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곳저곳 해외여행

배낭 여행 8~9일차, 3월1~2일: 베트남 후에

클리오56 2017. 3. 4. 08:36

일자: 2017년 3월 1~2일

베트남 후에 

 



라오스 팍세에서 베트남 후에로 넘어가는 인터내셔날 버스는 새벽 6시반 출발이었다.

확실히 모르겠지만 안내판을 보면 8시경에 한편 더 있을지도 모르겠다.


구글 지도를 체크해보면 거리는 370키로 정도, 하지만 9시간 소요되었는데

라오스와 베트남 국경에서 거의 2시간 체류하였기 때문이다.


여행사에서 제시되는 요금은 20만에서 25만 낍으로 이용 버스 종류에 따라 차별화 되는데

우리는 22만낍 정규요금에서 1만낍이 할인되었다.


버스는 침대형 슬리핑은 아니고 2층 구조로 좌석이 뒤로 상당히 졎혀졌기에 나름 편했으며

중간 중간 쉬기도 하면서 큰 부담없이 장시간 이동이 가능하였다.


인터내셔날 버스

버스 내부: 좌석이 2층이며  한껒 젖혀져있다.


국경에서 화장실 가려는데 분명 사무실이 있지만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지 않으려는지

화장실 문의하면 어느 허름한 건물 뒷편으로 얘기하는데 가보면 아무것도 없으니 노상에서 해결하라는 뜻.


베트남 측 국경 (국경 명칭을 모르겠다??)


국경은 산악지대인데 버스가 다니는 도로의 최고 해발은 약 720미터 정도였으며

후에에는 4시경에 도착하였지만 이 뭔 변고인지 사고를 겪었다.


버스에서 내려 여행자 거리를 찾아가는 중 도로 건너면서 최 친구가 오트바이와 충돌하였으니

왼쪽 발목에 상처를 입고 무릎 뒤의 상태도 좋지 않아

가해자 청년과 함께 대학병원에 가서 X-ray 촬영하는 등 조치를 취하였다.


이곳에선 다행히 뼈는 금이 가지 않았다했지만 밤새 통증은 있었고

한국에 가서 보험 혜택을 보기위해선 인터내셔날 병원에 가서 서류상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기에

이튿날엔 전날과 다른 인터내셔날 병원을 찾아갔고 뼈에 금이 있다하여 기부스까지하였다.

사고 경위를 경찰서에서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병원 서류상에 오트바이 사고로 부상입었다는 문구를 넣어달라고 하여 보완하였다.


이틀을 이렇게 보냈으니 친구는 물론이요 나 역시 후에를 구경할 시간이 없었으니

병원 조치를 모두 끝내고 숙소에 데려다 주니 오후 4시였고 이후 부랴부랴 후에 왕궁을 찾았지만

입장이 가능한 시간이 아니라 왕궁 외곽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만족.

후에는 왕궁, 세개의 왕릉이 관광대상인데 그 어느 것 하나 못본셈. 하긴 친구의 안위가 더 중요하니.


하여 아래 사진은 모두 왕궁 외곽과 다낭행 기차표 구매하러 가는 도중의 강변과 건물 모습이 전부이다.

어쩌면 다음에 한번 더 방문할 핑계거리를 만들어두었다고 위안.



후에 시내 모습

여행자 거리에서 후에 역까지는 Le Loi 거리로 일직선인데

다낭행 기차표를 구먀하기 위해 이 거리를 왕복하면서 좌우 흐엉강변과 시내 모습이다.  










  





후에 왕궁 외곽


베트남은 북쪽은 찐 가문이, 남쪽은 응우옌 가문이 지배했으나 1802년 응우옌 가문의 자롱 황제가

베트남 최초의 통일왕조를 이루면서 1802년 후에가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1885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에 복속되면서 독립을 잃었고 

베트남 전쟁을 겪어면서 많은 유물과 인명이 희생되었다.


왕궁의 외곽만 도보로 답사하였지만 성채와 해자의 규모는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할 정도였으며 내부를 다녀보지 못했음이 심히 유감스럽다.

성채는 길이 2.5Km, 높이 6M이며 1803년 설계 시작되어 1832년 완공되었고

동남아 최초의 유럽 스타일의 요새로 건설된 것이라 한다.



깃발탑

(현재는 베트남 국기 게양)


오문 (응오몬)

황제가 출입하는 문인데 5개의 문이 있어 오문이며, 황제는 그중 가운데 가장 큰 문으로,

관리는 좌우 2개의 문으로, 일반인은 가장자리 2개의 문으로 입을 하였으며,

2층 누각의 중심은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색 기와로 덮혔으며

중요한 행사가 있을 경우 황제가 이 곳에 머물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