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국관광 100선 (시즌 2013~2014)

(41-4) 서울 5대 궁궐 - 경복궁 (2017.2.1)

클리오56 2017. 2. 1. 22:21

 

 

 

 조선 5대 궁궐이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을 말한다.

5대 궁궐 여행은 교통편을 고려해 덕수궁부터 경희궁,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순서로 돌아보는 것이 좋다.

 

덕수궁은 대한제국 시절에는 황궁으로 사용하여 근대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곳이다.

경희궁은 광해군 12년에 완공됐고, 당시 명칭은 경덕궁이었다. 영조 36년에 경희궁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입구 동편에 서울역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경복궁은 조선 왕조를 대표하는 제1궁궐이다.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경복궁에서는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도 빠뜨리지 말아야 하고,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도 둘러볼 만하다.

 

창덕궁은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해서 ‘동관대궐’ ‘동궐’로 불렸다.

법궁인 경복궁보다 오랫동안 왕조의 역사가 펼쳐진 곳이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보조 궁궐로 사용됐다. 춘당지에 비치는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

 

서울 5대 궁궐 - 경복궁 (2017.1.30)

책 따라하기: 이장희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이장희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라는 책을 따라하면서
오늘은 청계천에 이어 서울 5대 궁궐의 가장 대표격인 경복궁을 답사하였다.

청계천에 이어 인근의 도로원표를 답사후 광화문 거리에서 세종대왕 동상을 거쳐 광화문 앞으로 다가갔다.
이 광경 역시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온 것이니 예전 일제시대의 건축물인 총독부 청사를 대신하니
아니 실상은 원상 복구된 것이니 조선의 가장 상징적 모습들이 돌아온 것이다.

총독부 건물을 해체하여 그 철거물의 일부를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홀대전시를 하며
수학여행 학생들이 쓰레기를 던지고, 침을  뱉고, 훼손시키는 것을 자랑한다니 참으로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며
그런 좌파적 발상이 일제잔재를 없애고 극단적 반일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결혼하였던 1982년 당시에 독립기념관 건립을 추진하였던 시기였고 국민적 성금을 모금하기에
결혼기념으로 성금을 신문사에 기탁하기도 하였는데 정작 천안 독립기념관에는 아직 가보질 못했지만
앞서의 그런 홀대전시라는 유치한 방법은 빨리 없애고 올바른 문화관을 바로 세우기를 바란다.

광화문에 당도하여 3개의 홍예문, 홍예종석의 문양, 돌사자, 편액, 그리고 입구의 해치 등은 
마침 수문장 교대식이 진행중이라 우선 구경 후 나중 돌아오는 길에 살펴보게 되었다.

해치는 사슴의 몸, 소의 꼬리, 말의 발굽과 갈기, 오색 빛깔, 정수리 뿔을 가진 상상의 동물로
힘도 세고 성질이 곧아 부정한 사람을 보면 들이받아 시비곡절을 가렸다 한다.
다만, 광화문 해치에는 뿔이 없어서인지 불의를 향하는 저돌적 모습이 결여되지 않았나하는 이야기도.

광화문을 지나면 흥례문인데 예전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 총독부가 이 자리에 있었고
그 뒤로는 금천과 명제교가 있는데 석상과 서수들이 혀를 내미는 등 흥미로운 모습을 보인다.

근정전 마당, 즉 조정에 들어서는데 책에서 언급된 여러 사항들, 삼도(문관 길, 어도, 무관 길),
품계석, 마당 쇠고리, 박석, 상월대와 하월대의 이중 기단, 근정전 편액, 용두, 7개의 잡상, 난간 석물들, 드므,
청동향로, 소맷돌 해태, 답도의 서수 해태와 돋을새김 봉황 조각 등을 하나씩 집어가며 살펴보았고
내부 역시 일월오봉도, 용상, 천장의 칠조룡 등 알아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근정전 편액만 하더라도 근 勤에서 획이 하나 적은데 이런 생략은 서체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작년 4월 울릉도 성인봉에 등산갔을 때 정상석에서 峰 자에서도 획이 하나 적었는데
서예가가 실수한 것이라며 분개했던 무식이 생각나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근정전 추녀마루에는 7개의 잡상이 있는데 삼장법사를 필두로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뒤따르고 있으니
확실한 의미를 밝혀내지 못한 채 화마로부터 건물을 보호하는 용도로 추정하고 있다한다.
한 가지 의문은 숭유배불의 조선에서 그것도 궁전에서 불교 흔적이 상존한다는게 의아하다.

근정전의 상월대와 하월대 두 기단에는 사방신과 십이지신의 석물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임금의 상징인 용과 상극이라 개와 돼지는 없고 청룡이 있기에 용은 빠진다.

왕의 침전인 강녕전과 왕비의 침소인 교태전에는 용마루가 없는데
왕이 용 그 자체이므로 그가 머무는 곳 지붕에는 용마루를 올리지 않는다.
교태전 뒤로는 아미산 정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육각굴뚝과 담장의 벽화 등이 아름답다.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대비는 고종의 즉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흥선대원군이 조대비의 거처인 자경전을 가장 화려하고 섬세하게 꾸몄다한다.
다만, 보수중이라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었고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동식물들을 조각한
담장 벽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의 일부를 감상할 수 있었다.

고종 내외가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정치적으로 자립하기 위하여 건청궁을 별도로 조성하였고
향원정을 새로지어 정원으로 삼았는데 당시에는 북쪽으로 다리가 있었지만 한국전쟁 이후 남쪽에서 연결했다.

건청궁의 침전이 곤녕합인데 1895년 을미사변때 명성황후가 일본 자객들에 의하여 시해된
역사적 현장이며 황후를 기리는 추모행사가 진행중이었고 옥호루에는 신발을 벗고 입장이 가능하였다.

집옥재는 원래 창덕궁에 지어졌지만 고종이 건천궁에 기거하면서 곁으로 옮겨와 서재와 외국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둥그런 만월창이 있는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했다.

태원전은 왕과 왕비가 죽으면 관을 모시는 빈전인데 일제강점기에 철거되고

청와대 경호부대가 주둔하는 등 변화를 겪었으며 2006년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경회루는 부속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정전인 근정전에 비하여 지나치게 큰 건물인데

태종이 그 위세를 강조하려다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이다.


수정전은 세종 때 집현전이 있던 곳이며 일제강점기 때 인재의 맥을 끊는다는 의미로 수정전 앞에 나무를 심었다고 하며,

최근에야 비로소 나무를 없애고 노둣돌 하나를 놓았다고 한다.


근정전을 바라보는 최고의 명당은 행각 모서리라고 하며

행각을 자세히 살펴보면 간을 막아 방으로 썼던 흔적이 있다고 한다.

20여년간 경복궁 복원사업을 총지휘한 도편수 신응수는 근정전을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물로 꼽았다고 한다,



세종대왕 

광화문 입구 해치

광화문 편액

광화문

석누조 (배숫물이 벽을 타고 흐르는 것을 방지)

홍예종석의 문장들

홍예문 안 천장 및 대문

수문장 교대식

흥례문

명제교 서수

혀를 내밀고 있는 금천의 서수

물을 타고 들어올 지 모를 사악한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 물길을 내려다 본다)

근정전 답도

(좌우의 해태는 왕권수호, 중앙 봉황은 태평성대를 의미)

근정전 편액

행각 모서리에서 바라본 근정전 전경

근정전 내부 (일월오봉도와 용상)

추녀마루의 용두와 7개 잡상

근정전 석물들

해태와 새끼

청동향료

(하늘 원, 인간 8각, 대지 4각 기단은 天地人을 표현)

드므 (구름무늬와 卍자가 있음)

근정전 마당의 품계석과 마당 쇠고리(햇빛 가림용 천막 묶기위한 고리)

강녕전 일대 처마의 토수

우물

교태전 (왕비 침소이기에 용마루가 없다)

아미산 굴뚝

불가사리

아미산 정원

자경전 담장

무병장수를 기원한 동식물들을 조각

향원정과 취향교

건청궁 곤녕합 (명성황후 시해장소)

집옥재

집옥재 서수

중국풍의 둥그런 만월창

태원전 (왕과 왕비가 죽으면 관을 모시는 빈전)

경회루 담장


경회루

수정전

행각

경복궁을 나와 경복궁역으로 가는 중 보게된 조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