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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여행 15일차: 칠레 칼라마 => 산티아고 항공 이동, 시내투어 (2024.2.27)

클리오56 2024. 3. 21. 06:46

일자: 2024.2.27

코스: 칼라마 ~ 항공이동 ~ 산티아고 시내투어


항공 이동은 장거리 이동의 시간을 단축하기도 하겠지만 이른 기상과 대기시간으로 상당히 귀찮기도 하다. 오늘 산티아고로 이동하기 위해 4시반에 새벽 기상하고, 5시반에 식사, 6시반에 공항으로 출발했다. 항공기 출발은 9시11분이었는데... 

 

2시간여 탑승하여 산티아고에 도착했는데 공항이름이  아르투로 메리노 베니테스, 칠레 공군의 창설자 이름이란다.

숙소에 집을 놓아둔 후 시내 중심부를 찾아 우선 환전을 하였다. 칼라마에서 50불 환전하였고, 여기서 추가로 200불을 환전하였다. 미화1불에 972페소를 지급한다. 환전을 마치니 바로 인근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동상이 있어 기념사진을 남겼다. 칠레 국기를 휘감은 채 전진하는 모습으로, 군부에 저항하여 자신의 목숨을 던진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자이다. 

바로 곁은 모네다 궁전이니 1805년 지어진 네오클래식 스타일의 건물로 현 대통령 집무실이 있다. 1973년 군부 쿠테타 당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끝까지 이곳에 남아 저항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입장하려면 반드시 여권을 소지해야 한다. 앞의 헌법광장에서는 격일로 오전 10시 위병교대식이 있다. 

시내를 관통하는 마포초 강

점심을 한식당 대장금에서 가졌다. 제육볶음과 순두부를 잘 들었다. 하지만 많은 인원이 식사하므로 주문과 계산 등으로도 많은 시간을 소모하였고 결국 시내 관광은 대폭 축소될 수밖에. 이런 현상은 자주 발생하여 상당히 불쾌했다. 굳이 한식을 들겠다면 저녁 식사로 돌렸다면 낮 시간을 잘 활용할텐데. 그리고 쓸데없이 한식부식자재를 구입한다며 한없이 시간을 소비하기도. 안내된 한식 마트에 별로 식자재는 없었고..

한적한 동네에도 제법 큰 규모의 벽화가 그려져있다. 

다시 시내 중심부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하였다. 발디비아 장군의 동상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산티아고를 건설한 스페인 침략자이기도 하다. 페루 리마의 아르마스 광장에서는 침략자 피사로의 동상이 철거되었는데, 칠레에서는 중심광장에 여전히 위치하고 있다. 원주민 비율의 차이에 따른 침략자 스페인에 대한 서로 다른 대응방식인가?

이 광장에는 알론소 라우타로 원주민 지도자의 조각상도 있는데 가이드가 주는 시간이 없어 찾아가질 못했다. 발디비아는 이 도시를 세웠고, 알론소 라우타로는 처음 그의 협력자였지만 나중 도망쳐 발디비아를 죽였고, 스페인군에 잡혀 죽었다. 이런 운명으로 얽힌 두 사나이가 아르마스 광장에서 마주 보고있다. 그 사진을 다른 곳에서 발췌하여 기록으로 남긴다. 
* 푸에블로 원주민 조각상: 1991년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산티아고 시가 주최한 대회에서 우승한 엔리케 빌라로보스(Enrique Villalobos)의 작품인 원주민 부족의 지도자 알론소 라우타로 조각상. 조각상은 씨앗, 얼굴, 식물의 세 가지 요소를 나타냅니다.

중심부는 여전히 유럽 스타일의 건물들이 운집해있다. 그리고 동상들이 산재한다. 하나하나 알아가면 그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런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바람처럼 지나갈 뿐. 

 

대성당은 1541년 스페인 침략자인 발디비아가 산티아고를 처음 만들기 시작할 무렵 짓기 시작해 1558년 문을 열었다. 화재와 지진피해를 수차례 입었으며 현재도 개보수 공사가 진행중이다. 구글 리뷰를 보면 주로 신고전주의 양식이며, 기둥과 페디먼트와 같은 고전 그리스 및 로마 건축 요소가 특징이다. 주요 외관은 코린트식 기둥과 꼭대기에 있는 성모 승천 조각상이 가장 상징적인 특징이다. 천장벽화도 감상할 만하다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구글을 보면 우체국으로 소개된다. 칠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지어진 아름다운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로 내부에는 우편 박물관이나 우표 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다.

주정부 사무

모네다 궁전에 부속된 문화센터를 관람했다. 거의 문 닫을 시간이라 주마간산격으로 스쳐간다. 

숙소 바로 앞 대로 건너편에 있었던 산 프란시스코 교회. 산티아고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로 1586년 세워졌다. 다녀온 사람의 전언에 따르면 그림, 조각, 스테인드 글라스가 아주 휼륭했다는 평이다. 

 

하나 아쉬운 것은 산 크리스토발(Cerro San Cristóbal)을 가지 못한 것인데, 산티아고 시내 전망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높이 324m이다. 가파른 레일을 따라 오르내리는 푸니쿨라가 있어 쉽게 정상부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높이 14m의 하얀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데, 칠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918년 프랑스에서 기증하였다. 이 언덕 아래에는 네루다 파블로의 집... 비밀의 정원 라차스코나(La Chascona)가 박물관으로 운영중이다. 이래저래 좋은 기회를 놓친듯 하다. 

 

산티아고 소개

산티아고 데 칠레(스페인어: Santiago de Chile)는 칠레의 수도이다. 간단히 줄여서 산티아고로 부른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총연장 4,300km의 칠레, 그 중심에 산티아고가 자리해있다. 인구는 2017년 기준으로 522만 명이며
근교를 포함한 도시 지역의 인구는 616만 명으로, 남미 유수의 세계 도시이다.
 
몇몇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산티아고 분지에 처음으로 인간 무리가 정착한 시기는 기원전 1만년,
수렵채집형 유목민으로, 안데스산맥의 눈이 녹은 기간 동안 구아나코를 찾아 해안에서 내륙으로 이동하였다.
800년 경 마포초(Mapocho) 강을 따라 농경 사회가 형성되면서 최초의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주로 옥수수, 감자, 콩을 경작하고 낙타과(라마속과 비쿠냐속) 짐승을 길들였다.
 
산티아고는 1541년 스페인의 정복자 페드로 데 발디비아 (Pedro de Valdivia)에 의해 도시로 건설되었는데
온화한 기후와 중앙을 횡단하는 마포쵸 강이 마푸체 인의 방어선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산티아고는 영어로 St. James이며 예수의 12제자 중 하나인 야고보를 뜻한다.
 
1810년에서 1818년에 일어난 칠레 독립 전쟁의 결과, 1818년에 베르나르 오이긴스, 호세 데 산 마르틴의 활약으로
칠레가 해방되었고 산티아고가 공식적으로 칠레 공화국의 수도로 지명되었다.
 
태평양 전쟁에 승리한 1880년대는 페루, 볼리비아에서 합병한 북부 칠레에서 질산염이 생성되고 나라가 번영한 것으로,
수도 산티아고도 발전했다. 1930년대에는 산티아고의 근대화가 시작, 칠레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 인구도 증가했다. 1985년에 지진이 발생, 센터의 역사적인 건물이 파괴되었다. 
 
산티아고는 칠레의 산업 및 금융 중심이다. 칠레 국내 총생산의 약 45%가 산티아고에서 나온다.
상파울루와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더불어 남미 3대 경제 중심지 중 하나이다.
ECLAC(Economic Commission for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같은 국제 기구도 산티아고에 본부를 두고 있다.
근래 들어 칠레의 안정적인 성장 덕에,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산티아고에 지사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