장오 선생쪽에 더 신뢰가 간다." 

 

10여분 채비후 곧장 산행에 돌입하는데, 화방재 해발 950M에서 오름길이 가파르다. 초반부터 헉헉거리며 지그재그로 오르는데 남사면이라 눈은 많이 보이질 않는다. 25분여만에 한 봉우리 올라서니 수리봉이라, 해발 1,214M이고 제법 큰 정상석이 세워져있다. 랜턴 불빛아래 모처럼 단체사진을 찍는다. 

 

이제부터 함백산까지 5Km 거리동안 서서히 고도를 높여가지만 그래도 수차례나 봉우리를 넘고넘어야한다. 밤길임에도 다행히 험한 길이 아니라 눈길을 잘 나아간다. 만항재까지 3Km의 거리를 50여분만에 주파할 정도이다. 해발 1,330M의 만항재는 포장도로가 지나는 최고의 높은 고개라고 한다. 선두를 따라가며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누빈다. 멀리 중계시설에서 적색등을 점멸하던 함백산도 점점 근접하면서 또한 심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오랜만에 돌길을 오른다. 함백산의 옛이름이 대박산(大朴山)이라는데, 과거 여기서 대박을 이루었으니 탄광촌의 불야성이었고, 지금은 카지노의 잭팟으로 그 꿈이 실현되다니 작명은 예사로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해발 1,572.9M의 함백은 예사롭지 않았으니, 바위덩어리가 쌓인듯 하고 바람이 매섭고 기온은 차다. 곧 다가올 여명과 일출을 기대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는 너무 멀고 5분여 머물다가 산행을 이어간다. 

 

함백산

 

함백산에서 중함백으로 내리막이 이어지고 북사면이라 눈이 많고 결빙구간의 위험 때문에 아이젠을 부착하였다. 주목지대를 지나지만 어둠이라 잘 살필 수 없었고, 중함백에 도달하니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아직까지 일출을 기다릴순 없고, 앞으로 전개되는 3개의 쉼터에서 조망이 가능하겠지 하며 산행을 계속 이어간다. 06:25분경 일출이 진행되고 대원들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무박산행에서도 일출광경을 볼수있는게 드물다며 모두 환호한다. 나뭇가지 사이로 터져나오는 붉은 햇살에 과연 함백산이 크게 밝은 산임을 되새긴다. 

 

중함백산에서의 여명

 

일출의 기운으로 은대봉을 치고 오른다. 은대봉, 금대봉, 비단봉 등 보석같은 이름들이 펼쳐지니, 신선이 금도끼, 은도끼를 선량한 나뭇꾼에게 선물하였는지 산 자체도 아름다와 야생화가 가득하다고 한다. 은대봉은 상함백으로도 불리는데, 해발이 1,442.3M. 시간은 07:20이니 평소같으면 아침 식사시간인데, 산을 타고 있으니 제법 시장하여 간단히 떡을 들었다. 평소보다 식수도 많이 준비하였으므로 물도 양껏 마셨다.

 

든든한 기운으로 내리막길을 달려 싸리재 도착하였다. 여기 이정목이나 표시석은 모두 두문동재라고 부르는데, 월간산의 코멘트를 옮겨본다. "본디 두문동은 북녘 땅 개풍군 광덕산 자락에 있던 마을로, 72명의 고려 문신과 48명의 무신들이 조선에 반대하여 은거하던 곳이다. 이들은 조선조의 갖은 회유와 협박에도 ‘두문불출’했고, 인내의 한계에 이른 이성계가 불을 질렀다. 그 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흘러들어온 곳이 바로 고한의 두문동이라 한다."

 

38구간은 싸리재에서 끝이나고 이제 39구간인데, 금대봉 오름길로 시작된다. 이 지역은 야생화 보호지역이라 등로길 좌우로 금빛줄을 쳐놓고 출입금지 팻말이 이어진다. 금대봉 정상엔 양강발원봉이라고 막대가 꽂혀있는데, 한강과 낙동강이 여기서 발원된다는 의미이다. 한강 발원지인 검룡소는 북동쪽에 있지만, 낙동강은 그러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좀 더 진행하니 선두가 아침식사중이라 다시 주저않아 과일 간식을 들며 휴식을 취하였다.

 

쑤아밭령은 모른채 지나쳤는데, 그 유래는 재밌어 다시 옮겨본다. "이 특이한 이름의 내력은 한자로 적어보면 쉽게 이해된다. 水禾田(수화전). 벼를 키우는 밭이라는 얘기다. 산비탈에 간신히 밭을 일구던 곳에서 논작물인 벼를 키우게 된 일은 동네 이름으로 삼을 만큼 기념할 만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제  한봉우리 우뚝하니 바로 비단봉이었다. 전망바위에서 조망하니 함백산에서 시작된 마루금이 큰 반원을 그리듯 이어져왔고, 태백산이 그 너머 뚜렸하다. 싸리재 구불한 도로가 보이고 태백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마지막 우뚝한 봉우리가 남았으니 매봉산이다. 고냉지 채소밭을 통과하는지라 높은 줄도 먼줄도 몰랐는데 실제 접근하기는 그렇게 만만치 않으니, 아마도 쉽다는 선입견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와 풍차 등 이국적 풍경에 매료되지만, 이 대간길에 저런 시설물이 말이되냐며, 게다가 일본 자본이 유입된 회사의 시설물이니 새로운 쇠말뚝을 합법적으로 박은 셈이라며 흥분하기도 한다. 매봉산 정상에서의 조망도 탁월하고, 정상석엔 매봉산, 또 한면엔 천의봉이라고 새겨두었다.

 

매봉산 (풍력발전기, 고냉지채소밭)

 

매봉산부터는 이제 내림길인데 피재를 거쳐 건의령까지 이어진다. 눈이 녹아 질척거리던 등로에서 기어코 일을 내어 크게 미끌어졌는데 뒤로 돌면서 두 손으로 바닥을 강하게 잡아 멈췄다. 덕분에 장갑과 옷자락 소매는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지만, 그래도 귀가해서 보니 무릅이 약간 상처는 입었다. 매봉산 자락에 낙동정맥 분기점이 있고 그 기념석이 놓여져있다. 정맥에 도전하면 여길 다시 들러는구나 생각했다.

 

낙동정맥 갈림길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 걸으며 피재, 즉 삼수령에 도착한다. 삼수령 정자에서 쉬려고 오르는데, 입구에서 지프차에 한 남자가 타고있다. 조금 후 대장전화가 오니, 혹시 산불감시요원이 아닐까하고 더 이상 오르지말고 정자에서 쉬고 있으라한다. 감시요원이라면 제지를 했을텐데 그런 액션은 없었고, 대장 올때까지 20여분 긴 휴식을 취하였다. 삼수령은 한강, 낙동강 그리고 오십천의 분수령이기에 이름지어졌고, 피재라고도 불리는 것은 삼척사람들이 난리를 피해 넘어오던 고개에서 유래한다.

 

삼수령

 

해발 920M 피재에서 해발 840M 건의령은 6.5Km라 하는데, 건의령에 세워진 이정목엔 6Km로 표시되어 있고, 산악회가 나누어준 고도표엔 5Km가 채되지 않는 듯하다. 높은 봉우리도 없이 고만고만하게 진행되지만, 이미 크게 힘쓴 후 마지막 구간이라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들어한다. 알바를 겪은 대원들 포함하여 결과적으로 7명이나 피재에서 중간탈출하였으니 그 만큼 심리적 난코스이다. 특히 마지막 500M, 그 중에서도 마지막 낮은 바위 봉우리 조차 어찌나 힘이 들었는지 모든 대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이었다. 연장구간 500M 포함하여 버스에 도착하니 오후 2시라, 10시간하고도 20분을 산행하였다. 미역국으로 허기와 지친 몸을 채웠다. 검룡소에서 흘러온다는 맑은 개울 물에 세수하고... 선두와 후미의 시간차가 크지않아 상사미교를 오후 3시에 출발하여 7시 양재도착하니 이르게 마친 산행인 셈이다. 

 

상사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