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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걷는다 3 스텝에 부는 바람 (2017.8.5)

클리오56 2017. 8. 4. 21:52





읽은 소감 및 내용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60세가 지나 은퇴후 이 12,000km의 실크로드 걷기에 나섰는데, 마찬가지로 은퇴한 나 역시 여행을 하였지만 이에는 훨씬 못미치는 편안한 여행이었다. 물론 생전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몇 차례 하였고 동년배의 많은 친구들로부터는 대단하다는 찬탄을 들었지만. 많은 역경을 이기고 완주한 저자에게 찬사를 보낸다. 비록 이미 오래전 발생하였던 사건이지만.


  • 1부 파미르 고원 | 세 번째 여행(2001년 여름~가을) 
    1. 다시 출발
    -  제일 힘든 건 뭐니뭐니해도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었다. 물론 도둑이나 달러를 밝히는 경찰, 앞으로 넘게 될 눈 덮인 파미르, 위구르어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이 2001년도의 120일 동안 맞닥뜨려야 할 대상이다. 그렇지만 가장 겁나는 것은 중국 사람들이 불의 땅이라고 부르는 불타는 오아시스 투루판에 닿을 때까지 겪을 끔직한 고립상태다. 나는 고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이전보다 더욱더 이 길위에서의 모험과 만남과 모든 행복에 갈증을 느낀다. 지금까지 이 길은 내 목을 축여주었다.
    - 창고에서 굴러다니던 오래된 골프 가방이 바퀴 두 개 달린 여행의 동반자 '윌리스'로 변신해 에브니를 대체했다.
    2. 윌리스를 수선해준 우마르
    - 내게 돈을 쥐어짜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엄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즈베키스탄 경찰이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벌이는 달러 사냔은 끝난 것일까? 경찰들이 마음껏 활개치는 바람에 금달걀을 낳는 암탉을 죽여버렸다는 것을 이 나라의 책임자들이 마친매 깨달은 것일까? 
    3. 기울어진 역사의 추 
    - 예전에는 러시아인들이 현지인들에게 러시아어를 가르쳤다. 커다란 역사의 추는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어디에 가나, 구소련 출신의 공화국은 폭약을 안고 있다. 뇌관이 장착된 채.
    - 어제는 레닌과 스탈린이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영화관을 세웠고, 오늘은 두 인물의 동상을 무너뜨리고 슈퍼마켓을 세웠다. 역사의 바퀴는 빠르게 돌아갔다. 곡괭이를 꺼내기 무섭게, 삽을 내놓고 정렬한 것처럼.  
    4. 젊은 여자 솔타나드
    - 나는 산이 좋다. 산이 가진 힘과 다양성과 가혹함도 좋아한다. 산에는 바람과 비와 사람의 통행에도 때묻지 않고 남아 있는 옛 세상의 모습이 있고, 수십억년 전 이 바위가 만들어졌을 때의 야생 그대로의 모습이 남아 있다. 이 산은 헐벗고 메마른 캄치크 협로가 아니다. 풀과 꽃이 자라고, 생명이 가지마다 달려있다. 동쪽으로 까마득히 보이는 톈산과 파미르의 정상은 누가 제일 높은지를 다투며, 그 위를 오르려는 인간들을 두렵게 하려고 하늘에 닿을 듯 말 듯 우뚝 솟아 있었다.
    5. 토콘의 오두막 
    - 이처럼 광활한 지대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이렇게 깨끗한 공기를 마셔본 적은 없었다. 우선 수백미터 아래로 얼핏 보이는 키 작은 풀밭 위로 가축 떼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바람이 부는 대로 미끄러지듯 흘러가며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구름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 고도계 시계가 3400미터를 가리켰다. 태양이 사라지자 곧 날씨가 싸늘해졌다. 오늘 밤에는 밖에서 자고 싶지 않았다.
    - 날씨는 맑았고, 이곳의 자연은 너무 아름다워 천천히 음미하며 걷고 싶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걸으며, 천천히 걷는 데서 느낄 수 있는 미묘한 기쁨을 되찾았고, 엄청난 엔도르핀이 솟구쳐 도보여행자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기분을 맛보았다.
    - 동결건조된 비스크식 닭요리까지 모든 식량이 동이 난 상태였다. 이것은 파리에서부터 늘 가지고 다니던 최후의 비상식량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배가 고픈 상태지만 나는 행복하다.
    - 60km 전에 있는 키르기스스탄 쪽의 초소에 이어 100km  앞에 있는 중국 쪽의 검문소가 그것이었다. 이 무인지대에서는 걸어서 가는 것은 물론,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다.  
    6. 상업 도시 카스
    - 나는 카스에서 여행자들을 매혹시켰을 실크로드의 분위기를 느꼈다. 카스는 아마도 이스탄불과 시안 사이에서 실크로드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도시가 아닐까 싶다. 
    7. 사막 속의 웅덩이 
    - 나는 잠깐 오아시스에서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차린 뒤 씩씩하게 걸었다. 왼쪽으로는 흙색의 벽 같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1500km를 걸은 뒤 도착할 투루판까지 이어지는 톈산의 버팀벽이었다. 오른쪽 남쪽 방면에 있는 사막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고형의 바다와 같았다.
    8. 시골 사창가 
    걷기는 소위 문명화되었다고 하는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는 죽음 - 사람들은 삶과 혼동하고 있다 - 의 달리기에 브레이크를 건다. 내가 느끼기에 우리 사회는 텔레비전이 내미는 일그러진 거울을 통해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 나를 떠나게 부추긴 것은 우선 너무 오래도록 얌전히 생활하면서 억눌러온 모험에 대한 갈증이었다. 
    - 나는 노인들이 하나둘 가입하는 클럽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내 젊음을 누리고 싶었다. 아직 다리도 튼튼하고, 눈도 밝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해보이고 싶었다. 
    -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유곽이 있었다. 허허벌판의 사막에. 신장은 중국 정부가 만들고자 했던 사회답게 모든 것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게산하는 남자는 분명 한족 중국인이고, 여자는 위구르인이다. 위구르인에게 남는 일은 농사나 아니면 여기처럼 매충니다. 중국인이 돈줄을 쥐고 있었다. 
    9. 추돌 사고의 목격자 
    - 나는 경찰관 가운데 한명에게 다시 환자를 가리키며 응급차라는 단어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경찰 역시 차량과 관련된 서류를 확인하느라 너무 바빴다. 손에 사전을 들고 있는 내 자신이 무능하고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10. 선한 사람 류 씨 
    - 걷는 사람은 인생이란 천연금괴를 탐광하는 사람이 된다. 종착점에 도착하기 전의 마지막 며칠간, 나는 길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이후에 있었다. 나는 이미 다른 곳에, 내 집에, 내 가족과 친구와 함께 있지만, 계속 걷고 있다. 
    - 조금전에 3000km의 여정을 마친 터였다. 나는 이 경사를 축하하려고 호텔 안뜰에 나온 위구르 댄서들과 깡충깡충 뛰었다. 나는 한달에 1000km라는 엄청난 속도로 중국여정을 마쳤다.
    - 중국은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철저한 사회주의 경제에서 거칠고 야생적이며 낙오자에게 가차없는 자본주의 경제로 넘어왔다.   

    2부 고비 사막에 부는 바람 | 네 번째 여행(2002년 봄~여름) 
    1. 모래바람
    - 신장에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막 두 개가 있다. 작년에 북쪽으로 우회했던 타클라마칸 사막과 올해 맞이하는 몽골과 중국에 걸쳐 있는 고비 사막이다. 오늘 정확히 4월18일, 국도와 투루판 사이의 6Km를 막 주파했다.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 이 경계에서 한 시간동안 뱅글뱅글 돌고 난 끝에 말이다. 
    2. 가난한 사람들 
    - 행운이 이따금 눈 앞에 나타나리라는 희망도 없이, 계속 따라가고 있는 이 모험처럼 미친 짓에 뛰어들 사람이 있을까? 분명아니다! 바로 이때 나타난 인부들에게 내 "열려라, 참깨" 종이를 내밀었다. 이 종이에는 내 모험다에 대한 설명이 중국어로 적혀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고, 내 주위를 둘러싸더니 물통에 물을 가득 부어주었다. 
    3. 천상의 산, 톈산
    - 북쪽에는 거대한 톈산이, 남쪽에는 사막이 있었다. 사막은 실로 광활한 모래평원이었고, 색깔에 따라서만 조금씩 차이가 생겼다. 켜켜이 쌓인 금빛 모래, 넓게 펼쳐진 검은 빛 조약돌, 소금기가 있는 하얀빛 주조물, 끝도 없이 펼쳐진 황토.
    - 트럭을 타고 33km를 간들 달라질 게 뭐가 있겠는가? 없다. 하지만 내가 우려하는 것은 한번 이렇게 무너지면 계속해서 같은 일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가 온다고 트럭 타고, 덥다고 트럭 타고, 다리가 아프다고 트럭 타고, 먹을게 부족하다고 트럭 타고.....
    - 9.11 테러 사건이후, 중국 정부는 절호의 기회를 맞게 된 것을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미국의 반테러 전쟁을 지원했고, 이를 이용해 몇몇 위구르 독립주의자들을 숙청했다. 그렇게 사형당한 사람의 수가 3000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처럼 거대하고 침묵을 지키는 나라에서 실제 수는 얼마나 될 것인가!
    4. 길 위의 주검
    -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시체는 지난 여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체를 묻지도 않고, 일년동안 이렇게 방치햇다는 말인가? 나는 다시 길을 떠났지만, 시체의 뻣뻣한 손과 이 두 남자의 경박한 웃음소리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5. 경찰이다!
    - 중국에 GPS의 반입이 금지되어 잇다는 걸 알고 있다.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위성이 좀더 정교한 장치를 가지게 된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GPS를 소지할 경우 벌금이 1000유로인데, 이는 중국 노동자의 일년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라지만 제일 걱정되는 것은 비자 갱신에 문제가 생기거나, 최악의 경우 추방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6. 중국식 장례 
    - 내가 읽은 책에서는 실크로드를 칭송했고, 실크로드는 계속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 본 실크로드는 보잘것없었고, 나는 1500km를 걸어오면서 나락 속에 있는 모습을 보았다. 마치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 사람들은 부정하지만 -  발견한 아이처럼.  
    7. 만리장성
    - 슈는 시안에서 출발해 1200km 이상을 걸어왔다. 나는 스님의 가방이 너무 작은데 놀랐는데, 스님은 윌리스 위에 올려 놓은 내 물건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동양 대 서양... 나는 진정으로 비우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생각했다.  스님의 가방을 들어보았더니 5Kg도 안될 것 같았다. 이 승려는 불필요한 것들을 모두 떨쳐버린 것이었다. 그러데도 차림새가 깨끗했다. 나는 부랑자 같은 모습인데 말이다. 이것도 내가 더 배워야 할 것이었다. 서양인은 소유했다, 고로 더럽다. 스님은 내게 바로 이에 대해 명상하게 만들었다. 
    8. 좌절의 늪
    - 급류로 변한 도로에 두번째로 발을 대자마자 신발은 다시 물 양동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익숙해졌다. 두 시간 후, 나는 해발 2,950m의 고개를 넘었다. 비의 장막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날씨가 좋으면 분명 잘 보일 것이다. 나는 땅 전체를 증오하며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9. 황허
    - 중국문명과 이 황토는 긴밀한 관계에 있다. 한족의 건국신화를 보면, 여와가 중화민족을 처음 낳았다. 여와는 오빠이자 남편인 복희처럼 인간의 머리에 뱀의 몸을 하고 있었다. 여와는 황허의 흙으로 귀족을 빚었고, 진흙으로 아래 계층 사람들을 계속 만들었다. 또한 문자와 결혼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이것은 전설 속 이야기고, 현실에서는 바로 이 황허 유역에서 최초의 중국 문명이 탄생했다.
    10. 신성한 강, 웨이허 
    - 웨이위안에서 서양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도시에서, 중국의 천년 문화는 사라져서, 전세계를 휩쓴 순응주의와 획일성 속에 녹아버렸다. 일본인들이 전통과 특성을 간직하면서 현대문물과 결합했다면, 중국인들은 미국이 대표하는 물질주의에 매혹당한 것처럼 보였다. 이들은 동양의 지혜를 고층 건물 위로 던져버리고, 전통적인 구역을 허물었다.  
    11. 환자 
    - 여행중에 행여 이런 일을 당할까봐 매년 엑스레이 검사를 받아 결석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확인했던 것이다. 두 번의 검사를 거쳐 아픔을 참아가며 초음파로 결석을 제거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다시 벌어졌고, 고통은 심해져서 등을 칼로 찌르는 듯했다.  
    12. 천년의 중국
    - 계곡 바닥으로부터 언덕 꼭대기에 이르는 이 멋진 정원에는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이라고는 단 1cm도 없었다. 해가 다시 나자, 이 모든 것이 빛나는 팔레트 같았다. 순간 나는 이 장관을 일구어낸 사람들을 샹각하게 되었다. 원래는 헐벗었을 이 산을 이토록 풍성하게 가꾸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삽과 땀방울이 필요했을까? 이 위대한 작품, 이 웅장한 장식품을 완성하기 위해서 몇 세대를 거쳐야 했을까? 중국의 만리장성도,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의 죽음이나 폭력을 앞세우지 않고, 이 아름다운 광경을 이루어낸 예술가들은 평범한 농부들로 오로지 삽을 도구로 삼았으며, 자신들과 또 형제들의 생계를 위하혀 대자연 앞에 기꺼이 머리를 조아렸던 것이다.
    - 나는 여행하고, 나는 걷는다. 왜냐하면 한쪽 손이, 아니 그보다 알수 없는 만큼 신비한 한번의 호흡이 등위에서 나를 떠밀고 있기 때문에라고 말이다. 좀 더 혼자이기 위해서는 항상 더 많이 벗어버려야 한다. 그럴수록 나의 진실이라 믿는 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 사람들은 내가 이 길을 혼자 지나올 수 있었다는 것에 경탄하지만, 나는 혼자였던 적이 별로 없다. 그들이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하루 동안 혹은 한 시간 동안 나의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내가 굶어 죽을까봐 내 식량주머니를 꽉꽉 채워주던 여자들, 우리가 느끼는 정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때 포옹을 나누며 우정을 전하던 남자들, 자비로운 그늘도 없이 이제는 가혹한 햇볕아래 마지막 몇 km를 통과하고 있는 지금, 내가 4년 전부터 그토록 강렬하게 체험했던 이 모든 얼굴들, 그 농부들, 감정, 두려움과 기쁨이 내 눈앞을 스쳐갔다.   
    - 나는 가장 가까운 호텔에 짐을 내리거, 탑이 내다보이는 높은 방을 달라고 청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자마자 창문에서 탑을 가만히 바라보았지만, 어떤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욕실로 돌아가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되뇌었다. 성공했어, 자네. 성공했어. 하지만 나는 나를 알아볼 수 없었고, 나를 믿을 수 없었다. 이 현실은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에필로그
    -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 장자크 루소, 에밀 


    교보문고 책소개

    걷는 여행의 완벽한 행복감!

    30여 년간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와 방송국에서 정치, 경제부 기자로 일하며 숨 가쁘게 살아온 베르나르 올리비에.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생을 편히 쉬면서 보내기를 거부하고, 1997년 그는 성聖바올로의 유해를 모신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로 향하는 2325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배낭을 메고 걷는다. 

    이 여행에서 걷는 것의 완벽한 행복감을 맛본 저자는 좀 더 오래, 좀 더 멀리 걸을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가장 힘든 여정으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신비의 실크로드를 선택한다. 1년에 3개월씩, 네 번에 걸쳐 걷게 될 1,2000킬로미터의 '산책'. 천생 기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매일 매일 여행기록을 노트로 남기고, 파리로 돌아와 그것을 정리하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여행을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세 권의 책이다. 

    제 3권에서는 실크로드의 마지막 구간에서 저자는 눈 덮인 파미르를 넘어, 중앙아시아에서 아직까지 천일야화 시대의 생활상을 간직한 도시 카스를 거친다. 그리고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을 지나면서 마침내 2002년 여름, 실크로드의 끝에 도착하는데…….
    ▶ 『나는 걷는다』 동영상 
     
    ♧ 저자 및 역자 소개 

    지은이 베르나르 올리비에(Bernard Olivier) 
    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서두르지 않으며 느리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자신을 비우는 법을 배워간다. 그럼으로써 은퇴 이후 사회적 소수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삶을 재활한 것이다. 그는 또한 비행청소년에게 도보여행을 통해 재활의 기회를 주는 쇠이유(Seuil) 협회를 설립했다. 4년간의 실크로드 여행을 책으로 낸 『나는 걷는다』의 인세는 이 협회의 운영비로 쓰인다. 

    옮긴이 고정아 
    1969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에서 한국어-프랑스어 통역을 공부했다. 국내 여러 영화제에서 프랑스어권 영화를 번역하고 있으며, 국내 개봉작으로 미스터리 시대극 〈늑대의 후예들〉과 〈아! 내가 부자라면〉 등이 있다. 

    목차
    감사의 글 5 

    1부 파미르 고원 | 세 번째 여행(2001년 여름~가을) 
    1. 다시 출발 15 
    2. 윌리스를 수선해준 우마르 36 
    3. 기울어진 역사의 추 60 
    4. 젊은 여자 솔타나드 78 
    5. 토콘의 오두막 102 
    6. 상업 도시 카스 134 
    7. 사막 속의 웅덩이 147 
    8. 시골 사창가 169 
    9. 추돌 사고의 목격자 195 
    10. 선한 사람 류 씨 223 

    2부 고비 사막에 부는 바람 | 네 번째 여행(2002년 봄~여름) 
    1. 모래바람 249 
    2. 가난한 사람들 259 
    3. 천상의 산, 톈산 268 
    4. 길 위의 주검 277 
    5. 경찰이다! 295 
    6. 중국식 장례 312 
    7. 만리장성 332 
    8. 좌절의 늪 344 
    9. 황허 360 
    10. 신성한 강, 웨이허 368 
    11. 환자 381 
    12. 천년의 중국 395 

    에필로그 442 
    증명서 446 
    쇠이유 447 
    옮긴이의 글 448 
    실크로드 정보 
    -카자흐스탄 공화국 452 
    -키르기스스탄 공화국 457 
    -신장웨이우얼 자치구 461 
    -간쑤 성 464 
    -산시 성 467

    출판사 서평

    30여 년간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와 방송국에서 정치, 경제부 기자로 일하며 숨 가쁘게 살아온 베르나르 올리비에. 자기 삶에서 제 몫을 해낸 그의 삶은 충만했지만, 그는 퇴직한 후에도 여생을 편히 쉬면서 보내기를 거부한다. 
    1997년 그는 성聖바올로의 유해를 모신 산티아고 데 콤포스델라로 향하는 2325킬로미터에 달하는 길을 배낭을 메고 걷는다. 
    이 여행에서 걷는 것의 완벽한 행복감을 맞본 저자는 좀더 오래, 좀더 멀리 걸을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 그래서 가장 힘든 여정으로 이스탄불과 중국의 시안西安을 잇는 신비의 실크로드를 선택한다. 1년에 3개월씩, 네 번에 걸쳐 걷게 될 1,2000킬로미터의 ‘산책’. 천생 기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매일 매일 여행기록을 노트로 남기고, 파리로 돌아와 그것을 정리하며 머릿속으로 한 번 더 여행을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바로 이 세 권의 책이다. 

    줄거리 
    실크로드의 마지막 구간에서 올리비에는 눈 덮인 파미르를 넘어, 중앙아시아에서 아직까지 천일야화 시대와 같은 생활을 볼 수 있는 도시 카스를 거친다. 끝없이 이어진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 사막,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고독에 지쳐가면서도 여행의 의미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그는 2002년 여름, 마침내 실크로드의 끝에 도착한다. 시안에 도착한 그가 깨달은 것은……. 

    ♧ 본문 소개 

    이 부서지기 쉬운 순간은 나와 세상 사이에 화합이 자리 잡는 시간으로, 사람들은 그 시간을 연장할 수 없는 걸 아쉬워한다. 슬픔이 다시 찾아오는 때에 떠올리게 되는 기분 좋은 순간들은 찌르레기의 비행처럼 덧없고 강렬한 순간이며, 우리 인간의 부조리한 삶에서 훔쳐낸 순간이기도 하다. 바로 이 행복을 찾아서 나는 떠난 것이고, 2000년 이상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이끈 실크로드는 그러한 기쁨을 불러일으키는 데 적합한 곳으로 보였다.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실크로드를 끝까지 횡단하거나, 적어도 갈 수 있는 곳까지는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