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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만자로의 눈: 헤밍웨이 (2022.7.29)

클리오56 2022. 7. 29. 20:51

소감 및 내용

킬리만자로의 눈은 50여 페이지의 단편이었지만 생각을 많이하게 여운을 남겼다. 여느 때 처럼 유튜브 '문학줍줍'님의 줄거리와 평을 먼저 정리하였고, 더 클래식 세계문학 시리즈의 본 작품을 숙독하였다. 그리고 유튜브 '김세라작가의 15분에책한권'을 역시 정리하며 작품에 대한 생각을 다듬었다. 그리고 본 작품을 원작으로하는 영화를 유튜브에서 무료 감상했는데 70년전 제작된 1952년 작품, 그레고리 펙 주연이었다. 소설과는 결말이 다르게 주인공 해리가 깊은 상처에서 회복하여 살아나는 해피엔딩이다.  

 

죽음을 앞두면 어떤 심정일까? 담담하게 맞이하겠다는 사람도 결국은 죽음의 공포에 휩싸이지 않을까? 주인공은 이야기 소재를 무척 많이 남겨두었다는데 나중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고도 없이 갑자기 죽음을 앞두게되니 회환이 남을 수 밖에. 문학줍줍님은 인간은 불멸의 욕구 못지않게 소멸의 욕구도 강하다지만, 죽음 앞에서는 후회가 더 강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해리는 남겨둔 소재들로 글을 쓰고 싶어 헬렌에게 받아적도록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경험이 없다고 거절한다. 인간은 큰 의미나 목적을 두고 있겠지만 평소에는 이를 잊어버리고 대충대충 살아가지 않을까. 그러다가 갑자기 다가온 죽음 앞에서 왜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게다. 

 

킬리만자로의 정상에 눈표범의 사체가 있는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김세라 작가님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아래로 내려가면 뜨거운 대륙인데 위로만 올라가는 눈속에서 얼어 죽은 표범은 방향을 돌리지 못한 아쉬움 가득한 우리 같은 존재이다. 가본 적 없는 산, 예측하지 못한 정상의 하얀 눈, 해리가 마지막으로 가고 싶었던 것은 회한을 덮을 만큼 비현실적인 곳, 죽으면서도 피하고 싶은 건 아쉬움 가득한 나의 지난 시간들 아닐까 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킬리만자로 정상에는 지금은 눈이 사라졌다고 한다. 눈표범은 눈속에서 살아야하는데, 그 눈을 찾아 정상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눈없는 정상에서 죽을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내 생각일뿐.  

 

1. 유튜브 '문학줍줍' (2021.2.26)

- 킬리만자로 산: 아프리카 케냐와 탄자니아 사이에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 정상에는 눈이 늘 쌓여있는 곳. 이름 자체가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이란 뜻인데 만년설이 덮인 모습을 표현한 것. 

 

-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특유의 허세가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소설 읽은 후 영상 관람 추천

 

(1) 해리가 보여주는 죽음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 

- 이 소설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해리가 죽어간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보이는 장엄하고 거룩한 죽음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헤밍웨이다운 허세가 가득한 죽음을 대하는 태도인 것 같다.

 

모두가 알다시피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 자신이 전쟁에 여러 번 참여했으며, 낚시나 사냥 같은 거친 취미를 즐겼다. 사선을 넘나든 경험을 해서 그런지 그의 작품에서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다. 어쩌면 곧 죽어도 허세를 잃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주인공 해리에게서 보이는 죽음에 대한 태도는 가벼움 그 자체이다. 

 

- 사냥 중에 상처를 입고 제대로 소독을 하지 않아 다리가 썩어 들어가는 와중에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상황에서 연인인 헬렌에게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밤 나는 죽게 될거야. 기운을 차릴 필요가 없어." 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해서 가볍게 말함으로써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으려고 하는 주인공의 속내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하지만 마침내 해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묘사하면서는 제아무리 허세에 물든 그 역시도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압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점차적으로 죽음을 맞는 해리의 모습은 이 소설의 압권이며, 왜 헤밍웨이가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 죽음은 그에게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와서, 이제 그는 죽음에게 말할 수 없었고, 
죽음은 그가 말을 못하는 모습을 보자 더욱 가까이 왔다. 
이제 죽음은 쭈그리고 앉아 있었는데, 더 무거워져서 그는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두 소년들이 침대를 들어올리자 문득 괜찮아졌고, 가슴을 짓누르던 무게가 사라졌다."

사람은 누구나 실제로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죽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이를 의도적으로 가볍게 대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잘 대변해 주고 있으며 죽음 앞에 압도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

 

(2) 킬리만자로 산이 목적지인 이유는?

사망한 해리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환상 속에서 킬리만자로 산의 정상을 보고 그것을 목적지로 삼는다. 앞서 말한대로 이 작품은 해리가 죽음을 맞는 것을 묘사하는 부분이 압권이라 할 수 있는데 사망한 그가 보게 된 장면이 또 흥미롭다. 죽지 않고 마치 다음 날을 맞이한 것처럼 해리는 헬렌의 도움을 받아 콤프턴의 비행기를 타고 후송 되는데 그 도중에 킬리만자로 산의 정상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는 그 곳이야 말로 자신이 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눈 앞에는 세상처럼 웅장하고, 높고, 햇빛 아래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정상이 보였다. 
그 순간, 해리는 그곳이 바로 자신이 갈 곳임을 깨달았다." 

- 이 문장까지 읽은 독자들은 그제서야 비로소 혜리가 이미 사망했으며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이 장면은 그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임을 알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해리가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보고는 그곳이 자신이 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을 했다는거다.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이 소설의 맨 첫 부분에 킬리만자로 산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는 내용을 들여다 봐야한다. 

"정상 근처에는 얼어서 말라붙은 표범 사체가 하나 있다. 
표범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밝힐 수 없었다."

킬리만자로 산의 정상 있는 표범 사체가 해리를 끌어당긴 요소고, 표범 사체가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잘 보여준 장치라고 생각한다. 표범 그 자체보다도 그것이 왜 산에 정상까지 올라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설명에 주목하면 주인공 해리의 목적 없이 방황해온 삶을 잘 보여준다는 것을 깨닫게된다. 

 

- 작품 속에서 조각조각 나타나는 그의 삶은 마치 정상에서 죽은 표범처럼 떠돌아다니는 거친 삶이었다. 그러므로 해리가 산의 정상에서 본 것은 결국 표범의 사체였으며 그 표범은 해리라는 한 인물과 동일시되는 존재인거다. 그리고 아마도 표범과 해리는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작품 속 자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3) 해리가 왜 글쓰기를 포기했을까?

- 소설 속에서 그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것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하지만 그는 결국엔 글 쓰는 것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가 그의 단순 하지는 않은 것 같다. 

 

-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인간의 소멸하고 싶은 욕망에 대해서 표현하고 있다는거다. 주인공 해리가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부유한 여자들 유혹해 얹혀 사는 것이 최고의 생존법인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본래의 꿈은 작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실제로 그는 많은 글감을 가지고 있다고 작품 속에서 이야기한다. 

"나중에는 그것 말고도 글감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쓸 것은 널려 있었다."

- 그리고 소설 중간중간에 짤막하게나마 해리의 머릿 속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이 나타나고 있어서 재미를 더하고 있다. 그런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어느 순간 부턴가 글 쓰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부유한 헬렌에게 붙어서 방랑을 하며 사냥을 즐긴다. 

 

- 그 돌변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글 쓰는 것을 중단한 그 나름의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문장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다. 

"아무 것도 남겨두기 싫어. 뒤에 뭔가 남겨두기 싫다고." 

사실 이 말은 부상을 당한 후 건강이 악화되는 과정에서 해리가 난폭해지자, 왜 악마가 되려고 하냐고 묻는 헬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 대답을 통해서 해리는 자신의 글을 세상에 더 이상 남겨두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 흔히 사람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소설 '불멸' 에서 이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과연 불멸하기를 원하는가,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남기고 싶어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선뜻 그렇다는 답을 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인간에게는 불멸에 대한 욕구 못지않게 소멸에 대한 욕구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해리를 단순히 꿈을 포기한 자, 부유한 여자에게 얹혀 지내는 놈팽이 정도로 생각하기 이전에 소멸에 대한 인간의 욕구를 나타낸 인물로 보면 어떨까 싶다. 

 

2. 유튜브 '김세라작가의 15분에책한권' (2021.5.25)

- 헤밍웨이(1899~1961): 미국 작가, 퓰리처상 수상, 살아서 부와 명성을 다 누렸던 작가, 1910년 이후 미국 현대문학을 이끈 로스트 제너레이션 작가.

* 로스트 제너레이션1차 대전으로 인한 사상적 환멸로 희망을 잃고 절망과 허무에 빠진 미국의 젊은 지성을 일컫는다. 이들은 대게 1890년대에 태어나서 그들의 나이가 병역 적령일 때 세계대전에 참전한 후 전쟁의 참혹한 경험을 안고 미국으로 돌아와 작가 활동을 시작해서 미국 문학을 이끌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핏츠 제럴드, 음향과 분노의 윌리엄 포크너 그리고 헤밍웨이가 로스트 제너레이션 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그의 무기여 잘있거라, 해는 다시 떠오른다, 또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는 딱 그런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 헤밍웨이의 모든 소설들은 전쟁이 아니라도 허무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습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전쟁의 허무에서 사회적 문제, 삶과 죽음이 허무로 옮겨가 있는 그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헤밍웨이의 단편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며 읽을 때마다 뒷맛이 다른 소설이다.

 

이책의 시작부분이 꽤 유명한데, 그걸 읽어 드리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킬리만자로는 만년설로 덮인 산이며,
해발 19,710피트(공식 해발고도 5,895m)로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다고 알려져 있다.
서쪽에 있는 정상은 마사이어로 "응가예 응가이"라 불리는데, '신의 집'이란 뜻이다.
정상 근처에는 얼어서 말라붙은 표범 사체가 하나 있다. 
표범이 그 높은 곳에서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밝힐 수 없었다.

주인공 해리는 작가이다. 그는 일생을 마음껏 즐겼다. 돈 많은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 지역의 거물급이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이어갔다. 끊임없이 여자들을 만났고, 사랑이거나 혹은 우정, 또 일시적인 만남이 계속되었다. 마음속으로는 언젠가 이 사람들 큰 부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나 쓰지는 못했다. 아무것도 쓰지 않고 편안함만을 찾으면서 스스로를 경멸하는 인간이 되어가는 생활이 그의 재능을 점차 우둔하게 만들었고 의욕도 떨어뜨렸다. 그렇다고 그렇게 방탕한 건 아니었는데 그건 그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기분 좋게 사람들을 사귀었고 마음껏 즐겼다. 결혼을 한 적도 있었는데 아내와 싸운 후 콘스탄티노플로 혼자 갔고 계속 바람을 피웠지만 마음의 고독이 억제되기는 커녕 더욱 심해져 갔다.

 

- 그래서 첫번째 여자, 자기를 버리고 떠난 그 여자에게 쓸쓸함을 참을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거기서 아나톨리아로 가는 도중 양귀비 밭을 지나다가 터키 군대가 몰려와 영국 관측 장교와 도망을 친 일도 있었다. 숨어 있으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광경들을 많이 보았고, 파리로 돌아왔지만 그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그건 말하기도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글로 꼭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쓰지는 않았다.

 

이후 다시 아내에게로 돌아가 아내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미친 짓을 하지 않고 안락한 가정에 안주하게 되니까 좋았다. 그러다가 편지를 보낸 첫 번째 여자에게서 답장이 왔고 그걸 아내가 보게되면서 그 생활은 끝나버렸다. 그는 여자들과 보냈던 시간의 즐거움을 떠올리며 기분이 가장 좋을때 싸움이 벌어지는 건 무슨 까닭인지 의문이 있었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글을 쓴 적은 없었다.

 

그것 외에도 얼마든지 쓸 것이 있었고 언젠가 쓸 때가 오리라는 생각을 했다. 해리가 쓰지 못한 건 많았다. 트라키아를 막 떠나려는 아침 식사중 창밖의 불가리아의 산에 눈이 쌓인 것을 보았던 것, 그해 크리스마스 때 가우어탈 산의 높은 곳에 머물 때 일주일 동안 눈이 내렸고, 탈주병 한 명이 피투성이가 된 발로 눈 속으로 걸어왔고, 그 탈주병에게 털 양말을 신겨 도 망 시켜준 일, 눈보라 때문에 일주일 동안 마들레너 산장에서 오도가도 못하면서 트럼프 놀이만 했는데 렌트씨가 가진 재산을 몽땅 잃었던 일, 카이저 기병대 소속의 한스와 겨울에는 스키를 탔던 일, 그 외의 도시들과 장소에서의 경험들도 인상 깊고 마음속에 뚜렷이 남았고 이걸 글로 쓰려고 했었지만 결국은 안썼다.

 

해리는 사회의 미묘한 변화를 보았고 그것에 따라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알수 있었다. 그걸 쓰는게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 또한 쓰지않았다. 그는 자기 생활에 익숙해졌으나 지쳐갔고 그 즈음에 헬렌을 만났다. 헬렌은 미인은 아니었지만 아름다웠고 그녀의 얼굴을 해리는 좋아했다. 헬렌은 상당한 독서가였고 승마와 사냥을 좋아했고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비교적 젊었을 때 죽었고 얼마동안은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데 몰두했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어느 정도 성장해서 엄마를 덜 필요로 하게되었다. 그녀가 독서와 승마, 술에 빠진 건 바로 그때부터였다. 오후에는 책을 읽으면서 위스키 소다를 마셨고 저녁 식사 때 포도주 한 병을 더 마시고 나면 만취해서 잠들어 버리고마는 식의 생활이 이어졌다. 애인도 자주 있었는데 첫 애인이 생긴 뒤로는 취해서 잠들 필요가 없었으므로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죽은 남편은 그녀를 지루하게 하지 않았지만 애인들은 굉장히 지루했다. 그때 아이 하나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론 애인을 갖고 싶어하지 않았다. 술도 슬픔을 없애는 마취제가 아니었으므로 이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야 한다는 자각이 들었다. 자기가 고독하다는 것을 느꼈고 누군가가 필요했고, 이번에는 자신이 존경할 수 있는 남자를 원했다. 그리고 해리를 만났다. 헬렌은 평소 해리의 작품을 좋아했고 작가로서의 생활을 부러워했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으므로 자기가 시작하려는 새로운 생활을 위해 사랑에 빠지게 된 거였다.

 

- 해리가 그녀와의 관계를 시작한 건 먹고 살기 위해서 혹은 즐기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그 밖에 있는 뭔가를 찾으려고 했다. 그녀는 돈이 엄청나게 많았고 유쾌하고 감수성이 풍부했고 감정의 기복도 심하지 않은 멋진 여자였으므로 그녀와 있는게 좋았지만 그게 사랑해야 하는 이유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관계를 이어 나갔고 즐겼으며 많은 곳을 다녔고 파리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아프리카로 왔다. 해리는 아프리카를 좋아했고 거긴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게 지내던 곳이었다. 그는 이제 새 출발을 하고 싶었고 그 시작을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마치 권투선수가 몸에서 지방을 없애기 위해 산중으로 들어가 운동을 하고 훈련하듯 자기의 정신을 덮고 있는 지방을 벗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두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사냥 여행을 다녔는데 어느날 사냥 도중 영양 한 떼가 앞에 있었고 해리는 사진을 찍으러 가다가  가시에 무릎이 긁혔다. 무심히 지나친 상처였고 며칠이 지나 가려워서 긁어 상처를 더 내고 감염이 되어서 상처는 점점 심해져 갔다. 방부제가 떨어져서 약한 석탄산액을 사용했는데 그 때문에 모세관이 마비되어서 다리에 괴저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통증은 그를 괴롭혔고, 일어서지도 못한 채 통증과 다가오는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 구조를 요청했으나 그들의 캠프는 워낙에 오지여서 시간이 걸릴게 예상되었다.

 

헬렌은 지극정성으로 그를 돌봤다. 통증과 썩어가는 다리 냄새 때문에 차라리 다리를 잘라 달라는 해리에게 곧 비행기가 올거라고 다독였다. 해리는 괴저가 발생한 이래 고통과 공포감 보다는 심한 피로와 이것이 종말이라는 분노를 느낀다. 죽음은 지나면 된다는 태도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이제 막상 닥치니 차라리 의미가 없어진 듯했다. 언젠가 훌륭한 글을 쓸 수 있을 때 쓰겠다고 미뤄두었던 것들을 쓰지 않게 되었으며 쓰다가 실패할 경우도 이제는 없을 것이었다.

 

헬렌은 여기 오지 않았더라면, 해리가 좋아하는 파리에 더 있었더라면, 뭔가 모자라 보이는 키쿠유족 운전사 대신에 훌륭한 기사를 썼더라면, 이 상태를 미리 살필 수 있었을 것인데 왠지 아프리카는 오고 싶지 않았으며 차라리 헝가리로 사냥 여행을 떠났다면 하는 식의 후회를 계속했다. 해리는 그녀에게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 해서 아프게 하려 했지만 그녀는 심각하게 듣지 않았다. 또 어느 날은 이제껏 당신처럼 사랑했던 여자는 없었다는 말도 한다.

 

그는 거짓말이 버릇이 되었고 그 거짓말로 지금까지 빵과 버터를 벌어왔다. 마음에도 없는 거짓말은 진실을 이야기할 때 보다 여자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거짓말을 했다기보다는 이야기할 만한 진실이 없었다는 편이 더 옳다고 생각했다. 진실은 보이지 않았고 그의 주변에는 온갖 거짓들만 난무했으며 그건 습관이 되어버렸다.

 

지금 해리는 죽음이 보이고 아무것도 남기고 가고 싶지 않아서 사랑하지 않는다와 사랑한다는게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분간할 수 없어서 왔다갔다를 되풀이하고 있는 거였다. 헬렌에 대한 두 가지 관점, 친절한 시중꾼이기도 했고 그의 재능의 파괴자이기도한 그녀,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마음속에서는 너의 재능은 네 스스로 파괴한 거라는 외침이 더 크게 들리기도 했다. 그녀를 비난할 이유는 하나도 없으며 모든건 그동안 나태와 안일과 속물근성, 교만과 편견, 그 밖의 온갖 재능을 망치는 곳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않고 살아온 자신 탓이었다. 

 

그의 재능이란 실제로 이룩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면 할 수 있다는 그런 식이었다. 해리는 그동안 돈많은 여자들을 사귀었고 새로 사귀는 여자는 항상 먼저 여자보다 부자였다. 그리고 지금 이제까지 여자들 중 가장 돈이 많은 헬렌은 과거에 남편도 있었고 자식도 있고 애인도 여럿 있었지만 그들에게 만족하지 못했고 지금의 그를 작가로서 남성으로서 벗으로서 또는 자랑거리 재산으로서 극진히 사랑하고 있는 거였다.

 

헬렌은 먹을거리 마련 하기 위해 사냥을 다녀왔고 숫양 한 마리를 잡아왔다. 그에게 감자 크림을 넣어서 수프를 끓여 주겠다했다. 한잠 자고 일어난 해리가 기분이 좋아 보이자 그녀는 즐거워했다. 그리고 내일은 비행기가 꼭 올거라고 그에게 희망을 심어 주려고 했다. 비행기가 오면 마을에 가서 다리를 치료하고 말다툼 같은건 하지 말고 근사하게 살자고 합니다.

 

저녁이 되었고 일하는 사람들이 가져온 수프를 해리는 먹었다.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고 헬렌이 받아쓰게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런걸 해본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머릿속으로 쓰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했다. 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파리의 대해서도 쓴 적이 없었고 포크 집안의 고약한 영감에 관한 얘기도 생각났다. 그 고장의 이야기라면 소재가 적어도 20개쯤은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무슨 까닭으로 그걸 쓰지 않았던가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이제 죽음을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지만 고통은 두려웠다. 오래전 전쟁에 나갔을 때 일이 생각났다. 척탄병 장교인 윌리엄슨이 철조망을 뚫고 참호로 들어가다가 독일군 순찰병이 던진 수류탄에 맞은 일이 있었다. 그는  말도 안되는 허풍을 치는 버릇이 있었지만 용감하고 훌륭한 장교였다. 그의 몸에서 내장이 튀어나와 철조망에 걸려서 그를 끌어 당길 때 전우들은 내장을 잘라 내야만 했고 그는 제발 쏴달라고 해리에게 애원을 했다. 언젠가 그들은 하느님은 우리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은 주시지 않는다는 문제로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누군가 적당한 시기가 오면 고통은 저절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해리가 간직해 두었던 모르핀 알약을 전부 쏟아 부어도 윌리엄슨의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모르핀의 효력도 그에겐 별로 소용이 없었다. 해리는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정도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에게 인식시켰다.

 

그는 모든 것이 지겨운 것처럼 이제 죽음도 지겨워져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죽음이 다가와 침대 다리에 머리를 기대고 있어서 죽음의 입김이 가까이 느껴졌다. 그건 형상도 없고 다만 공간만 차지하고 있었다. 죽음은 고약한  냄새를 풍겼고 그를 무겁게 압박해왔다. 

 

- 그날 밤 그는 비행기를 타고 나가는 꿈을 꿉니다. 옛 친구인 콤프턴 대장이 비행기로 그를 데리러 왔다. 그를 실은 비행기는 공중으로 날아 올랐고 멀리 펼쳐져 있는 평원이 보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시냇물이 보였고 얼룩말들이 보였다. 녹색의 숲으로 울창한 산맥을 넘어 대나무가 무성한 비탈진 산 위를 날았고 거길 지나자 언덕이 낮아지고 평원이 나타났다.

그때 그들은 고도를 높이기 시작했고, 동쪽으로 가는 것 같았다.
비가 억수같이 내려서 그들은 폭포를 지나서 날아가는 것 같았다.
폭풍우를 빠져나오자 콤프턴은 고개를 돌려서, 씩 웃더니 앞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눈 앞에는 세상처럼 웅장하고, 높고, 햇빛 아래에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새하얀 킬리만자로의 평평한 정상이 보였다. 
그 순간, 해리는 그곳이 바로 자신이 갈 곳임을 깨달았다.

- 그날 밤 헬렌은 롱아일랜드의 집에 있는 꿈을 꾸다가 하이에나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깼다. 불안감이 밀려와 해리가 잠든 침대를 보았다. 해리는 몸뚱이는 그대로 있었지만 다친 다리가 침대 아래로 축 늘어져 있었다. 여러 차례 음성을 높여 가며 그를 불렀지만 그는 대답도 없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설은 여기서 끝이다.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대륙은 뜨겁지만 산정산은 만년설로 덮여있다. 기상학적으로는 설명이 된다 해도 아이러니하다. 알 수없는 진실같은. 해리는 쓰지 않은 자신의 재능과 살았던 날들에 대한

회한이 죽음을 앞두고 밀려 들었다. 즐기면서도 알 수 없었던 진실들, 진실이 없어서 거짓말이 습관이 되었지만 알고자 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아는게 두려웠을 수도 있다. 그저 시간에 몸을 맡기고 이끄는 욕망을 따라 가면서도 아는게 두렵다는 것 그게 바로 진실일 수 있다. 지키지 못한 남과의, 또는 나와의 약속들, 못간 곳들, 미처 챙기지 못한 처신들, 낱장으로  쌓여 있는 한 무더기 사진들, 미진하게 끝나버린 지인과의 관계, 해내지 못한 일들, 이루지 못한 나의 꿈, 시간은 앞으로만 내달리는데 마음은 이도저도 아니게 추수한 것, 후회도 미련도 더도없는 그게 우리들의 인생이다. 

 

-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파국 앞에서는 그저 회환에 잠길 수 밖에 없는게 또 인생이다. 아래로 내려가면 뜨거운 대륙인데 위로만 올라가는 눈속에서 얼어 죽은 표범은 방향을 돌리지 못한 아쉬움 가득한 우리 같은 존재이다. 가본 적 없는 산, 예측하지 못한 정상의 하얀 눈, 해리가 마지막으로 가고 싶었던 것은 회한을 덮을 만큼 비현실적인 곳, 죽으면서도 피하고 싶은 건 아쉬움 가득한 나의 지난 시간들 아닐까 합니다. 

 

3. 영화 (유튜브에서 무료 감상 가능)

- 1952년 작, 감독 헨리 킹

* 주연: 그레고리 펙(해리 스트리트 역), 수잔 헤이워드(헬렌 역), 에바 가드너(신시아 그린 역)

 

 

- 줄거리

기자 출신인 미국의 소설가 해리 스트리트(Harry Street: 그레고리 펙 분)는 아프리카의 오지로 사냥 여행을 나섰다가 킬리만자로의 기슭에서 패혈증이 원인이 되어 죽음의 고비에 이른다. 구원을 기대할 수 없는 빈사 상태에서 그는 지난 날의 생활을 회상하게 된다. 헛된 소망이 웃음을 자아내게도 하지만 반성과 회한으로 다가오는 과거의 일들을 참으로 소중한 것이 되었다. 미국, 파리, 스페인, 아프리카 등지에서 보낸 아름다운 기억들과 함께 전개되는 초원에서의 맹수 사냥, 깨어진 첫 사랑의 아픔, 오해로 인한 사랑의 갈등, 소설의 모델인 신디아(Cynthia Street: 아바 가드너 분)와의 생활의 죽음, 조각가인 백작 부인과의 관계 그리고 신디아를 닮은 미망인 헬렌(Helen: 수잔 헤이워드 분)과의 결혼 등 이성을 둘러싼 갖가지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고열에 신음하는 그의 뇌리를 스쳐간다. 그러나 사경을 헤매던 해리는 기적적으로 살아서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문명 사회로 돌아온다. => 소설과는 완전 다른 부분

 

교보문고 책소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미니북)』.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길 잃은 세대’를 경험했고 그 특유의 허무주의적 감성을 바탕으로 절제된 문체, 강인한 남성성, 참신한 소재가 돋보이는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그중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까지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 다섯 작품을 엄선하여 모았다.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지나간 삶과 고독한 현재의 모습을 그린 〈킬리만자로의 눈〉, 전쟁의 심리적인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송어 낚시에 몰두하는 ‘닉’의 이야기 〈두 심장을 지닌 큰 강〉(1, 2부)을 비롯하여 〈살인 청부업자들〉 〈어느 다른 나라에서〉 〈깨끗하고 환한 곳〉까지. 헤밍웨이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을 겪은 후 삶의 방향을 잃은 인간의 방황과 고뇌의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
저자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는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파크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때 학교 주간지의 편집을 맡으며 직접 기사나 단편을 쓰기 시작했고, 졸업 후에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 투입됐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그리스ㆍ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파리로 건너가 거투르드 스타인,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과 같은 유명 작가와 친분을 맺으면서 작가로 성장해 갔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1924), 《봄의 분류(奔流)》(1926),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를 발표했다. 전쟁의 허무와 비련을 테마로 하여 전쟁문학의 걸작이라고 평가받는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이름을 날리는 데 일조했으며,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간하자마자 수십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그 후 십 년 만에 내놓은 《노인과 바다》(1952)로 퓰리처상(1953)과 노벨문학상(1954)을 수상한다. 이후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1961년 아이다호 케첨의 자택에서 자살로 추정되는 엽총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역자 : 구자언

역자 구자언은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연세대학교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한성대학교에서 강의했고, 19세기 영국소설과 영화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현재 꾸준한 번역 활동을 하고 있으며, 번역서로는 《악마의 덧셈》 《존 카터: 화성의 신》 《피터 래빗 시리즈》가 있다.

목차

킬리만자로의 눈
두 심장을 지닌 큰 강_1부
두 심장을 지닌 큰 강_2부
살인 청부업자들
어느 다른 나라에서
깨끗하고 환한 곳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출판사 서평

20세기 미국 문학의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어니스트 헤밍웨이 단편 걸작선!

1953년 퓰리처상,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 책소개

빛나는 작품 ★ 영원한 감동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도네이션

도서출판 더클래식은 일찍이 고전의 가치를 깨닫고 이 시대에 꼭 읽어야 하는 작품들을 출간해왔다. 이번에 출간하는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도네이션’은 기존에 출간해왔던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의 한글판을 한 손에 휴대하기 간편한 미니북 크기로 제작하였다. 세련되면서도 귀여운 디자인과 합리적인 가격으로 제작했으며, 단순히 원문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번역이 아니라 본래의 의미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우리말과 글을 풍부하게 사용하여 원작의 감동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고전은 수많은 세월을 거치며 독자에게 다양한 감동과 의미를 깨닫게 해준다. ‘더클래식 세계문학 컬렉션 미니북 도네이션’을 읽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독자들이 다시 한 번 고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빛나는 고전의 가치를 느끼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20세기 미국 문학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남긴 주옥같은 단편선!

실제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길 잃은 세대’를 경험했던 헤밍웨이는 그 특유의 허무주의적 감성을 바탕으로 절제된 문체, 강인한 남성성, 참신한 소재가 돋보이는 많은 작품을 내놓았다. 그중 시대를 뛰어넘어 현재까지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는 다섯 작품을 엄선하여 모았다.
죽음을 앞둔 한 인간의 지나간 삶과 고독한 현재의 모습을 그린 〈킬리만자로의 눈〉, 전쟁의 심리적인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송어 낚시에 몰두하는 ‘닉’의 이야기 〈두 심장을 지닌 큰 강〉(1, 2부)을 비롯하여 〈살인 청부업자들〉 〈어느 다른 나라에서〉 〈깨끗하고 환한 곳〉까지.
헤밍웨이의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을 겪은 후 삶의 방향을 잃은 인간의 방황과 고뇌의 사실적 묘사가 돋보인다. 그 배경에는 작가 스스로가 직면했던 전쟁의 비극적 경험이 내제되어 있으며, 작품 속에서 그 불안감과 상실감은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독자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인간의 실존주의를 날카롭고 생생하게 묘사하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주인공 ‘해리’는 작가로서 인정받으며 안락한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새로운 삶을 이루고자 찾아간 아프리카에서 우연한 사고로 인해 다리가 썩어 들어가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된다.
헤밍웨이가 30대 후반에 쓴 이 작품은 헤밍웨이의 자전적 요소가 강하게 남아 있는데, 그것은 모든 것을 상실한 고독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사실 그는 유독 ‘죽음’과 ‘고통’,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의 어두운 측면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이 단편집의 작품들도 예외는 아니다. 죽음 앞에 놓인 방황하는 인물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나타내며 헤밍웨이의 흔적을 따라가게 한다.

“바로 그때 그는 자신이 지금 죽음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 생각은 빠르게 들이닥쳤다. 그러나 물이나 바람처럼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악취를 풍기는 공허처럼 들이닥쳤다. 묘한 것은 하이에나가 그 공허의 가장자리를 따라 가볍게 미끄러지듯 달려갔다는 것이다.”
_〈킬리만자로의 눈〉 중에서

〈두 심장을 지닌 큰 강〉(1, 2부)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낚시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닉이, 보고 듣고 느낀 감각을 구체적으로 서술한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불타 버린 검은 숲은 전쟁터를 대신하는 듯하며, 낚시에 전념하는 그의 모습은 전쟁의 상처를 잊고 살아가려는 의지와 강인한 남성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낯선 도시에 등장한 두 남자의 폭력에 맞선 청년의 강인함을 묘사한 〈살인 청부업자들〉, 전장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의 일상을 보여 준 〈어느 다른 나라에서〉, 자살을 시도한 노인의 삶의 무력감과 실존적 고민을 담은 〈깨끗하고 환한 곳〉에서도 여전히 헤밍웨이의 삶과 밀접한, 그 특유의 실존주의 인생관을 만날 수 있다.

▶ 줄거리

〈킬리만자로의 눈〉
주인공 해리는 작가지만 글 쓰는 일에 몰두하는 대신 여러 여자를 만나고 현실에 안주하며 안락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찾지만 뜻밖의 사고로 인해 죽음과 마주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죽음을 앞둔 해리의 마음에는 무절제한 생활에 빠져 살았던 지나간 날들이 스쳐간다. 그의 기억 속 각인된 것은 전쟁과 죽음의 공포, 가난과 술, 여자들과의 어지러운 생활뿐이다. 고통의 연속이었던 삶을 뒤로한 채 이제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데…….

〈두 심장을 지닌 큰 강〉 (1, 2부)
불타 버린 검은 숲 속, 닉이 송어 낚시를 하는 곳이다. 닉은 이틀 동안 오직 걷고, 텐치를 치고, 요리하고 낚시를 한다. 닉은 오직 송어 낚시하는 일에 몰두할 뿐이다. 전쟁의 상처를 잊고 살아가려는 의지와 강인한 남성성을 엿볼 수 있다.

〈살인 청부업자들〉
낯선 도시에 나타난 두 남자는 헤비급 권투 선수였던 올레 안드레손을 죽이기 위해 온 청부업자들이다. 마을의 한 식당에 침입해 식당 안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곧이어 안드레손이 오지 않을 것을 알게 되고, 식당에 있던 청년 닉은 안드레손을 찾아가 이 사실을 알리기로 한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안드레손은 죽임을 당할 것을 알고도 도망치지 않는다.

〈어느 다른 나라에서〉
전장에서 부상당한 군인들이 요양병원에서 지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병원에서는 심한 부상을 입은 군인들이 효과가 의심스러운 기계 치료를 받는다. 하지만 의사들도 환자들을 무심하게 대하고 일상적인 말만 늘어놓는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덤덤한 나날을 보내는 군인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깨끗하고 환한 곳〉
자살을 기도한 노인이 카페에 홀로 앉아 늦도록 술을 마시고 있다. 젊은 웨이터는 노인을 냉대하고 무심하게 대하지만 나이 든 웨이터는 노인을 이해하고 동정한다. 노인의 무력한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민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