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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권 (2023.3.8)

클리오56 2023. 3. 11. 04:42

일자: 2023.3.8
코스: 창덕궁 후원
답사로: 후원 입구 ~ 부용정/영화당 ~ 불로문 ~ 애련지 ~ 연경당 ~ 존덕정 ~ 취규정 ~ 옥류천 ~ 향나무
소요시간: 1시간 40분
도상거리: 2.84km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따라하기의 일환이지만
사실 창덕궁 후원은 가이드 투어만 가능하기에 느긋하게 시간을 가지고 둘러볼 수 없다는 큰 제약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많은 사진과 내용을 언급하고자 했고,
언급된 내용 역시 대부분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옮겨왔기에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음을 재차 언급한다.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9권 창덕궁 후원
제3부 창덕궁 후원
부용정
 자연을 경영하는 우리나라 정원의 백미
자연과 정원 / 창덕궁 호랑이 / 부용지 진입로 / 사정기비각 / 영화당 / 부용정 / 다산 정약용

규장각 주합루
 임금과 신하가 하나가 되던 궁궐의 후원
어수문 / 취병 울타리 / 정조와 규장각 / 서호수와 『규장총목』 / 차비대령화원 /
단원 김홍도 / 희우정, 천석정, 서향각 / 표암 강세황

애련정과 연경당
 풍광의 즐거움만이라면 나는 이를 취하지 않겠노라
불로문 / 숙종의 애련정 기문 / 의두합 기오헌 / 효명세자의 「의두합 상량문」 /
어수당 / 연경당 / 「춘앵전」

존덕정과 옥류천
 만천명월(萬川明月) 주인옹은 말한다
후원 정자의 모습과 특징 / 관람지 / 관람정 / 존덕정 / 만천명월주인옹 /
옥류천 유상곡수 / 조선의 마지막 재궁 / 수령 700년 향나무

 
창덕궁 후원은 사전 예약이 필요하지만 3월초는 자리가 많이 남아 현장 입장도 가능하였는데
아마도 꽃 피는 봄이 아니고, 숲 우거진 여름도 아니며, 설경의 겨울도 아닌 탓으로 생각들지만
이런 애매한 시즌에도 불구하고 후원은 헐벗은 나무들만으로도 숲의 울창함이 드러나보일 정도이다.
 
친구 최박사와 종로3가역에서 만나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으로 입장하였고
진선문과 숙정문을 거쳐 후원입구에 당도하였다.
 
돈화문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이다. 

 
서울 5대궁궐 중 유일하게 창덕궁만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금천교와 진선문
나는 모르고 지났는데 유교수가 지적한게 있다.
삐뚜름히 놓인 금천교가 궁궐의 정연함을 흩트려놓았다.
금천교를 복원하면서 진선문과 일직선을 이루게 하지 않고 금천 호안석축과 직각이 되게 했기 때문에 나온 실수이다.

 
창덕궁 후원 입구
창덕궁이 아름다운 궁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후원 덕분이다.
10만평에 이르는 산자락의 골짜기를 정원으로 삼고
계곡 곳곳에 건물과 정자를 지어 자연과 인공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정원을 경영했다.

 

후원 답사가 시작하기 전 약 10분여 여유가 있어 돌담 넘어 건물들을 둘러보았다.  
성정각 희우루와 관물헌이다. 귀가하여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유래를 보았다. 
 
성정각과 희우루 현판
왕세자의 독서와 서연이 이루어진 건물로,
동궁의 정전인 중화당은 후원으로 들어가는 길을 내면서 헐리우고 맨 서쪽에 있는 성정각만 남았다.

희우루 현판
성정각 동쪽 머리에 '가뭄 끝에 단비가 내려 기뻐한다'는 뜻을 담은 희우루 현판이 걸려 있다. 
정조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누각 중건 공사를 개시한 날과 완성한 날,
반가운 비가 내려 누각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내력이 있다. 

 
관물헌과 집희 현판
관물헌은 세자가 공부하며 생각에 잠기는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서까래 아래에 집희라는 작은 현판이 붙어 있다. 고종이 쓴 글씨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ㅎㅎ 글자에 금색을 입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아 사진 남겨오길 잘했네~~ 

 
창덕궁 후원 돌담길
후원으로 향하는 길을 걷는 것은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다.
양옆으로 기와지붕의 사괴석 담장이 길게 펼쳐져 궁중의 내전임을 알려주고
담장 너머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려 길 위로 나무 터널을 이룬다.

 
부용정 전경
부용정을 포함하여 부용지, 규장각, 영화당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경을 찍기는 어려웠다.
부용지와 그 너머의 장중한 규장각 2층 건물, 석축 위에 편안히 올라앉은 영화당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 잘 생긴 소나무가 주인인 양 넓게 자리잡고 있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영화당, 부용정, 규장각, 사정기비각 4채의 건물이
제각기 이 정원에서 자기 목을 하면서 의젓이 자리하고 있다.

 
부용정
다채로운 구조의 부용정은 한옥으로 지을 수 있는 화려함의 최대치가 구사된 정자다.
평면은 열십 자를 기본으로 하면서 4면 모두 팔작지붕으로 날개를 펴고 있다.

 

부용지 물고기 조각
부용지 동남쪽 모서리 맨 위 장대석에 새겨놓은 물고기 한마리에는
국왕과 신하의 원만한 어울림의 뜻이 담겼을 것으로 짐작한다.
유홍준 교수가 어느 TV에 나와서 창덕궁 후원을 설명하는 중 이 조각을 찾는 퀴즈를 내는 것을 보았다.

 
영화당
석축 위에 높직이 올라앉은 영화당의 정면은 춘당대로 열려있다.
뒷면에서는 부용지와 부용정, 규장각, 비각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부용지에 오면 누구나 이 영화당 툇마루에 앉아 부용지를 한껏 감상하고 가게 된다. 

영화당 현판
영조의 영화당 현판 글씨는 획이 아름답고 글자의 구성이 반듯하면서도 멋스러워 명작이라 할 만하다.

 

부용지 건너에서 올려다본 규장각 주합루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부용지 북쪽 산자락에
역대 왕들의 어진과 글씨, 보책, 인장 등을 보관할 규장각 주합루를 짓게 했다.

 

규장각 영역은 가이드 안내가 되질 않았고 금마문을 앞을 지나 불로문을 통해 진입한다.

 

불로문
불로문은 넓직한 화강석 통판을 과감하게 디귿 자로 오려 세운 문이다.
모서리를 가볍게 궁글린 것 외에는 손길이  더 가지 않았다.
돌문 머리에 새겨넣은 불로문 세 글자는 참으로 아름다운 전서체다.

 

애련정
불로문으로 들어가면 석축으로 반듯하게 두른 네모난 애련지가 나오고
건너편에는 사방 한칸에 사모지붕을 한 애련정이 있다.
숙종 18년 연못 가운데에 섬을 두고 세운 정자였으나 후대 어느 때인가 연못가로 옮겨졌다. 

 

의두합 기오헌
애련정을 한 바퀴 둘러보고 밖으로 나와 금마문으로 들어가면 소박한 의구합이 보이는데
단청을 하지 않은데다 북향을 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기오헌은 의두합 누마루의 별칭이다.
그래서 궁궐지를 비롯한 문헌에 이 집은 의두합이라고 지칭될 뿐 기오헌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연경당 장락문과 행랑채 전경
연경당 대문인 장락문은 높직한 솟을대문으로 양옆에 바깥 행랑채(외향각)가 길게 뻗어 있다.
본채로 들어가기 위한 전실인 셈이다. 곧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호흡 고르게 하는 이 공간이 주는 권위는 아주 크다. 

 
연경당
전형적인 상류층 구조다. 밖에서 보면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담장이 있어 분리된 듯하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양반 가옥의 특징을 축소해놓은 모습이다. 

선향재
선향재는 서재 겸 응접실로 쓰이던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서향이라 오후에 깊이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집의 길이만큼 긴 차양이 덧대어져 있다.

 
농수정
사방 한 칸에 사모지붕을 한 농수정이 숨은 듯이 자리잡고 있다.
작은 마당이 있고 주변으로는 연잎 장식의 돌난간을 돌렸다.
정자의 자리앉음새와 구조 모두에 깊은 건축적 사고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관람정
'연못에서 뱃놀이하며 구경하는 정자'라는 이름의 뜻이 형식을 지배해
건물 자체가 부채꼴 모양에 대단히 공예적이고 장식적이다.

 

존덕정
인조 때 세워진 이래로 숙종, 영조, 정조, 순종 등 많은 임금이
이 아름답고 당당하고 기품있는 정자에 와서 시와 문장을 남겼다. 

존덕정 내부에 새겨진 '만천명월주인옹 자서'
정조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 자서'라는 장문의 글이 존덕정에 잔글씨로 새겨져 있어 이 정자의 주인공이 되었다.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다.

폄우사
낮은 기단 위에 세운 홑처마 맞배지붕의 아담한 집이다.
폄우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친다는 뜻이니
여기서 쉬면서도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을 담아 붙인 이름인 듯하다.

 
존덕정을 떠나 후원의 가장 깊숙한 골짜기인 옥류천으로 가자면 이번엔 북쪽 산자락을 넘어가는 고갯길이다.
한길 한쪽에 자리잡은 취규정이라는 정자와 만난다. 
취규(聚奎)란 별들이 규성으로 모여든다는 뜻인데 규성은 28수 별자리 중 문운을 주관하는 별이다.
즉 인재가 모여든다는 뜻이니 이 정자에 들어가 쉬면 인재가 되는 셈이다.
 
취규정
인조 18년(1640)에 세운 정자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고 있는데,
창호와 벽체없이 사면을 모두 개방해 시원스럽다. 느긋이 쉬기 보다는 잠시 걸터앉기 좋은 분위기다.
 

취한정
그 규모나 모습이 취규정과 닮았는데, 홑처마 팔작지붕이고
가운데 칸이 양쪽 칸보다 현저하게 넓으며 사면이 벽체나 창호없이 트인 점이 흡사하다.

 

옥류천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로 골이 깊고 물이 많아 마침내 천이라는 이름까지 갖게 되었다.

옥류천의 유상곡수
달리 예를 찾아볼 수 없는 조원의 명작이다.
흐르는 물줄기를 원형으로 한바퀴 돌려 홈을 파서 술잔을 띄우면 돌아가게 했다.
유상곡수 뒤쪽으로는 소요암이라는 이름의 듬직한 바위가 있다. 

소요정
옥류천의 대장격인 소요정에는 성종과 선조의 어필 현판이 걸려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 것으로 보아 소요정은 임란 전부터 있었던 듯하다. 

인조는 소요암 맨 아래에 옥류천(玉流川) 세 글자를 아주 조용한 필치로 새겨 넣었다.

 
청의정
청의정은 사방 한칸으로 궁궐에서 유일한 초가지붕이다. 
청의정 곁에는 논이 있어 지금도 논농사를 시범으로 짓고 있다. 

청의(淸漪)는 맑은 잔물결이란 뜻이다.
정자 안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서까래들이 정연히 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겉으로는 소박해 보이지만 디테일이 정교하여 더욱 매력적이다.

 
태극정
장대석 기단을 3단으로 쌓고 그 위에 다시 안쪽으로 한 단 더 들여쌓은 기단에 주춧돌을 놓고 건물을 올렸다.
지붕 꼭대기의 절병통, 난간 등 격식을 다 갖춰 궁궐의 정자임을 과시하는 듯하다. 

 
농산정
마루 2칸, 방 2칸, 부엌 1칸으로 정자가 아니라 잠시 쉬는 공간인 듯 싶은데
정조, 순조, 효명세자가 자주 이용하면서 시문을 남겼고,
같이 온 신하들에게 글을 짓게 하고 성균관 유생들에게 경전을 강론하게도 했다.


이제 창덕궁 후원 답사를 마치고 숲길과 담장길을 거쳐 내려간다. 다음엔 단풍든 가을에 온련다.

 
창덕궁 향나무
1404년 태종이 창덕궁을 창건을 시작할 때부터 이 자리를 지켜온 것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동쪽 가지가 꼬불꼬불 기형으로 자라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 사진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네.... 다음 기회에 보충)

 

창덕궁 회화나무

 

창덕궁 후원 답사를 마친 후 인근 신의주 부대찌개 비원점에서 두루치기로 점심 식사,

그리고 한국관광 100선에 포함된 익선동 답사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