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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있거나 혹은 없거나 (2017.8.17)

클리오56 2017. 8. 16. 19:39




읽은 소감 및 내용

히말라야 트레킹에 가장 소중한 가이드북이다. 히말라야라는 생명체의 일주문을 통과하여 트레킹에 나섰다면 반드시 보거나 느껴야할 모든 것을 망라해 놓았다, 그 어느 다른 책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소중함이다.  히말라야의 뿌리, 시냇물, 야생화, 길, 하늘, 추위, 여행객, 바람, 인연, 환생, 아트만, 사람!!!     


1. 히말라야의 주인

- 나는 아이들에게 유산을 준다. 무엇일까? 책도 밭도 아니다. 당연히 창밖으로 펼쳐져 있는 히말라야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가는 유산이고 내게는 서원이다. 7천m가 넘는 우뚝한 산봉우리를 250개나 가지고 있고, 동서의 길이가 장장 2천500km, 남북간의 넓은 폭은 무려 300km에 달하는 거대한 산맥을 통째로 준다.

- 이 풍경을 결코 잊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 생생한 느낌을 나의 마음속에 항상 간직하여 내세까지 함께 갈 수 있기를.



2. 히말라야와 야채만두 비교법

- 붓다의 탄생지인 룸비니는 초원지대이다. 이 자리에서부터 히말라야가 시작해서 북쪽으로 고도를 높이면서 위용을 자랑한다. 10대, 20대의 인생을 거치지 않은 30대가 없듯이 낮은 지역을 품고 있지 않은 산은 없다.

- 이제 시작하는 히말라야 걷기에서는 사찰에서의 시선처럼 히말라야를 구성하는 우림, 흐르는 물, 길, 야생화, 빙하, 배경이 되는 하늘 등등 수많은 요소를 주의 깊게 바라볼 예정이다.




3. 히말라야라는 생명체

 - 어원: Hima + alaya = 산스크리트 '눈의 거처' = 눈을 생명체로 보았음

 - 힌두의 이야기처럼 정말 신들이 살고 있을 법하니, 히말라야는 無情한 사물이 아니라 생명체이며 그것도 정신적 의미가 충만한 그 무엇이다. 


4. 히말라야 일주문 

- 일주문이란 속인과 구도자의 경계를 나누며, 세속의 번뇌와 산만한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이제 청정지역으로의 진입을 준비하는 자리다. 설산에서의 첫날은 일주문을 지나는 것과 같으며 그 대가는 육체적 고통이다. 오르기는 힘들어도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커다란 소리를 내는 종처럼 고통은 심할수록 그만큼 쉽게 설산과 합일되는 값어치를 갖는다.

- 히말라야라는 세계를 가슴에 껴안기 위해서 우선 침묵과 더불어 이런 감속을 거듭하며 - 느림도 부족하니 - 한 발 더 나가 정적인 것을 배워야한다.

- 다시 눈을 떠서 전면을 응시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으니 세상의 풍경이 모조리 마음 안에 자리잡고 있는 신기한 현상을 본다. 말하자면 히말라야가 내 안에 있는 것이다. 반복할수록 눈을 감았을 때와 시선을 열었을 때와의 차이점이 없어지고 드디어 산은 내것이 된다. 감을수록 얻어지는 현상이다.  

- 눈을 감아도 히말라야가 보이면다시 새롭게 묻는다. 산을 바라보는 자, 누구일까?, 산을 가슴에 품은 존재, 누구일까? 산을 바라보고, 가슴에 산을 넣은 존재는 마음이며, 히말라야 역시 마음이다. 히말라야에서는 마음의 본질이 절로 온다. 마음에 세속을 향해 있으면 재가자이며 다르마에 향하면 그가 어디에 자리하든 출가자라던가. 우리 모두는 이 산에서 세간을 떠난 출가자이다.

 
5. 히말라야의 뿌리 

- 깊은 수목에 잠겨진 산의 하부는 가장 생명력이 충만한 곳이다. 산행 중에 이 지역을 피해 비행기로 훌쩍 고지로 날아드는 일은 절름발이 경험이 된다. => 계단을 차근차근 오르며 그 의미를 새기는 일이 산행의 필수이다.

- 자연은 눈에 보이는 정신이고 정신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이다. 깊은 녹지를 지나면서 이 자연이 정신의 일부, 사유의 주체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느낀다. 마음안의 녹색을 찾아낸다면 나무를 제거나 꽃을 꺽는 일은 있을 수 없다.



6. 히말라야의 시냇물

- 히말라야의 빙하에서 발원한 물은 이제 낮은 곳을 찾아 내려간다. => 흐름은 때로는 폭포를 이루어 거품과 함께 급하게 떨어져 내린다. 히말라야를 걷는 동안 물의 탄생에서 부터 급류, 폭포, 맑은 시냇물, 강 등등 다양한 물의 형태를 볼 수 있다.

- 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있는듯 없는 것 같고, 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없는 듯 있는 것 같다. 이야기는 산 혹은 물이라는 하나의 형상을 통해 정신적인 경계로 나감을 뜻한다.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면 주의깊게 느껴보아야 한다.


7. 히말라야의 야생화 

- 그러나 와, 이것 봐라. 이렇게 아름다운 꽃의 이름은 무엇일까? 생각을 진행시키고, 사진기를 꺼내면서 꽃을 구도안에 우겨 넣으면 그들은 나와 분리가 되며 삼매가 깨져버린다. 대부분 이렇게 생각을 일으킴으로써 어처구니없게 실패하기 마련이다. 다시 제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놓아버리는 기나긴 시간이 필요하다.

- 이 곳의 고도는 식물이 자라기에 너무나 가혹한 환경이다. 가끔 구름사이로 나타나는 햇살도 저 아래 우림처럼 부드럽고 따뜻하지는 않아 고대의 봉인된 한때처럼 따갑고 거칠다. 또한 그늘진 곳에 무엇이 있는지 식별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어둠이 깊고 차다. 이런 열악한 고도에서 야생화는 스스로 일어나 하늘과 마주한다. 신에 대한 순종과 헌신. 거룩함에 대한 혜안을 품기 위해. 태고부터 자리잡은 하얀 능선을 배경으로 정적 위에 앉아 있다.

 
8. 히말라야의 길

- 길을 보며, 내가 지나왔던 삶의 길을 생각하고, 이제 떠나가야 할 미래의 길을 떠올리면 내부에서 고요하고 심오한 정신적인 활동이 이루어진다.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우리가 히말라야 어디를 다녀왔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에서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는지가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 히말라야 산길에서 헤매다가 돌아나오는 행위들은 자아의 존재와 본성에 대해 올바르게 배우고, 경험과 이성을 통해 만들어진 분석력으로 다르마를 검토하고, 궁극적으로 지적인 이해를 실제로 수행함으로 해탈에 이르고자 함이다.  해탈이란 자신의 체험을 통해 확인된 지식의 결과다. 해탈은 길에 대해 확연히 통찰하는 순간에 오며 더 이상 길을 논할 필요가 없는 상태다. 길을 헤매는 일들은 해탈을 향한 하나의 상징적인 행위다. 

- 낯선 길에서 돌탑이라도 만난다면 제대로 길을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늘 이렇게 확연한 것은 아니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혹은 길조차 사라진 행로에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이 삶과 무엇이 다르랴.

- 불모지. 더 이상 사람이 살수 있는 곳이 아니다. 신의 영역이다. 도리어 해방감이 든다. 이제서야 혼자구나. 어디엔가 아주 먼 곳에 왔구나. 아름다웠다. 이토록 혹독한 시련의 대지 위로 펼쳐진 황량함이 미적인 표현을 하다니. 한줌의 풀은 커녕 녹색의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이 고독한 불모의 지역은 어떤 언어의 아름다움의 찬양으로도 부족하다.  너덜지역, 바위, 빙하, 눈 그리고 하늘. 태고의 자태 그대로다. 단 세가지의 색, 하늘의 푸른 색, 눈과 얼음의 흰색, 먼 옛날 바다였다가 솟아오른 탓에 노출된 퇴적층이 만들어낸 모래, 돌, 바위의 황색 이외에 다른 색깔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황무지다. => 그러나 거친 산등성이 고도가 높아지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오며 시선은 초점을 잃는다. 해방의 기쁨이 겸손함으로 조금씩 치환한다. 



9. 히말라야의 하늘

- 자연의 절대적인 경지에 들어가는 것은 바로 고요한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경지와 동일하다. 히말라야 하늘은 그 정신의 체험이다. 흰색에서 눈을 떼어 우주를 응시하는 것도 히말라야에서 빼놓지 않고 해야 할 과정이다.  

- 우리의 존재는 하늘의 구름처럼 덧없다. 존재의 삶과 죽음은 마치 뇌운의 춤동작을 보는 듯하다. 삶은 하늘에서 번갯불처럼 순식간이며 깍아 내린 산에서 흘러내리는 급류처럼 빠르기 그지없다.


10. 히말라야 추위 

- 춥다고 불평해서는 안 된다. 피하려고 애써서도 안된다. 텐트 안에 하얗게 서리가 내리거나 돌로 이어 만든 게스트하우스 기온이 바깥과 같더라도, 추위라는 감각이 내 몸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나 관찰하는 일이 중요하다.

찬 기운은 얼음같이 맑고 옥처럼 윤택함을 포함한다. 그러나 추위에 시달리면 오로지 고통이다. 감ㄱ가중에 막강한 기운을 품은 추위는 히말라야에서 고통이 무엇인지 면면히 살피게 만든다. 이겨내면 맑고 윤택해지지만, 패하면 오로지 한랭지옥이다.   



11. 히말라야 여행객

- 히말라야는 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도에 대한 생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이 도감이 일어나는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확대재생산을 통해 그 길로 올라서야 한다. 그것이 히말라야를 체력 단련소로 생각하지 않는 여행객이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이다.

- 여행객은 누구나 때가 되면 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그 멈춤이 오늘 저녁인지 내일인지 혹은 내년인지 아무도 모른다. 화장터에서 불길 속에 수풍지화로 흩어지며 소멸하는 힌두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산에서 어둠이 오면 잠들기 전까지 이 공부를 하는 일이 여행의 가치를 높여준다.    

 
12. 히말라야의 바람

- 위대한 음악이란 천지자연과 더불어 하나로 조화되어 어우러진다고 했다. 바람에 날리는 깃발 아래에서 귀를 기울이면 문명사회에서의 음악이란 얼마나 낮은 단계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

- 히말라야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세속의 가치관은 버려지기 시작했다. 과거의 절대가 자연스럽게 상대가 되며 왜소해지고 이제는 웅장한 자연이 대신 그 자리에 들어오며 의연하게 커가고 있다.

- 무심의 고요함을 품고 적막함 안에 사물을 껴안고 있는 것이 자연의 본 모습이다. 히말라야에서 이런 본질은 쉽게 느껴진다. 이 근본을 따라 조용히 산을 바라보고 걷는 일이 산에서 행해야 할 일이다. 성내고 다투며 술마시며 소란하게 떠드는 일은 자신 스스로는 물론 다른 여행자를 위해서도 피해야 한다.

- 바람은 호흡의 형태로 육신의 내부로 스며든다. 부는 바람은 어디에나 침투하며 우주의 숨결이며 그것은 우주의 활력인 브라흐만을 상징한다. 우리는 호흡을 통해 우주와 기운을 상통한다.


13. 히말라야의 인연

- 바느질이란 두 세상을 하나로 묶는 일, 그들이 열심히 이어가는 재봉틀의 바늘코는 두 면의 천을 하나로 묶는 작업, 그것이 바로 서로 떨어져 있는 둘이 하나가 되는 인연이 아닌가. 면을 잇고 붙이는 작업은 바로 애착이며 인연 속성이리라. 사랑이라는 이름의 애착은 동기를 부여하여 업보에 무게를 늘려간다. 세상의 인연은 그렇게 제자리를 찾는가.

- 인연에 대한 공부는 설산에서 하는 것이 으뜸이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눈을 놓는 자리마다 열리는 무차별한 아름다운 경관이 인연을 바라보는 법을 깨우쳐준다. 인연이 무겁더냐? 가볍더냐? 차별이 있더냐? 주변 풍경은 끊임없이 물어보며 답을 요구한다.   
14. 히말라야의 환생

-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사관은 환생이다. 죽어 다시 이 세상에 오는 것으로 그 배경은 스스로 만든 업의 인과로 인한 역동적인 현상이다. 나의 스승, 가족은 물론 주변의 생명체들은 전생의 나의 업에 따른 결과이기에, 갚아야 할 빚이며 받아들여도 좋은 선물이다.


15. 히말라야의 아트만

- 초월적 자연으로 나가는 일은 정신적 자유를 획득하고 더불어 내안의 불성을 찾기 우함이다. 히말라야가 나를 닦기 위한 도량이냐 혹은 정상 등정을 위한 힘 겨루기냐는 그 산행의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에 달려있다. 저 산봉우리에 오르기위해 이 자리에 온 사람, 저 산정에 절하기 위해 이곳까지 다다른 나, 그러나 우리 모두는 히말라야가 품고있는 아트만에 이끌려 험한 길을 헤쳐왔다. 

- 인격은 대자연 안에서 소도구에도 미치지 못하니 최고의 예술 대상은 웅장한 자연이다. 

- 히말라야를 걸어가는 일은 고통을 수반한다. 이것은 문턱을 넘어서는 과정이다. 자신의 육체가 얼마나 연약한지 알아차리며, 이 육신이라는 감옥을 깨뜨려, 내부에 자리한 아트만을 본래의 자리로 되돌려주는 여정이다. 

  
16. 히말라야의 사람 

- 무거운 짐을 이고 산을 오르내리는 포터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은 오로지 자신의 몸이다. 그들이 삶에서 이 짐들을 내려놓는다면 곧바로 가난이 닥친다. 가능하다면 많은 여행객들이 이들에게 짐을 맡겨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을 도와주는 일이 옳다.

- 헤겔에 의하면 결핍과 고통은 모순에 빠지게 하고 아름다움과 예술은 이러한 압박과 위기로부터 인간의 생명력을 회복 시켜준다고 한다. 히말라야 주민들의 부족함과 고통은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아름다움이 있기에 상쇄되고 그들의 고난은 설산이 주는 힘에 의해 극복된다. 

- 산길에서 묵운 짐을 지고 가는 그들을 보면 때로는 자신의 죄를 고행으로 갚아나가는 수행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언젠가 그 짐을 모두 내려놓고 새처럼 가볍게 세상을 살아보기를 기원한다.

- 현지인의 생활에 공감한다는 것은 바로 나의 감정이 그들에게 속하는 것과 같다. 말하자면 나의 감정이 나로부터 해방이 되어 바로 그들의 것이 되는 일이다. 이것은 바로 진정한 이해이며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이다. 히말라야 여행에서 이들의 의미는 바로 공감을 통한 사랑이다. 공감과 사랑이 함께 하는 순간 서로의 사이에는 환한 웃음이 터진다.    


교보문고 책소개

그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히말라야에 관한 책을 꾸준히 저술해 온 임현담 저자의 히말라야에 관한 총론을 담은 책. 이 거대한 설산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관련사진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저자소개

저자 : 임현담

서울 생으로 중앙대학교와 가톨릭 대학원을 졸업했다. 해마다 히말라야에서 한철을 보내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일상을 보내고 있다. 히말라야의 풍광과 인연 속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반추하고 현재의 존재를 비춰보는 작업을 하고 잇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연과 하나로 융합하고 순응해야 한다는 것이 글의 일관된 주제이다. 그는 그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히말라야에 관한 책을 꾸준히 저술해 왔다. 히말라야에서 지내지 않는 시간 동안은 충남 대천에서 진단방사선과 개원의로 일하고 있다.

목차

1. 히말라야의 주인 ...23 
2. 히말라야와 야채만두 비교법 ...41 
3. 히말라야라는 생명체 ...67 
4. 히말라야 일주문 ...83 
5. 히말라야의 뿌리 ...107 
6. 히말라야의 시냇물 ...127 
7. 히말라야의 야생화 ...149 
8. 히말라야의 길 ...169 
9. 히말라야의 하늘 ...195 
10. 히말라야 추위 ...217 
11. 히말라야 여행객 ...235 
12. 히말라야의 바람 ...255 
13. 히말라야의 인연 ...273 
14. 히말라야의 환생 ...289 
15. 히말라야의 아트만 ...311 
16. 히말라야의 사람 ...339 
후기 ...357

출판사 서평

히말라야 감상법을 담은 총론이다. 우리가 거대한 설산에서 무엇을 보고 느낄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마치 망망대해에서 항해하는 배가 나침반에 의지하여 갈길을 찾듯, 히말라야 순례객들에게 이 책은 나침반이자 예의범절의 교과서다. 

산은 신이 머무는 곳이 아니다. 산 전체가 신이다. 와서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