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곳저곳 해외여행

스페인-포르트갈 여행 14일차, 그라나다 (2023.05.08)

클리오56 2023. 5. 10. 10:16


경로: 숙소 ~ 사크라몬테 수도원 ~ 크리스토발 전망대 ~ 산 니콜라스 전망대 ~ 숙소 ~ 그라나다 대성당 ~ 이사벨 광장 ~ Salon Garden공원 ~ 산헤로니모 수도원
거리: 20.09km (일부 버스 포함)
소요시간: 총 9시간49분(휴식 3시간9분 포함)

그라나다는 스페인어로 석류의 뜻이다. 만년설 네바다 산맥 기슭에 위치하여 스키족들이 찾기도 한다. 711년부터 약 8세기 동안 스페인을 지배한 이슬람 왕국의 마지막 거점으로 수도였다.

북서부의 작은 땅에 몰린 스페인은 722년 코바돈가에서의 승리를 기점으로 반격을 시작하고 레콘키스타 운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성 야곱의 유해가 발견되어 이곳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이름 붙이며 예루살렘 대신 순례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져온다.

1236년 코르도바를 탈환했고, 1492년 그라나다를 함락시켜 국토회복운동을 완수했다.

타레가의 기타 연주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과 워싱턴 어빙의 '알함브라'가 널리 알려졌다. 특히 어빙의 소설은 오늘날의 그라나다를 있게하였다.

그라나다는 3개의 언덕으로 이룽ㆍ졌다. 사비카 언덕(일명 알람브라 언덕, 담홍색 성벽과 탑), 알바이신 언덕(이슬람교도들의 마지막 도피처이자 삶터로 오밀조밀한 작은 골목, 이 언덕 중간에 산 니콜라스 성당 앞은 알람브라 최고 조망처), 그리고 사크라몬테(동굴 속에서 사는 집시, 동굴속을 주점으로 개조하여 플라멩코 시연)이다. 빨간 미니버스가 골목길 언덕을 누빈다.

코르도바에서 기차로 그라나다 도착후 잠시 휴식을 취하곤 시내버스로 사크라몬테 수도원으로 향하였다. 크레디부스(CrediBus)라는 교통카드 구입도 고려했지만 대부분 도보이동이 예상되어 필요시 현금지급 방법을 택했다.

사크로몬테 수도원(Abadía del Sacromonte)은 알함브라 궁전 조망처의 하나이다. 사크로몬테는 거룩한 산의 뜻인데 약 600년 전부터 집시 마을이 형성되었다. 수도원은 1523~1588년 건립되었는데, 그라나다 대성당을 짓는 중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목판을 발견하였고 이를 보관할 수도원을 세우면서 순교자 산 세실리오에게 봉헌되었다. 외관에서 발견되는 다윗의 별은 유대인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악마를 쫓아내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어져 유대인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이슬람교도들도 즐겨 사용하였다. 수도원은 많이 쇄락해보였는데, 현재는 제법 대대적인 보수가 진행되는 듯했다.


수도원에서 도보를 시작하여 주로 찻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제법 볼거리를 만났다. Mirador de Sacromonte에서 알함브라를 조망했다.



사크라몬테(Sacromonte)의 마을에는 아직도 동굴집 생활하는 집시가 있다하며, 플라멩코 공연장도 있다. 또한 전망대(Mirador de la Vereda de Enmedio)가 있어 알함브라를 조망했다.


Puerta de Fajalauza는 꽤 오랜 역사를 지녔고 알바이신으로 통하는 주요 게이트의 하나이다.


크리스토발 전망대 역시 그라나다와 알함브라 조망처로 유명하다. 산 니콜라스 전망대보다는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이후 계단길이 제법 사진찍기 좋을듯 하다.


이후 Puerta Monaita와 로나 전망대를 거쳐 산 니콜라스 전망대(Mirador de San Nicolas)에 도착했다. 이미 인파가 가득한 교회 앞 작은 광장에서 석양의 궁전을 조망한다. 알함브라 궁전부터 시내 뷰까지 가히 최고의 조망처이다.


일몰 이후 곧 니콜라스 전망대를 떠나 내려오면 칼데레리아 누에바 거리(Caldereria Nueva)로 들어선다. 그린 비아에서 알바이신이 시작되는 오르막길에 형성된 아랍거리로 기념품 가게, 아랍 카페와 레스토랑이 가득한 이색적이고 고풍스럽다.


이후는 다음날 도보 여행이었다. 그라나다 대성당은 원래 모스크 자리이었다. 16세기부터 180년 공사했지만 아직도 탑은 미완성이며, 고딕으로 시작했으나 1704년 완공시 르네상스, 고딕, 무데하르의 짬뽕이었다. 통일 이후 종교재판을 통해 대학살과 유대인 축출, 흑사병으로 등으로 인하여 공사에 어려움있었다.

파사드 아치에 직선을 풍성하게 사용하여 가급적 하늘 높이 치솟은 듯한 느낌을 주며, 종탑은 하나만 완성되었다.
대성당 지붕의 천사는 미카엘 천사로, 칼(악마 사마엘과 써움)과 종려나무 가지(승리)를 들고 있다.

이사벨 1세의 두개 부조가 있는데, 왼쪽은 왼손에 지팡이를 들고 오른발로 둥근 물체를 밟고 있다. 머리에 왕관, 지팡이는 왕홀, 발밑은 지구본, 즉 스페인 통일하고 그라나다의 진정한 지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오른쪽은 수도사들이 입는 두건 달린 옷을 입고 오른손에 석판(십계명이 새겨진 계명판)을 들고 있으니 자신의 나라를 가톨릭 교리에 따라 다스리겠다는 다짐이다.


사그라리오 교회는 대성당과 면해 있는 작은 교회이다. 교회 앞의 상반신 동상은 알론소 카노(17세기 스페인의 화가, 조각가, 건축가)이다.


알카이세리아(Alcaiceria)는 이슬람식 바자르로, 좁은 골목이 온통 아랍 상품으로 넘쳐난다. 원래는 비단, 향신로 교역 장소이었다.


이사벨 광장(Plaza Isabel La Catolica)은 콜로부스 대로와 양왕 부부의 거리가 만나는 위치이다. 콜롬부스가 자신을 후원한 이사벨 여왕과 산타페 협약의 내용을 숙의 중이다. 산타페는 성스러운 믿음이라는 뜻으로 나스르 왕조를 항복시키기 위해 이사벨 여왕이 그라나다 근교에 건설한 최첨단 요새이다. 포르투갈은 이미 아프리카 연안을 돌아 인도로 가는 길을 개척중이고 바스코 다가마일행이 1498년 인도에 도착하였다. 협약의 주요 내용은 콜롬부스와 후손에게 귀족의 작위 세습 허용, 그곳에서 생산되는 물산의 10%와 교역으로 얻은 이익의 1/8 보장, 그 땅을 식민지로 할 경우 총독 임명 등이었다.


그라나다 시청사 앞은 카르멘 광장이다. 1627년 수도원으로 건립되어 지금은 시청사로 사용중이다. 옥상에 청동 기마상이 있는데 눈을 가리고 황금 공을 손에 들고 발치에도 놓여있다. 청동 조각상에 아이디어를 준 비얄티의 작품은 '엘 인스탄테 프레키소'(El instante preciso)인데 이 말은 '지금 이 순간'이라는 뜻이다. 작가는 완전한 행복에 이르려면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하며, 눈을 가린 것은 다른 것에는 한눈을 팔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행복은 말 타고 공 위에서 균형을 잡는 것처럼 위태롭고 짧은 시간 동안만 누릴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포기할 수 없으므로 기꺼이 말 위에 올라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는 것이다. 시청사 앞 광장은 카르멘 광장이다. 카르멘이 오페라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정할 수도 있지만, 그라나다에서는 카르멘이 정원과 채소밭이 있는 정원을 가리키기도 하므로 그리고 원래 수도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수도원에 딸린 정원과 채소밭이 지금의 광장이다.  


넓은 광장에 Fuente de las Batallas라는 분수가 있고, 꽈추를 홀딱 드러낸 동상이 있다. 사자상의큰 음수대도 인상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강가까지 이어지는 넓은 보행로가 멋지다.


보행전용로의 끝은  Salon Garden공원이고, Fuente de las Granadas 분수가 있다. 지도를 보면 Genil이라는 하천이 흐른다.


비브 람블라 광장(Plaza de Bib-Rambla)의 한 가운데에 멋진 분수가 있느데 포세이돈이 삼지창을 들고 있다.


그라나다 왕실예배당(Royal Chapel of Granada, Capilla Real de Granada)는 그라나다 대성당 옆에 붙어 있다. 처음부터 예배의 공간이 아니라 왕실의 영묘로 조성하여 국토회복운동을 완성한 양왕(페르난도 2세와 이사벨 1세)은 물론 이후 스페인 왕들을 안치하려했다. 하지만 현재 양왕 내외와 딸 내외만이 묻혀있다.


그라나다는 국토회복운동의 마지막 거점이라 가톨릭 상징을 많이 건설했으며, 산헤로니모 수도원(Monasterio de San Jeronimo)은 1504년 건축하였으며, ㅁ자 정원을 지니고 있다. 소박한 외양과 달리 예배당은 화려하다. 정문 파사드의 부조에서 산 헤로니모는 손에 돌을 들고 있고 발치에 사자가 앉아 있다. 벽에 걸린 수도사 옷과 손에 들린 십자가로 그의 신분은 수도사, 돌멩이로 자신의 가슴을 치는 까닭은 인간적인 욕망을 떨쳐버리기 위해 스스로 고행을 선택했다는 의미이다. 사자는 그가 발에 박힌 가시를 빼주자 은혜를 갚기 위해 평생 그의 곁을 지켰다는 사자의 일화에서 비롯된다. 성 제롬은 라틴어로 된 성서를 번역한 성서학자이다. 산 헤로니모 부조상 위에는 이 수도원을 건립하도록 명령한 양왕부부이기 때문에, 요한의 독수리, 이사벨의 멍에, 페르난도의 화살이 있다. 정문을 통해 수도원 안으로 들어가면 제일 먼저 클로이스터(Cloister)가 나오는데 사각형의 안뜰을 말한다. 내부는 왕실 예배당의 제단과 유사하며, 제단에는 제롬이 광야에서 고생하는 모습과 성서를 번역하는 모습이 있다. 사실 외양만 보았다. 정문 파사드 조차 보질못했는데, 아마 이 역시 유료입장 후 볼수 있는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