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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 여행 1일차: 알마티 도착(2023.9.15)

클리오56 2023. 9. 16. 08:40

 

오랜만에 국적기 아시아나에 탑승했고, 항공기는 폐쇄된 공간의 장시간 비행이라 마스크를 착용했다. 국제선도 노선별로 차등이 있는지 모니터가 아주 구닥다리이고 영화같은 프로그램은 아예없다. 알마티 공항에 랜딩해서 대기하느라 거의 7시간만에 도착했다.

인천공항에서 집합하여 함께 떠나는 멤버는 모두 13명,
다음 여행 카페가 주관하는 행사이다.
작년에도 이 카페의 튀르키예 여행에 와이프와 함께 처음으로 참석한 바 있다.
다른 카페나 여행사 상품과의 차별과 강점은 트레킹 일정이 많이 포함되었다는 것으로 나에게는 매력적이다.
그리고 상업적 목적이 많이 희석되었으므로 비용이 합리적이라는 점,
다만 다른 여행사처럼 청산유수의 설명과 매끄러운 진행에서는 개선의 여지가 있다.
 
지난 번 포르투갈과 스페인 여행시 알마티에서 환승하였는데
그때의 짧은 인상으로는 공항이 많이 후졌는데, 이번에도 캐리어 처리에서 그런 문제점은 보였다.

입국심사는 신속했는데, 선답자들의 여행기를 보면 입국카드 잘 보관해야, 출국때 꼭 검사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부분이 개선되어 입국카드 제도는 없고 여권에 입국 스탬프만 찍었다.

모든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바깥으로 나왔는데 늦은 밤이라 톈산산맥의 설산 능선은 볼수없다. 대신 매연이 제법 심하여 마스크 착용했다.

한명이 탑승하지 못한것을 모른채 출발했다가 다시 찾는 작은 소동을 벌였다.

숙소는 Ravaah hotel이라는 레지던스 호텔인데 거실과 방이 아주 넓직하다. 트윈룸을 산길님과 함께한다.

9.15~28일까지 14일간의 이번 여행은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2개국을 긴 타원형을 그리듯 순환한다.

작년 9월의 튀르키예, 올해 4~5월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리고 이번의 탄탄 여행을 살펴보면 공통점의 하나는 이슬람 문화와 연관되었다.
튀르키예와 이번의 탄탄은 당연히 이슬람 국가이고,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7~8백년간이나 이슬람 지배를 받아 그 문화가 많이 남아있었다.
그리고 튀르키예와 이번 탄탄은 이슬람 국가라고는 하지만 세속적이라 엄격한 이슬람과는 거리가 멀다. 저울질을 한다면 이번 탄탄은 더더욱 세속적이라 이슬람 종교적 분위기는 많이 약화된 상태라 여행에서 종교적인 큰 제한은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연구소 유튜브를 비롯
많은 여행 동영상과 몇 권의 서적을 접하였고, 이를 토대로 나름의 사전 지식을 마련하였다.  예상외로 탄탄 국가들에 대한 여행서적은 많지도 않고 깊이도 얇지만, 반면에 유튜버의 활약이 오히려 더 두드러짐을 강하게 느꼈다. 

 

카자흐스탄의 국기는 하늘색 바탕에 황금색의 카자흐 전통 문양과 32줄기 태양 그리고 초원수리가 그려져 있다.
 
카자흐스탄이라는 국호는 주 민족인 카자흐인의 명칭에서 유래했다.
더 나아가면 고대 튀르크어 qaz에서 카자흐라는 민족명이 나왔고 그것이 국가 이름이 된 것인데, 
qaz에는 '방랑하다'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유목민 생활을 했던 그들의 특성에서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페르시아어로 '땅·나라'를 의미하는 스탄(ستان‎‎ / stân)이 붙어 카자흐스탄이 되었다.
방랑자는 영어로는 유목민의 의미도 지닌 nomad가 아닐까, 아주 멋진 이름을 기원으로 가지고 있다. 
 
나에게는 배우기 어려운 카자흐스탄어, 최소한 인삿말이라도 외워두자.

 
카자흐스탄은 세계 9번째 큰 나라로 한국의 27배이고 카스피해를 바다로 보지않는다면 세계 제일의 내륙국가이다. 
워낙 크다보니 러시아와의 국경만도 7,559km, 전체 국경으로는 13,400km라고 하니 국경 수비하기에도 만만치 않겠다.
 
민족적으로는 튀르크 족에서 파생되었고, 몽골과의 역사적, 민족적 연관성이 강한 유목문화를 기반으로
18세기 이후 러시아의 영향 및 지배가 있었고, 종교적으로 이슬람이라 무슬림 문화가 공존한다.
음식 맛이 괜찮다는 평도 많으며, 중동 이슬람과는 달리 술을 상당히 좋아한다.
 
지리적으로는 남으로 톈산 산맥이 뻗어있다.
국토 80프로가 스텝인 나라로 인구는 2천만수도는 아스타냐, 제일 큰 도시 알마티에만 인구 2백만이다.
카자흐인이 67%, 러시아인 20%, 기타 우즈벡, 타타르, 독일계 그리고 고려인도 약 10만명. 
1980년대 구소련 시절에는 오히려 러시아인이 더 많았고,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많이 러시아로 돌아가 지금은 20%. 
  
카자흐스탄은 분명 아시아에 속하지만 일부 국토, 약7%가 우랄산맥의 좌측에 있어 유럽에 다리를 걸친 셈이다.
하여 카자흐스탄의 축구는 유럽축구연맹에 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유목민의 땅이라 농사는 별로였는데
구소련시절인 1950년대 대개간을 하면서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부상하였다. 2021년 기준으로 세계 14위의 밀수출국이다.
 
카자흐스탄의 최고봉은 톈산산맥의 칸 텡그리로 해발 7,010m이다. 

 
구소련의 스탈린 시절에 연해주 조선인을 강제로 이주시켰으니 바로 카자흐스탄이며
그런 악연으로 고려인들이 소수민족으로 살고있으며, 벼농사를 도입하였고, 당근김치를 지역 실정에 맞게 개발하였다.
고려인 중 유명인으로는 홍범도 장군이 있으며,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활약하였지만
공산당원이기에 평가절하되고 있다. 남북대치 상황에서는 일부분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카자흐스탄은 구소련이 핵실험한 지역이 있고 529개 장소에 방사성 폐기물 2억3천만톤이 방치되어있다고 한다. 
또한 세계 최고, 최대의 우주기지 바이코누르를 러시아가 임대하여 아직도 사용중이다.
 
카자흐스탄의 역사는 기원전 1500년 유목민들이 생활을 시작했다하며 
청동기 초기문화와 유목문화가 결합되었다. 
기원전 5세기경 사카(Saka)라는 이란계의 스키타이계 민족이 유목생활을 하였다. 
 
기원전 3~4세기로 추정되는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로 황금인간이 있는데. 4천개의 황금조각을 이어 만들었다. 
그 고분은 적석목곽분으로 경주의 무덤과 상당히 유사하며 황금관 역시 유사성을 지녀
일부 학자는 유목민이 시베리아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내려와 신라에 합류했다고 주장한다. 

기원전 2세기에는 훈족이 동쪽에서부터 밀고들어왔으며
6~7세기에는 돌권(튀르크족)이 제국을 건설하였고 
13세기에는 몽골제국이 점령하였고 장남의 후손들이 1240년 킵차크칸국을 건설하였다. 
여기서 갈라진 일족이 1465년 카자흐 칸국을 창건하였으니 이들이 직접적인 직계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18세기 중엽 청나라에 크게 패퇴한 준가르가 침공하였는데 이때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하였다.
하여 19세기가 되면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지역의 상당부분을 식민지화하게 된다.  
그리고 1860년대 결국 카자흐스탄 전역이 러시아 영토로 합병되었다. 

 
소련 지배하에서 공산주의 집단농장 체제로 전환하면서 숱한 아사자가 속출하였는데 인구가 크게 감소하였다. 
150만명이 굶어 죽고, 100만명은 인근 다른나라로 탈출했다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1991년 소련 붕괴로 독립한 이후 처음 10년 간 초인플레이션과 구조조정으로 경제난을 겪었고,
그로 인해 대규모 인력이 유출되었다.
GDP 대비 국가 부채가 400%에 이르러 사실상 한 때는 국가부도 상태 까지 갔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석유 매장량, 다양하고 풍부한 천연자원과
이를 이용한 친서방과 친러 정책을 펼치면서 2000년대 후반까지 엄청난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덕분에 지금은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독립국가들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나타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이 이전에는 훨씬 더 잘 살았는데 지금은 카자흐스탄이 역전시켜 더 잘 산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켜 경제봉쇄가 진행중이라 오히려 그 특수를 누린다고 한다. 
 
1인당 GDP는 약 12,000불이지만 PPP는 27,600불에 달하니 생각이상으로 잘사는 편이다. 
원유 12위, 가스 25위, 크롬 1위, 우라늄 2로 지하자원이 풍부하니 그런 수치를 뒷바침하는게다. 

블라드미르 킴이라는 고려인 3세가 제일 부자이고
국민 약 160명이 부의 55%를 점유하는 부의 편중이 심한 나라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튀르키예어처럼 카자흐어 문자를 키릴문자에서 라틴문자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카자흐스탄 정부도 이에 대해 어느 정도 동의하는 경향이 있지만 국민들의 반발이 있다.
이미 익숙해진 문자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주장과, 카자흐스탄의 공용어기도 한 러시아어가
키릴문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카자흐어도 동일한 문자를 쓰는 게 낫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에는 라틴 문자로 바꾸려는 공감대로 기울어지는 상황으로 2017년 4월 12일에 카자흐스탄 정부는
카자흐어의 표기를 로마자로 바꾸기로 결정했고 2025년까지는 로마자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카자흐스탄은 2018년 2월 27일 이전까지는 국무회의에서 러시아어와 카자흐어를 동시에 사용했지만,
지금은 러시아어 사용이 금지되고 카자흐어로만 진행되었다.
아마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탈러시아 경향은 더욱 강화되지 않을까 생각.
 
푸틴의 멘토인 솔제니친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그리고 카자흐스탄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함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이탈은 묵과할 수 없는 사태였고
앞으로 카자흐스탄의 미래는 이런 상황과 연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카자흐스탄은 역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러시아와는 완전히 다르다. 
구소련 시절 러시아인들이 카자흐스탄에 많이 이주하여 카자흐민족 보다 더 인구가 많은 적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도 북부지역은 아직 러시아인들이 많으므로 러시아는 언제든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다.
최근 카자흐스탄의 쇼요 발생시 러시아가 신속하게 군사개입한 것은 그 방증이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