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국관광 100선 (시즌 2013~2014)

(41-5) 서울 5대 궁궐 - 덕수궁 (2017.2.3)

클리오56 2017. 2. 3. 20:53

 

 

 

 조선 5대 궁궐이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을 말한다.

5대 궁궐 여행은 교통편을 고려해 덕수궁부터 경희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순서로 돌아보는 것이 좋다.

 

덕수궁은 대한제국 시절에는 황궁으로 사용하여 근대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곳이다.

경희궁은 광해군 12년에 완공됐고, 당시 명칭은 경덕궁이었다. 영조 36년에 경희궁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입구 동편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1궁궐이다.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경복궁에서는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도 빠뜨리지 말아야 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서 ‘동관대궐’ ‘동궐’로 불렸다.

법궁인 경복궁보다 오랫동안 왕조의 역사가 펼쳐진 곳이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보조 궁궐로 사용됐다. 춘당지에 비치는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서울 5대 궁궐 - 덕수궁 (2017.2.3)

책 따라하기: 이장희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나의 첫 서울 나들이는 거의 반백년 전 중학교때의 서울 수학여행이었고
덕수궁 석조전의 계단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단체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의 정동편에 덕수궁이 포함되어 있기에 정동 나들이의 마지막을
덕수궁으로 잡았으며 우선 대한문에서 편액과 석물을 촬영하면서 답사를 시작하였다.

덕수궁의 원래 명칭은 경운궁이었으며, 덕수란 상왕이 머무는 거처이고
고종이 일제의 강압 때문에 순종에게 황위를 물려주면서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대한문 역시 원래는 대안문이었지만 1904년 궁궐 대화재 이후 새로 만들면서 대한문으로 바뀌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는데, 대한제국이라고 국호를 변경까지 했는데 
대한문을 大韓門이라하지 않고 大漢門으로 사용하는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이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찾았기에 여기 인용해본다.

1.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大安門이었지만 1906년 수리하면서 고종의 명에 의해 大漢門으로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여기에서 '漢'은 중국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한강(漢江)을 아무도 중국의 강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大漢'은 한양이 창대해 진다'는 의미입니다.

大漢門上梁文에 따르면, "황하가 맑아지는 천재일우의 시운을 맞았으므로 국운이 길이 창대할 것이고,

한양이 억만년 이어갈 터전에 자리하였으니 문 이름으로 특별히 건다."고 하였다.

한양에 도읍하여 새로 태어난 대한제국이 영원히 창대해지라는 염원을 담은 말이다. 

'한양(漢陽)'은 '한수(漢水), 곧 '한강(漢江)'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이때 '漢'은 '하늘'이라는 뜻이며,

'한수(漢水)'는 '은하수(銀河水)'라는 뜻이다.

                                                                                                  -궁궐현판의 이해-

그러므로 대한문의 '대한'은 직역하면 '큰하늘'이라는 뜻으로 창대한 한양에 도읍을 정한

대한제국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참고로 韓과 漢의 사전적인 설명을 곁들이겠습니다

韓-나라이름 한- 마한(馬韓), 진한(辰韓), 대한민국(大韓民國)

漢-한수 한 - 한강(漢江)



1902년에 임시 정전으로 쓰던 즉조당 남쪽에 행각을 두르고 중화전을 건축해 궁궐의 중심 영역으로 삼았고
중화전과 그 앞마당인 조정은 국가의례를 치르기 위한 상징 공간이므로,
2단의 월대를 마련하고 바닥에 박석을 깔았으며 품계석과 삼도를 설치하는 등, 전통 궁궐 격식을 따랐다.

즉조당 일대는 임진왜란 때 선조가 거처했던 전각들을 보존한 곳으로
현재의 세 건물은 1904년 불에 탄 것을 같은 해에 다시 지은 것이다.
준명당: 고종이 업무를 보던 편전
즉조당: 광해군과 인조가 왕위에 오른 곳
석어당: 현존 유일의 목조 2층집으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소박한 살림집 모습

정관헌은 궁궐 후원의 언덕위에 세운 휴식용 건물로 고종이 차를 즐기고 음악을 들으시던 곳으로,
동양 및 서양 건축 양식이 조화를 이루는데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설계하였다.

광명문은 원래는 침전인 함녕전의 남쪽 대문이었지만 석조전 서관을 증축하여 미술관으로 개관하면서 옮겨졌으며
자동 시보 장치가 있는 창경궁 자격루 (국보 제229호), 1462년 제작된 정릉동 흥천사명 동종 (보물 제1460호),
화약을 이용하여 100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하는 시기전기화차수가 보존되어 있다.

석조전 동관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된 조선왕조의 마지막 궁궐건물인데 

영국인들이 유럽 궁전건축양식을 따라 설계했으며 1층은 외빈접견, 2층은 황제가 거처했다.


이곳에서 1946년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며, 6·25전쟁 이후 1986년까지 국립중앙박물관

1992~2004년에는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었으며, 복원 이후 2014년 10월 13일 대한제국역사관으로 개관하였다.

서관은 1937년 이왕직박물관()으로 지은 건물로 8·15광복 후 동관의 부속건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이 1998년 개관되어 덕수궁미술관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한문
(수문장 교대식 진행중)

대한문 편액

대한문 서수

중화전


칠조룡, 일월오봉도, 용상

석어당


준명당 & 즉조당

석조전

석조전 동관


광명문

자동 시보 장치가 있는 창경궁 자격루 (국보 제229호)

1462년 제작된 정릉동 흥천사명 동종 (보물 제1460호).

화약을 이용하여 100발의 화살을 동시에 발사하는 시기전기화차수



정관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