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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여행 11일차: 페루 쿠스코 => 볼리비아 라파즈 항공 이동, 시내 및 달의 계곡 투어, 야간버스로 우유니 이동 (2024.2.23)

클리오56 2024. 3. 20. 05:35

일자: 2024.2.23
코스: 페루 쿠스코 ~ (리마 경유 항공이동) ~ 볼리비아 라파즈 (항공이동) ~ 달의 계곡 ~ (야간버스 이동) ~ 우유니 

새벽에 볼리비아 라파즈에 도착하여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달의 계곡으로 이동하기 전 숙소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주변의 작은 시장에서 거리의 음식을 맛보았는데 큰 만두에 여러 야채를 속으로 채운 것으로 먹을만 하였다. 

 
달에 맨처음 착륙한 암스트롱이 달에서 보았던 하얀 정체가 궁금하여 우유니 사막을 방문하게 되었고, 돌아오는 길에 보게되는 주변을 달의 표면을 닮았다고 평하여 달의 계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산의 침식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암석 지대이다. 

 
그렇게 달의 계곡을 만난 후 라파즈 시내를 투어하는데 케이블카를 환승해가며 타보게 된다. 2014년 개통된 케이블카인 미 텔레페리코(Mi Teleférico)가 도시 전역에 운행한다. 케이블카가 전철을 대신하여 수도 라파스와 위성도시인 엘알토를 오가는 서민들을 위한 엄연한 대중교통 수단인 것이다. 높은 지대와 낮은 지대가 혼합된 라파즈의 특성상 이 케이블카가 대중들의 출퇴근을 담당하는 것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지나가는데 알록달록한 지대가 펼쳐져 궁금했는데 불법 무덤이란다. 층층이 쌓여가며 무덤이 형성되었단다. 케이블카는  그 어떤 롤러코스터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이 '공중 지하철'은 잘 사는 동네나 못사는 동네의 경관을 보며 빠르게 움직인다. 하지만 무슨 연유인지 많이 즐기지는 못했고 기대하였던 킬리킬리전망대에서의 라파즈 야경 또한 즐기지를 못했다. 하여튼 이런 엉망인 꼬인 동선을 야기하는 대장과 가이드의 처사가 밉기조차 하다.  


유유니로 이동하는 야간버스 터미널에서 라파즈의 고지대 야경을 잠시 맛보았다. 대장은 라파즈 야경은 별로 볼게 없다는 망발까지 뱉어낸다. 또라이~~  

 
비록 시내 구경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가실 분들을 위해 몇 가지만 기록을 남겨두겠다. 
 
1. 무리요 광장(Plaza Murillo, Plaza Metropolitana Murillo)
라파스의 심장부에 위치하여 대성당, 대통령궁, 국립미술관 등이 접해있다. 주목할 점은 국회의사당 시계인데 시계판의 숫자가 일반 시계와는 반대로 배치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정확하게 맞다고 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에는 아르마스광장으로 불리다가 독립 운동의 시작을 이끌었던 독립영웅 '페드로 도밍고 무리요'가 교수형을 당한 장소로 그의 이름을 따서 무리요 광장이 되었다.

 
2. 산 프란시스코 성당(Basílica Menor de San Francisco)
1548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폭설로 붕괴되었고 200여년 방치되다가 1758년 현재 성당으로 완공되었다. 남미 특유의 메스티소와 바로크가 혼합된 양식으로 티와나쿠와 잉카 등의 문양과 조각이 곳곳에 새겨졌다. 
구글 리뷰: 노숙자들이 많아서 유쾌한 장소는 아니다. 다만 여기서 파는 과일 요플레 먹었는데 저렴하고 맛있었어요.
* 내가 좀 더 관심을 두었다면 이곳을 방문 할 수 있었을텐데라는 아쉬움. 큰 길을 두고 숙소 맞은 편에 위치해 있었으니.


3. 현지시장탐방: 마녀시장
샌프란시스코 성당  위 가파른 골목에서 시작되는 마녀시장. 토속신앙과 민간요법을 위한 물건들을 파는 장소이다. 보통 자신의 재산을 지켜주거나 바람난 애인을 혼내주는 등 각자 소원을 풀기 위해서이다. 취급 상품은 다양한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라마의 태아를 말린 미라이다. 현지인들은 라마의 태아를 파차마마에게 바치고 그 위에 새롭게 집을 짓는다. 사고를 막고 가족이 행복해지며 사업도 번창한다는 만사형통을 기원하는 것이다. 


4. 야경 투어 *킬리킬리전망대 탐방
세계 각국의 수도가 훌륭한 야경을 만들어내지만 라파스와는 비교 불가하다. 다른 도시의 야경이 2D라면  라파스는 3D라 할 수 있다. 높디높은 곳에 있는 이 도시는 상당히 낣고 도시에서 고도의 차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낮 풍경도 훌륭한데 라파스가 험준한 산 안에 안락하게 들어앉은 모습이다. 현대적인 빌딩들 뒤편에는 황량한 산이 있어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멀리 세상에서 가장 높은 스키장이 있었다는 차칼타야가 보인다. 엘 알토 방면의 가파른 경사면에는 남미 특유의 벽돌집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를 관통하는 계단들은 마치 하늘꺼지 이어질 것 같고 보기만해도 숨이 차다. 
 
반면 야경은 뒷배경이 사라지고 도시가 어디까지 펼쳐져 있는지 쉽게 파악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마치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땅에 내려앉은 듯하다. 사방이 트인 장소이기 때문에 바람이 세게 불어서 두툼한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구글 평: 혼자였다면 밤에 가기가 약간 두려웠을...그러나 막상 가보면 위험하지 않고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그런데 바람 엄청 불고 너무너무 추웠다!!

비록 시내 명소 몇군데를 놓치긴 했지만 우리의 일정은 진행된다. 밤 10시 야간 버스에 탑승하여 우유니로 이동한다. 제대로된 슬리핑 버스라 편안하고 쾌적하였다. 별로 춥지도 않고 괜찮았다는 평을 내리고 싶다. 

 
이번 중남미 여행을 준비하면서 비자는 물론 황열병 예방접종까지 요구하는 성가신 나라로 인식된
볼리비아는 200여년전 독립이후 최다 정변발생국, 남미의 가장 가난한 국가,
이웃과의 전쟁에서 땅을 빼앗겨 내륙국가로 바뀐 나라 등 부정적 이미지가 너무 많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를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오로지 우유니 소금사막 때문이다.
 

아래의 볼리비아 소개는 많은 부분 나무위키를 참조하였으며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정식 국가명은 특이하게도 '볼리비아 다민족국'이다. 
국명을 '볼리비아'로 정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높은 페루라는 뜻인 '알토 페루'라고 불렸다. 
스페인 통치하에서 페루 부왕령과 리오 데 라 플라타 부왕령에 번갈아 속해있었지만 
독립 과정에서 이들 국가와 분리되길 원했고, 결국 분리독립에 성공한 후
국명을 독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따 볼리비아로 정했다. 
볼리바르는 볼리비아의 1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그는 곧 사임하고 근거지인 그란 콜롬비아로 돌아갔다.

 

오늘날의 정식 국호인 '볼리비아 다민족국'(Estado Plurinacional de Bolivia)은 2009년에 정해진 것으로
그 전에는 볼리비아 공화국(República de Bolivia)이었다. 
다민족국으로 바뀐 데에는 원주민 등 여러 소수민족의 민족성과 문화를 존중하겠다는 취지가 있으며, 
당시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의 원주민 권리 신장 정책과도 맞물려있다.
볼리비아의 원주민 비율 55%는 남미에서 제일 높은 수준으로 볼리비아가 내륙국이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다.
 
국기는 빨간색-노란색-초록색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이루어져 있다.
빨강은 용감한 군인을, 노랑은 자원을, 초록은 풍요로운 땅을 의미한다.

 

국기 가운데에는 볼리비아의 국장이 있으며, 국장이 없는 깃발을 사용하기도 한다.
방패를 중심으로 하여 바깥에는 국기들과 콘도르, 월계관, 대포와 창들, 도끼와 프리기아 캡이 그려져 있고
안에는 알파카, 나무, 밀, 언덕(또는 산), 평원이 그려져 있다.
 
대포와 창, 월계관은 독립을 상징하며 포토시를 나타내는 건물이 있는 언덕이 그려져 있다.
언덕과 평원은 지리도 나타내며 밀, 나무는 자원을 뜻한다.
알파카(또는 라마)는 볼리비아를 상징하는 국수(國獸)이며 콘도르는 나라를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도끼와 프리기아 캡은 자유를 나타낸다.
문장에는 10개의 별들이 있는데 볼리비아 영토를 구성하는 9개의 주, 그리고 칠레에게 잃어버린 해안가를 뜻한다.

국장

 
볼리비아는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내륙국이지만, 원래는 내륙국이 아니었고
칠레 방면으로 해안 영토(안토파가스타 주)가 있었는데 전쟁에서 패배해 내륙국이 되었다.
그 외에도 아르헨티나에게 1차례 영토(1893년)를 뜯기고, 브라질에게 2차례(1867년, 1903년),
또 시비 걸었다가 파라과이에게 차코 전쟁에서 져 1차례 (1938년) 영토를 뜯기면서 영토가 꽤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프랑스나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등보다 큰 109만 ㎢의 영토(한반도의 5배 가량)를 자랑한다.
 
이 나라는 듀얼을 좋아하는지 행정수도는 라파스(La Paz), 사법수도는 수크레(Sucre)이며,
국기도 2개인데 위프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국기 칸 수가 7*7이며 공식 행사때 2종류 게양한다.
원주민과 다양성 존중하여 공용어가 37개, 국명도 볼리비아 다민족국 이지만
높은 산이 띄엄띄엄있어 합쳐지는 통합이 쉽지 않다고 한다. 

 

역사를 살펴보자. 몽골계가 이주해와 2만년 전부터 살기 시작하였고, BC 900년 문명들이 있었으며
12세기 왕국 아이마라가 존재했으며 15세기는 잉카제국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잉카 문명은 도로망이 좋았고, 매듭으로 문자를 남겼다. 대형 동물이 없어 바퀴를 이용한 대량 운반이 불가능하였다.

 
잉카 제국이 천연두로 인하여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중에 16세기 스페인의 침략으로 몰락하고
스페인 지배를 받으면서 원주민에 대한 극심한 착취로 인해 인구가 급감하는 아픔도 겪었다.
독립 이후에는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주변국들로부터 영토를 빼앗기기 일쑤인 남아메리카의 동네북이었다.
 
시몬 볼리바르가 누에바 그라나다를 독립시켜 그란 콜롬비아를 세울 때 페루와 볼리비아도
볼리바르의 부하 장군인 수크레가 해방시켰고, 알토페루는 볼리바르를 기념하며 국호를 볼리비아로 정했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그란 콜롬비아에 가입하지 않고 따로 독립했다가, 1836년 페루-볼리비아 연합을 형성해서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제국, 페루의 독립을 바라는 반군 등과 전쟁을 벌였다가 패배해 3년 만에 연합은 와해되었다.
 
아무튼 1825년 독립이후 세계 최다 정변 발생국이며, 전쟁으로 계속 국토가 축소되었다.
1879년 칠레와의 태평양 전쟁에서 해안 지대 영토를 칠레에게 빼앗기고 바다 없는 내륙국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현재 내륙국임에도 불구하고 해군을 폐지 않고 운영하고 있는데 티티카카 호수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그리고 1903년에는 브라질에게 아크레 주를 반강제적으로 빼았겼다. 아크레 주에 이주한 브라질 사람들이
아크레 주를 점거하고 독립선언을 하여 아크레 공화국으로 독립했으며 곧 이어 브라질 본국도 아크레 공화국을 병합했다.
 
1932년에 파라과이와 차코 지역을 둘러싼 영토분쟁 갈등으로 차코 전쟁이 벌어졌는데
볼리비아는 10만 명에 육박하는 사상자를 낸 끝에 또 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그란 차코 지방을 파라과이에게 빼앗겼다. 
 
남미 최초로 석유 국유화를 선언하였고, 볼리비아 혁명으로 발전하며 보통선거를 단행하기도 했지만
이해관계 조정이 안되어 무정부 상태가 이어졌다.  
2002년 코카재배 합법화 시위가 발생했고 모랄레스가 최초의 원주민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다민족을 상징하는 헌법도 개정했지만 무리한 연임 추구로 결국 사퇴에 이르고 말았다.
 
2000년대 이후 원주민 생활 개선이 뚜렷하다고 하며, 하지만 아직도 아동 노동 비율이 25%일 정도로 높다고 한다. 
 
국토는 크게 서부의 안데스 산맥 지역과 동부의 저지대로 나뉜다.
서부 지역은 위치가 안데스 산맥 중턱에 있다보니 평균 해발고도는 4,000m를 넘는다.
수도 라파스는 해발고도 3,830m에 위치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자리잡은 수도로 알려져 있다.

 

이 무지막지한 고도 때문에 FIFA가 고산병 등 선수들의 건강 문제를 명목으로 해발 2,500m 이상 고지대에서의
국제경기를 금지하는 규정을 만들기도 했지만 남미 여러 국가들이 들고일어나 철회하기도 했다.
이런 높은 고도 덕분에 볼리비아는 홈 경기에선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물론 독일을 8-0, 이탈리아를 10-1로 깨버렸다.
 
경제에서는 최대 수출품목은 천연가스, 리튬이며, 예전에는 은이었고 이로 인하여 전쟁까지 겪었다.
광물자원이 많지만 해외로 나가기가 쉽지 않아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수입은 석유 비중이 높으며, 우리나라는 아연과 납을 많이 수입한다.    
포토시는 은광의 도시인데 리코 산은 전체가 은광이며 한때는 런던에 버금가는 대도시를 형성하였다.
은 광산에서 인디오 800만명 사망했다하니 가히 지옥 수준이다.
그렇게도 은을 엄청나게 수탈해갔지만 스페인은 상공업이 발전하지 못했는데
오직 은으로 물건을 해외에서 구매하여 은이 스페인, 인도, 필리핀을 거쳐 중국으로 넘어갔다.
나중 중국은 은이 넘쳐나 결국 은본위제를 채택했고 후에 아편전쟁으로 이어졌다.   
 
슈퍼 푸드로 각광을 받고 있는 퀴노아는 쌀 보다 2배 이상의 단백질을 함유하는 고단백 곡류로
건강식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는데 일종의 귀리이다. .
코카 잎에서 코카인을 생산하는데 코카 복용 전통을 보호해야한다고 헌법에 명시할 정도이다. 
또한 헌법에 지구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조항이 있는데 지구는 자연이기 때문이다.
 
볼리비아는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이한 나라로도 유명하여 그의 궤적을 따라가는 그런 코스도 있다.
 
라파스
볼리비아에는 항공으로 새벽에 라파스 입국하고 그날 밤에 우유니로 야간 이동하니
체류는 짧지만 날씨와 함께 도시를 간단히 소개한다.
 
라파스(La Paz)는 볼리비아의 수도로, 볼리비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라파스, 엘알토, 아코칼라, 비아차, 메카파카로 구성된 대도시권은
볼리비아에서 인구 2백만 명의 산타크루스 데 라 시에라에 이어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권이다.
도시 행정구역상 인구는 2000년대 초반에 79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로 매년 수천 명가량씩 줄어들지만,
이는 인구의 상당수가 집값과 월세비 상승 때문에 근교로 이사를 가기 때문이다. 도시권 자체의 인구는 203만 명 남짓이다.
 
볼리비아 정부의 소재지인 라파스는 대통령궁, 의회, 복수의 입법부, 수많은 정부 부처와 기관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라파스는 볼리비아의 중요한 정치, 행정, 경제, 스포츠의 중심지이다.
 
1548년 스페인인들에 의해 세워졌다. 16세기 볼리비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은광이 위치해 있던 포토시로,
당시 라파스는 지방 행정 중심지이자 포토시와 리마 사이의 교통 중심지에 해당했다.
1809년 크리오요인 페드로 도밍고 무리요가 라파스에서 스페인의 지배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825년 볼리비아 독립 이후 수크레가 수도가 되었고, 라파스는 라파스주의 주도가 되었다.
 
19세기 말 볼리비아 경제의 근간이었던 은이 점차 고갈되는 대신 볼리비아 서부 지역에서 산출되는 주석이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떠오르면서 라파스의 경제적 중요성은 증대되었다.
이에 힘입어 라파스에 기반한 자유주의자들은 옛 수도 수크레와 포토시에 기반한 보수주의자들과 대립하였다.
1898년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치러진 내전은 자유주의자의 승리로 끝났고,
이에 따라 볼리비아의 실질적 수도 기능 역시 수크레에서 라파스로 옮겨가게 되었다.
 
20세기 동안 라파스는 볼리비아의 실질적 수도로 꾸준히 성장해 도시권 인구 200만의 대도시가 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 주석산업이 몰락하면서 부의 원천은 다시 주석에서 천연가스와 농업으로 옮겨갔고,
이에 힘입어 동남부 저지대의 산타크루스가 라파스를 제치고 볼리비아 제1의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알티플라노 고원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데 지형은 서고동저에 해발고도가 3,200m부터 약 4,100m까지 걸쳐 있다.
따라서 중심가 일대의 해발은 3,600m, 서쪽의 교외 지역 엘알토는 4,150m에 달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이다.
한 도시가 이렇게 고도가 차이가 많은 도시가 또 어디에 있을까? 
보통의 도시에서는 높은 지역이 물 난리가 날 가능성도 적고 조망이 잘되어 고급주택이 자리잡겠지만
여기서는 다르게 도시의 중앙과 조금이라도 숨쉬기 편한 저지대에 부자들이 살고 가장 높은 지역이 상대적으로 궁핍하다.
 
기후는 페루의 리마와 달리 한랭한 편으로, 1년 내내 낮 기온은 13℃ 정도 된다.
2월의 평균기온은 8 ℃, 평균 최고는 13 ℃ , 평균 최저는 3 ℃ 이다. 평균 강수일수 18일에 강수량 104mm이다. 
 
폭염도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동장군·한파도 없으니 고산병만 제외하면 최상의 기후 조건이지만
겨울엔 일교차가 엄청나다. 낮에는 강렬한 햇살 때문에 제법 기온이 높지만, 해만 떨어지면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진다.
대략 0도 안팎으로 생각보다 춥지는 않은데, 싼 호스텔에는 히터가 없어 밤에 자켓 두 벌 껴입고 자는 자신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