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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저자 안휘경, 제시카 체라시 (2019.8.5)

클리오56 2019. 8. 1. 14:34


내용 및 소감

현대미술에 대한 생각을 현직 큐레이터가 다양한 분야를 타치하면서 설명. 현대미술에 대한 폭넓은 시각과 깊이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14쪽: 요즘같이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빠르게 확산되고 정치적 입장이 양극화되어 이견을 좁히기 어려운 시대에 예술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져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고 상상할 기회를 준다. 덕분에 사람들은 활발히 토론하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예술은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하나의 관점으로 규정짓지 않고, 그 안에 다양한 의미가 저절로 생겨 나도록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도 수많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술의 속성 때문에 예술은 늘 현재 상황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우리가 원래해왔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런 깨달음은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15쪽: 오늘날의 사회처럼 현대미술 역시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항상 변화하고 성장한다. 현대미술은 우리의 현재를 정확히 보여준다. ....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비범한 예술작품을 접할 수 있는 것은 겁을 상실한 이 예술가들 덕분이다.

22쪽:  예술가들이 기존의 예술 형태에 감히 의문을 제기하고 과거의 스타일을 거부하기 시작하면서 예술의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다. 그리고 발전된 사회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근대미술의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예술은 급진적으로 발전해온 과학기술, 교통, 산업의 모습과 함께 이것들이 당시 사회, 경제, 문화에 미친 엄청난 영향까지 그대로 반영했다.


22쪽: 예술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시대의 예술가는 그 당시 시대와 문화의 산물이다. 그들을 둘러싼 변화하는 환경이 작품의 중요한 동기가 되어 예술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30쪽: 현재라는 순간을 해석하는 작업은 좀처럼 쉽지 않고, 현대라는 사회를 이해하는 일 역시 혁신적인 기술과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예술가들은 자기 생각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할 수만 있다면 그림이든 조각이든 영화든 사진이든 퍼포먼스든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과학기술이든 어떠한 매체라도 이용할 것이다.


31쪽: 때로 어떤 작품은 미적 가치보다 아이디어, 정치적 관심, 감정의 자극으로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거의 많은 예술작품이 특정 이슈(페미니즘, 에이즈에 대한 인식, 대지의 활용 등)와 관련이 있거나 혹은 응용 철학의 한 형태로 인간의 상태를 연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현대미술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직면한 쟁점들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예리하게 사회를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32쪽: 세갈은 세상에 이미 너무 많은 사물이 존재한다고 여겨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어떤 물질적 변환도 거부한다. 그래서 글로  지시문이나 전시 도록, 사진자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을 사려고 해도 계약서나 문서도 따로 작성하지 않았서 공증인이 출석한 가운데 작가가 구두로 하는 말을 그대로 믿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것은 무척 현대적이다>(2005년)는 정말 현대적인가? 물론이다! 2005년 당시 미술계는 춤추는 전시장 지킴이를 미술 작업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그토록 놀란 게 오히려 의아하게 여결질 정도이다. 현재 세갈의 작품은 벽돌 한 무더기 나 똥이 담긴 캔 처럼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세계로 스며든 듯 보인다. 지금도 현대미술은 계속해서 규칙을 무너뜨리고 게임의 성격을 바꾸는 한편, 자신의 영역을 넓히면서 영원히 새로워 질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현대미술을 접하면 항상 이런 느낌을 받게 된다. 오! 이것은 정말 현대적이다.


43쪽:  마르셀 뒤샹이 남성용 소변기에 'R. 무트'라고 사인해 1917년 뉴욕 독립 미술가 전에 출품했을 때, 위원회측은 작품이 아니므로 전시할 수 없다고 이를 거절했다.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대량 생산된 제품을 작품으로 전시하겠다는 뒤샹의 생각은 한마디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1966년 칼 안드레가 전시장 바닥에 직사각형 모양으로 깔끔하게 쌓아 올린 120개의 벽돌 더미를 전시했을 때 미술관이라는 맥락과 공간이지 지닌 권위 덕분에 이 하찮은 물건은 예술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그러나 모든 게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갤러리라는 공간이 지닌 맥락이 어떤 사물을 예술로 정의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논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고려해야 할 다음 질문은 '나는 이것이 미술이라고 믿는가?'이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예술 작품은 제안이라는 사실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그것은 어떤 사물을 예술로 보라고 청하는 초대장과 같다. 그리고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다른 지침에 따라 접근해 보기를 권한다.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이 내포한 강한 의도가 관객에게 어떤 으미를 끌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술에 대한 인식은 사람들의 가치관과 현실이 변하듯 함께 변화한다. 그리고 한 세대에게는 하찮게 여겨지던 사물이 어느날 갑자기 다른 세대에겐 예상치 못했던 의미를 가져다 줄 수 있다. 여하튼 미술 세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거 예술 맞아?' 라는 물음이 식상하고 부적절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이게 어떤 점에서 의미가 있지?'라고 질문해보면 어떨까?

46쪽:   피에로 만초니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의 표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예술가의 똥, 중량 30 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에 생산되어 보존됨"
1961년, 만초니는 한 달여 기간 동안 이런 통조림 90개를 제작해 각각 에디션 넘버를 붙인 뒤 진품임을 보증하는 서명을 남겼다. 그리고 모노그램으로 디자인한 라벨에는 4개의 다른 언어로 각각 상품명을 적어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이 통조림의 가격은 통조림과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책정되었으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만초니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의 대한 컬렉터의 기대와 미술 시장을 함께 조롱하려고 했다. 같은 해에 그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컬렉터가 작가에게 친밀한 무언가, 정말 개인적인 무언가를 원한다면, 여기 예술가가 직법 싼 똥이 있다. 이 똥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의 것이다." 그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배설 행위를 포장, 마케팅하고 새롭게 브랜드화해 창의적인 활동으로 재탄생시켰다. 만초니는 예술 작품으로서의 오브제가 소비주의와 상업주의의 메커니즘에 철저히 속박되었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의 정점에 미술 작품이 있다고 여겨 예술품으로 만들어진 최종 결과물을 미화해 마치 고급 상품을 다루듯 했다. 전례 없이 작가 자신에게 초근접한 만초니의 똥은 독특함으로 무장한 진정한 작품이다.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인이 만들어낸 비루한 버전과는 구별된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작품이 지닌 환영과 신비를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5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의 만초니의 '예술가의 똥'은 미술시장의 본성과 부조리함을 재치있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품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신선하게.

60쪽: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과학기술은 늘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표현 도구를 제공했다. 과학기술이 사람, 시간, 지형의 관계를 급진적으로 바꿔놓은 이 시대에 진정 현대적인 예술이라면 이런 변화를 반영해야만 한다. 사실 새로운 매체를 받아들이고 이해 하여 지금의 복잡한 시대상을 드러내는 것만큼 경쟁력 있는 예술 방법이 또 있을까?

64쪽:  에반 로스의 웹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 풍경 시리즈는 해저 광케이블이 육지와 만나는 지점을 추적하여 전세계 걸친 인터넷 케이블과 서버가 자신의 기반을 계속에서 뻗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무한한 도전 가능성이 새롭게 열린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인터넷이 기존의 구조를 바꾸는 다양한 모습을 이제 막 탐구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67쪽: 예술가들은 때로 우리 시대와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과 전시 기획으로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또 미술계 내부에 존재하는 성차별과 인종차별 문제에 맞서 싸우고, 새로운 미술사를 쓰려는 시도도 한다. 재미있는 포스터, 스티거 제작 등 기존에 없던 독특한 형태의 예술운동을 벌인다. 이런 활동의 성과는 미술계가 비판적으로 내부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성과 유색인종, 비서구권 출신, 성 소수자인 예술가를 포함하는 미술사를 새로 쓰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미술사가 ‘백인이며 이성애자인 남자들만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70쪽: 위험없는 전쟁터는 있을 수 없듯이 새로운 미술사를 쓰려는 시도는 큰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현재 미술계는 배타적이라는 비난을 피하거나 할당된 인원을 채우기 위해 그저 형식적으로 여성 또는 유색인종 예술가를 포함시킨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주변화한 다양한 소수 그룹의 각기 다른 투쟁을 역사는 무시한 채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함께 뭉뚱그리는 똑같이 문제다. 이런 과정은 옳은 길로 가는 첫걸음이지만 우리 전체가 함께 나갈 역사에 대해 진심으로 다시 생각하지 않는다면 잊힌 인물들과 운동들을 부활시키는 작업만으로는 절대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74쪽: 1989년, 자신들을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라고 부르는 익명의 여성 예술가 한 무리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 여성 누드와 남성 누드의 비율을 계산하며 ‘고추 숫자 세기’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전체 작품 가운데 여성 작가의 작품은 겨우 오 퍼센트 미만이지만, 누드 작품의 팔십오 퍼센트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수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여성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헐벗어야 하는가”

76쪽: 개념 미술은 주로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 중반 사이에 미국, 유럽, 라틴 아메리카의 예술가들이 '완성된 오브제는 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의 비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전제로 실험했던 미술 사조를 일컫는다.

개념 미술의 또 다른 형태는 지시문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것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그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다...... 오노 요코의 지시문에 따라 그려진 회화 시리즈 중 하나인 Snow Piece(1963년) 같은 작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눈이 온다고 생각해봐요. 눈이 사방에서 계속 내리고 있어요. 한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당신과 그 사람 사이에 눈이 오는 거예요. 그 사람이 눈에 덮혔다고 생각될 때 대화를 멈추세요." 그녀는 물리적으로 그림을 그릴 수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관람객의 손에 맡겼다. 그리고 관람객의 마음속에 자기 생각이 연상되게 하는 과정을 거쳐 의미가 존재하도록 만들었다.

간단한 아이디어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이런 급진적인 개념과 함께 기존의 예술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던 미의 기준, 숙련된 솜씨, 시장성 등의 중요성도 많이 감소하게 됐다.

예술이 반드시 무언가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이런 생각은 음악에서부터 광고에 이르기까지 다른 분야에서도 여러 가능성을 여는 역할을 했으며, 개념 미술은 회화나 조각과 동등한 장르로 인정받게 되었다.

오늘날 개념 미술에 대한 아이디어는 예술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에 고루 스며들었다. 그래서 비전문적인 의미로 ‘개념’이라는 말이 쓰이면, 예술적 솜씨로 다룬 작품처럼 전통적 관념을 따르지 않은 예술을 대신하는 말이 되었다.

89쪽:  큐레이터는 작품을 선정하고 전시 도록 을 제작하는 일부터 전시장 벽면 색상을 결정하는 일까지 전시의 모든 부분을 책임진다.
그리고 기관이라는 한정된 범위를 넘어서 일하는 큐레이트도 있다. 통찰력이 뛰어난 사상가인 이들은 여러 전문 분야에 걸쳐 다각적이고 실험적인 접근 방식으로 새로운 전시를 시도하며, 비엔날레나 트리엔날레에 초대받아 아이디어를 구현하기도 한다. 이들은 포맷을 새롭게 바꾸려는 반체제 운동가이며 동시에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다. 성공한 사람에게는 슈퍼 큐레이터라는 별명이 붙고,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주목 받게 된다.

97쪽: 소셜 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의견을 나누고 참여하는 데 익숙해진 요즘 같은 시대에는 창의적인 활동과 사회적 소통이 문화참여에 필수 요소가 되었고, 그런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예술 체험이 개인적 경험이라면 예술을 즐기는 가장 좋은 출발점은 관객들의 1대1 참여를 독려하고 그 느낌을 다른 사람과 나누게 하는 일일 것이다. 만약 미술관이 사람들에게 예술에 대한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면 예술 작품을 저장고보다는 창조 활동의 중개인으로 기능할 때 그 목표에 가장 잘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112쪽: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 거야?
그 다음으로 관객들이 현대미술에 관해 궁금해하는 것은 작품 값이다. 그림 한 점, 조각품 하나가 왜 이렇게 비쌀까? 저자들은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작가의 브랜드 가치, 경매 수수료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구매자가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다. 
현대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가격은 대개 생산자(예술가)와 소비자(컬렉터) 사이에서 거래를 주선하고 조정하는 중개인이 결정한다. 1차 시장 판매, 즉 새로운 예술작품이 처음 시장에 진입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갤러리를 통해 이루어지며, 갤러리는 작가를 ‘대표’해 작품 판매를 담당한다.

1차 시장의 작품가 책정에 대해 정해진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가격을 좌우하는 요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가령 몇 개의 동일한 복사본이 있는 프린트 작품은 같은 작가의 하나밖에 없는 원화보다는 작품가가 낮게 책정될 것이고, 사이즈가 큰 조각품은 작은 조각품보다는 좀 더 비싸게 팔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재료와 제작에 드는 비용은 작품가와 별 관계가 없고, 정량화하기 어려운 다른 요소들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 중 하나는 작가의 브랜드 가치인데, 브랜드 가치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 유명한 개인 컬렉터나 공공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이 있는지,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치른 경력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116쪽: 아무튼 이 모든 예술품은 누가 사는 걸까? 미술 시장은 미술계를 주도하고 선동하는 극소수의 엘리트들, 즉 미술관과 부자들에게 의존한다. 소장품을 꾸준히 늘리고 보유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공공 미술관은 직접 작품을 사들이기도 하지만 작품 기부자에게 파격적인 세금 감면 혜택을 주어 개인 기부를 유도하기도 한다.

118쪽: 비즈니스 아티스트의 대부인 앤디 워홀은 "돈을 버는 일이 예술이고 일이 곧 예술이며, 좋은 비즈니스는 곧 최고의 예술이다"라는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술가는 곧 직업이고, 미술은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화폐가 아니었을까.

종종 어떤 작품은 터무니없이 비싸 사람들의 공분을 사거나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의 똥이 들어있는 캔’이 억 단위 가격에 팔린다. 일반인들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실제로 이 캔 속에 진짜 똥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비싼 값을 치르고 작품이 지닌 환영과 신비를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134쪽: (기도하는 히틀러, 초소형 의료용 카메라가 작가의 몸의 윤곽을 따라가며 찍은 장면이 담긴 이물질 등)  이런 작품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어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게 하고, 사람들의 편견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안전 구역 밖으로 데려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준다. 예술가들은 그 경계를 실험함으로써 문화가 작동되는 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새롭게 이해하라고 자극한다.

134쪽:  또 다른 작업에 고용된 사람들은 무거운 물건을 버틸 수 있는 한 오래 들고 있기도 하고, 파티장의 벤치로 사용되는 나무 상자 안에 숨어 있기도 하고, 미술관 입구를 막고 지나가는 사람의 구두를 무작정 닦기도 했다. 스페인 작가 산티아고 시에라 가 선택한 이들은 사회적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 일자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간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아니다. 그는 착취를 구경거리의 형태로 바꿔놓았다. 그렇게해서 작가는 자신의 개입과 상관없이 이러한 착취관계는 늘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오는 힘의 역학관계와 애매한 도덕적 체계는 자본주의 상황에서 피할수 없는 현실을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결국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단지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뿐.

138쪽: 래퍼이자 힙합계의 거물 Jay Z는 6시간 특별 퍼포먼스를 통해 파블로 피카소에 대응하는 이 시대의 인물이 자신이고, 그는 예술의 높은 지위를 이용해 대중문화의 제약을 떨쳐버리고 자신을 거장의 반열에, 그리고 자신의 랩을 걸작의 경지에 올려놓는다. => 대중문화 속의 자신의 힘을 통해 진지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어 함.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은 부자, 군주, 국가, 종교의 후원을 받으며 그들을 위해 복무해 왔다. 하지만 현대미술세계의 예술가들은 ‘인간의 욕구나 환경보다 자본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경제 정책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하거나, ‘사람들의 사회적 얼굴과 이면에 숨겨진 공격성’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146쪽:  미술관 및 박물관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가 과거의 문화업적을 수집 보존 전시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현대미술관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실질적 관점에서 그 말은 현대미술관이 현재 순간을 대표하는 시각 문화를 정확히 포착해내어 미래에 어떤 작품이 역사적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예측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시 말에 미술관의 승인을 받은 현대미술 작품은 미래에 박물관 한쪽 자리를 차지하고, 역사에 기록될 가치가 있다는 확인을 받은 셈이다.


156쪽: 예술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리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게 하며 정치·경제·권력 구조에 반기를 든다. 또한 예술계라고 공격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 제도권에 대한 비판은 예술은 생산·표현·소비·유통 방식을 결정짓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 두 가지 모두에 초점을 맞춘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쿠르드족 독립투사인 자신의 친구를 죽게 한 탄피의 기원을 추적하는 내용의 렉처 퍼포먼스lecture performance(강연 형식과 결합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삼십여 분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터키 당국이 사용한 무기가 비엔날레 협찬사 가운데 한 회사의 자회사에서 제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전쟁과 미술관의 복잡하게 얽힌 상관성이 드러난다. 특히나 몇 달 전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시위로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엔날레가 개최된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관객에게 더욱 신랄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165쪽:  때로 예술가들은 다른 공동체의 삶에 들어가기 위해 퍼포먼스 아트를 활용한다.왜냐하면, 퍼포먼스 아트에는 직접성과  함께 개인의 경험을 집중적으로 반영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프란시스 알리스는 페루 리마에서 500명의 지원자를 모아 '신념이 산을 옭길 때'라는 퍼포먼스를 수행했다. 그는 리마 근교의 모래언덕 앞에 사람들을 일렬로 세우고 다 함께 온종일 삽질을 해서 산을 몇 센티미터 앞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을 쏟아 이룬 이 엇된 행동은 독재 정권에서 민주주의로 힘겹게 넘어가는 페루의 정치 상황 속에서 진보란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있다.

181쪽:  스페인 북부 도시 빌바오,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구겐하임 미술관의 반짝이는 티타늄 구조물을 보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 미술관이 지역 경제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결과, 도시 경제와 국제적 위상을 변화시키는 예술기관의 힘을 일컫어 빌바오 효과라는 말까지 생겨 한 도시를 국제적 관광지 명소로 바꿔논 이런 사례 덕분에 현대미술관은 대규모 도시건축과 투자를 위한 구실로 종종 이용되기도 한다.

194쪽:  지금 만난 작품이 어떤 작품인지 알아내기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미술의 종류는 너무 많고 모두 새로운 것이며 대부분의 경우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분할 만큼 충분한 시간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본 작품에 대해 누구도 확신할 수 없고 상당히 많은 작품이 쓰레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우리를 아주 흥분시키기도 하지만 우습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너무 빨리 결론 내리는 실수는 하지 말자. 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말 독창적인 작품은 대개 첫눈에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196쪽: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예를 들면 이 하나의 작품은 준거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평면에 다른 시점을 서로 조합시킴으로써 회화의 언어를 진보 시킨 작품으로 볼 수도 있고, 여성을 이상화 하지도 않고 순종적인 모습으로 그리지도 않았으니 서구회화의 전통과 단절을 상징하는 작품이라 여길 수도 있다. 반면에 사창가에 몇 번 드나든 이후성병에 걸릴까봐 두려운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작품으로 읽기도 한다.

209쪽:  이제는 뱅크시의 작품이 전 세계 사람들이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종종 시사적인 문제를 그림의 소재로 삼는데 경찰들의 잔혹 행위 또는 기술에 지배당한 현대문화처럼 광범위한 주제 뿐 아니라 해당 지역 전체가 직면한 과제를 상기시키는 소재를 다루기도 한다. 그의 그림은 보는 즉시 해독이 가능한 시각적 언어이다. 또 길거리 예술이 정식으로 의뢰 받아 제작한 공공미술 작품보다 더 유명해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사실 길거리 예술은 불법행위로, 대게 지역 당국은 그의 그림이 공공시설을 훼손하는 반달리즘의 한 형태라며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지역 주민들은 이에 맞서 그의 그림을 옹호했고, 다툼은 작품의 소유권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23쪽:  예술의 경계를 밀어내는 이런 시도들은 모두 근사하고 훌륭해 보이지만 그래봐야 예술 관련 기관과 미술 시장은 금세 그런 노력을 뒤엎고 완전히 무력화시키지 않느냐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회의론이 대단하고 기발한 작품의 새로운 등장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한때 굉장한 악평이 대상되었던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품도 지금은 렘브란트의 유화처럼 근사한 미술관에 자리를 잡고 있고 여러 다른 미술 작품처럼 퍼포먼스 아파트도 사고 파는 시대가 되었다. 오늘날 현대미술의 세계에서 별의별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예술의 핵심은 예술이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녔다고 믿는 사람들의 지속적인 몸부림, 그 자체에 있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들은 다른 사람도 그 믿음에 동참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결국 상상은 우리의 몫이 아니던가?

224쪽: 예술 작업을 통해 인간의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는 데 몰두하는 예술가도 많다. 그들은 예술이 생태학적으로 좀 더 지속 가능한 미래로 가는 길을 제시하도록 장기간의 연구조사부터 환경 행동주의 활동까지 다양한 범위의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를 오가며 성장한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2014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환기하기 위해 그린란드에서 가져온 얼음덩어리 열두 개를 코펜하겐 시청 앞 광장 한복판에 던져놓고 얼음조각이 녹아 없어지는 광경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목격하도록 했다.

228쪽: 도체스터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옛 건물은 지역 주민들이 저녁 식사 모임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열거나 예술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모임 장소로 활용되었다. 프로젝트는 자신의 역사와 환경을 보존하고 재건하는데 지역 주민들을 직접 참여시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지역 사회에 예술적·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외에도 게이츠는 인근 지역에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공영주택을 저소득층 가정과 신진 예술가 모두가 주거할 수 있는 소득계층 혼합단지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교보문고 책소개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는 현대미술에 관해 궁금했지만 선뜻 묻지 못했던 질문들에 상쾌하게 답한 책이다. 미술작품을 대하고 당혹스러웠던 점, 미술계가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지 못했던 주제들, 그리고 큐레이터인 저자들이 관람객에게 자주 들었던 질문 등을 26가지로 뽑아 쉽고 흥미롭게 풀어놓았다. 예를 들면 ‘소변기에 서명 하나만 해놓고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캔 속에 담아 넣은 한 예술가의 똥이 참신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현대미술에만 한정지어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 세계의 주변 이야기까지 두루 소개한다. 평생 미술관 한 번 가본 적 없는 사람, 미술에 관한 지식이 백지에 가까운 사람, 어려운 미술책에 두 손 든 사람이라면 반길 만한 책이다. 현대미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넓고 얕은 지식을 뽐내기에 알맞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소개

저자 : 안휘경

저자 안휘경(Kyung An)은 현재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아시아 미술’ 담당 큐레이터이다. 영국 런던에 있는 코톨드 미술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일했고, 신미경 스튜디오에서 프로젝트 전시 담당자로도 일했다. ‘비누로 새기다: 좌대 프로젝트Written in Soap: A Plinth Project’의 전시를 진행했다.
미술 세계 바깥에 사는 친구와 가족들은 큐레이터를 그저 전시장 가장 적당한 위치에 그림을 거는 사람 정도로만 여기는 듯했다. 미술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은 즐거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소외감을 느끼고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왜 우리는 과학이나 예술영화, 정치 얘기처럼 복잡한 주제에 대해서는 친구들과 가볍게 얘기하면서 현대미술에 관해서만은 입을 쉽게 떼지 못하는 걸까? 현대미술이 정말 그렇게 어려운 걸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었고, 미술에 대해선 거의 백지에 가까운 친구와 가족들을 생각하며 썼다.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는 현대미술에 관해 많은 사람이 궁금했지만 선뜻 묻지 못했던 질문들에 답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난해한 현대미술 작품을 만나도 당황하지 않는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다.

저자 : 제시카 체라시

저자 제시카 체라시(Jessica Cerasi)는 큐레이터이자 작가이다. 런던대학교에서 미술사 석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런던에 위치한 현대미술 갤러리, 캐롤/플레처에서 전시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헤이워드 투어링, 크리스티, 구겐하임 미술관,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일했으며,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 ‘아나 멘디에타Ana Mendieta’ 등의 전시에도 참여했다.

역자 : 조경실                                                                                        

역자 조경실은 성신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산업 전시와 미술 전시 기획자로 일했다. 글밥 아카데미 영어 출판번역 과정 수료 후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나는 노벨상 부부의 아들이었다》,《캐스 키드슨 플라워 컬러링북》,《윌리엄 모리스 컬러링북》 등이 있다.



목차

서문 - 누가 현대미술을 두려워하는가

A Art, What For? What's All This About?
예술, 왜 필요한가? 이게 다 무슨 소용이지?

B Bringing You up to Speed. How did we get here?
현재 상황 이해하기. 우리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C Contemporary. What makes it so contemporary?
현대미술. 무엇이 현대미술을 그토록 현대적으로 만들까?

D Dream Academy. How do art students become artists?
드림 아카데미. 예술학교 학생은 어떻게 예술가가 될까?

E Emperor’ New Clothes. What makes it art?
황제의 새 옷. 무엇이 그것을 예술로 만들까?

F Flashmobs. What’ next in the art world calendar?
플래시몹. 미술계의 달력에 표시된 다음 행사는 무엇일까?

G Geeks and Techies. When did it all get so technical?
컴퓨터와 기술의 전문가들. 모든 게 그토록 기술적으로 변한 때는 언제일까?

H Histories. Whose story is the story of art?
역사. 미술의 역사는 누구의 이야기일까?

I It's the Thought That Counts. Can a concept be a work of art?
중요한 건 생각이다. 개념도 작품이 될 수 있을까?

J Joining the Dots. What do Curators do?
산재한 업무들을 하나로! 큐레이터는 어떤 일을 할까?

K Knowing Your Audience. Can art really be for everyone?
관객 파악하기. 모두를 위한 예술은 정말 가능할까?

L Lovers and Haters. Who decides what matters?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무엇이 중요한지 누가 결정할까?

M Money, Money, Money! Why is it so expensive?
머니, 머니, 머니! 작품이 이토록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N Next Big Thing. What is the role of galleries?
다음 세대의 거물. 갤러리의 역한을 무엇일까?

O Oh No You Didn’t! Is that really necessary?
에이 설마!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P Picasso Baby. Why does everyone want in on art?
피카소 베이비. 왜 다들 예술을 하려고 할까?

Q Quality Control. What is the role of museums?
품질 관리.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일까?

R Rattling the Cage. Can art build a better world?
소동 일으키기. 예술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S Stage Presence. What is performance art?
무대를 장악하는 힘. 퍼포먼스 아트란 무엇일까?

T Tender Loving Conservation. How can we make sure our art survives?
애정을 담은 작품 보존. 예술작품을 후세에 길이 남길 방법은 무엇일까?

U Under Construction. What should museums look like?
미술관은 공사 중. 미술관의 외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V Visitor Activated. Can I touch it?
관객에 의해 활성화되는 작품들. 만져도 돼요?

W WTF?! What on earth am I looking at?
엥, 저게 뭐야?!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X X Marks the Spot. What is the role of public art?
이곳이 바로 그곳이다. 공공미술의 역할은 무엇일까?

Y Yesterday, Today and Tomorrow. How is the art world changing?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미술의 세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Z Zoning Out. Why bother?
나오며. 사람들은 왜 그토록 미술에 신경 쓸까?

출판사 서평

“쏙쏙 알려주는 친절한 현대미술 안내서 없나요?”
알아두면 쓸 데 있는 현대미술 잡학 상식

현대미술을 처음 접하면 대부분 ‘어렵다’, ‘난해하다’, ‘당혹스럽다’ 혹은 ‘잘 모르겠다’고 반응한다. 영화나 정치 얘기는 자연스럽게 꺼내면서 왜 유독 현대미술에 대해서만은 쉽게 대화 주제로 삼지 못하는 걸까? 정말 현대미술은 난공불락의 영역인 걸까?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는 현대미술에 관해 궁금했지만 선뜻 묻지 못했던 질문들에 상쾌하게 답한 책이다. 미술작품을 대하고 당혹스러웠던 점, 미술계가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지 못했던 주제들, 그리고 큐레이터인 저자들이 관람객에게 자주 들었던 질문 등을 26가지로 뽑아 쉽고 흥미롭게 풀어놓았다. 예를 들면 ‘소변기에 서명 하나만 해놓고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가’, ‘캔 속에 담아 넣은 한 예술가의 똥이 참신한 작품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단순히 현대미술에만 한정지어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미술 세계의 주변 이야기까지 두루 소개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현대미술 전반에 관해 다각도로 다룬 입문서라 해도 손색이 없다. 평생 미술관 한 번 가본 적 없는 사람, 미술에 관한 지식이 백지에 가까운 사람, 어려운 미술책에 두 손 든 사람이라면 반길 만한 책이다. 현대미술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넓고 얕은 지식을 뽐내기에 알맞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안휘경과 제시카 체라시는 현대미술의 메카인 뉴욕과 런던에서 활동하는 큐레이터다. 저자들은 큐레이터를 그저 “전시장 가장 적당한 위치에 그림을 거는 사람 정도”로 인식하는, “미술에 관해선 거의 백지에 가까운 무지를 그대로 보여준” 가족과 친구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26가지 질문이 참신하면서도 현실적인 이유다. 난해하고, 어렵고, 심지어 당혹스럽기까지 한 현대미술을 우리가 굳이 알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저자들은 현대미술은 우리가 속한 세계를 인식하고, 그 세계에 질문을 던지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때로 어떤 작품은 미적 가치보다 아이디어, 정치적 관심, 감정의 자극으로 주목을 받을 수도 있다. 사실 지난 수십 년 동안 과거의 많은 예술작품이 특정 이슈(페미니즘, 에이즈에 대한 인식, 대지의 활용 등)와 관련이 있거나 혹은 응용 철학의 한 형태로 인간의 상태를 연구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현대미술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직면한 쟁점들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 고민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예리하게 사회를 의식할 수 있게 되었다. _31쪽에서

대체 현대미술이 뭐지?

그럼 관객들이 현대미술에 관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대체 현대미술이 뭐냐는 것이다. 현대미술은 시간보다는 작품의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분류된다고 볼 수 있다.

예술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시대의 예술가는 그 당시 시대와 문화의 산물이다. 그들을 둘러싼 변화하는 환경이 작품의 중요한 동기가 되어 예술을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것이다. _22쪽에서

현재라는 순간을 해석하는 작업은 좀처럼 쉽지 않고, 현대라는 사회를 이해하는 일 역시 혁신적인 기술과 새로운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예술가들은 자기 생각을 가장 적절하게 묘사할 수만 있다면 그림이든 조각이든 영화든 사진이든 퍼포먼스든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과학기술이든 어떠한 매체라도 이용할 것이다. _30쪽에서

오늘날 개념 미술에 대한 아이디어는 예술의 형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에 고루 스며들었다. 그래서 비전문적인 의미로 ‘개념’이라는 말이 쓰이면, 예술적 솜씨로 다룬 작품처럼 전통적 관념을 따르지 않은 예술을 대신하는 말이 되었다. _80쪽에서

이런 작품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어 익숙한 대상을 낯설게 보게 하고, 사람들의 편견을 깨닫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을 안전 구역 밖으로 데려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의 끝이 어디인지 보여준다. 예술가들은 그 경계를 실험함으로써 문화가 작동되는 원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새롭게 이해하라고 자극한다. _134쪽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 비싼 거야?

그다음으로 관객들이 현대미술에 관해 궁금해하는 것은 작품 값이다. 그림 한 점, 조각품 하나가 왜 이렇게 비쌀까? 저자들은 정해진 기준은 없지만, 작가의 브랜드 가치, 경매 수수료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구매자가 그만큼의 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다.

현대미술 시장에서 작품의 가격은 대개 생산자(예술가)와 소비자(컬렉터) 사이에서 거래를 주선하고 조정하는 중개인이 결정한다. 1차 시장 판매, 즉 새로운 예술작품이 처음 시장에 진입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갤러리를 통해 이루어지며, 갤러리는 작가를 ‘대표’해 작품 판매를 담당한다. _112쪽에서

1차 시장의 작품가 책정에 대해 정해진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가격을 좌우하는 요소는 분명히 존재한다. 가령 몇 개의 동일한 복사본이 있는 프린트 작품은 같은 작가의 하나밖에 없는 원화보다는 작품가가 낮게 책정될 것이고, 사이즈가 큰 조각품은 작은 조각품보다는 좀 더 비싸게 팔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재료와 제작에 드는 비용은 작품가와 별 관계가 없고, 정량화하기 어려운 다른 요소들이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많다. 그 중 하나는 작가의 브랜드 가치인데, 브랜드 가치는 작가의 작품 중에서 유명한 개인 컬렉터나 공공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이 있는지,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치른 경력이 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_112쪽에서

아무튼 이 모든 예술품은 누가 사는 걸까? 미술 시장은 미술계를 주도하고 선동하는 극소수의 엘리트들, 즉 미술관과 부자들에게 의존한다. 소장품을 꾸준히 늘리고 보유해야 할 책임이 있는 공공 미술관은 직접 작품을 사들이기도 하지만 작품 기부자에게 파격적인 세금 감면 혜택을 주어 개인 기부를 유도하기도 한다. _116쪽에서

종종 어떤 작품은 터무니없이 비싸 사람들의 공분을 사거나 거센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술가의 똥이 들어있는 캔’이 억 단위 가격에 팔린다. 일반인들의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실제로 이 캔 속에 진짜 똥이 들어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비싼 값을 치르고 작품이 지닌 환영과 신비를 사들였다는 사실이다.

예술가의 똥, 1961년 5월 정량 30그램의 내용물을 신선하게 보존처리 후,
통조림으로 제작
1961년, 만조니는 한 달여 기간 동안 이런 통조림 90개를 제작해 각각 에디션 넘버를 붙인 뒤 진품임을 보증하는 서명을 남겼다. 그리고 모노그램으로 디자인한 라벨에는 4개의 다른 언어로 각각 상품명을 적어 시장에 내놓았다. 당시 이 통조림의 가격은 통조림과 같은 무게의 금값으로 책정되었으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 _47쪽에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은 부자, 군주, 국가, 종교의 후원을 받으며 그들을 위해 복무해 왔다. 하지만 현대미술세계의 예술가들은 ‘인간의 욕구나 환경보다 자본의 논리를 우선시하는 경제 정책의 위험성’에 대해서 말하거나, ‘사람들의 사회적 얼굴과 이면에 숨겨진 공격성’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예술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상을 알리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두게 하며 정치·경제·권력 구조에 반기를 든다. 또한 예술계라고 공격의 대상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 제도권에 대한 비판은 예술은 생산·표현·소비·유통 방식을 결정짓는 보이는 힘과 보이지 않는 힘 두 가지 모두에 초점을 맞춘다. _158쪽에서

그녀는 작품 속에서 쿠르드족 독립투사인 자신의 친구를 죽게 한 탄피의 기원을 추적하는 내용의 렉처 퍼포먼스lectureperformance(강연 형식과 결합한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삼십여 분간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터키 당국이 사용한 무기가 비엔날레 협찬사 가운데 한 회사의 자회사에서 제조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전쟁과 미술관의 복잡하게 얽힌 상관성이 드러난다. 특히나 몇 달 전 이스탄불에서 벌어진 시위로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비엔날레가 개최된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은 관객에게 더욱 신랄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_159쪽에서

예술가들은 때로 우리 시대와 사회를 풍자하는 작품과 전시 기획으로 울림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또 미술계 내부에 존재하는 성차별과 인종차별 문제에 맞서 싸우고, 새로운 미술사를 쓰려는 시도도 한다. 재미있는 포스터, 스티거 제작 등 기존에 없던 독특한 형태의 예술운동을 벌인다. 이런 활동의 성과는 미술계가 비판적으로 내부 상황을 점검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여성과 유색인종, 비서구권 출신, 성 소수자인 예술가를 포함하는 미술사를 새로 쓰려는 시도는 결과적으로 기존의 미술사가 ‘백인이며 이성애자인 남자들만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_67쪽에서

1989년, 자신들을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ls)라고 부르는 익명의 여성 예술가 한 무리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 여성 누드와 남성 누드의 비율을 계산하며 ‘고추 숫자 세기’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전체 작품 가운데 여성 작가의 작품은 겨우 오 퍼센트 미만이지만, 누드 작품의 팔십오 퍼센트는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수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여성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들어가려면 헐벗어야 하는가” _74쪽에서

예술 작업을 통해 인간의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는 데 몰두하는 예술가도 많다. 그들은 예술이 생태학적으로 좀 더 지속 가능한 미래로 가는 길을 제시하도록 장기간의 연구조사부터 환경 행동주의 활동까지 다양한 범위의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예를 들어,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를 오가며 성장한 예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2014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환기하기 위해 그린란드에서 가져온 얼음덩어리 열두 개를 코펜하겐 시청 앞 광장 한복판에 던져놓고 얼음조각이 녹아 없어지는 광경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목격하도록 했다. _224쪽에서

도체스터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옛 건물은 지역 주민들이 저녁 식사 모임을 하거나 퍼포먼스를 열거나 예술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모임 장소로 활용되었다. 프로젝트는 자신의 역사와 환경을 보존하고 재건하는데 지역 주민들을 직접 참여시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은 지역 사회에 예술적·사회적 변화를 가져왔다. 이외에도 게이츠는 인근 지역에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공영주택을 저소득층 가정과 신진 예술가 모두가 주거할 수 있는 소득계층 혼합단지로 바꾸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_228쪽에서

이렇게 오늘날 예술은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고 있다. 예술가들은 개인 작업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지역 사회 속으로 들어가 함께 작업을 하거나, 과학·기술·생태학·지질학 등 다른 분야의 학문과 협력해 예술의 범위를 확장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계속 현대미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