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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여행 27일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투어 (2024.3.10)

클리오56 2024. 3. 26. 07:40

일자: 2024.3.10
시내투어 코스: 숙소~연방의회~문화유산박물관(가압정수장)~미술관과 벼룩시장~대성당~레콜레타 묘지~카사 로사다~대성당~엘 아테네오 서점~라 보카 지역~한식당 향기~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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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인근에 24시간 운영 카르푸가 있어 생수, 빵, 과일 등 필수 먹거리를 구입하였다. 그런데 숙소 바로 옆 가게의 셔트문에 많은 낙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붉은 글씨로 '아시아인을 테러하라'(Terror Asian Folk)눈 문구가 있어 씁쓸하다. 

아르헨티나 연방의회, 가이드 투어도 하는데 우리는 그럴만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리더가 현지 가이드에게 하는 말이 사진이 제일 중요하다며 설명은 필요없다는 식으로 말한다. 현실이 그러하더라도 그런 정도로 언급하는게 뭔 도움이 될지. 들렀다는 흉내만 낸다.  

의회 옆에 세워진 멋진 건물은 El Molino Patisserie(Confitería del Molino)로 20세기 초에 지어졌으며 이탈리아 제과점이 있었던 인상적인 아르누보 건물이다. 멋진 카페가 있다며 가이드는 재차 강조한다. 

멋진 조각품이 산재하는데 상당한 의미가 내포된 작품들이다. 아마도 시위때문에 울타리로 막고있어 접근이 되지 못한다. 이 광장에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아주 인상적이다.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한 주물에서 여러 작품을 생산할 수 있기에 복제품이라고 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로댕이 서명한 작품이다. 

 

예정에 없던 장소로 가이드가 안내하였다. 구글에서는 문화유산박물관으로 표시했는데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원래는 가압정수장 혹은 양수장이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자재를 많이 가져와 건축했다는데 당시에는 아르헨티나가 남미의  파리를 표방하여 모든게 유럽스타일로 건축했다고 한다. 부에이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겅축물이라는 평까지 있다. 건물은 1887년에 완공되어 1978년까지 사용되었고, 현재는 물 회사의 관리 사무실과 박물관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 건물을 보면서 20세기초 선진국으로 불리던 아르헨티나가 왜 망했는지의 단초를 찾게되었다. 양수장 건물을 이렇게까지 호화롭게 건축한다는게 말이 되는지? 아무리 유럽을 모방한다지만 정신나간 짓거리가 아닌가. 아르헨티나는 1905년에 지하철을 보유할 정도로 앞선 나라였다. 지금은 5개 노선이 있다고 한다. 

거대한 고무나무 'Gran Gomero"를 짊어지고 있는 아틀라스  

구글을 찾아보면 Basílica Nuestra Señora del Pilar로 나오는데, 아무튼 천주교 성당이다. 마침 이날 이 시간 미사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었다. 구글 리뷰를 보면 아주 인상적인 미사가 진행된다고 한다. 건축한지 3세기가 지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성당이라고 한다.  

미술관과 주변의 벼룩시장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명사들의 유해가 안치된 레콜레타 묘지의 정문 위에는 라틴어로 편히 쉬소서(Requiescant in Pace)라고 쓰여 있다. 정문 들어서면 하얀 대리석 바닥에 묘지 설립된 1822, 문화재 지정된 1881, 재건축 금지한 2003이 적혀있다. 화려한 무덤은 19세기말, 20세기초 융성했던 아르헨티나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가장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곳이 바로 에바 페론의 무덤이다. 그녀는 페론가의 가문이 아닌 어릴 때 고통을 안겼던 두아테르 가문의 가족묘에 묻혀있다. 페론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5월 광장 건너편에 위치한  분홍색 건물은 카사 로사다(Casa Rosada)라 불리는 대통령 궁이다. 1868~1874년 아르헨티나의 대통령이었던 도밍고 사르미엔토가 1873년 스페인 로코코 양식으로 건축하였다. 당시 우파였던 붉은 색의 연방주의자들과 중도 좌파였던 흰색을 대표하는 중앙집권주의자들간의 화합을 상징하기 위해 대통령궁을 분홍색으로 칠했기 때문에 Casa Rosada(분홍색 저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영화 에비타에서 에바 페론 역할을 맡았던 배우 마돈나가 노래 "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부른 발코니가 카사 로사다의 발코니이다. 

높이 19m의 이 피라미드는 1811년 5월 혁명 1주년을 기념해 건설됐다. 프랑스 조각가 Joseph Dubourdieu(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정면의 얕은 부조 작가)의 작품이며 꼭대기에는 자유위 여인상을 세웠다. 1977년부터 군사정부하에 납치된 자녀들의 어머니들이 이곳에서 항거의 모임을 가졌다.

* 5월 혁명이란 아르헨티나가 1810년 5월25일 아르헨티나가 식민지에서 벗어나고자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독립을 선언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 흰색의 높은 탑에는 아르헨티나 각지에서 가져온 흙이 보관되었다. 기념비 위에는 기다란 막대를 든 여인상, 아래에는 혁명일을 고딕으로 새겼다. 

대통령궁 앞의 벨그라노 장군 기념 기마상. 위대한 인물일텐데 구글 리뷰에서도 어떤 인물인지는 언급이 없다. 

대통령 궁 좌측에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Buenos Aires)이 위치한다. 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으로 봉직했던 성당이다.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코린트식 기둥과 삼각형의 박공으로 되어 있어서 고대 그리스 신전과 비슷한 모습이다. 

박공벽에는 프랑스 조각가 조셉 뒤브로디유가 1860~1863년 양각한 부조가 있다. 요셉이 이집트에서 자신의 형제들과 아버지 야곱을 만나는 장면을 새긴 것으로, 몇 차례 내전을 겪은 후에 통일을 이룬 아르헨티나를 상징하기 위해 새긴 것이다. 

내부에는 제대 뒤쪽은 기둥을 비롯 모든 부분에 금박이 입혀져 들어오는 순간 황금빛 찬란함이 눈을 부시게 만든다. 걸작품으로는 1785년 스페인 조각가 이시드로 로레아가 조각한 로코코 양식의 성 삼위일체 하느님과 그 아래에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다른 걸작품으로는 1671년 포르투갈 조각가 마누엘 도 코이토가 제작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그리스도'으로 성당의 가장 오랜 조각상으로 부속 경당의 제대 장식품으로 전시중이다. 하지만 이를 찾아보기에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곳 대성당에 산 마르틴 장군의 무덤이 설치되어 있다.  프랑스 조각가가 제작하였는데, 부분에 따라서 서로 다른 색깔의 대리석을 이용하고 세 개의 여인상은 산 마르틴 장군이  해방시킨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를 상징한다. 때마침 근위대의 교대식이 이곳에서 열려 관람하였다.    

 대성당 오른쪽 벽에는 산 마르틴 장군을 기리는 꺼지지 않는 횃불이 타오르고 있다.

점심은 부페 스타일이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다. 쇠고기,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 각종 고기 요리들은 꼬챙이로 서빙했고 나머지는 부페식으로 각자가 가져왔다. 고기들의 품질도 좋았고 아주 맛났다는 것. 애석하게도 식당 이름을 찾지못하겠다. 사진이라도 하나 남겨두었어야 하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오면 누구나 한 번쯤 찾아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엘 아테네오(El Ateneo) 그랜드 스플렌디드 서점이다. 원래 오페라 극장을 서점으로 개조하였다. 무려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서고는 3층이다. 천장 벽화도 멋지다. 내부에 카페도 있어 한잔 즐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라 보카(La Boca) 지역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옛 항구가 있었던 라 보카(La Boca) 지역은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정착했던 곳으로 특히 부두노동자들과 선원들의 거주지였던
카미니토(Caminito) 지역의 울긋불긋한 원색의 집들이 인상적이다.

라 보카는 탱고의 본향이다. 이민자들이 몰려들어 고달픈 생활을 이어갔고, 젊은 여자에 비해 약 50배 정도 많았던 청년들은 멋진 춤 솜씨로 아가씨를 유혹하기 위해 자신만의 매력있는 춤을 보여줘야 했다. 이것이 탱고의 시작...특히 아르헨티나가 남초 현상이 극심하였던 것은 라틴아메리카가 독립이후 100년동안 유럽에서 이주해온 인구는 1,500만명인데, 그중 600만의 이민자를 아르헨티나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쿠바, 아프리카 흑인, 아르헨티나 민요가 혼합되어 1875년 탱고라는 4분의 2박자의 경쾌하면서도 애달픔이 배어있는 새로운 예술을 탄생시켰다. 2009년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두 나라가 공동으로 인류무형문화재 지정을 신청하여 2009년 등재되었다. 

노동자 계층 지역인 라 보카에는 리아추엘라강 인근에 명소가 밀집해있다. 페인트로 밝게 칠한 판잣집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인 카미니토에서는 이 지역 초기 이민자의 삶을 엿볼 수 있으며, 이 골목 주변에는 스테이크 전문점과 거리 예술가가 많다. 카미니토(Caminito) 거리는 야외박물관 격이다.
** 한 때 보카주니어스 소속이었던 디에고 마라도나, 보카 주니어스 팬이었던 에비타, 아르헨티나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의 조각상이 개성있는 모습으로 맞이함. 하지만 빈민들이 많기에 불안한 거리이기도...

특히 탱고를 추는 카플은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다리는 네개지만 마음은 하나라는 탱고, 가까이 다가가 만지며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여인의 향기>, 마틴 브레스트 ․ 1992 ․ 미국 (2017 재개봉)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탱고를 가르치던 프랭크는 “탱고는 인생과 달리 단순하다”며 “스텝이 엉키면 그게 탱고죠”라고 말한다. 프랭크의 말을 뒤집어 인생은 탱고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스텝이 엉켜도 우리는 계속 춤을 추어야 한다. 음악이 흐르는 한. 그게 바로 탱고이고, 인생이다. 

멋진 카플, 아르헨티나 축구 리그 유니폼을 맞춰입었다. 이 카플과 여행내내 함께하였다. 

뫼솔의 김 선생과 함께~~

축구선수 마라도나, 에바 페론 등의 아르헨티나의 댜표적인 영웅들을 내세워 눈길을 끌고있다.   

축구 유니폼 가족들과 함께~ 기꺼이 사진 촬영에 응해주었다. 표정도 너무 자연스럽고 멋지다.  

교황님도 등장한다~~

북적거리는 보카 거리의 한켠에는 산 마르틴 장군의 기념조각이 있고 뒤쪽에는 뭔가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벽화가 있다.

보카 거리를 끝으로 향기라는 한식당에서 삼겹살로 저녁식사를 하였다.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이 곁들여져 충분한 식사가 되었다. 대장의 말로는 이게 마지막 한식이 될거라 하였다. 숙소에 돌아오니 캐리어가 또 말썽이다. 열리질 않는 것이다. 내일 이과수로 항공이동하려면 여권이 필요한데. 여러 차례 시도하다가 결국 한밤중에 두개의 자물쇠중 열리는 한쪽의 틈을 벌려 여권이 있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여 칼로 베를 찢어내어 꺼집어내는데 성공하였다. 마침 더운 지방에서 입을 옷은 몇벌 바깥에 두었기에 이를 활용하여 견뎌낼 수 있었다. 신발 등 여러 아이템은 억지로 배낭에 집어넣어 해결하였다. 결국 한국에 귀국할 때까지 캐리어를 해결하지 못했고, 하여 현지의 와인 몇병 구입하려던 계획도 무산되었다. 귀국하여 구매처에서 신품으로 교환하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시작
- 좋은 공기라는 뜻을 지닌 부에노스 아이레스
- 1516년 스페인 후안 디아즈 데 솔리스: 1516년 유럽인 최초로 라 플라타 강 상류에 도착했으나 원주민 공격으로 사망
- 1535년 스페인 페드로 데 멘도사가 이끄는 탐험대가 강 상류 항해, 1536년 부에노스아이레스 건설, 하지만 얼마못가 철수
- 16세기말 도시 기틀 마련, 1776년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파라과이 일대를 관리하기 위해 라 플라타 부왕청 설치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수도로 삼음 
- 은의 강(Rio de la Plata): 라플라타강은 우루과이강과 파라나강이 합류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남아메리카의 삼각강이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국경을 이루며, 강 남측에는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북측엔 우루과이의 수도인 몬테비데오가 있다.
라플라타강은 정확하게 말하면 강이라고 할 수도 없고 바다의 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우루과이강 하구의 거대한 삼각강이면서 파라나강의 넓은 삼각주에 해당한다. 면적은 35,000km2가 넘고 대서양과 만나는 부분에서는 폭이 219km에 이르며 유역분지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볼리비아, 파라과이에 걸쳐 있다. 라플라타강으로는 우루과이강, 파라나강, 그리고 파라나강의 중요한 지류인 파라과이강(이 세 지류의 길이를 합하면 8,000 km에 이른다)의 거대한 퇴적물질이 운반되어 온다. 막대한 운반 물질의 퇴적으로 넓은 모래톱이 만들어졌고 수심은 1.5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몬테비데오와 부에노스아이레스 항에 이르는 수로를 깊게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준설이 필요하다.
 
파라나강은 중앙 브라질고원에서 발원하여 4,000km를 흘러 라플라타강에 이른다. 파라나강 상류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규모가 나이아가라 폭포보다 훨씬 큰 과이라 폭포이다. 하류 부근에서는 지류인 이과수강의 물이 82m 높이에서 장관을 이루며 떨어지는 이과수 폭포를 만든다.
 
파라과이강은 브라질의 마토그로소 지방에서 발원하여 2,550km를 흐르는데 판타날을 지나 파라냐강으로 합류한다. 파라과이강의 유역은 대부분 해발 200m 이하이고 하도 경사가 매우 낮아 그로 인해 주기적인 홍수가 발생한다.
 
우루과이강은 브라질의 대서양 쪽 해안 산맥에서 발원하여 내륙으로 1,000km를 흘러 라플라타강의 하구에 도달한다.
 
역사: 16세기 남아메리카를 탐험하는 유럽인 사이에서는 은광이 있다고 전해지는 산 시에라 데 라 플라타에 대한 전설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세바스티아노 카보토가 파라과이강을 따라 과라니족과 은 거래를 한 뒤에 그 하류 강에 ‘은’이라는 뜻의 ‘라플라타(la Plata)’라는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