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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여행 3일차: 비슈케크 (2023.9.17)

클리오56 2023. 9. 19. 00:51

코스: 알마티 ~ 국경 ~ Diyar 점심식사 ~ 오쉬시장  ~ 마나스 동상  ~ 코좀꿀 기념동상 ~ 대통령궁 ~ 알라토광장 ~ Old 광장 ~  Oak Tree 광장 ~ Victory 광장 ~ 명가 저녁식사 ~ 소피아호텔

알마티를 떠나 약 212키로, 3시간만에 육로로 국경을 넘어 키르기스스탄으로 입국하였다.
이번 탄탄 여행의 핵심은 키르기스스탄의 알틴아라샨의 트레킹이다. 9월22일 예정이니 5일 후인데 부디 좋은 날씨로 3,900m 해발의 고개에 당도하길 기원한다. 
물론 탄탄 여행에는 여러 차례의 트레킹이 포함되며 실크로드의 유적도 간혹 만나게된다.
 
키르기스는 튀르크계 언어로 40을 뜻하는데 민족영웅 마나스의 서사시에 등장하는 40부족에서 유래한다. 키르기스스탄을 여행한 유튜버들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순박하고 물가가 저렴하다니 기대해보겠다.  
 

키르기스스탄은 한반도 보다 약간 작은 면적에 인구는 약 670만명이다.
키르키스인이 73.3%, 우즈벡족 14.6%, 러시아인 5.6%인데 최근 우즈벡족과는 민족 갈등이 크게 발생한 바 있다.
 
전국토의 40%가 해발 3천미터의 고산지대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로 불린다. 7천미터급 산들이 즐비하다.
톈산 산맥과 파미르 고원에 접하다보니 농사 가능한 지역은 비슈케크 및 오쉬 인근에 한정된다.
게다가 지하자원이 별로 없고 다른 지역은 유목 중심이라 경제적 수준이 올라갈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다.  
내륙국가라 무역을 통한 교류도 적으니 키르기스스탄은 지리적 한계가 명백히 드러나는 케이스이다. 

 
키르기스스탄은 굉장히 특이한 역사를 지닌다.
다른 유목민족들 흉노, 투르크, 몽골은 한때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는데
키르기스 민족은 고대부터 존재했지만 한번도 제국을 이룬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한 국가를 이루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민족의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마나스라는 구술문학이 존재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이 아닐까한다.  
 
키르기스스탄은 1세기에는 흉노의 지배를 받고,
7세기에는 위구르의 지배를 받았지만 역으로 위구르를 멸망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위구르 멸망후 러시아의 예니세이강 근처로 이동하여 유목을 하였다. 
16세기에 코사크가 모피를 찾기위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예니세이강에서 충돌하였고
키르기스족은 카자흐를 거쳐 지금의 땅에 정착하였으니 오래되지 않은 셈이다.   
 
17세기에 키르기스는 우즈백의 코칸트 칸국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러시아가 남하하면서 카자흐를 복속시키고 키르기스도 그 지배하에 두었다. 
소련 연방이 되면서 키르기스공화국이 생기고 그 때의 영토가 지금까지 이어진다. 
 
이번 키르기스스탄 여행에는 비슈케크, 송쿨 호수, 스카즈카 협곡,
이식쿨 호수카라콜, 알틴아라샨, 콕투스 등에서의 트레킹과 관광이 포함된다.

정효정의 '당신에게 실크로드'라는 책을 보면 기원전 2세기 키르기스스탄 일대는 오손이라는 나라였다.
한무제가 오손과 화친을 맺기 위해 조카 유건의 딸 유세군을 오손에 보냈다.
기원전 105년 그녀는 25세, 졸지에 유목국가 오손에 왔던 것이다.
그녀의 시 한수가 전해지는데 비수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한 마리 고니가 되어 고향 가기를 그리워했다.      


구글 지도에서 알마티와 비슈케크의 거리를 숙박한 호텔 기준으로 측정하면 233km, 3시간32분이 나온다. 그런데 알마티에서 국경까지가 212km이니 비슈케크는 국경에 아주 인접한 셈이다.

알마티에서 국경까지는 광활하게 펼쳐졌을뿐 큰 도시나 농지는 보이질 않고 스텝지대로 내버려진듯한 인상이다.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새로운 땅과 삶을 본다는 기대로 흥분되기도 하고, 혹시 뭔가 잘못되어 입국이 허락되지않는 불상사나 과일 등 물건을 압수당하지는 않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하지만 출국과 입국에서 짐 검사도 없이 간단히 여권 체크하는 것으로 신속하게 끝났다.


비슈케크에 당도하여 우선 환전을 하였는데 우리 팀은 인당 100불씩 갹출하였다. 이후 Diyar라는 좋아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식사, 4가지를 주문하여 셰어했는데 면종류가 입맛에 잘 맞았다.


알마티에서 처럼 비슈케크에서도 첫날은 시내관광이고 오쉬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오쉬는 키르기스스탄 의 남부에 위치한 제2의 도시인데, 정주민들이 사는 남부 오쉬의 사람들이 이곳 유목민 도시에서 장사를 시작하면서 오쉬시장으로 불려졌다.  알마티의 그린 바자르보다는 더욱 시골스런 모습이지만 더 흥미로웠다. 내일부터는 도시를 벗어나 오지 트레킹이 시작되니 부식이나 견과류의 구입이 있었는데, 우리팀은 김치를 구입했다.


거대한 마나스 동상 좌우로 보좌관과 장군이 있다. 키르기스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통일시킨 전설적 인물인데, 그에 관한 대서사시 구술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코좀꿀 기념동상 역시 말을 등에 지고 산을 넘어갔다는 대단한 장군이다. 이 동상이 스포츠센터 앞에 위치했는데 그런 뜻도 내포했는지 모르겠다.


대통령궁은 거대한 건물로 집무실이 위치한다. 공산국가의 전형적인 위압적 분위기가 드러난다. 모퉁이 펜스의 검은 대리석 진열은 민주화를 향한 튤립혁명 당시의 희생자 명단이고 그 옆에 추모비가 있다. 시만들이 흰색 돌(선과 자유)을 보호하려 검은색(악과 공산 독재)을 밀어내는 모습일까하고 상상해본다.


알라토광장(Ala too square, 눈덮힌 산맥 뜻)은 1984년 키르기스 공화국 60주년을 기념하여 지어졌으며, 당시 이름은 레닌 광장이었다. 하지만 독립 후 지금은 광장 이름도 동상도 모두 교체되었다. 키르기스스탄 건국영웅 마나스장군 동상과 국기 게양대 밑 부동자세의 근위병들이 인상적이다. 넓은 광장과 국립박물관이 옆에 있다. 근무병 교대식이 볼만하다는데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부근에 관공서가 밀집해있다.


알라토 광장에서 쫓겨난 레닌은 Old 광장에 자리잡았다. 다른 나라에서는 동상 파괴도 있었는데하며 가이드에게 물으니 아직 공산당도 파워가 있단다.


공원과 광장 이름이 여럿잊ㅣ만 대부분 지척이고 도로나 숲길로 연결되어있다. Oak park는 19세기말 러시아 식물학자가 참나무를 심었는데서 유래했으니 120년이 넘었다. 조용한 공원인데 마르크스와 앵겔스가 대화 나누는 동상이 있다. 동상 아래에서 함께 사진찍자는 제의는 단호하게 거부했는데, 전세계 수천만명의 생명을 혁명이라는 허울뿐인 명목으로 살해한 공산주의 시조 밑에서 기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부근은 조각공원 처럼 많은 조각품이 산재해있다.


거리 이름을 따라 붙인 얼컨딕 갤러리(Erkindik Gallery)는 예술가와 장인들이 판매용 작품들을 길을 따라 전시하므로 구경도 하고 판매되기도 한다. K pop을 따라 춤추는 소녀가 기특해 가지고 있던 비타민 C를 작은 선물로 주었다. 또한 도로원표에서 한발씩 내밀며 기념사진.


마지막으로 Victory Square,  2차세계대전 종전 40주년 기념으로 건설되었는데, 유르트 형상의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동상이 있고, 멀리 좌측에는 가족들이, 우측에는 전장에서 부상당한 병사의 동상이다. 오늘 가장 인상 깊고 감동적이다.


숙소 소피아 인터내셔널 호텔에 체크인 후, 곧장 명가 식당으로 이동하여 팀 식사를 하였는데 그대로님이 한턱내셨다. 술도 거나하게 들었고 좋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키르기스스탄의 일반적인 개요는 자료를 참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