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 및 소감
작년 8월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3부를 채 읽지 못했다. 며칠 전 '이교수의 책과 사랑' 유튜브에서 이현정 교수가 본서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곤 다시 대출받아 3부를 끝냈다.
소설가 김훈은 1948년 생이시니 지금 77세이고, 허송세월은 작년 2024년 출간이니 당시 76세때 였다. 그 서문의 글이 '늙기의 즐거움'인데 지난 50년간 마셨던 술을 끊게 되고, 45년간 즐겼던 담배 또한 멀리하게되는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나의 경우 담배는 절연한지 꽤 오래되었지만 술은 횟수는 많지 않지만 피하지 않고 조금씩 마시기는 한다.
허송세월의 제목을 지닌 수필이 있어 이 책의 타이틀이 되었다. 노년이 되기 전 열심히 일할 때 조차 지금에는 허송세월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정작 노년이 된 지금 공원에서 햇볕을 쬐는 시간의 진짜 허송세월이 오히려 이 시간에 내 몸과 마음이 빛과 볕으로 가득하고, 노을의 빛 속에서 육신의 관능을 느낀다 하니 이 보다 더한 반전이 어디있겠냐? 하지만 내같은 범인이 그렇게 느끼기에는 수양이 부족하고 감성도 충분하지 않다. 다만, 접근해보려는 노력만 가득하다.
김훈 작가가 '적대하는 언어들'에서 상당히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할 줄 몰랐다. 남쪽을 보고 수탈적 천민자본주의라니.... 북의 3대 세습을 비난하면서 상응하는 비난을 남에게도 하려는 의도에서 억지를 부리는 듯하다. 70년의 세월이 남과 북을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뻔히 내다보이는데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니 안타깝다. 김훈 작가 정도가 이러할지니 북과 중국, 러시아 같은 불량국가를 따르려는 좌파 주사파 또라이들은 얼마나 왜곡시켜 남측을 비난할텐가. 아무튼 문재인 같이 대통령까지 지낸 놈이 남에서 활동한 간첩 신용복을 제일 존경하는 놈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할 정도이니.
다산 정약용이 천주교를 배교하고 상소문까지 올려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이를 넘어 주변 천주교도들을 고발하고 천주교도들을 색출하는 방법까지 제시했다니 놀랍다. 하지만 김훈은 이조차 포용하려는 마음을 보여준다. 위키백과를 보니
정약용이 죽기 전 자녀들에게 신신당부로 이른 말은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텨라"는 것이었다. 요즘 부동산을 보면 대단한 혜안이라고 해야하나.... 오랜시간 귀양 살다보니 지방의 열악함을 알았기 때문인가. 또 다른 비판 하나는 그렇게 많은 저술을 하고 편지를 쓰고했는데 한글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실학 운운하면서 겉멋만 보여준듯하다. 장약용이 졸한 시기가 1836년. 그 보다 5년 전 1831년 찰스 다윈이 22세, 선장 피츠로이의 비글호에 승선하여 세계 일주를 하는데 소요된 시간이 4년 10개월, 그 노고로 종의 기원을 마련하는 토대가 되었다.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었는데... 조선의 인물들은 완전 우물안 개구리였다.
아무튼 김훈 작가는 마음속의 영원한 청춘으로 찰스 다윈, 정약전, 정약용, 이벽, 이승훈, 황사영, 안중근을 열거하고 있다.
출판사 서평은 다음 글로 마무리한다. 늙어 가는 일의 즐거움을 논하는 글로 운을 떼어, 도로변의 투명 벽에 부딪쳐 죽는 새들과 철모를 남기고 간 옛 병사를 향한 헌사로 닫는 45편의 산문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운명’에 포박되어 있던 가엾은 중생의 말에 바치는 송가다. 꽃과 새와 밥과 꿈에 뒤엉킨 이 시대의 기쁨과 슬픔을 애달프면서도 때로는 웃음기 있게, 명료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 언어의 짜임이 눈부시다.
앞에: 늙기의 즐거움
7쪽: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액정화면 속에서 죽음은 몇 줄의 정보로 변해 있다. 무한공간을 날아온 이 정보는 발신과 수신 사이에 시차가 없다.
8쪽: 빈소에 흰 돈봉투를 들고 가서 얼굴을 내밀어야 하는 일처럼 죽음을 루틴으로 여기는 태도는 종교적으로는 경건하지 못하지만, 깨닫지 못한 중생의 실무이행으로서는 정당하다.
1부 새를 기다리며
말년
* 작가의 재미있는 생활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었다. 휴가 군인이 귀대하는 곳에서 애인들의 키스 세례, 먹자골목에서의 젊은 이들의 저녁 식사자리, 고3 수능시험 장면... 이런 행사들을 보며 치열하고 열정적인 젊음을 느낀다. 어느 유튜브에서 작가는 초등 입학식 장면에서도 동일한 필링을 피력한 바있다. 나도 그런날 현장에 한번 가보자~~ 가장 치열한 삶의 현장~
40쪽: 이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모든 키스는 첫 키스다. 주말이면 나는 버스 정류장 앞 술집에 앉아서 이 귀대 키스의 대열을 관찰하는데, 이때 나의 정신은 뿌옇지 않다. 삶이 저토록 빛나므로 나의 마음은 명석하다.
41쪽: 이 동네 먹자골목에는 저녁마다 하루에 노동을 마친 젊은이들이 몰려온다. 식당의 밥값은 1인분에 5천~6천원 정도인데 반찬 가짓수는 많지 않지만 양이 많고 무한 리필이다...... 나처럼 혼자 먹으러 온 사람은 벽 앞으로 설치된 1인용 자리에 앉아야 한다.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혼밥으로 저녁을 먹을 때, 삶의 기쁨과 슬픔은 영롱하다.
42쪽: 나는 너무 가까이 가기가 쑥스러워서 길 건너 쪽에서 이 가엾은 아이들, 신나는 아이들을 구경했다. 늘 보던 것들이 처음 보는 듯, 문득 보이는 이 보임은 너무나 늦고 반갑다. 이날 시험은 아침 8시 40분에 시작되어서 저녁 5시 40분에 끝났다. The longest day in history! 길고 잔혹한 하루였다.
허송세월
43쪽: 이 부분들은 서울대 이현정 교수의 '이교수의 책과 사람' 유튜브에서 옮겼다.


43쪽: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 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 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나와 해 사이에 걸리적거리는 것이 없어서 해에서 폭발하는 빛과 볕이 바로 내 몸에 닿는다. 그때 내 몸의 모든 세포가 깨어나고 숨구멍이 열린다. 빛과 볕이 내 창자와 실핏줄의 먼 구석에까지 닿아서 음습한 오지가 환해지고 공해에 찌든 간과 허파가 기지개를 켠다.
48쪽: 시간을 시각과 시각 사이의 흐름이라고 억지로 말하는 말을 들을 때 나는 말로부터 소외되지만, 허송세월하는 저녁에 노을를 들여다보면 나는 시간의 질감을 내 살아있는 육신의 관능으로 느낄 수 있고, 한 개의 미립자처럼 또는 한 줄기 파장처럼 시간의 흐름 위에 떠서 흘러가는 내 생명을 느낄 수 있다. 깊이 내려앉은 해가 빛과 색을 모두 거두어들이고 젊은 어머니들이 노는 아이들을 핸드폰으로 불러들이면 나는 집으로 돌아간다. 또 하루가 노을 속으로 사위어 간다.
재의 가벼움
51쪽: 화장장에 다녀온 날 이후로 저녁마다 삶의 무거움과 죽음의 가벼움을 생각했다. 죽음이 저토록 가벼우므로 나는 이 가벼움으로 남은 삶의 하중을 버텨낼 수 있다. 뼛가루 한 되 반은 인간 육체의 마지막 잔해로서 많지도 적지도 않고, 적당해 보였다. 죽음은 날이 저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은 자연 현상으로 애도할 만한 사태가 아니었다.
54쪽: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 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시간과 강물
92쪽: 한강은 물이 가득 차서 출렁거리며 흘러가고 있었다. 강은 힘차고 거침없었다. 아버지는 상류 쪽을 바라보았고, 멀어서 흐려지는 하류 쪽을 바라보았다. 한참 후에 아버지는 말했다. "물을 잘 봐라. 흐르는 물을 보면 다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느낀다. 물이 흘러가는구나." 나는 좀 더 자란 후에야 아버지의 말에 담긴 고통과 희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흐름을 잇대어 가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의 새로움을 말한 것이었다...... '시간이 희망의 토대'라는 말에는 잿더미가 되고 가루가 되어버린 시대의 폐허에 맨몸뚱이로 부딪혀 나가야 하는 인간의 고통이 스며 있었다. 아버지는 시간에 대한 희망으로 폐허의 슬픔과 절망을 감당하고 있었고, 흐르는 강물이 새로운 시간의 흐름을 버지의 마음 속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적대하는 언어들
104~110쪽: 이 부분들은 서울대 이현정 교수의 '이교수의 책과 사람' 유튜브에서 옮겼다.



















109쪽: 통일과 평화라는 지향을 생각할 때, 종전 후 70년의 세월은 헛되이 흘러갔다. 그 70년 동안 북쪽은 3대 세슴의 왕조 체제아래서 기아 속의 핵강국이 되었고 남쪽은 수탈적 천민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경제대국이 되었다.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111쪽: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45분, 세월호 선장 이준석(당시 69세)은 59도 이상 기울어진 세월호를 탈출해서 해경 123정으로 건너갔다. 선장 이준석은 팬티 차림이었다. 기관실 조타실의 간부 선원들도 피구조자의 행색을 하고 123정으로 건너 갔다. 기울어진 배 안에는 승객 400 여명이 남아 있었다. 이 시간에 선내 방송은 "현 위치에서 안전하게 기다리고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승객들에게 거듭 외쳤다.
122쪽: '조국 근대화' 이후 산업과 생활의 현장에 지층처럼 쌓여 있는 주검들은 모두 X래싱 정신의 결여, 체질이 되고 생리가 된 무신경,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생명을 업시여기는 마음, 욕망과 목표를 향한 필사의 돌격에서 비롯되었다.
2부 글과 밥
걷기예찬
132쪽: 걸어가는 몸 속에서 시간과 공간은 연료처럼 사용되고, 다리로 땅을 밀어서 살아 있는 몸은 앞으로 나아간다. 정신성은 몸과 함께 간다. 그때, 세상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오고 길은 道쪽으로 넓어지는데, 이 걷기는 생로병사의 모습을 닮아 있는 듯하다.
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143쪽: 쓰이기를 원하는 것들과 남에게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속에서 부글거리는 날에는 더욱 문장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 이런 날에는 형용사와 부사가 끼어들고, 등장인물의 말투가 들뜨고 단정적 종결어미가 글 쓰는 자를 제압하려고 덤벼든다. 글이 잘나가서 원고 매수가 늘어나고 원고료가 많아지는 날이 위험하다. 이런 날 하루의 일을 마치고 공원에 놀러 나가기 전에 글 속에서 뜬 말들을 골라내고 기름기를 걷어 낼 때에는 남이 볼까 무섭다.
노래는 산하에 스미는구나
151쪽: 파주 금산리의 노래는 보현산 앞에서 합치는 세 갈래 물줄기(한강물, 임진강물, 서해의 밀물)의 품격을 닮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도 산천을 닮는 모양이다. 정치 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사람들의 노래 속에서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 소를 몰 때 우회전은 '이라', 좌회전은 '어뎌', 후진은 '무러', 정지는 '워', 발 들어라는 '굽어'라고 명령하는데, 금산리 농부들은 이 소리들도 노래로 부른다.
박물관의 똥바가지
179쪽: 나는 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므로 우선 밥을 먹는 일에 관련된 유물들을 들여다보았는데, 너무 많아서 다 볼 수는 없었다. 절구, 맷돌, 항아리, 젓독, 김장독, 장독, 술독, 밥그릇, 국그릇, 주전자, 접시, 쟁반, 냄비, 뚝배기, 보시기, 탕깨(탕기)들이 끝이 없었다. 한없는 물건들은 제가끔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표정들의 일관된 질감은 사람의 일상 속에서 필수불가결한 것들이 지니는 단순성과 현실성이었다.
184쪽: 똥장군은 액체상태의 똥물을 운반하는 도구인데, 주둥이가 작아서 지게로 나를 때 쏟아지지 않는다. 새갓통은 똥물을 담아서 작물에 뿌리는 주전자인데, 한 포기 마다 정확히 똥물을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도록에 소개된 똥바가지의 원통에는 'FACE PIECE SIZE M'이라는 영문이 새겨져 있다. 이 영문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으나, 'SIZE M'이라는 단어로 봐서 물건을 담는 용기였던 것 같다. 아마도 이 똥바가지는 미군이 남한에 들아온 1945년 이후에 제작된 것이지 싶다. 이 똥바가지는 연륜이 오래되지도 않고 아름다운 물건도 아니지만, 생활 속에서 굴러다니던 쓰레기를 이용해서 필수적 생업 연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박물관에서 높은 대접을 받고 있다. 똥을 푸는 행위는 집 안에서 똥을 제거해서 위생 문제를 해결하고, 작물에 거름을 주어 생산량을 증대시키는 이중의 의미을 갖는다. 이것은 중대한 사업이다. 나는 이 똥바가지를 귀하게 여긴다. 이 똥바가지는 유물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펄펄 살아있던 活物이다.
구멍
193쪽: 가야토기에는 그리스 항아리의 서사구조가 없고 그림이 없다. 그 자리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구멍 안쪽은 멀어 보인다. 거기는 대낮이 아니고 밤중도 아닌 어스름이다. 그 시간의 질감은 초저녁이나 새벽과 같아서 밀도가 낮고 헐겁다. 이 구멍으로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를 가야의 옹기장이들은 말하지 않고 쓰지도 않고 죽었지만, 나는 이 구멍의 안쪽에서 새로운 시간의 싹들이 발아돼 있음을 느낀다. ..... 가야토기의 이 구멍을 들여다보면서 유습된 억압과 이념의 짧은 목줄에 묶여서 헐떡이는 이 철벽같은 현실에 구멍을 뚫을 일을 생각하면 마음의 구멍이 막힌다.
키스를 논함
210쪽: 그 (정치구호) 현수막 아래서 젊은이들이 키스를 했다. 젊은이들은 건널목에서 키스하고, 신호가 바뀌자 길을 건너갔다. 이 썩어빠진 (정치구호) 현수막 아래서 키스하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나는 이 나라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3부 푸르른 날들
청춘예찬
* 비글호는 1831년 12월27맇영국 플리머스 항 출항하여 남미남단 마젤란 해협~갈라파고스~뉴질랜드~호주~몰디브를 거쳐 1836년 10월2일 구환. 4년 10개월 항해, 선장 파츠로이(26세), 박물학자 찰스 다윈(22세) 승선. 이 자료와 경험이 종의 기원 바탕.
225쪽: 종의 기원 서문: 나는 種이라는 것은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며...... 소위 동일한 屬이라고 부르는 집단에 속해 있는 종들은 어떤 다른(대게는 멸절한) 종의 직계자손들이라는 점을 완전히 확신하고 있다. => 이 말은 개별적으로 창조된 생명의 존재를 명백히 부정하고 있다.
226쪽: 종의 기원 결론편: 아마도 지구에 살았던 모든 유기체는 처음으로 생명력을 가지게 된 어떤 하나의 원시형태로부터 유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 결론에서 다윈은 종의 기원을 생명의 기원에까지 밀어 올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미수에 그치고 있다.
227쪽: 종의 기원 마지막 문장: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돼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런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230쪽: 당쟁의 아수라 속에서 천주교인으로 모함을 받아 환로(宦路: 벼슬길)가 험란해지자 정약용은 1797년 임금에게 자명 소를 올려서 면직을 요청했다. 이 상소문에서 정약용은 그 '한권의 책'을 읽었고, 한때는 "마음속으로 좋아해서 사모했고 내용을 거론하며 남에게 자랑했습니다"라고 자백했다. 정약용은 이 상소문에서 천주교의 교리를 극언으로 비판하고 자신은 천주교를 이미 떠났다고 호소했다. 임금은 정약용의 진정성을 이해했으나 정약용과 젊은 그들은 죽음으로 내몰리는 참화를 피할 수 없었다.
형틀에 묶인 정약용은 천주교인들을 적극적으로 고발했다. 정약용은 이승훈과 조카 사위 황사영, 주문모 신부를 지목했고, 천주교인들을 효과적으로 색출해낼 수 있는 방안을 포도청에 조언했다. 정약용은 사형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234쪽: 청춘 시절의 그 '한 권의 책'은 두 형제의 마음속에서 늘 살아서 작동하고 있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 책이 두 형제의 배교, 배신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를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지 못한다.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의 자족하고 평화로운 삶을 흑산의 형에게 편지로 적어서 보내면서 그 말미에 섰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적은 없으며 이는 인성이 보디 본 뒤 열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이 열악함을 아름답게 여긴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여긴다. 두 형제는 국문장에서 있었던 치욕에 관해서는 평생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순교한 친형제 정약종의 죽음과 조카사위 황사영의 죽음에 관해서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침묵의 내면이 두렵다. 두 형제도 두려웠을 것이다.
238쪽: 안중근이 하나님께 간구한 것은 이토의 목숨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었다. 안중근은 의병부대를 지휘하던 시절에도 포로로 잡은 일본군 병사를 석방해 주었다. 살인은 그의 목적이 아니었지만, 이토는 약육강식하는 야만적 세상의 지배자이며 관리자였다.
나는 하느님이 안중근의 행동을 사전에 허락했을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후에 용납했으리라고 믿는다. 이토를 죽인 안중근의 행동은 기획과 실행과 처형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님의 틀 안에서 이뤄진 것이다. 안중근의 마지막 날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찰스 다윈, 정약전, 정약용, 이벽, 이승훈, 황사영, 안중근은 모두 내 마음속의 영원한 청춘이다.
264쪽: 〈농무〉가 보여 주는 울분과 소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표정은 맑고 선하다. 눈을 맞고 있는 그의 얼굴은 천진성의 바탕을 보여 준다. 이 순간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본질을 보여 준다. 무엇을 기필코 보아야 한다는 의도가 없다. 물러서 있는 카메라가 그 순간을 보았다. 그 순간이 보였다. 이날 눈송이는 굵었다. 사진 속의 신경림은 아마도 눈이 내리는 것이 좋아서 웃고 있는 것 같다.
** 농무(農舞)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아날로그는 영원하다
275쪽: 내가 지난해 12월 중순 대룡시장에서 가래떡을 사 먹으며 골목에 앉아있을 때, 인천 마전초등학교의 젊은 선생님이 6학년 아이들 삼십여 명을 데리고 이 시장에 와서 시장 가게 처마 밑의 제비칩을 보여주면서, 제비를 반가워하고 제비와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이날 시장에서 젊은 선생님과 아이들을 만난 일을 내 생의 큰 기쁨으로 꼽는다. 아름다운 마음을 깨닫는 것이 이처럼 쉬워서 나는 기뻤다.
279쪽: 피난민과 원주민들이 몸의 노동으로 세운 시장에서 황씨의 아날로그적 생업은 디지털 기술에 밀려서 소멸했고, 지금은 그 자리에 기념관이 들어서 있다. 이 허름한 기념관은 문명이 교차하는 과정의 슬픔과 고통을 기념하고 있다.
디지털은 모든 정보와 자료를 기호로 바꿈으로써 문명의 개벽을 이루었지만, 삶과 언어의 바탕은 기호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차례로 무너져 간 황씨의 생업(시계수리와 도장)과 그가 남긴 작업도구들은 불멸의 추억으로 인류의 근육에 각인되어 있다. 대룡시장은 아날로그의 시장이다. 시장상인들은 새로 날아올 제비를 기다리고 있다. 기다림과 그리움은 모두 아날로그의 사업이고, 디지털의 공간 속으로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여덞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283쪽: 법에 의해서 인간의 땅 위에 정의를 구현한다는 생각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정의롭겠지만, 이 세상의 많은 부분은 법의 테두리 밖에서 전개되고 있다. 나의 말은 아무런 철학도 이론도 세계관도 아니다. 이것은 날마다 이 법치국가의 일상생활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현실이며 루틴이다.내일도 모레도 이와 같고, 영원히 이와 같다.
이 불완전성은 세계의 본래 스스로 그러한 운명이다. 억겁의 세월이 흘러도 인간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정의 혹은 이념의 깃발을 들고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땅 위를 걸어다니는 자들은 어리석다. 이 세계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 불완전성을 해결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성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세계와 인간을 대하는 마음에서 겸손과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을 갖출 수 있다. 겸손과 조심스러움을 상실한 태도가 이 불완전한 세계위에 지옥을 완성한다. 이 지옥의 이름은 파시즘이다.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88~289쪽: 이 부분들은 서울대 이현정 교수의 '이교수의 책과 사람' 유튜브에서 옮겼다.




289쪽: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하는가, 말본새를 어찌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일은 인문주의의 토대일 것입니다. 말 앞에서의 경건함, 말을 검소히 사용하는 망설임, 혓바닥을 너무 빠르게 놀리지 않는 진중함, 사람 사는 동네를 걸어 다닐 때 어깨를 거들먹거리지 않는 걸음걸이가 인문주의에 중요한 외양 일 것입니다. 이것은 포즈가 아니라 본질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의 문명화를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장애물은 소통 불가능한 언어의 창궐입니다. 지금, 언어는 소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완성해 가고 있습니다. 욕망과 당파성으로 무장한 입들이 여러 고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무기화된 언어를 발포해서 공유지를 폭격하고 있습니다.
297쪽: 의견과 사실이 뒤섞여 있는 말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듣기의 헛갈림은 시작됩니다. 아마도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려는 충동은 인간의 언어의식 밑에 깔린 잠재욕망일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기의 어려움입니다.
당파성에 매몰된 사람들이 목전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이념적으로 인식함으로써 의견과 사실을 뒤섞고 모자이크해서 내놓은 말들은 이 시대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듣기의 괴로움입니다. 듣기의 괴로움과 말하기 어려움은 순환관계입니다.
이런 말들은 사회를 추동해 나가는 힘으로서의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수군거림과 와글거림을 번져가게 합니다.
근거 없고 쓸데없는 헛소리를 한자로는 화(譁)라고 씁니다. 온 세상에 말의 쓰레기들이 물 끓듯 들끓는 모습이 화비譁沸이고, 그런 세상의 이름은 화세(譁世)입니다.”
인생의 냄새
323쪽: 내 소년시절에 햇볕 냄새는 똥냄새와 맞먹을 만큼 지배적이고 보편적인 냄새였다. 똥냄새는 밥과의 순환고리에 묶여서 생로병사의 무게로 장엄했고, 햇볕 냄새는 먹을 것이 모자라는 헛헛함이나 어른들의 부부싸움, 숙제 조사와 시험, 매맞기와 벌서기의 고통이 없는 자유의 냄새였다.
============================================================================================









===========================================================================================
교보문고 책 소개
‘생활의 정서’를 파고드는 김훈의 산문 미학
저자(글) 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이자 소설가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해 영문과로 2년 만에 전과했으나 군 복무를 마친 뒤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다. 이후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으로 재직했다.
「한국일보」에 재직할 당시 1986년 5월부터 1989년 5월까지 3년간 박래부 기자와 함께 〈문학기행-명작의 무대〉를 연재했으며, 이때 연재한 기사를 묶어 『김훈-박래부의 문학기행』을 출간했다. 1994년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문학동네」에 발표하며 47세의 나이에 소설가로 데뷔했다. 2004년부터는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칼의 노래』를 출간한 뒤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같은 해 제32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으로 그는 평단과 독자에게서 호응을 얻으며 동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4년에는 「화장」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에는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2007년에는 장편소설 『남한산성』으로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 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기도 했다.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린 특유의 유려하면서도 간결한 문체의 산문으로도 크게 사랑받는 작가다.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기행을 묶은 『자전거여행』, 간명한 필치로 일상의 애환을 그린 『라면을 끓이며』 등이 그의 대표적인 산문집이다.
그 외에 장편소설 『하얼빈』, 『개』,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남한산성』, 『공터에서』, 『현의 노래』, 『강산무진』, 『흑산』 『공무도하』,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산문집 『연필로 쓰기』, 『풍경과 상처』 등을 펴냈다.
목차
- 앞에 늙기의 즐거움 7
1부
새를 기다리며
일산 호수공원의 설날 31
말년 34
허송세월 43
재의 가벼움 49
보내기와 가기 55
새 1 - 새가 왔다 63
새 2 - 새가 갔다 69
다녀온 이야기 75
꽃과 과일 83
눈에 힘 빼라 89
시간과 강물 91
태풍전망대에서 96
적대하는 언어들 104
‘세월호’는 지금도 기울어져 있다 111
2부
글과 밥
여름 편지 127
걷기예찬 130
조사 ‘에’를 읽는다 134
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142
노래는 산하에 스미는구나 149
난세의 책 읽기 153
먹기의 괴로움 159
혼밥, 혼술 166
주먹도끼 172
박물관의 똥바가지 177
구멍 187
수제비와 비빔밥 195
몸들의 평등 201
키스를 논함 205
새 날개 치는 소리를 들으며 211
고속도로에 내리는 빛 - 겨울의 따스함 215
3부
푸르른 날들
청춘예찬 221
안중근의 침묵 239
아이들아,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보아라 1 246
아이들아,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보아라 2 253
박경리, 신경림, 백낙청 그리고 강운구 - 강운구 사진전 〈사람의 그때〉를 보면서 257
주교님의 웃음소리 267
아날로그는 영원하다 273
여덟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280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88
개별적 고통을 생각하며 300
호수공원의 봄 1 307
호수공원의 봄 2 313
인생의 냄새 319
뒤에 새와 철모 329
책 속으로
첫 문장: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내가 즐겨 마신 술은 위스키다. 위스키의 취기는 논리적이고 명석하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새벽의 갈대숲에서 새들이 부스럭거리고 퍼덕거린다. 새 날개 치는 소리 나는 동네는 복 받은 동네다.
조사 ‘에’는 헐겁고 느슨하고 자유로워서, 한국어의 축복이다.
형용사를 탓할 일이 아니라, 자신의 말이 삶에 닿아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삶을 향해서, 시대와 사물을 향해서, 멀리 빙빙 돌아가지 말고 바로 달려들자.
세상살이는 어렵고, 책과 세상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기는 더욱 어려운데, 책과 세상이 이어지지 않을 때 독서는 괴롭다.
암컷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저 한없는 집중과 인내와 기다림. 새는 제 몸의 온도로 새끼를 깨워 낸다. 당신들과 나는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달걀을 먹었던가.
심장은 목적지가 없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심장은 언어나 논리가 세계를 규정하지 않는 곳을 향해서, 엔진을 벌컥거리며 가고 있었다
햇볕 속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물어서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네 머리통에서 햇볕 냄새가 난다”고 말했다. 햇볕에 냄새가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엄마의 말을 믿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나는, 생활은 크구나, 라고 글자 여섯 개를 썼다.
출판사 서평
허송세월의 가벼움으로 버텨 내는 생로병사의 무게
시대의 눈물과 웃음을 포착한 성실한 글쓰기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 _〈늙기의 즐거움〉, 7쪽
소설가 김훈이 산문 《허송세월》로 돌아왔다. 종이에 선명하게 찍힌 첫 문장에서 감지되듯 그는 죽음마저 일상적 루틴으로 여기는 ‘글 쓰는 실무형 노동자’다. 어느덧 여든에 가까워졌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 부지런히 바라보고, 생각하고, 글을 쓴다. 그 오래고도 성실한 노동의 흔적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 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_〈재의 가벼움〉, 54쪽
노년에 접어든 후 술과 담배에 품게 된 애증의 감정을 털어놓은 서문 ‘늙기의 즐거움’을 지나쳐 1부 ‘새를 기다리며’를 펼쳐들면, 김훈의 현재를 들여다볼 수 있는 14편의 글이 기다린다. 심혈관 계통의 질환 때문에 그간 크게 아팠다고 고백하며 그는 말 그대로 “신체 부위와 장기마다 골병이” 든 몸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어떤 것인지 자조하고, 몸이 완전히 사그라들어 마침내 뼛가루가 되기 전 어떤 유언을 남길 것인지 고심한다.
이렇듯 입원실에 누워 오줌통에 소변이 고이는 모습을 꼼짝없이 지켜보아야만 하는 애환은 자연스럽게 생로병사의 무거움을 허송세월의 가벼움으로나마 버텨 내야 하는 중생의 고단함에 대한 반추로 이어진다. 일산 호수공원에 앉아 햇볕을 쪼이며 노년의 나날을 보내는 그는 자신의 말이 이 고단함에서 벗어나 삶의 맨 얼굴에 닿기를 꿈꾼다. 그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허송세월에 바쁘다는 그가 2부 ‘글과 밥’에서 눈을 돌리는 곳은 다시금 “밥벌이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지지고 볶는 일상”이다. 일찍이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했던 그에게 먹고사는 일의 애달픔을 정확히 포착하는 글쓰기는 평생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그는 “웃자라서 쭉정이 같고, 들떠서 허깨비 같은 말”을 버리고 필요한 말만을 부림으로써 언어를 삶의 한복판에 밀착시키고자 한다. 글 쓰는 이와 모국어 사이의 간극을 더욱 벌리는 허약한 품사를 과감히 쳐 내고, 사물을 향해서 “빙빙 돌아가지 말고 바로 달려들”기 위함이다.
“쓰이기를 원하는 것들과 남에게 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속에서 부글거리는 날에는 더욱 문장의 고삐를 단단히 틀어쥐어야 한다. 이런 날에는 형용사와 부사가 끼어들고, 등장인물의 말투가 들뜨고 단정적 종결어미가 글 쓰는 자를 제압하려고 덤벼든다. 글이 잘나가서 원고 매수가 늘어나고 원고료가 많아지는 날이 위험하다. 이런 날 하루의 일을 마치고 공원에 놀러 나가기 전에 글 속에서 뜬 말들을 골라내고 기름기를 걷어 낼 때에는 남이 볼까 무섭다.”
_〈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143쪽
필요한 말만을 정확히 부리려는 노력은 삶의 질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소박한 물건들에 애정을 보이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박물관에서 가야토기의 “어둡고 서늘”한 구멍을 들여다보며 그는 신라의 철제 무기에 스러져 간 가야 옹기장이들의 비애를 생각한다. 반면 생활 속 쓰레기가 일상의 연장이 되어 돌아온 똥바가지를 보면서는 “펄펄 살아 있던 활물”에 신명이 뻗치기도 한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처한” 이 물건들에서 들려오는 듯한 “순하고 과장 없는” 단순한 말들이 그의 산문 언어가 향하는 지향점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나는 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므로 우선 밥을 먹는 일에 관련된 유물들을 들여다보았는데, 너무 많아서 다 볼 수는 없었다. 절구, 맷돌, 항아리, 젓독, 김장독, 장독, 술독, 밥그릇, 국그릇, 주전자, 접시, 쟁반, 냄비, 뚝배기, 보시기, 탕깨(탕기)들이 끝이 없었다. 한없는 물건들은 제가끔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는데, 이 표정들의 일관된 질감은 사람의 일상 속에서 필수불가결한 것들이 지니는 단순성과 현실성이었다.”
_〈박물관의 똥바가지〉, 179쪽
3부 ‘푸르른 날들’에 다다르면 작가는 시선을 더 멀리 두어 난세를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이들에게로 관심을 뻗친다. 다윈과 피츠로이,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 안중근의 청춘이 그의 문장에서 교차되며 떠오른다. 이러한 호명은 방정환, 임화, 최인훈, 박경리, 백낙청, 신경림…으로 이어진다.
“〈농무〉가 보여 주는 울분과 소외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신경림의 표정은 맑고 선하다. 눈을 맞고 있는 그의 얼굴은 천진성의 바탕을 보여 준다. 이 순간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본질을 보여 준다. 무엇을 기필코 보아야 한다는 의도가 없다. 물러서 있는 카메라가 그 순간을 보았다. 그 순간이 보였다. 이날 눈송이는 굵었다. 사진 속의 신경림은 아마도 눈이 내리는 것이 좋아서 웃고 있는 것 같다.”
_〈박경리, 신경림, 백낙청, 그리고 강운구〉, 264쪽
서늘한 시대를 살면서도 푸른 날을 만들고자 했던 이들의 근심과 희망이 남은 자리를 성실하게 더듬어 가던 그는, 발걸음을 재촉해 ‘지금 여기’의 중생고로 향한다. 가혹한 현실 속에서 “끼여 죽고, 깔려 죽”었던 수많은 이웃의 죽음을 기리기 위함이다. 그는 현실의 문제를 두고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이 세상을 향해서 어떤 어조로 말해야 하는지”를 생각할 뿐이다.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말들로 들끓는 화세에, 말하기 어렵고 듣기 괴로운 세상에 몸서리치면서도 그의 문장은 꿋꿋이 나아간다.
“의견과 사실이 뒤섞여 있는 말은 알아듣기가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듣기의 헛갈림은 시작됩니다. 아마도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고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려는 충동은 인간의 언어의식 밑에 깔린 잠재욕망일 것입니다. 이것이 말하기의 어려움입니다. (…) 근거 없고 쓸데없는 헛소리를 한자로는 화(譁)라고 씁니다. 온 세상에 말의 쓰레기들이 물 끓듯 들끓는 모습이 화비譁沸이고, 그런 세상의 이름은 화세(譁世)입니다.”
_〈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289쪽
늙어 가는 일의 즐거움을 논하는 글로 운을 떼어, 도로변의 투명 벽에 부딪쳐 죽는 새들과 철모를 남기고 간 옛 병사를 향한 헌사로 닫는 45편의 산문은 ‘본래 스스로 그러한 운명’에 포박되어 있던 가엾은 중생의 말에 바치는 송가다. 꽃과 새와 밥과 꿈에 뒤엉킨 이 시대의 기쁨과 슬픔을 애달프면서도 때로는 웃음기 있게, 명료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낸 언어의 짜임이 눈부시다.
'지혜 > 독서, 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른 공부: 양순자 (2025.5.8) (1) | 2025.05.08 |
---|---|
칠순날에 (2025.3.8) (5) | 2025.03.11 |
작별인사: 김영하 (2025.2.7) (0) | 2025.02.07 |
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2025.2.4) (0) | 2025.02.04 |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마치다 소노코 (2025.2.4) (0) | 2025.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