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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추사박물관 (2022.12.2)

클리오56 2022. 12. 2. 10:50

추사의 생애를 유홍준 교수의 강연을 통해 접한 후

추사의 말년 거처가 과천이었고 추사박물관이 주암동에 있음을 알게됨

걷기 일환으로 과천 종합청사에서 경마공원을 들른 후 걸어서 찾아 감, 약 8km 거리.

 

박물관과 더불어 과지초당이 있어 잠시 살펴보는데

유홍준 교수의 말대로 초당인데 기와집, 앞마당에 독우물을 복원

초당은 원래 생부 김노경의 별서였고 무덤이 인근 청계산의 옥녀봉에 위치

 

마침 2시 5분전에 도착하여 14시 해설을 들을 수 있었는데 참가자는 나 혼자,

참고로 해설은 11시, 13시, 14시, 16시 하루 네차례 진행

 

추사의 댜표작을 중심으로 간단한 해설이 진행

온라인 전시장을 통해 대표작 몇점의 글을 옮겨왔는데

전다삼매, 문자반야, 판전, 유희삼매, 實事求是箴 등이다. 

 

특별전으로는 '추사필담첩 2'인데 1809년 추사의 연행 당시의 기록으로 

연행직전편지, 김정희와 중국의 스승 옹방강의 필담, 소봉래 난 등이 전시중.

 

추사의 대표작인 불이선란도를 박물관 건물 외형에 표현해두었는데

2층에서 살펴보면 유리창에 그림자가 지기도 하면서 좌우로 불이선란도가 펼쳐지는게 흥미롭다.

 

그리고 과천 추사박물관에 대한 언론의 기사를 올려

추사의 생애와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되겠다.

 

과지초당 

김정희|19세기, 11.2×62.1|개인 소장
차를 달이며 삼매에 든다. 온릉(温陵) 채원리(蔡元履)는 「다사영(茶事咏)」에서 "물을 달이는 것이지 차를 끊이는 것이 아니니, 물이 좋아야 차맛을 낸다
[煎水不煎茶 水高發茶味]"고 하였다. 나가(那迦)는 범어 'Naga'의 한자 음역으로, 부처를 말한다.
김정희|19세기, 21.8×122.8|개인 소장
'반야'란 범어로 'prajna'라고 하며, 지혜를 뜻한다. 이는 초월적 지혜, 즉 인간 생명의 근원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예지이다. 예로부터 이를 실상반야(實相般若), 관조반야(觀照般若), 문자반야(文字般若)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문자반야'는 부처님이 깨달음의 경지를 얻고 나서 글이나 말로 표현한 것을 글로 설명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실상반야는 달 그 자체를 말한다면, 관조반야는 그 손가락에 의지하여 달을 보기까지의 수행과정을 말하며, 문자반야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김정희|1856, 78×180|한국금석서화연구소
서울 봉은사(奉恩寺) 판전에 걸려있는 현판 글씨의 탁본. 추사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쓴 것으로 전하는 김정희의 마지막 절필(絶筆)이다.
김정희|과천시절, 18×414(15면)|김종영미술관
추사가 김여균에게 써주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첩. '옛것을 고집하지 말라'고 당나라 유차가 한유에게 써준 시 등을 썼다. 하손노인(下潠老人)은 과천시절 추사의 별호의 하나이다. 이외에 김여균이 옻이 오르자 추사가 조롱한 시가 전하며, 「여균사청(如筠斯淸, 맑기가 대나무 같게 하라)」 글씨도 있다.
實事求是箴 김정희|19세기, 24.3×61.7|개인 소장
攷古證今, 山海崇深. 옛것을 고찰하여 현재에 증명함은, 산처럼 높고 바다처럼 깊네. 覈實在書, 窮理在心. 사실을 규명함은 책에 있고, 이치를 탐구함은 마음에 달렸네. 一源勿貳, 要津可尋. 하나의 근원임을 의심하지 말아야, 요체를 터득할 수 있네. 貫澈萬卷, 只此規箴. 만권 책을 꿰뚫는 것도 다만 이 가르침 뿐.
[正喜] [阮堂]印 [정희] [완당]인

연행직전 편지 (1809년 10월)

김정희와 옹방강의 필담(1810년)

소봉래 난

신 세한도 (2020년 박희선 작)

불이선란도

 

'불이선란(不二禪蘭)'
출처 네이버 블로그
 kyukim68 ・ 2019. 8. 9. 15:27
 
추사 70세인 1855년, 또는 70세 전후의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불이선란'은 이미 신품의 경지에 도달해 있다. 손길 가는 대로 붓질을 몇 번 쓱쓱 하여 비스듬한 난초 몇 촉을 왼쪽으로 그려놓고, 예서와 초서를 무겁게 버무려가며 왼쪽 위에서 오른쪽 역방향으로 칠언절구 시 한 수를 덜컥 써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잔글씨로 뜬금없이 토를 달더니, 이번에는 오른쪽 중간에서 왼쪽으로 해학적인 제발(題跋)을 달았다. 그러고는 어느새 다시 왼쪽 아랫부분의 모퉁이를 파고 들어가 오른쪽 방향으로 작품을 그리게 된 동기를 몇 자 쓰고는 그 옆에 살짝 익살스럽게 당시 현장 모습을 서술했다.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고 까칠하 묵란도에 이렇게 파격적인 제발이 함께 어울리면서 전체적인 균형과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더할 나위 없는 조형미가 완성되었다. 이 작품에서 추사는 글씨를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것이 아니라 마음 내키는 대로 뭉텅뭉텅 공간을 구성해나간 것이다.

/석한남, '다산과 추사, 유배를 즐기다' 중에서/

난초를 그리지 않은 지 20년 만에
우연히 본연의 참모습을 그렸네.
문을 닫은 채 깊이깊이 찾으며 또 찾은 곳
이것이 유마의 불이선이라네.
만약 아떤 사람이 억지로 요구하며 구실을 삼는다면
또 마땅히 유마거사의 무언으로 사양하리라.
만향

초서와 예서, 기자(奇字) 법으로 그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겠으며, 어찌 좋아하겠는가.
구경이 또 쓰다

애초 달준이를 위해 아무렇게나 그렸으니
단지 한 번만 가능하고 두 번은 불가하다.
선객노인

소산 오규일이 보고 강제로 뺏어가니, 우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