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악령: 도스토예프스키 (2022.6.1)

클리오56 2022. 6. 1. 21:40

소감 및 내용

- 도스토예프스키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악령은 3권으로 구성되며 거의 1200페이지에 달하는 대형 장편이다. 스토리도 복잡하게 구성되므로 유튜브 문학줍줍에서 대강의 줄거리와 감상평을 먼저 시청하였고, 악령을 읽어 가는 도중에 틈틈히 반복 시청하였다. 그리고 유튜브 온브레인tv를 통하여 각 등장인물 간의 관계를 한층 더 이해할 수 있었다.  

- 번역 김혜경, 출판사 열린책들 간행본을 읽었는데, 상중하 3권으로 구성되며 하권의 말미에 번역하신 김혜경의 요약된 줄거리와 해설이 자세히 나와 있으므로 소설의 이해에 크게 도움이되었다.

- 러시아 문학은 등장인물의 이름이 기억하기에 참으로 난해한데, 유튜브 문학줍줍과 출판사 열린책들이 서로 다른 이름을 사용하므로 좀 헷갈리기도 하다.  

 

1. 유튜브 문학줍줍 (2020.1.24)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1821~1881) 5대 장편소설(죄와 벌, 백치, 악령, 미성년, 카르마조프가의 형제들)

- 악령: 1871년작, 1860년대 후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당시 사회의 혼란을 그리고 있다.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비해서 결이 거친 느낌을 주는 작품 => 거친 느낌의 이유는 등장인물이 너무 많고, 관계가 복잡하다는 것, 주인공의 행보가 오락가락인데다 여기저기 얽혀있다는 것. 사실 작가가 이 책을 쓰고 다시 읽어 보긴 한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이긴 합니다만, 이마저도 당시 혼란스러운 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장치라고 평가 받음

 

- 등장인물

* 주인공 스타브로긴(니콜라, 니꼴라이 프세볼로도비치): 작가가 창조한 인물 중 가장 작가 자신과 닮았다고 평가받음

* 어머니 바르바라: 사교계 거물, 친구 스테판, 그의 아들 표트르는 문제적 인물

* 다샤(다리야, 다셴까): 바르바라의 수양 딸, 다샤와 스타브로긴 사이에 묘한 기류, 다샤 오빠는 샤토프

 

- 주요 줄거리

* 이름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x 현에는 바르바라 페트로브나라는 과부가 된 귀부인이 있었는데 사교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녀 곁에는 가정교사로 고용된 스테판이라는 홀아비 남자가 있었는데, 두 사람은 이십년이란 세월 동안 함께하며 동반자처럼 지냈다. 바르바라와 스테판은 수도인 페테르부르크에서 잡지를 발간하려다가 실패한 적도 있었고, 그들은 다시 x현으로 돌아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스테판에게는 표트르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스테판은 자기 아들을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할 정도로 부자 관계는 상당히 멀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가하면 바르바라에게도 스타브로긴이란 아들이 있었는데, 독립해서 여기저기 떠돌며 살고 있던 그는 여러 여자와 염문을 뿌릴뿐 아니라 여러 기행으로 어머니에게 근심을 안겨 주고 있었다. 특히 그는 과거 어머니 바르바라의 수양딸인 다샤라는 여자와도 염문이 있었고, 아들의 앞날을 염려한 바르바라는 다샤를 나이 많은 스테판과 결혼을 시키려했다. 예상치 못한 강압적인 중매에 스테판은 당혹스러워하는데, 그는 곧 다샤가 바르바라의 아들 스타브로긴과 염문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타인의 죄업'을 안고 살게 되었다며 괴로워했다. 그가 바르바라의 말을 거역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자기 아들인 표트르의 유산으로 남겨진 영지를 몰래 야금야금 팔아먹었음으로 아들에게 내놔야 할 돈이 급해 다샤의 지참금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바르바라의 통제로 외출마저 제한되어 있던 스테판은 어느 일요일에 드디어 다샤 등과 함께 만나 약혼을 공표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일요일 아침 예배 때 교회에서 바르바라는 마리야라는 정신장애가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되고, 불쌍한 마음에 집으로 데려온다. 한편 이미 중매자 바르바라의 집에는 스테판과 다샤, 다샤의 오빠 샤토프 등이 모여있었다. 이들의 모임은 마리야의 오빠인 레뱌드킨이 난입하여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고, 바르바라의 친구 딸로서 스타브로긴과  애매한 사이인 리자가 방문하며 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때 갑자기 스테판의 아들인 표트르와 바르바라의 아들인 스타브로긴이 나타났다.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타브로긴은 마리야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대하며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준다. 마리야의 오빠 레뱌드킨은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고 하지만 표트르에 의해 저지당하고, 표트르는 스타브로긴과 마리야가 과거에 깊은 관계였음을 그 자리에서 폭로한다. 돌아온 스타브로긴 앞에서 표트르는 그와 다샤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언급해 아버지 스테판의 처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화가 난 다샤의 오빠 샤토프는 스타브로긴의 따귀를 때리고 그에게 연정이 있던 리자는 그 모습을 보고 그만 기절한다. 

=> <내 생각에 다르게 요약되는 부분들> 

 이때 갑자기 스테판의 아들인 표트르와 바르바라의 아들인 스타브로긴이 나타났다.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타브로긴은 마리야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대하며 그녀를 집으로 바래다준다. 마리야의 오빠 레뱌드킨은 슬그머니 빠져 나가려고 하지만 표트르에 의해 저지당하고, 표트르는 스타브로긴과 마리야가 과거에 깊은 관계였음을 그 자리에서 폭로합니다. 표트르의 설명에 따르면 스타브로긴은 페테르부르크에서 마리야가 어느 관리에게 조롱당했을 때 그 관리를 2층에서 던져버리고 마리야를 구해주었으며 이후 어려운 사정의 마리아에게 금전적으로 지원해주었는데, 이를 마리아가 망상을 가져 멋대로 확대 해석하는 상황이었으며, 오빠 레뱌드킨은 그 지원금을 빼돌려 술값으로 탕진하였다. 오해가 풀린 바르바라 부인은 표트르에게 감사를 표했으며, 마리야를 자신의 양녀로 삼아 후원하겠다고 하였다. 스테판은 멀리있었던 아들 표트르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다샤와의 혼담에 관한 사항이었으며 자신의 어중간한 심정과 아들의 의견을 묻는 것이었지만, 표트르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언제 결혼하여 스위스로 갈거냐며 조롱하듯 물으며 아버지 스테판의 처지를 곤란하게 만들었다. 돌아온 스타브로긴 앞에서 표트르는 그와 다샤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언급해 아버지 스테판의 처지를 난처하게 만들었다. 표트르는 화가 난 다샤의 오빠 샤토프는 스타브로긴의 따귀를 때리고 그에게 연정이 있던 리자는 그 모습을 보고 그만 기절해 버립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8일이 지난 월요일, 이에 그 사이 현지사 렘브케의 부인인 율리야의 마음을 사로잡아 그녀의 후원을 받고 있는 표트르가 스타브로긴을 찾아왔다. 표트르는 러시아 사회의 급진적인 변혁을 꾀한 자로서 비밀 단체를 조직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고, 스타브로긴을 끌어들이려 하지만 그는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표트르와 헤어진 스타브로긴은 샤토프를 찾아가 표트르의 음모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는데, 샤토프는 표트르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에 전향해 단체에서 발을 빼려하였다. 

 

샤토프를 방문하고 나서 스타브로긴은 레뱌드킨과 마리야 남매가 살고 있는 곳을 방문하고, 그는 레뱌드킨에게 자신과 마리야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공포하겠다고 선언하였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페지카라는 유형수를 만나는데 그는 스타 브로긴에게 레뱌드킨 남매를 제거해 주겠다는 제안을 하고, 스타브로긴은 애매한 태도를 취하며 그에게 돈을 주었다. 

 

표트르는 그 사이 급진 단체 내에 5인조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하고, 변절자로 낙인 찍은 샤토프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샤토프 살해를 통해 범죄로 엮인 5인조가 자신에게 더욱 복종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한편 현지사 렘브케의 아내 율리야는 여성 교사들을 위해 모금을 한다는 명목으로 문학 낭독회와 무도회를 기획했다. 낭독회와 무도회가 열리던 날, 몰려든 군중들에 의해 낭독회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종료되고 무도회 때 도시에 화재가 발생해 행사는 엉망이 되었다.

 

그 와중에 레뱌드킨과 마리야가 살해된 것이 알려지며 사람들이 현장에 몰려들고, 그 소식을 접한 리자도 그곳에 갔다가 스타브로긴을 사랑한 그녀가 그들의 죽음을 사주한 것이라고 판단한 성난 군중에 의해 집단폭행을 당해 결국 사망하였다. 그런가하면 샤토프와 함께 잠시 살다가 헤어진 아내 마리가 몇 년만에 돌아오고 샤토프는 그녀를 반갑게 맞이한다. 그런데 마리는 임신 중이었고 놀랍게도 아이의 아버지가 스타브로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이 임박한 아내를 위해 샤토프는 열심히 출산을 돕는다. 마리가 아이를 출산한 그날, 샤토프는 표트르의 사주를 받은 5인조에 의해 업무 인수인계를 핑계로 한 공원에 유인당해 그곳에서 표트르에 의해 살해당했다.

 

* 표트르는 곧바로 샤토프와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키릴로프를 찾아가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자살할 것을 종용한다. 사실 키릴로프는 그 자신의 톡특한 사상으로 자살로서 진정한 자유를 선언할 수 있어야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표트르가 이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표트르는 키릴로프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유서를 쓰게 한 후에 결국 그를 자살하도록 유도하고 x현을 떠나 도망갔다.

 

* 샤토프의 아내 마리는 키릴로프의 시체를 발견하고 남편 샤토프의 죽음을 직감, 거리로 달려나가 남편의 죽음을 알리고 건강이 악화되어 갓난 아기와 함께 곧 사망하엿다. 결국 5인조 중 하나인 람신이란 자의 자백으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게 되고, 표트르를 제외한 5인조는 일망타진되었다. 

 

한편, 율리야의 낭독회에 참여했다가 군중에 의해 크게 망신을 당한 스테판은 20년간 함께 했던 바르바라를 떠나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병이나 병상에 눕고 소식을 들은 바르바라가 그를 찾아내지만 얼마 후 스테판은 사망하였다. 다샤에게 스타브로긴의 편지가 전해지는데 자신이 모처에 있으며 다샤와 만나 정착하여 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다샤는 이 편지를 바르바라에게 보여주고 두 사람이 스타브로긴을 찾아 나서려는 찰나, 스타브로긴이 몰래 도시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가 있다는 곳으로 간 바르바라와 다샤는 자살한 스타브로긴을 발견하였다. 

 

- 감상평

(1) 악령이란?

* 이 소설은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한 기사를 인용하며 시작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의 귀신을 내쫓자 귀신들이 돼지떼에 들어가 돼지들이 몰사하는 장면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여타의 소설과 달리 이 작품에서는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사망하거나 체포되는 등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중심되는 주요 인물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극적인 최후에서 제외된 자는 표트르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마치 작가가 초반에 인용한 악령에 들린 돼지떼가 몰살하는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작중 등장인물들의 생명과 생활이 파멸에 이르렀다. 스테판은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 자신들이 마치 악령들린 돼지떼 같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게 한탄하였다. 

 

 "우리는 완전히 무엇에 홀린 듯 광포하게 날뛰면서 절벽에서 바다로 돌진하는 겁니다. 모두 빠져 죽을 거예요. 바로 거기가 우리의 길이거든요. 사실 우리는 그래도 싸니까요"

 

그의 이 말처럼 등장인물들은 비록 때로는 비정상적이고 우스꽝스럽긴 해도 그들의 소중한 생활이 송두리째 흔들려 버렸다. 그렇다면 이들을 바다로 뛰어들어 몰살하도록 만든 악령이란 무엇일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기본적으로 악령과 같은 역할을 한 자는 바로 스테판의 아들 표트르로서 급진주의자인 그는 x현에 나타나 현지사 부인의 신임을 얻으며 지역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는 5인조를 구성해서 전향자 샤토프를 살해하고, 키릴로프의 자살을 부추겨 뒤집어씌우는가 하면, 스타브로긴을 몰아붙여 이용해 먹으려했다. 그러고나서 표트르는 자기 목적을 이루고 나자 유유히 도시를 떠나 사라져 버렸다.

 

결국 악령의 역할은 표트르가 담당한 셈인데, 더 들여다 보면 작가가 표트르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발견된다. 표트르는 러시아 사회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사상이 아니라 외부에서 이식된 사상을 상징하는 인물로 보였다. 그가 x 현의 전통적 사회를 완전히 헤집어 놓았듯이, 러시아로 이식된 사상은 전통적인 러시아 사회를 해체시켜 버렸다. 이식된 사상을 추종하는 자들은 마치 홀린 듯이 빠져들게 되는데 이런 문장으로 이를 표현하였다.

 

"그들을 사로잡은 것은 사회주의의 실제가 아니라 감상적이고 이상적인 측면, 말하자면 그것의 종교적인 색조, 그것의 시입니다."

 

전통적 러시아 사회와 이식된 사상 중 어느 것이 옳은가에 대한 가치판단을 차치하고 봤을 때, 이식되어온 사상이 그 사회에 미칠 수 있는 파괴적인 영향력을 잘 보여주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구한말 역사를 보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당시 조선도 외부에서 이식된 사상들로 인해 전통 사회가 극심한 혼란을 겪은 끝에 몰살하고만 경험이 있다. 결론적으로 등장인물들을 홀리게 하여 절벽으로 뛰어들어 몰살하게 만든 것은 외부에서 이식된 사상이란 점을 알게된다. 

 

(2) 스타브로긴의 최후

도스토예프스키가 만들어낸 인물들 중에서 가장 작가 자신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는 스타브로긴은 사실 상당히 파악하기 어려운 인간형이다. 그는 단순히 입체적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성격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다양한 생각과 해석을 하게 만든다. 

 

그는 마리야, 다샤, 리자, 마리 등 수없이 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이유없이 노인을 망신주는 행동을 하고, 마리야에 대한 페지카의 청부살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치혼이라는 신부의 암자에서 10살의 여자 아이를 성적으로 농락한 적이 있음을 자백하기도 하는 한편, 가가노프와의 결투에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선악을 판단하기 어려운 스타브로긴의 복잡한 모습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그는 다샤에게 함께 하자는 편지를 보내 놓고는 자살을 택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였다.

 

* 스타브로긴이 자살한 이유와 그의 자살이 작품에서 차지하고 있는 의미는 과연 어떤 것일까요?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그의 자살 원인은 자신에게 지워진 많은 사람들의 기대가 부담스럽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표트르는 스타브로긴을 포섭하여 그를 이용하려 하고, x현 사람들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였다. 그런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에 대해서 이렇게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왜 모두들, 다른 사람들한테는 기대하지 않은 뭔가를 나한테서 기대하는 겁니까? 왜 아무도 참지 않는 것을 나는 참아야 된단 말입니까? 왜 아무도 견딜 수 없는 그런 짐을 나는 기꺼이 짊어져야 하는 겁니까?" 

 

어쩌면 그런 부담스러운 사람들의 기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의 큰 전환점 앞에서 시대가 지워주는 무거운 짐에 허덕이는 러시아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처럼 보였다. 

 

이쯤에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은 스타브로긴의 자살은 키릴로프가 주장한 '인신'의 조건에 부합하느냐 하는 것이다. 키릴로프는 사람은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 자살의 고통과 미지의 사후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고 스스로를 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신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키릴로프의 기준에 의하면 스타브로긴의 자살은 세상이 그에게 부여한 여러가지 짐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의 자유를 선언한 행위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생각은 스스로의 자유를 선언했던 명목으로 행한 그 자살이 결국 모든 책임을 회피한 비겁한 행동 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 스타브로긴 자살은 자기 존재의 자유선언이라기보다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비극적인 선택이었다. 

 

(3) 표트르의 5인조

표트르는 자신이 구상한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람신, 비르긴스키, 쉬갈료프 등을 규합하여 5인조라는 결사를 만들었다. 그는 5인조 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마치 러시아 전역에 그들과 같은 5인조가 곳곳에 구성되어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하였다. 하지만 사실 러시아 전역에 5인조가 구성되어 있다는 것은 과장이었고, 그는 단지 자신의 생각에 따라 움직여줄 사람들을 모아 상호 감시할 시스템을 만든 것 뿐이었다. 이렇게 함으로서 구성원들은 서로를 감시하고 상대의 행동을 제 약하게 되어 통제가 용이한 상태가 되었다. 

 

"그의 모든 회원들은 하나같이 서로를 감시하고 밀고를 할 의무가 있어다. 각각의 회원이 모든 회원에게 속해 있고, 또 모든 회원들이 각각의 회원에게 속해있다. 모든 노예들이 노예제도 안에선 평등하였다."

 

자신에게보다 타인에 대해서 더 엄격하게 대하기 쉽상인 인간의 속성을 악용하였다. 게다가 표트르는 한술 더 떠서 스타브로긴이 지나가듯 한 말을 참고해 이들의 단합을 위해서 변절자로 낙인찍은 샤토프를 살해하는 것에 참여시켰다. 비록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을 받은 람신의 자백으로 이들의 범행이 밝혀지고 말지만, 이들 5인조는 변절자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참여하였다. 

 

*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특성 한가지를 더 발견할 수 있는데 인간은 조직화 되었을 때 죄책감을 너무나 손쉽게 덜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직화된 사람들은 설령 아무리 부당하거나 불합리한 지시를 받더라도 그것을 이행하는 것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사실 이런 식의 상호 감시 체계 는 과거부터 전세계에서 이행된 것인데 많은 전제 정권들이 이를 활용해서 국민들을 통제해왔다.

 

이 소설이 도스토예프스키의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손꼽히게 난해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에 와서도 재평가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인간에게는 여러가지 속성이 있는데 이를 악용하는 제도라면 그것이 설령 효율적이라 하더라도 정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의식을 던져 주기 때문 아닐까? 

 

 

2. 유튜브 온브레인tv (2020.10.31): 2시간 7분 소요의 인물중심 상세 줄거리가 소설 이해에 크게 도움

 

3. 본문

* 등장인물

- 상권 19~20쪽: 연구 업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남은 20년 이상의 삶을 저 국민 시인의 표현대로 조국 앞에 〈질책의 화신〉으로 자리 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질책의 화신으로
……………………
그대는 조국 앞에 섰노라
자유주의자 - 이상주의자여

그러나 국민 시인이 표현했던 그 인물은 비록 지루하더라도 자기가 원하기만 한다면 평생 동안 그러한 자세를 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사실 우리의 스쩨빤 뜨로피모비치는 이런 인물들과 비교했을 때 한낱 모방자에 불과했기에 그런 자세를 취하다 지치면 자주 옆으로 드러누워 버리곤 했다. 그러나 옆으로 드러누운 채로도 질책의 화신으로서의 태도는 견지했으니 그 점만은 정당하게 인정해 주어야 하며, 게다가 우리 현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당신들이 여기 클럽에서 그가 카드놀이를 하기 위해 앉아 있는 모습을 한번 봤으면 좋겠다. 그는 온몸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카드놀이라고! 내가 자네들과 예랄라시 게임을 하기 위해 앉아 있다니! 이런 걸 정말 함께한다고? 도대체 누구 책임인가? 나의 활동을 망쳐 버리고 한낱 예랄라시(주: 뒤죽박죽이라는 뜻) 게임이나 하게 만든 건 누구란 말인가? 에이, 러시아 같은 건 망해 버려라!〉 그러면서 그는 거만하게 하트를 내놓았다.
- 상권 24쪽: 그녀는 모든 먼지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었고, 22년 동안이나 그를 보살펴 오면서 시인이자 학자, 시민 활동가로서 그의 명성에 문제가 생길까 봐 걱정되어 밤에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그를 창조해 냈고, 자기 공상의 산물을 자기가 먼저 확신해 버렸다. 그는 무언가 그녀의 꿈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대가로 실제로 많은 것을 요구했으며, 가끔은 노예와 같은 복종을 요구하기도 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집착이 강했던 것이다. 

- 상권 59~61쪽: 「그들이 민중을 사랑하지 않았다니!」 스쩨빤 뜨로피모비치가 외쳤다. 「아, 그들이 러시아를 얼마나 사랑했는데!」「러시아도 민중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샤또프도 눈을 번뜩이며 외쳤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러시아 민중에 대해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지요. 그들은 모두, 선생님을 포함해, 러시아 민중을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 그뿐만 아니라 당신들은 민중을 바라볼 때도 혐오스러운 경멸감을 가지고 대해 왔으며, 민중이란 단지 프랑스 민중, 그것도 파리의 시민들뿐이라 생각하고, 러시아 민중이 그들과 같지 않다고 부끄럽게 여겼을 뿐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민중을 갖지 못한 사람은 신도 가질 수 없는 법이지요! 자기 민중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민중과의 관계를 잃어버린 사람은, 곧 조국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무신론자가 되거나 무관심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 상권 181쪽: 「그건 비열한 겁니다. 전부 기만입니다!」 그의 눈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삶은 고통입니다, 삶은 공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고통과 공포입니다. 지금 인간은 삶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고통과 공포를 사랑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삶은 현재 고통과 공포를 대가로 주어진 것이며, 이것이 바로 기만이라는 겁니다. 현재의 인간은 아직 진정한 인간이 아닙니다. 행복하고 당당한 새로운 인간이 나타날 것입니다. 살아 있건, 살아 있지 않건 상관없는 인간, 그들이 새로운 인간이 될 것입니다. 고통과 공포를 이겨 내는 인간, 그가 스스로 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 상권 194~195: 어쨌든 결혼은 할 걸세, 비록 <타인의 죄>와 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자네는 여자를 몰라, 하지만 나는 계속 여자를 연구해왔네. <전세계를 정복하고자 한다면 자신을 먼저 정복하라> 이말은 자네 같은 낭만파이자 내 처남인 샤또프가 유일하게 제대로 말한 명언일세. 나는 그의 격언을 기꺼이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이네. 자, 이제 나는 자신을 정복할 준비가 되어 있고 결혼할 예정이네만, 그렇게 싸워서 온 세상 대신 얻는 건 무엇일까? 아, 친구, 결혼이란 모든 당당한 영혼과 모든 독립성의 도덕적 죽음일세. 결혼 생활은 나를 타락시키고 일에 봉사하는 나의 힘과 용기를 빼앗아 버릴거야. 아이라도 생기면, 아마 내 아이가 아니겠지만, 물론 내 아이는 아닐테지. 현자는 진실에 직면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네... 
 
- 상권 196쪽: 「20년 동안! 단 한번도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네. 아, 이 얼마나 잔인한가! 그녀는 내가 정말 공포나 가난 때문에 결혼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오, 수치스럽군! 아주머니, 아주머니, 나는 당신을 위해서! 오, 그녀가, 이 아주머니가 바로 내가 20년 동안 숭배해왔던 유일한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해야 해! 그녀는 이것을 알아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소위 결혼식장가지 나를 강제로 끌고 가야만 할 거야!」
 
- 상권 288쪽: (스타브로긴 -> 마리야) 「한번 생각해보세요. 당신은 처녀이고, 또 나는 당신의 가장 충실한 친구이긴 하지만 그래도 당신에게는 남일 뿐입니다. 남편도, 아버지도, 약혼자도 아니지요. 손을 이리 주세요. 같이 가시죠. 마차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허락하신다면 댁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 상권 299쪽: 「그런데 여기서부터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게, 그 아이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를 조롱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오, 사람들이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 아이는 그녀를 모욕자들에게서 보호하고, <후작부인을 대하듯> 존중하는 마음으로 감싸고 있는 거예요. 어쨌든 바로 이런 대조에서 불행이 시작된 것이지요. 그 불행한 여자가 다른 상황에 있었더라면 그 정도 정신 나간 듯한 망상에 이르지는 않았을텐데. 여자, 여자만이 그걸 이해할 수 있지요.」
 
- 상권 321~322쪽: 니꼴라이 프세볼로도비치는 기질상 공포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결투에서는 상대의 총구 앞에 냉정하게 서 있을 수도 있었고, 야수처럼 침착하게 상대를 겨누어 죽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뺨을 맞으면 그는 결투를 신청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자신을 모욕한 사람을 죽였을 것이다. 그는 바로 그런 인간이었으므로, 제정신을 잃는 법 없이 완전한 의식을 가지고 죽였을 것이다. 나는 그가 이성적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멀게 하는 분노의 발작 같은 것은 결코 알지도 못했으리라고 생각한다. 가끔 그를 사로잡는 끝없는 악의 속에서도 그는 항상 자신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따라서 결투 이외의 곳에서 살인을 하면 바로 유형에 처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쨌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을 모욕한 사람을 죽여 버릴 것이다.
 
- 중권 15쪽: <주석> 허무주의자 '19세기 중엽 유럽의 자연 과학과 합리주의에 매료되어 유물론, 무신론을 주장하던 러시아의 젊은이들을 말한다. 허무주의자들은 혁명을 통해 국가와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 했다. 
 
- 중권 53쪽: 「자네, 아이를 좋아하나?」
「좋아하네.」 끼릴로프는 이렇게 대답했지만, 상당히 무관심한 말투였다.
「그렇다면 삶도 사랑하나?」
「그래, 삶도 사랑하네. 왜 그러나?」
「권총 자살 하기로 결심했는데도.」
「그게 어떻다는 건가? 왜 결부시키는 거지? 삶 따로, 그것 따로라네. 삶은 존재하지만, 죽음은 전혀 존재하지 않네.」
「자네는 사후 영생을 믿게 되었나?」
「아니, 사후 영생이 아니라, 현재의 영생을 믿는다네. 어떤 순간들이 있는데, 그 순간에 도달하면 시간이 갑자기 멈추고 영생이 되는 거지.」

- 중권 80쪽: 「하지만 자네한테는 토끼가 필요하지?」
「뭐라고?」
「이건 바로 자네의 역겨운 표현이라네.」 샤또프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심술궂은 미소를 지었다. 「〈토끼 소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끼가 필요하고, 신을 믿기 위해서는 신이 필요하다.〉 자네가 뻬쩨르부르끄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들었네. 마치 토끼 뒷다리를 잡으려던 노즈드료프처럼 말일세.」
「아니, 그는 이미 그것을 잡았다고 자랑을 늘어놓았지. 미안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나도 어려운 질문을 하나 하겠네. 더욱이 나는 지금 그런 질문을 할 권리가 분명히 있는 것 같거든. 말해 보게. 자네 토끼는 잡혔나, 아니면 아직 도망다니고 있나?」
 
- 중권 82쪽: (샤토프 -> 스타브로긴)  자네가 그때 왜 그렇게 수치스럽고 비열한 결혼을 했는지 알고 있나? 그건 바로 수치심과 무의미함이 천재성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네. 오. 자네는 벼랑끝에서 서성이지 않고 대담하게 머리를 숙이며 아래로 날아들 인간이지. 자네가 결혼한 것은 수난에 대한 욕망, 양심의 가책에 대한 욕망, 도덕적 쾌락 때문이었네. 여기엔 신경증적인 발작이 있었던  거야.... 상식에 대한 도전이 너무나 매혹적이었던 거라고! 스타브로긴과 초라하고 저능한 절름발이 거지라니! 

- 중권 340쪽: 「시갈료프를 데려가고, 나는 가만히 좀 내버려 두게…….」
「시갈료프는 천재적인 인간이지! 그가 푸리에에 버금가는 천재라는 걸 알고 있나? 아니, 푸리에보다 더 대담하고, 푸리에보다 더 강하지. 나는 그에게 공을 들일 생각이네. 그는 〈평등〉을 고안해 냈거든!」
〈이 인간은 열에 들떠서 헛소리만 하고 있군. 뭔가 굉장히 특별한 일이 일어난 모양이야.〉 스따브로긴은 다시 한번 그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그의 공책에 잘 적혀 있다네.」 베르호벤스끼는 말을 계속했다. 「스파이 활동에 관한 내용일세. 조합의 회원 각자는 서로서로 지켜보고 밀고할 의무가 있다. 개인은 전체에 속해 있고, 전체는 개인에 속해 있다. 모든 사람은 노예이며, 노예라는 점에서 평등하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중상과 살인도 가능하지만, 중요한 것은 평등이다. 우선 할 일은 교육과 학문, 재능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높은 수준의 학문과 재능은 고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만 도달할 수 있는데, 그런 고도의 능력은 필요 없다! 고도의 능력은 항상 권력을 장악하고 전제 군주가 되어 왔다. 고도의 능력은 전제 군주가 되지 않을 수 없으며, 이익을 주기보다는 항상 더 많은 타락을 가져왔다. 그래서 그들은 쫓겨나거나 처형당한다. 키케로는 혀가 잘리고, 코페르니쿠스는 눈이 뽑히고, 셰익스피어는 돌팔매질을 당했다. 이것이 시갈료프주의라네! 노예는 평등해야 한다. 전제주의가 없는 곳에는 자유도 평등도 아직 없었지만, 가축 떼 속에는 틀림없이 평등이 있다. 이것이 시갈료프주의라네! 하-하-하, 이상한가? 나는 시갈료프주의에 찬성인데!」

- 중권 343쪽: 나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네. 나는 허무주의자이지만 아름다움을 사랑한다네. 과연 허무주의자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을까? 그들은 단지 우상을 사랑하지 않을 뿐이지만, 나는 우상을 사랑하네! 자네는 나의 우상이야! 자네는 어느 누구도 모욕하지 않지만, 모두가 자네를 증오하지. 자네는 모두를 차별 없이 바라보지만, 모두들 자네를 두려워하고 있네. 이건 좋은 일이야. 어느 누구도 자네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두드리지 못할 걸세. 자네는 아주 무서운 귀족이라네. 귀족이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갈 때 얼마나 매력적이겠는가! 자네에게는 자신의 인생이건 타인의 인생이건 그것을 희생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지. 자네는 꼭 필요한 바로 그런 사람일세. 내게는, 내게는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네. 나는 자네 외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네. 자네는 지휘자이고, 자네는 태양이며, 나는 자네의 벌레에 불과하네……

 

- 하권 50쪽: 단순한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무엇이 부족해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까? 혹시 그것 아십니까, 혹시 아시는지요. 영국인이 없어도 인류는 살아갈 수 있고, 독일인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고, 러시아인이 없으면 더할 나위 없이 가능하며, 과학이 없어도 빵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단 하나, 아름다움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완전히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비밀은 여기에 있고, 모든 역사는 여기에 있습니다! 과학 또한 아름다움이 없으면 단 1분도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비웃는 자들이여, 여러분은 이것을 알고 계십니까? 과학은 야만의 상태로 전락해서 못도 발명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양보하지 않겠습니다.

 

- 하권 113쪽: (리자 -> 스타브로긴) 「이 사람이 정말 스따브로긴인가요, 당신에게 반한 이곳의 한 부인이 부른대로 그 <흡혈귀 스따브로긴>이란 말인가요! 이미 당신에게 말했잖아요. 나는 내 인생을 단 한 시간으로 환산했기 때문에 지금은 평온해요. 당신도 당신의 인생을 환산해 보세요..... 하지만 당신은 그럴 필요 없겠네요. 당신에게는 아직 다양한 <시간>과 <순간>이 많이 있을 테니까요.」

 

- 하권 173~174쪽: 이봐,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내가 성상을 털고 다닌 것은 맞아. 그러나 나는 거기서 진주만 떼어 냈을 뿐이야. 아마도 나의 눈물이 바로 그 순간 신의 용광로 안에서 내가 당한 모욕에 대한 보상으로 진주로 변용된 것일지 당신 같은 인간이 어찌 알겠어. 왜냐하면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은신처도 없던 고아나 마찬가지였으니 말이야.

 

- 하권 226쪽: (마리의 출산에 대하여 샤또프) 「두 사람뿐이었는데, 갑자기 세 번째 사람, 온전하고 완전무결하며 인간의 손에서 생겨난 것 같지 않은 새로운 영혼이 나타난 것입니다. 새로운 사상이며 새로운 사랑이라, 두렵기까지 합니다....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 하권 263쪽: 스따브로긴은 신을 믿는다 해도 자기가 믿는다는 것을 믿지 못할 거야. 만약 신을 믿지 않는다 해도 역시 자기가 믿지 않는다는 것을 믿지 못할 테고.

 

- 하권 265쪽: 「만약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은 신의 의지이고, 나는 신의 의지에서 벗어날 수 없어. 만약 신이 없다면, 모든 의지는 나의 것이니, 나는 자의지를 표명할 의무가 있는 거야.」

「자의지라고? 왜 그런 의무가 있는 거지?」

「왜냐하면 모든 의지는 나의 것이니까. 정말로 이 지구상에는 신을 끝장내고 자의지를 확신한 후, 그것이 완전한 지점에 도달했을 때 자의지를 선언할 만한 용기를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가난한 사람이 유산을 받고 너무 놀라서 스스로 그것을 소유할 힘이 없다고 생각해 돈 자루에 감히 다가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거야. 나는 자의지를 표명하고 싶어. 나 혼자라 하더라도 나는 할 거야.」

「그럼 하게.」

「나는 자살할 의무가 있어. 왜냐하면 내 자의지의 가장 완전한 지점은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이기 때문이지.」

 

- 하권 266쪽: (끼릴로프)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의 자의지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야. 그 말속에 너의 진면목이 드러나는군. 나는 네가 아니냐. 나는 최고지점을 원하고, 그래서 자살하는 거야.」

「나는 무신앙을 천명할 의무가 있어.」「내게 신은 없다는 것보다 더 고매한 이상은 없어. 인간의 역사는 내 편이야. 인간이 한 일이라고는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고안해 낸 것뿐이지. 지금까지 전 세계 역사가 그랬어. 나는 전 세계 역사에서 신을 고안하기를 원치 않는 유일한 사람이야. 사람들이 이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게 해야만 해.」

 

- 하권 268~269쪽: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무신론자가 신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곧바로 자살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이해가 안 됐어. 신이 없다는 걸 자각하고서도 바로 그 순간 스스로 신이 되었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것은 한마디로 부조리야. 그렇지 않다면 반드시 자살했겠지. 만약 자각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왕이니 자살 같은 건 하지 않고 최고의 영광을 누리며 살게 될 거야. 그러나 그것을 처음 자각한 단 한 사람은 스스로 반드시 자신을 죽여야만해. 그렇지 않으면 대체 누가 그것을 처음으로 증명할 수 있겠어? 바로 내가 처음으로 증명하기 위해서 반드시 자살할거야. 나는 아직 어쩔 수 없이 신이 되었을 뿐, 불행함을 느끼고 있어. 왜냐하면 자의지를 천명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지. 모든 사람은 불행해, 왜냐하면 자의지를 천명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야. 인간은 자의지의 가장 중요한 지점을 천명하는 것이 두려워서 어린 학생처럼 한쪽 구석에서 제마음대로 행동하고 있다 보니 지금까지 불행하고 비참했던 거야. 나는 지독하게 두렵기 때문에 지독히도 불행해. 공포는 인간에게 저주야... 그러나 나는 자의지를 천명하겠어. 나는 내가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을 믿어야 할 의무가 있는거지. 내가 시작하고, 내가 끝맺고, 내가 문을 열어 주겠어. 그리고 구원해 주겠어. 오직 이것만이 전 인류를 구원하고 다음 세대에서 육체적인 변화를 가져올 거야...... 내 안에 있는 신의 속성 - 그것은 바로 자의지야! 이것이 바로 주요 지점에서 나의 불복종과 나의 새롭고 무시무시한 자유를 보여 줄 수 있는 전부야. 왜냐하면 그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거든. 나는 나의 불복종과 나의 새롭고 무시무시한 자유를 보여주기 위해 자살할 거야 」

 

- 하권 323쪽: 나는 지금도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몰라요. 지금도 틀림없이 거짓말하고 있을 겁니다. 문제는 내가 거짓말을 하면서 나도 그것을 믿는다는 겁니다.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살아가는 동안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자신의 거짓말을 믿지 않는 것, 그래요, 그래, 바로 그겁니다!

 

- 하권 326쪽: (루가 복음서) <마침 그곳 산기슭에는 놓아기르는 돼지 떼가 우글거리고 있었는데 악령들은 자기들을 그 돼지 속으로나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 허락하시자 악령들은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비탈을 내리달려 모두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돼지 치던 사람들이 이 일을 보고 읍내와 촌락으로 도망쳐 가서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고 보러 나왔다가 예수께서 계신 곳에 이르러 악령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이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사람들이 악령 들렸던 사람이 낫게 된 경위를 알려 주었다>

 
- 하권 327쪽: 그러나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의지는 악령 들린 미치광이와 같은 러시아를 위로부터 감싸 줄 것이며, 그러면 모든 악령과 모든 불결함, 표면이 곪아 터진 모든 혐오스러운 것들은 밖으로 나와…… 스스로 돼지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걸할 겁니다. 어쩌면 그 안에 이미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지요! 그것이 바로 우리들, 우리와 그들, 그리고 뻬뜨루샤이며…… et les autres avec lui(그와 함께하는 사람들 모두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나는 그들의 선두에 서 있겠지요. 우리는 모두 악령에 사로잡혀 미쳐 날뛰면서 절벽에서 바다로 몸을 던져 빠져 죽을 겁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들이니까요. 그러나 환자는 치유되어 〈예수의 발아래 앉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모두 놀라서 쳐다보겠지요…….
 
- 하권 341쪽: 하느님은 거짓을 행하시지 않으며, 내 마음속에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그에 대한 사랑을 끄시지 않을 테니, 그 이유만으로 나의 불멸은 불가피한 것이지요. 사랑보다 더 귀중한 것이 뭐 있겠습니까? 사랑은 존재보다 더 높은 곳에 있으며, 사랑은 존재의 왕관이니, 어찌 존재가 사랑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내 사랑에 기쁨을 느낀다면, 하느님께서 나와 나의 기쁨을 소멸시키고 우리를 무로 만들어 버리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요? 만약 하느님이 존재한다면, 나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Voil? ma profession de foi(바로 이것이 나의 신앙 고백입니다).

 

- 하권 342쪽: (스테판) 「나보다 무한히 정당하고 행복한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변함없는 생각이 무한의 감동과 영광으로 이미 나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오, 내가 누구든, 내가 무슨 일을 했던 말입니다! 모두를 위한, 그리고 모든 것을 위한 이미 완전하고 평온한 행복이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매 순간 그것을 믿는 것이 인간에게는 자신의 행복보다 훨씬 더 필요합니다.... 인간 존재의 전체 법칙은 인간이 언제나 무한히 위대한 존재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귀착됩니다. 만약 사람들에게서 무한히 위대한 존재를 빼앗아 버린다면, 그들은 살지 못하고 결국 절망 속에서 죽게 될 것입니다. 무한하면서도 영원한 존재는 인간이 거주하고 있는 이 작은 행성만큼이나 그들에게 필요합니다..... 나의 친구들, 나의 모든 친구들이여, 위대한 사상 만세! 영원하고 무한한 사상이여!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이 위대한 사상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인간에게도 뭔가 위대한 것은 필요합니다. 빼뜨루샤... 오, 나는 정말 그들 모두를 다시 보고 싶군요! 그들은 모르고 있어요. 자기들 안에도 바로 그 영원하고 위대한 사상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4. 해설 (역자 박혜경)

(1) 집필동기

 - 극단적으로 나누어진 평가, 극찬과 비난: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 시학이나 예술적 기법의 측면에서 도스또예프스끼의 가장 숙련되고 혁신적인 소설이자 가장 혁명적인 작품으로 극찬 / 실패작으로 저자 자신만의 궤변에 빠졌다거나, 작가 자신의 난해함으로 등장인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

- 창작 기획 단계에서 서구주의자와 허무주의자들에 반대하는 정치 플랫폼으로 의도: 신을 잃고 부패해진 유럽에 대한 증오가 커지면서 진정한 구원은 러시아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의 강화. 모스끄바의 네차예프 사건은 허무주의와 급진주의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의 과격한 젊은이들에 의해 벌어져 충격적 

- 1840년대 낭만적 자유주의자 스테판과 1860년대 허무주의적 급진주의자 표트르 부자의 대립을 통해 시대의 문제에 접근. 40년대 세대와 60년대 세대간의 필연적 연관성, 즉 60년대 허무주의가 40년대 자유주의의 당연한 산물임을 암시

 * 추상적이고 관념적 성향의 스테판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행동의 화신 스테판은 그들의 외면적인 상반성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으로는 스테판의 자유주의를 공유 => 뚜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 맞서는 또 다른 '아버지와 아들'을 예정

 * 스타브로긴의 등장으로 소설은 정치적 플랫폼에서 종교적 색채를 지닌 형이상학적 소설로 의미 확대 => 사회주의, 허무주의, 무신론에 몰두하여 러시아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표트르는 부차적인 인물로 물러나고, 그 자리를 신비하고 무한한 힘의 소유자인 스타브로긴이 차지. 모든 관계와 갈등의 중심에는 스타브로긴이 자리.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스타브로긴의 정신이나 외모에 매료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존재 근거를 그에게서 찾으려 하고 그에게서 삶의 의미를 추구. 그의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이 이념의 무게나 허위의 관념으로 좌절하고 파멸해가는 과정은 대단히 비극적

 

(2) 스따브로긴의 관념론적 비극

- 스따브로긴에 대한 평가: 러시아 땅이나 민중 문화 전통과의 관계를 상실한 러시아 인쩰리겐짜의 한 전형, 모든 것을 의심하고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는 냉혹한 영혼의 소유자, 저자의 인물들 중 가장 강하고 위대한 예술적 창조물

- 스따브로긴 이름은 십자가를 뜻하는 그리스어 스타브로스에서 파생 => 십자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해 가는 정신적 방황의 의미를 내포 => 슬라브주의자 샤또프, 무신론자 끼릴로프, 혁명적 허무주의자 표트르는 자신들이 스타브로긴 사상의 계승자라고 주장. 스타브로긴의 분열된 자아를 상징하며 19세기 중엽 러시아 젊은 지식인들의 비극적 운명을 상징

- 스타브로긴은 신비에 가득 차 있고 무한한 잠재적 힘을 지녔지만, 그 힘을 어디에 쏟아부어야 할지 몰라 끝없이 회의. 그래서 오히려 모든 것에 무관심하고 지루해한다. 오만함, 삶에 대한 냉소적 태도, 사람들에 대한 경멸로 인해 현실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결국 이러한 고립과 자기 폐쇄성, 내적 분열 때문에 파멸   

- 사람들은 스타브로긴을 필요로 하지만, 그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저는 스파이나 심리학자들, 적어도 내 영혼으로 기어들어 오려고 하는 그런 자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무도 내 영혼 속으로 불러들이지 않습니다. 아무도 필요 없고, 나 스스로 해낼 수 있습니다. => 하지만, 그와 관계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신과 같은 존재로서 숭배하고 사랑하며 자신들을 그의 제자로 인정해 줄 것을 간청 => 샤토프, 끼릴로프, 표드르는 서로 다른 관념을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스타브로긴의 영혼의 반영물임을 주장하며, 빛과 태양을 기다리듯 스타브로긴의 부름을 기다린다. 

- 표트르는 무신론자이며 혁명적 사회주의 이념에 사로잡힘. 그는 도덕적으로 망설임이 없으며, 단호하고 교활하고 냉소적이라 추종자들은 그를 싫어하고 혐오하면서도 그의 힘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감. 그는 강력한 힘의 소유자인 것처럼 비쳐지기를 원한다. 추종자들은 이렇게 개발된 힘에 복종하도록 은연중에 강요 받는다. 반면 스타브로긴은 강요도 없지만, 사람들은 그를 열렬히 숭배하고 사랑하며, 그의 관념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그이 힘이 단지 자신들의 환상이었음이 밝혀진 순간에조차 그를 떠나지 못한다. 

- 스타브로긴은 샤토프와 끼릴로프에게 무한한 정신적 힘에 대한 관념을 심어줌. 두 사람 모두 신의 존재를 믿고 있지만, 샤토프는 자신이 신을 믿고 있다는 점을 확신하지 못하고, 끼릴로프는 신을 믿는 것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함께 미국 노동자들의 실태를 점검했고, 같은 집의 다른 방에서 지내지만 상반되는 관념을 지향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샤토프는 슬라브주의와 러시아 정교의 완벽한 조화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스타브로긴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데, 자신의 과거 사상을 되풀이하기 때문에 샤토프에게 불쾌한 감정을 느낄 뿐. 슬라브주의자로서의 강한 신념을 보여 주는 샤토프가 신을 믿지 않는 것은 그것이 그의 관념이 아니기 때문. 신을 믿지 않는 그에게 신의 관념을 불어넣어 준 사람은 스타브로긴이었다.

- 끼릴로프의 비극의 핵심은 그가 신을 거부하고 스스로 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는 것에 있다. 만약 신이 있다면 모든 것은 신의 의지이고, 인간은 신의 의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신이 없다면 모든 의지는 인간의 것이니, 그것을 깨달은 사람은 곧 신이 된다. 신은 인간 세상의 모든 억압을 극복하고 자의지를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에 가장 뿌리 깊은 자애가 되어 왔다. 인간은 그들의 자유로운 삶을 가장 크게 억압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신을 창조했지만, 결코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를 살펴볼 때 인간은 자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신을 고안해 냈을 뿐이다. 끼릴로프는 전 세계 역사에서 초음으로 신을 고안하기를 원치 않는 유일한 사람이 자신이며, 이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의 불복종과 무시무시한 자유를 보여 줄 수 있을 때 그는 진정으로 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는 인간으로서 신이 되려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인이 아니라 인신이 될 것이며,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신인에 대항하는 무신론의 관념이 될 수밖에 없다.

- 샤토프와 끼릴로프의 죽음은 모두 표트르에 의해 조종된다. 스타브로긴의 힘을 추종하는 표트르는 샤토프를 살해하고 끼릴로프의 자살을 종용함으로써 스타브로긴의 영혼의 상반되는 두 측면을 함께 제거한다. 이리하여 스타브로긴의 육체적, 정신적 힘의 반영물로서의 세 사람은 함께 소설에서 사라지고, 이것은 스타브로긴의 파멸로 이어진다. 

 

(3) 스따브로긴의 미와 여성들의 비극

- 스타브로긴의 관심을 갈구하고 생의 동반자를 원하는 여성 등장인물: 법적 아내 마리야, 귀족 처녀 리자, 샤토프의 여동생 다샤 => 스타브로긴의 치명적 유혹은 아름다운 외모 => 스타브로긴의 내면적 갈등, 악마적 본성, 인간적 좌절감은 여성 인물을 통해서 보다 자세히 노출. 기이한 행동의 동기나 비극적 결말, 공감 능력이 없는 인간적 허약함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관계를 통해 접근이 필요

- 여성을 사로잡았던 스타브로긴의 미는 세상을 구하는 미가 아니라 세상을 파멸시키는 허위의 미: 법적 아내 마리야는 추한 외모와 절름발이, 반쯤 정신나간 사람인데, 그녀와의 결혼은 가능하면 더 추악한 방법으로 인생을 망치겠다는 생각에서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전에 자신에게 농락당한 하숙집 소녀 마뜨료샤의 자살 이후 생에서 처음으로 극도의 공포를 경험한 스타브로긴은 가장 열등한 존재와 결혼함으로써 추악함을 또 다른 추악함으로 덮어 버리려 했던 것이다. => 마리야를 아내로 선택한 다른 깊은 의미로는 그녀가 학대받고 고통받는 어머니 러시아를 상징하기 때문. 외적인 추악함과 내면적인 순수함은 그녀에게 백치 성자와 같은 이미지를 부여. 마리야만이 영적인 투시력으로 스타브로긴의 악마적 본성을 알아챌 수 있으며,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결국 스타브로긴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 리자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외모에 자존심 강하고 고집이 센데, 스타브로긴과 대등한 힘을 가지고 그에게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여성: 스타브로긴과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야 그년는 그가 결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녀가 무엇보다 참아 낼 수 없는 것은 스타브로긴의 완벽한 외모 뒤에 감추어진 그의 비열함과 어리석음, 그리고 공포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 전부를 그와의 한 시간에 쏟아부었고, 그것으로 그녀의 인생은 끝나 버린다. 그러나 스타브로긴에게 그녀는 다양한 시간과 순간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마리야가 유형수 페찌까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듯이, 리자는 부인이 있는 남자를 유혹했다는, 자존심 강한 그녀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비난을 받으며 사람들의 폭행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 다리야(다샤)는 샤토프의 누이동생이지만 어머니 바르바라의 양녀로서 스타브로긴과는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여성: 그녀는 조용하고 온순하며 감사할 줄아는 성품의 소유자. 그녀는 자신이 스타브로긴의 아내가 될 수 없으며,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간병인이 되어서라도 그를 떠나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길을 택하려 한다. 스타브로긴은 다리야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함께 스위스로 떠나자고 먼저 제안하지만, 다리야가 가보니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 세 여성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스타브로긴을 사랑하지만,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스타브로긴은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의 사랑을 거부하고 구원의 가능성을 포기했기 때문에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만다.  

 

(4) 스따브로긴의 고백과 찌혼 신부

- '찌혼의 암자에서'는 소설 전체의 구조적 일관성으로부터 벗어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타브로긴의 내적 본질, 그의 범죄적 본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찌혼 신부와의 대화 장면을 통해 스타브로긴의 과거와 그가 겪고 있는 심적 갈등을 그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소녀를 강간한 무서운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며 그에 대한 벌을 받고 싶다는 거짓없는 마음의 욕구를 고백한다. 하지만 자신의 행위에 대한 진정함 참회는 아니다. 즉, 죄를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참회하는 것은 부끄러워하고 있으며, 수기를 읽는 신부를 증오하고 싸움을 건다.

- 수기의 공표는 다른 범죄, 즉 레뱟깐 남매의 살해를 암묵적으로 동의함으로써 다른 범죄를 덮어버리려는 수단일 뿐. 찌혼 신부가 그의 심리를 간파하자 신부를 저부받을 심리학자라 욕하고 도망간다. 결국 스타브로긴은 타인의 용서나 종교적 구원의 길 대신 자살을 택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벌을 내린다. 모든 것은 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 것이며, 그는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무제한적인 힘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 스타브로긴은 악령에서 벌어지는 모든 악행의 직접적인 원천이자 근원적인 죄인으로서 존재론적인 악의 원칙이라고 불린다. 그에게서 선과 악의 경계는 무너지고, 추악함에 대한 혐오의 감정도 퇴화한다. 그는 자존심이 강하고 정신적으로도 풍부한 재능을 갖추었으며, 어떤 장애든 극복할 수 있는 무한한 힘의 소유자이지만 오만한 자기 평가는 그를 신과 인간 모두로부터 고립시킨다. ... 그는 지루함과 공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추악한 범죄를 저지르지만,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공포와 혐오는 더욱더 커진다. 그런데 스타브로긴의 문제는 이러한 추악함과 혐오의 감정이 자신에게만 머물지 않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를 파멸로 이끈다는데 있다. 

- 스테판은 지금까지 누리고 있던 모든 삶의 편안함을 버리고 순례의 길을 떠난다. 이는 자유주의적 관념론자로서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진정한 러시아를 찾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는 그의 삶에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있다. 그는 러시아가 악령으로 수난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자신과 그의 아들들인 스타브로긴과 표드르, 그리고 다른 급진주의자들과 허무주의자를은 악령에 홀려 바다를 향해 언덕을 내달리는 돼지라는 것을, 그리고 그들이 굴욕적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러시아는 예수의 발아래 치유되고 성스러워지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서구의 무신론적 자유주의, 급진주의라는 악령에 사로잡힌 러시아는 신에 대한 믿음, 슬라브 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5. 줄거리(역자 박혜경 요약)

 

교보문고 책소개

도스또예프스끼의 5대 장편소설 중 하나인 『악령』,
완성도 높은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장편소설 『악령』이 새로운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번역자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악령』에 나타난 분신 테마 분석」 등의 논문을 발표한 바 있는 한림대학교 노어노문학과의 박혜경 교수다. 『악령』은 『죄와 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백치』, 『미성년』과 더불어 도스또예스끼의 5대 장편소설 중 하나로, 성서에 등장하는 돼지 떼에 들린 〈악령〉들처럼 러시아를 휩쓴 서구의 무신론과 허무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러시아의 어느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보여 주고 있는 소설이다. 수수께끼에 싸인 젊은 귀족 니꼴라이 스따브로긴과 그를 둘러싼 비밀 혁명 조직의 일당들이 초래하는 비극적인 사건들을 통해, 서구와 러시아, 자유주의와 허무주의, 무신론과 인신(人神) 사상, 슬라브주의와 러시아 정교, 세대 간의 갈등, 구원과 속죄의 문제 등 당대 러시아의 주요 화두들과 도스또예프스끼가 평생에 걸쳐 천착했던 주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이 탄생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869년 모스끄바에서 실제로 일어난 〈네차예프 사건〉이었다. 모스끄바의 대학생 네차예프가 당시 대학의 몇몇 동료 학생들을 모아서 급진적인 비밀 혁명 조직을 만들었는데, 조직의 일원인 학생 이바노프가 이 조직을 탈퇴하려 하자 나머지 조직원들과 함께 그를 살해하고 교내 연못에 던져 버린 사건이었다. 이 소식에 충격을 받은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악령』을 구상하게 되었고, 본래 이 작품은 서구 사상을 신봉하는 허무주의자들에 대항하기 위한 〈정치 팸플릿〉으로 집필될 예정이었다. 작가 스스로 〈경향적인 작품〉으로 구상했다고 밝혔듯이 초기 구상 단계에선 정치적인 성격이 강했던 이 소설은, 이후 대대적인 수정 과정을 거치면서 시간을 뛰어넘는 철학적, 종교적, 심리적인 깊이를 지닌 형이상학적 소설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만큼 『악령』은 정치적인 화두와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긴밀하게 엮어 내고 있는 작품으로, 당대 러시아의 사상적 지형과 인간 본성의 심연을 탐구하는 걸작으로 자리 잡았다. 비평가 어빙 하우는 『악령』을 가리켜 〈정치 소설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한 바 있으며, 꼰스딴찐 모출스끼는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라고 손꼽았다. 특히 이 작품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있던 작가 알베르 카뮈는 『악령』을 연극으로 각색해서 직접 공연을 연출하여 올리기도 했다.
이 책을 번역한 박혜경 교수는 여러 번의 공 들인 수정 작업을 거쳐 까다로운 도스또예프스끼의 문장들을 생생하게 읽히는 우리말 번역으로 유려하게 옮겼다. 번역 원본으로는 F. M. Dostoevskii, Besy (Moskva: Khudozhestvennaia literatura, 1990)를 사용했다.
도스또예프스끼(1821~1881)는 일반 독자들에게는 언젠가는 읽어야 할 작가, 평론가들에게는 가장 문제적인 작가, 문인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작가 제1순위로 꼽히는, 그 영향력에 있어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전무후무한 작가이다. 그를 스승이라고 부른 니체로부터 그를 선구자로 추앙한 프랑스 실존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20세기 사상과 문학은 그의 영향 아래 있었다. 일생 동안 그를 괴롭힌 간질병, 사형 집행 직전의 특사, 기나긴 시베리아 유형 생활, 광적인 도박벽 그리고 끝없는 궁핍과 고난으로 점철된 작가 자신의 인생을 반영하듯 그의 작품들은 격정적이고 논쟁적이다.
1821년 11월 11일 모스끄바 마린스끼 자선 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도스또예프스끼는 어린 시절부터 월터 스콧의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전기와 역사 소설을 탐독했다. 이후 그는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의 영향을 받아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했다. 그는 당시 농노제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급변하는 과도기 러시아 사회 속에서의 고뇌를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정신 분석가와 같이 인간의 심리 속으로 파고들어 가,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해부한 도스또예프스끼의 독자적인 소설 기법은 근대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그의 작품들에 나타난 다면적인 인간상은 이후 작가들에게 전범이 되었다.
선과 악, 성(聖)과 속(俗), 과학과 형이상학의 양극단 사이에서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사상가로서 도스또예프스끼는 당대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사회적, 철학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제기하고 숙고한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도 변치 않는 삶의 영원한 가치를 전해 준다.

역자 : 박혜경

1965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 「도스또예프스끼의 『악령』에 나타난 분신 테마 분석」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악어 외』(공역),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 빅토르 펠레빈의 『P세대』 등이 있다

작가의 말

[옮긴이의 한마디]
결국 『악령』은 스따브로긴과 그 주변 인물들의 역학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무신론자, 위대한 죄인, 〈허무주의의 이념적 영감을 제공하는 인물로 고안〉된 스따브로긴을 중심으로 그의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이 이념의 무게나 허위의 관념으로 좌절하고 파멸해 가는 과정은 대단히 비극적이다.

목차

제1부

제1장 서문을 대신하여: 널리 존경받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끼의 신변 이야기
제2장 해리 왕자, 혼담
제3장 타인의 죄
제4장 절름발이 여인
제5장 현명한 뱀
제2부

제1장 밤
제2장 밤(계속)
제3장 결투
제4장 모두의 기다림
제5장 축제에 앞서
제6장 분주한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제7장 일당의 모임에서
제8장 이반 왕자
제9장 가택 수색을 당하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제10장 해적들, 운명의 아침
제3부
제1장 축제, 제1부
제2장 축제의 종말
제3장 끝나 버린 연애 사건
제4장 최후의 결정
제5장 나그네 여인
제6장 분주한 밤
제7장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최후의 방랑
제8장 결말

〈부록〉 찌혼의 암자에서

〈역자 해설〉 허무주의의 악령들과 스따브로긴의 비극
〈작품 평론〉 악의 비극: 스따브로긴 형상의 철학적 의미
『악령』 줄거리
도스또예프스끼 연보
 

출판사 서평

러시아를 휩쓴 무신론과 허무주의의 악령들이
빚어내는 악(惡)의 비극

■ 도입부의 줄거리
소설은 러시아의 어느 지방 소도시의 가장 부유한 지주인 바르바라 스따브로기나 부인과 그녀의 후원을 받는 지식인 스쩨빤 베르호벤스끼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존경받는 학자이자 시인이며 1840년대를 대표하는 낭만적 자유주의자인 스쩨빤 선생은 바르바라 부인의 외동아들인 니꼴라이 스따브로긴의 가정교사로 처음 부인의 집에 초빙된 이후, 거의 20년 동안 그녀의 재정적 후원을 받으면서 이 집에서 머물게 된다. 어린 시절 스쩨빤 선생의 밀착된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스따브로긴은 귀족 학교에 진학하면서 오랫동안 이 도시를 떠나 있게 되고, 뻬쩨르부르끄에서 수수께끼에 싸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20대의 청년이 되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 젊은 귀족 청년의 출현으로, 그동안 특별한 일이라곤 없던 이 평범한 소도시가 조금씩 기묘하게 술렁이기 시작한다. 그는 놀라울 만큼 아름다운 외모, 세련되고 우아한 태도로 금세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지만, 동시에 한편으로 사람들은 그에게서 왠지 모를 혐오감을 느끼며 그의 얼굴이 〈가면〉처럼 보인다고들 이야기한다. 그리고 돌연 잠복해 있던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듯, 그는 갑자기 아무도 이해 못할 독특한 기행들을 일삼기 시작한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어느 신사의 코를 잡아당기거나, 어느 부인에게 돌연 키스를 하거나, 지사의 귀를 깨물어 버리기도 하는 등…… 정신 착란을 의심케 하는 이상한 스캔들로 온 사교계는 경악과 흥분에 휩싸인다.
이후 스따브로긴은 요양차 곧 이 도시를 떠나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뒤 그는 다시 온전해진 모습으로 이곳에 돌아오게 된다. 바르바라 부인은 아들의 귀환을 몹시 기대하며 그의 혼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려 하지만, 그 무렵 도시에는 스따브로긴과 이곳에 사는 미친 절름발이 여인인 마리야 레?끼나와의 비밀스러운 관계에 대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그런 가운데 마침내 그가 이곳에 모습을 나타내고, 그의 어린 시절 교사인 스쩨빤 선생의 아들이자 비밀리에 이곳 혁명 조직의 우두머리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 뾰뜨르 베르호벤스끼 역시 스따브로긴과 함께 이 도시에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 이 도시 곳곳에서 기묘한 사건들이 하나둘씩 벌어지기 시작하는데…….

■ 스따브로긴과 허무주의자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각종 음모와 범죄 사건들은 당시 러시아를 휩쓴 허무주의 사상이 초래한 광기와 비극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허무주의자들이란 19세기 중엽 서구의 자연과학과 합리주의에 매료되어 유물론과 무신론을 주창하던 러시아의 청년 집단들을 말한다. 그들은 혁명을 통해 국가를 전복하여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했으며, 이는 때때로 〈네차예프 사건〉과 같이 기형적이고 파괴적인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도스또예프스끼는 그들의 〈아버지 세대〉인 1840년대의 자유주의자 스쩨빤 베르호벤스끼의 이야기로부터 이 작품의 도입부를 시작함으로써, 1860년대의 젊은 세대들의 허무주의가 전 세대의 공허한 자유주의에서 배태되었음을 보여 준다.
처음에 이들을 비판하는 정치 팸플릿으로 기획되었던 『악령』이 대대적인 수정을 거치며 철학적인 색채를 지닌 형이상학적 소설로 의미가 확대되게 된 큰 계기는, 본래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구상되었던 뾰뜨르 베르호벤스끼가 작가가 새롭게 관심을 쏟게 된 인물인 니꼴라이 스따브로긴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주게 된 데 있다. 네차예프를 문학적으로 구현한 인물이라 할 수 있는 허무주의자 뾰뜨르 베르호벤스끼 대신, 도스또예프스끼는 당시 그가 따로 구상하고 있던 종교적 소설인 『위대한 죄인의 생애』의 내용을 『악령』에 상당 부분 흡수시키면서 그 소설에 등장할 예정이었던 스따브로긴을 『악령』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스따브로긴은 작중에서 무엇보다 〈공포를 모르는〉 인물로 묘사된다. 선악의 분별을 잃어버린 그는,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그 어떤 추악하거나 우스꽝스러운 일이든, 그것을 하는 데 있어서 어떤 한계나 두려움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능력〉을 지닌 인물로 언급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이끌리며 그를 격렬히 숭배하거나 두려워하곤 하지만, 스스로는 모든 일에 대한 근본적인 무관심과 냉소, 내면의 허무에 좀 먹혀 가며 파멸해 가는 인물이기도 하다. 비밀 혁명 조직의 우두머리인 뾰뜨르 베르호벤스끼가 작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음모를 꾸미고 움직이는 실질적인 행동 대장이지만, 그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자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는 것은 그의 우상인 스따브로긴이다. 냉혹하고 교활한 모사꾼인 뾰뜨르는 끊임없이 스따브로긴의 주위를 맴돌며 그를 자신의 수중에 끌어들이려 하고, 자신에게는 없는 그의 재능, 마치 적그리스도의 재능과도 같이 사심 없는 〈비범한 범죄 능력〉을 지닌 스따브로긴을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야욕을 이루기를 꿈꾼다. 반면 스따브로긴은 뾰뜨르를 경멸하며 그의 일당들과 거리를 두려 하면서도, 자신과 관련된 그의 음모와 범죄들을 은연중에 암묵적으로 묵인하면서 끝끝내 파멸을 향해 간다.

■ 불멸의 조연들
이 작품에는 뾰뜨르 외에도 〈스따브로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다수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한다. 사회에 극도의 혼돈을 불러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기를 꿈꾸는 혁명적 허무주의자인 뾰뜨르 베르호벤스끼를 비롯하여, 신에 대항하여 자신의 무한한 자유의지를 천명하고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권총 자살을 계획하고 있는 무신론자 끼릴로프, 민족을 통해 〈신〉을 찾기를 갈망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아직 신을 믿지 못하고 있는 슬라브주의자 샤또프 등은 모두 스따브로긴의 사상과 영혼의 조각들을 반영하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다른 성향과 사상을 지니고 있지만, 스따브로긴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며, 당대 러시아의 독특한 사상적 지형을 보여 준다. 이러한 관념성은 그들 각자에게 부여된 강렬한 개성을 통해 생생한 구체성을 획득하며 체현되고 있다. 도스또예프스끼 자신은 무신론과 허무주의에 호의적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따브로긴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매력은 세계 문학사에 불멸의 흔적을 남겨, 이후의 작가들에게 문학적·사상적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특히 끼릴로프의 사상에 크게 관심을 가졌던 알베르 카뮈는 그의 에세이집 『시지프 신화』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언급한 바 있다. 삶이라는 것의 기만을 간파하고 완전한 자유를 천명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끼릴로프의 사유를 그는 자신의 부조리 사상과 연결 짓는다.
각 인물들은 스따브로긴이 자신의 삶에 미친 절대적인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따브로긴의 불모성은 그들 중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게 하고, 무엇도 선택할 수가 없게 하며, 그로 하여금 파멸을 맞이하게 한다. 그리고 그들 역시 스따브로긴처럼 파멸을 맞게 된다. 이는 19세기 중엽의 러시아 지식인들의 비극적인 운명을 보여 주는 것으로, 도스또예프스끼가 볼 때 이것은 〈러시아 땅이나 민중 문화 전통과의 관계를 상실한〉 이들의 숙명적인 처지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추천사]
『악령』 은 정치 소설 중 최고의 작품이다. - 어빙 하우

『악령』은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다. - 꼰스딴찐 모출스끼

도스또예프스끼는 내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었던 단 한 사람의 심리학자였다. 그는 내 생애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운 가운데 하나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그는 러시아가 낳은 악마적인 천재였다. - 막심 고리끼

도스또예프스끼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 민족의 존재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 니꼴라이 베르자예프

도스또예프스끼는 육체와 영혼의 고귀함보다는 불행과 악덕, 욕정과 범죄에 기독교적인 공감을 보인 작가였다. - 토마스 만

도스또예프스끼는 사실상 신을 창조해야만 했다.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 헨리 밀러

도스또예프스끼는 세계 문학사의 위대한 기독교 작가들인 단테, 세르반테스, 밀턴, 파스칼의 옆자리를 차지한다. 단테처럼, 그는 인간 지옥의 모든 계(界)를 통과한다. 그런데 이 지옥은 『신곡』의 중세적 지옥보다 더 끔찍하다. - 꼰스딴찐 모출스끼

도스또예프스끼는 어느 과학자보다도, 위대한 가우스보다도 많은 것을 나에게 주었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