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및 소감
- 등장인물: 오이디푸스(테바이의 왕), 이오카스테(테바이의 왕비), 크레온(메노이케우스의 아들, 이오카스테의 오빠),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의 딸들), 테이레시아스(눈먼 예언자)
- 유튜브 일당백 시즌 1 EP 4 (2020.1.3)
* 疏隔效果(Alienation Effect):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주창한 개념으로, 그가 살았던 시대 당시 서양 연극계의 주류였던 아리스토텔레스파의 카타르시스 이론을 반박하며 관객이 배우의 연극에 몰입되지 않아야만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 나온 개념이다. 이를테면 배우가 관객에게 말을 건다거나, 관객들 사이로 걸어간다거나, 앞으로 전개될 내용을 요약해준다거나, 갑자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거나, 절정 부분에서 갑자기 극을 중단하는 등 무대와 관객을 철저히 격리시켰다. 기존 서양 연극이 카타르시스 이론 이후 감정이입과 감정동화 작용을 중시해온 것에 비하면 아주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브레히트는 감정이입을 통한 연극감상은 관객의 비판적인 정신을 말살하고 지배 이데올로기에 감화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배 이데올로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선 관객들이 무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독일의 비평가 발터 벤야민이 문화의 비판적 수용을 주제로 한 것과 상통하는 바가 있으며, 실제로도 서로간에 친분이 있었다고 한다. 브레히트는 1935년 러시아에서 메이란팡의 경극 공연을 보았는데, 감정 이입의 여지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는 경극의 특징에서 소격효과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 고대 그리스 비극의 결정판. 저자 소포클레스는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한 사람. 현존하는 7편을 연대 순으로 보면 『아이아스』 『안티고네』 『트라키스의 여인들』 『오이디푸스 왕』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다.
* 오이디푸스 작품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경고를 보여준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전제로 사회제도와 기술문명이 만들어져, 과학기술 만능으로까지 발전하였다. 하지만 250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 이미 이 이성에 대하여 경고를 한다는 것, 그 이성이 자기 자신을 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피타고라스는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 하며 인간이 최고라고 하였다. 그리스 신전, 예술, 상업, 페르시아 전쟁 승리 등 두려울게 없는 분위기. 하지만 소포클레스는 최고의 이성적인 존재라는 오이디푸스도 치명적인 실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성적 사고로 불운을 피하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피할 수 없었다. 단순하게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운명론에도 불구하고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지혜와 함께 나아간다.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더라도 진실을 덮지 않는다. => 자기 의지의 관철, 운명을 한탄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
* 존속살인, 근친상간이라는 치명적 주제를 다루고 있음. 프로이드는 태초에 행동이 있었다며, 친부살인이 있었다고 말함. 원시사회애서는 보스가 그 집단의 암컷을 모두 취하는데, 2등, 3등은 기회가 없다. 인간사회도 처음에는 빅맨 한명이 모두를 취했을거다. 자손들이 생겨나면서 유일 빅맨인 아버지에게 집단항거가 발생하여 아버지를 살해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죽이면서 죄의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절대 맹세를 하기를 아버지 것을 절대로 취하지 않겠다, 즉 엄마와 아버지의 딸들, 즉 근친상간을 금지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겠다. 이렇게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금기가 탄생하였다. 존속살인과 근친상간의 금지. 하여 가장 힘 센 짐승의 탈을 이용하여 죽은 아버지를 기념하며 죄의식을 씯는데, 바로 그것이 토템의 발생 기원이다.
* 蓋棺事定: 사람의 일이란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뜻. 蓋 : 덮을 개, 棺 : 널 관, 事 : 일 사, 定 : 정할 정
원래 관의 뚜껑을 덮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오늘의 충신이 내일은 역적이 되고, 이제까지 걸식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는 수도 있다. 따라서 사람의 운명이란 죽은 후에라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가 쓰촨성[四川省] 동쪽 쿠이저우[夔州]의 깊은 산골로 낙배해 있을 때 친구의 아들인 소혜(蘇徯)가 유배되어 그곳에 와서 실의에 찬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두보가 보다 못하여 지어 보낸 《군불견(君不見)》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 장면은 코러스인데 "그러니 항상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기를 지켜보며 기다리되,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마시오, 그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는."
- 유튜브 문학줍줍: 줄거리
*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496년에 아테네 교외에서 출생,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정치가로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그리스 민주적 역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인 그 유명한 페리클레스와도 함께 활동. 80세가 넘어서도 정치 활동할 정도로 정력적인 인물, 오이디푸스 왕은 소포클레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며 서양 비극의 원류,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구성이 너무나 훌륭하고, 결론을 미리 알려주고 사실을 추적해 들어가는 구조 역시 탁월, 그리스 원문으로 보면 운율과 구조가 상당히 잘 짜여진 수작, 자신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주인공인 오이디푸스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를 통해서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발견
* 이 소설의 주인공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이 되어, 선왕 라이오스의 왕비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한다. 그러니까 오이디푸스는 자기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나중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이 모든 사실을 폭로한다.
* 오이디푸스가 왕으로서 다스리고 있는 테바이에는 어쩐 일인지 큰 역병이 들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백성들은 오이디푸스를 찾아가 이 역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는 탄원을 하는데요, 오이디푸스는 자신도 사정을 이미 알고 있으며 방도를 찾기 위해서 처남 크레온을 신탁을 받으러 보냈음을 밝힌다. 마침 신탁을 받아온 크레온 이 도착하고 그는 오이디푸스와 사람들 앞에서 이 땅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신탁을 받았음을 알립니다. 그 잘못이란 오이디푸스의 전왕인 라이오스가 델포이로 가던 중 도적에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그 범인에게 응분의 벌을 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 신탁의 내용을 전해들은 오이디푸스는 사람들 앞에서 범인을 저주하며 자신이 그를 찾아내 벌 줄 것을 맹세 하지요. 사람들은 유명한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를 통해 범인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을 하고 마침 그가 오이디푸스 앞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테이레시아스는 입을 열려고 하지 않고 화가 난 오이디푸스는 그에게 범인에 대한 말을 하라고 추궁하죠.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 그 자신이 범인이라고 지목하고 더 나아가 그가 가까운 사람들과 수치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지적하여 오이디푸스 를 더욱 분노하게 만듭니다. 오이디푸스는 이를 처남 크레온이 꾸며낸 음모 일 것이라고 추측하는데 예언자는 이를 부인하며 오이디푸스의 끔찍한 말년을 예언하죠. 그는 테이레시아스 쫓아내고 크레온을 찾아내 자신을 음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며 화를 내는데, 크레온은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두 사람이 언쟁을 벌이고 있는데 오이디푸스의 아내 이오카스테가 나타나 싸움을 말리고 크레온은 앙심을 품은 채 사라진다.
* 오이디푸스는 예언자가 한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이오카스테에게 말하는데, 전왕 라이오스의 아내이기도 했던 그녀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달랜다. 그녀는 라이오스가 과거에 자기 자식의 손에 죽을 운명이라는 신탁을 받았지만 결국 삼거리에서 도적을 만나 목숨을 잃은 것이라며 예언이 항상 맞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라이오스와 자기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태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야산에 버려 죽게 했다고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오이디푸스는 도리어 크게 놀란다. 그는 라이오스가 죽었다는 삼거리의 정확한 위치와 라이오스의 외모가 자신과 닮았다는 사실, 그리고 수행원의 숫자를 듣고는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오이디푸스는 그 당시 혼자 살아남았다는 노예를 부르라고 하고, 이오카스트에게
자신의 옛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코린토스의 왕자였는데 어느 연회날 한 취객이 그가 부모의 친자식이 아니라고 했고, 마음에 의혹의 생긴 그는 몰래 신탁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살 것이라는 충격적인 신탁을 받고 그 이후 코린토스에 돌아가지 않고 떠돌며 살았다. 그러던 중 라이오스가 죽었다는 그 삼거리에서 어떤 일행을 만났고 길 비키는 일로 시비가 붙어 자신이 그들을 모조리 죽였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죽인 그들이 라이오스 일행 일까봐 두려워하고, 이오카스테는 그럴리 없다며 그를 안심시킨다.
* 그때 코린토스에서 사자가 오는데 그는 오이디푸스의 부왕이 노환으로 사망했다면 오이디푸스에게 귀국 할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는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이 두려워 갈 수 없다고 하는데, 사자는 오이디푸스가 그들의 친자식이 아니니 걱정 말라고 한다. 사자는 자신이 한 야산에서 어떤 목자로 부터 버려진 그를 받았고 자식이 없던 코린토스 왕 부부에게 그를 주었던 것이라고 고백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사자에게 주었다는 그 목자를 부르라고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오카스테는 더 이상 파고 들지 말라고 격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겠다며 고집을 부리고 이오카스테는 자리를 떠나버린다. 마침내 목자가 도착하고 그와의 문답을 통해 자신이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아들로서 버려졌으며 그를 불쌍히 여긴 목자의 의해 코린토스의 사자에게 전해져 코린토스에서 자라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 결국 신탁대로 자신이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였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것임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큰 충격을 받고 자리를 떠난다. 왕궁에 도착한 그는 이오카스테가 이미 모든 것을 깨닫고 목을 매 자결한 것을 알게 되고 그녀의 황금 핀으로 자신의 눈을 찔러 눈이 멀어버리게 되었다. 그는 죽어서 자기 부모와 자식들을 볼 낯이 없어 그런 행동을 했다. 오이디푸스는 때마침 등장한 처남이자 외삼촌인 크레온에게 자신을 추방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작품은 마무리된다.
- 감상평: 유튜브 문학줍줍
1. 운명을 대하는 오이디푸스의 자세
* 이 작품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오이디푸스라는 한 인간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오이디푸스에 관한 운명은 작품 속에서는 신탁이란 형태로 보여지는데 신탁은 그의 친부모와 그 자신에게 각각 내려진다. 라이오스에게는 이오카스테에게서 낳은 자식에 의해 살해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진다. 오이디푸스에게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살게 될 것이라는 끔찍한 신탁의 내려진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신탁은 그들에게 그대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의 신탁은 인간이 거스를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운명과 같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 작품을 주어지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무기력한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을 그렇게만 보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신탁 즉 운명을 대하는 오이디푸스의 태도를 주목하면
다른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다.
* 오이디푸스는 처음에 자신의 아버지인 줄은 꿈에도 모르고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한 범인을 찾기 시작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는 오이디푸스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탐문 수사를 계속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끔찍한 운명에 직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탐문을 그치지 않고 끝까지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는 이미 자신이 범인이며 신탁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직감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야기를 말하는 무서운 순간 이구나' 라고 말하는 목자의 말에 대해, '그 이야기를 듣는 내게도, 하지만 들어야 하겠지'라고 말한 오이디푸스의 말을 통해 이를 알 수 있다. 모든 사실이 명확해지자 그는 마침내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실명하는 결말을 맞게된다.
* 제가 주목한 부분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행동을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보았다는 점이다. 그는 친아버지를 살해하고 친어머니와 살게 된 것을 신이 정한 운명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자기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것을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결과로 보았기 때문에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신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고 보고 스스로를 벌한 것이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외부로부터 주어진 불가피한 운명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발생한 결과로 인식하는 그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행위와 인생을 대하는 인간의 모습을 오이디푸스의 모습으로부터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을 대하는 오이디푸스의 자세로 부터 비극적인 삶 앞에서도 굴하거나 도망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한다.
2. 어쩌다 아버지를 살해했는가
*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코린토스의 왕자라고 알고 성장했는데 어느 날 술에 취한 한 사람으로부터 그가 친아들이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비록 부모는 그 말을 부정했지만 마음속에 큰 의혹이 생긴 오이디푸스는 신탁을 받아 이를 해소하려 했고 도리어 친부살해라는 끔찍한 신탁을 받는다. 그는 이 끔찍한 결과를 맞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자라온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떠돌며 방랑 생활을 한다. 그러다가 한 삼거리에서 라이오스 일행을 만나 길을 비키는 문제로 시비가 붙어 대단치 않은 일로 그들을 몰살하는 범죄를 저지르고만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기 위해 방랑을 하다가 결과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었다. 어쨌든 이를 알지 못한 오이디푸스는 나중에 테바이의 왕이 되는데 그는 한동안 이 일을 잊어버린 채 평안한 삶을 살았다. 그런데 얄궂게도 테바이를 강타한 전염병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려진 신탁으로 인해서 아마도 그가 꽁꽁 숨겨 놓았을 그 삼거리 살인 사건이 전국민 앞에 공개되었다.
* 여기서 짚어 보고 싶은 점은 오이디푸스가 왜 라이오스 일행을 살해했을까하는 점이다. 오이디푸스는 라이오스 일행을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남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살해해도 친부살해 정도의 끔찍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만약 그가 설령 남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겐 아버지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면 라이오스를 살해하는 행동까지는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랬다면 그는 자기 아버지를 살해하는 비극적 상황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타인 사이에 너무도 명확한 도덕적 한계선을 그었고 자신 쪽에 속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실제 사회에서도 자신이나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관대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가혹하게 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나와 타인을 동일하게 대했다면 비극적 결말에서 벗어날 수도 있었던 오이디푸스의 모습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3. 인생에 대한 관점
*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고 있는데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문장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 날을 볼 때까지 기다리고, 인간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하오. 그가 고통을 겪지 않고 삶의 경계를 지나갈 때까지는."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최후 이후에 마치 총평과도 같은 느낌으로 코러스가 이런 문장을 관객들에게 던져준다. 이 문장처럼 오이디푸스는 사실 승승장구하는 행복한 사람으로 볼 여지가 충분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어 그동안 아무도 풀지 못했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냈고 테바이의 왕좌를 차지한다. 그 이후 그의 삶은 평탄하고 행복한 것처럼 보였지만, 갑자기 발생한 전염병과 범인을 찾아내라는 신탁 그리고 오이디푸스를 지목한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때문에 불행이 시작된다. 결국 오이디푸스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고 그것을 보면서 코러스는 인간들 가운데 누구도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말라는 말을 남긴다.
* 이 마지막 문장이 저에게는 상당히 비극적으로 느껴졌는데, 마치 인간은 결코 끝까지 행복할 수 없으며 결국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결론 짓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전성기를 누리고 인생의 정점에서 섰던 오이디푸스에게는 언제든 불행을 몰고 올 수 있는 불안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다. 이런 내재되어 있던 불안요소가 오이디푸스에게 갑작스럽게 발현되어 그를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의 늪으로 던져버리고 만 것이다. 그의 모습을 통해서 아무리 지금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도 언제 불행이 시작될 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마지막 문장은 마치 사람은 이 세상에서 결코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교보문고 책소개
기원전 468년, 28세 때 아이스퀼로스를 꺾고 처음 우승한 뒤로, 대 디오뉘소스 제의 비극경연대회에서 18번이나 우승하였다. 무대에 배경 그림을 도입하고 소도구를 채용하는 등 상연 형식을 연구했으며, 코로스를 종전의 12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또 배우도 종전의 두 명에서 세 명으로 늘리는 등 비극의 개혁에 힘써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불린다. 그의 드라마는 세 명의 배우의 대화를 통해 각자의 성격을 생생하게 부각시키고 그들의 성격이 서로 충돌하고, 보복하고, 파멸로 치닫는 과정 속에 복선(伏線)을 배치해 최대한 비극적인 긴박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오이디푸스 왕』은 아리스토텔레스도 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가장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극찬했다. 현존하는 7편을 연대 순으로 보면 『아이아스』 『안티고네』 『트라키스의 여인들』 『오이디푸스 왕』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다
지은 책으로는 철학 입문서, ‘피노키오 철학 시리즈’(『피노키오는 사람인가, 인형인가』 외 3권), 『보르헤스의 지팡이』, 『사랑의 인문학』, 『문학과 철학의 향연』 등이 있다. 닫기
역자 : 천병희
목차
그리스 비극의 구성__10
일러두기__14
오이디푸스 왕 Oidipous Tyrannos__17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Oidipous epi Kolonoi__107
해설 『오이디푸스 왕』을 읽는 몇 가지 방식__219
출판사 서평
자신에게 내려진 신탁을 피해 집을 떠나 떠돌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던진 기묘한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이 되었다. 그 공로로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2녀를 두고 살아간다. 하지만 테바이에 페스트가 돌면서 총체적 위기에 빠진다. 신탁에 따르면 선왕을 살해한 자가 재앙의 근원이다. 오이디푸스 왕은 이 살해자를 찾고 테바이를 위기에서 구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살해자를 찾아내는 오이디푸스를 관객이나 독자는 손에 땀을 쥐고 응시한다. 유명한 신화 속 주인공이기에 이미 그가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소포클레스는 그리스에 전래된 오이디푸스 신화를 독특한 주제로 재구성한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채 진실의 끝을 향해 질주한다. 그리고 살해자를 찾는 과정에서 바로 자신이 그가 찾는 살해자임을,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받고 살아남아 (의도하지 않았지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 자임을 깨닫게 된다. 이때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오이디푸스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불러낸다. 이 비극은 잘 알려진 내용의 신화를,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긴박한 과정으로 구성함으로써 지혜의 주인공이 정작 자신에 대해서 무지하고, 드높은 지혜가 그 그림자를 얼마나 짙게 드리우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생각한 자기와 자신의 실제 모습이 정반대임을 깨닫는다. 그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죄를 범했기에 책임을 지기 위해 스스로 눈을 찌르고 암흑에 휩싸인 채 방랑의 길을 떠난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처참한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오이디푸스. 이런 주인공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는가? 오이디푸스는 신화 속 인물에 지나지 않는가? 우리 자신도 알게 모르게 이런 운명을 겪는 것은 아닌가?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에서 추방된 오이디푸스가 아테나이 근교 콜로노스에서 생을 마감하기 직전에 겪는 일들을 그린다. 비극의 첫머리에 역시 신탁이 제시된다. 복수의 여신들(일명‘자비로운 여신들’)의 성역에 이르면 마침내 평화를 얻고 나라를 수호하는 불가침의 신성한 상징이 된다는 내용이다. 그는 신들의 신성함을 수용한 덕분에 초월적 존재로 격상된다. 이처럼 극한적인 파멸에서 벗어나 영속적인 존재가 된 오이디푸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노년의 모습은 오이디푸스의 성숙한 모습인가, 아니면 또 다른 모습인가?
우리는 오이디푸스라는 수수께끼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인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런 극단적인 사건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책의 말미에 덧붙인 ‘해설’은 오이디푸스를 해석하는 독특한 관점들을 예시한다. 이 관점들은 수수께끼 구조로 본 오이디푸스, 신화적 희생양의 틀로 본 오이디푸스, 철학적 이성의 주인공으로서 전통 사회에 맞서는 오이디푸스 등을 주제로 삼아서 오이디푸스의 비극과 신화를 해석하는 길을 안내할 것이다. 물론 이런 해석들은 오이디푸스의 본질을 확정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독자 스스로 새로운 오이디푸스 상을 마련하기 위한 바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이디푸스 비극을 어떻게 읽을 수 있고, 그런 해석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주는가? 어떤 점에서 오이디푸스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가? 오이디푸스는 또 하나의 나 자신은 아닌가? 오늘날 오이디푸스는 과연 누구인가?
'지혜 > 독서, 영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올리버 트위스트: 챨스 디킨스 (2022.3.16) (0) | 2022.03.16 |
---|---|
군주론: 니콜로 마키아벨리 (2022.3.16) (0) | 2022.03.16 |
동물농장: 조지 오웰 (2022.3.14) (0) | 2022.03.14 |
맥베스: 셰익스피어 (2022.3.12) (0) | 2022.03.13 |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 (2022.3.4) (0) | 2022.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