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06.0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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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지리산 종주
(1,915M
** 산행로: 성삼재 - 노고단 - 임걸령 - 반야봉 -삼도봉 - 토끼봉 - 연하천대피소 -벽소령대피소 - 세석대피소 - 장터목대피소 - 통천문 - 천왕봉 - 장터목대피소 - 하동바위 - 백무동
** 산행시간: 총 19시간29분 (산행 936분 + 식사 및 휴식 233분)
** 사무소 6명(황프로, 박프로, 김총무, 신과장, 송기사, 손)
5.12일
23:09 울산 무거동 출발
5.13일
02:10 백무동 도착
03:22-03:54 택시 백무동 출발 - 성삼재 도착
04:08 산행 들머리 성삼재 출발
04:42 노고단 도착 (-05:28 아침 식사)
07:36 반야봉 (-07:47 휴식)
09:26 토끼봉
10:35 연하천 대피소(-11:32)
13:15 백소령 대피소 (-13:30)
16:23 세석 대피소
5.14일
05:27 세석 대피소 출발
05:42 촛대봉
06:32 연하봉
06:52 장터목 대피소(- 07:09)
08:00 천왕봉 (-09:00)
09:48 장터목 대피소 (-10:05)
10:40 망바위 (-10:50)
12:41 산행 날머리 백무동 도착
14:42 백무동 출발 (-19:00 울산도착)
지리산 천왕봉 (황프로님이 안보이시네...6인의 전사 모두 함께한 사진이 있는데)
촛대봉에서
지리산 종주! 그 생각만으로도 며칠 밤을 뒤척이고 가슴이 벅차다. 5월15일까진 산불방지 통제기간이라 지리산 종주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친구의 말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간 상당량의 비로 인하여 조기에 통제가 풀렸다. 작년 8월말 가자산으로 산방 회원들과 팔공산 서봉을 찾으면서 시작된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나의 산행은, 9월엔 성삼재-노고단-임걸령-피아골 코스를 다녀오면서 지리산의 한 모퉁이를 맛보았다. 이제 사무소 직원들과 장대한 지리산 종주에 나서기 전, 주능선로의 봉우리와 고개 이름을 외우며 마음은 이미 지리산 능선을 치고 올라가고 있다.
“절세미인은 배반을 하기도 장군은 우리를 억압하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배반이나 억압과는 완벽히 무관하며, 어머니는 한없는 포용과 관용과 용서의 화신이다. 지리산을 어머니 산이라고 불러옴은 지리산에서 어머니의 그러한 특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월간 산 1999.7월호: 66-67쪽 정리)
지리산 주능선 종주는 도보산행의 고전이자 산행에 발을 디딘 모든 산꾼들의 꿈이라 한다. 나아가, 개인적으로는 일천한 경력의 산행에 한 획을 긋는 하나의 사건이며, 산사랑에 대한 도약의 계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지리산이 왜 어머니 산인지 그 화두를 내내 생각할 것이다. 산행에 크게 취미를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 울산으로 부임하면서 가져온 두 권의 책 중 하나가 월간 산의 1999년 7월호인데, 바로 지리산 기획특집이다. 어떠한 인연으로 시간을 뛰어넘어 지리산 종주를 안내하고 예견해주었는지?
지리산 종주를 떠나기 전 한국의 산하에 게시된 많은 산행기를 읽었다. 그 중에서 한분, 광야의 바람이란 분이 “젊은 자 만이 갈 수 있다”는 제목으로 종주시 참고사항을 적어두었다. 젊은 자란 누구인가? 육체가 젊어야하고, 마음과 생각이 젊어야하고, 감사하는 자가 도전할 수 있으며, 마지막으로 용기있는 자가 젊은이다 하였다. 그래, 나이가 반백이 넘었다고 젊지 않은게 아니다, 가자, 멋지게 지리의 품으로 뛰어들자!!
이번 종주에 모두 6명이 참가하는데, 황대리와 박과장은 여러 번 종주 경험을 가진 배테랑들이라 준비와 리드에 빈틈없을 것으로 믿는다. 김총무는 단단한 체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신과장 역시 마라톤과 탁구 등 운동으로 단련되었고, 송기사는 32세의 젊음만으로도 의문을 가질 수 없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이번 종주에서 고문관이 생긴다면, 내 자신일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유일한 50대이고 다른 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최근에야 산행에 심취해서 많이 다닌다는 것뿐이다. 소장님은 연사흘의 음주로 참가를 포기하였고, 난 중도에서 탈출하긴 했지만 연이틀간의 과도한 음주로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하필 지난 목요일 노조지부 창립 3주년 행사로 위원장 등이 참석한 탓에 절제하지 못하고 과음하였다. 하지만, 취소할 마음은 전혀 없다. 산에 올라 두세시간 땀 흘리면 가벼워질 것으로 믿는다. 평생에 자주 올 기회도 아니지 않는가.
* 5월 12일(금)
울산 신복로타리에서 밤 11시에 출발하여 백무동에 3시간만에 도달. 출발 전 황프로의 주선으로 소주 두병과 순대를 마련하여 차안에서 가볍게 한잔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운전자인 김총무와 송기사가 술을 마시지 않으니 결국 4명이 두병을 마시고, 1병을 추가하니 난 이미 술에 취해 코를 골며 잠에 빠졌다. 어쩌면 술로 숙면을 취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이번 종주산행이 술과 함께할 것이란 불길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백무동에서 1시간 반여 택시기사를 기다린 끝에, 우린 산행들머리인 성삼재에 도착했다.
* 5월 13일 (토)
성삼재(04:08) - 노고단(04:42/05:28) - 임걸령(06:38) - 반야봉(07:36/07:47) - 토끼봉(09:26) - 연하천대피소(10:35/11:32)
칠흑의 밤에 도착한 성삼재는 추웠다. 장갑을 끼고 자켓을 입어 단단히 무장한 후 산행은 시작된다. 이런 새벽에도 관리사무소는 문을 열고 입장료를 받구나. 왠만하면 부지런한 산꾼에게는 무료개방 할만도 한데. 성삼재의 고도는 1,090M. 천왕봉이 1,915M이니 825M를 올라야하는 격이다. 성삼재에서 잘 다져진 길을 걸어 코재까지 나아간다. 코재는 구례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을 올라올 때 코가 땅에 닿일 정도로 힘들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노고단에서 내려오는물이 넘어간다고 해서 무넹기고개라고도 불린다는 설명도 있다.
노고단에 도착한 후 곧장 때 이른 아침을 준비하였다. 여러 팀이 혼재하여 취사장은 복잡한데, 불편한대로 구석에서 이미 준비해온 밥과 씨락국을 기본으로 김치 등 몇가지 반찬으로 많이도 먹었다. 하긴 원래 많이 먹지만, 점심때 까진 6시간 산행인데, 본격적인 긴 종주산행에 대비하여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한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완만하게 노고단을 오른다. 노고단에서 여성의 이쁜 엉덩이 모습을 볼 수 있으니 반야봉이다. 지리산행 내내 그 매력적인 봉우리가 우리의 눈길을 끌며, 웃음을 띄우며 힘을 돋우기도 한다. 맑은 하늘 아래 저 멀리 목적지인 천왕봉이 겹겹이 쌓인 산을 넘어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길 좌우론 진달래가 피어있고, 우측 계곡엔 운해가 펼쳐져 지리의 장대 장쾌한 모습을 조금씩 맛보아 간다.
반야봉
천왕봉
진달래
계곡 운해
노고단에서
시작된 주능선은 3Km를 지나 임걸령이다. 이 곳을 지키던 임걸이란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했다지만, 그 분의 이력은 아직 모르겠다. 여기 물맛
좋은 샘이 있어 한 바가지 벌컥벌컥 마셨다. 우측으로 피아골 가는 길이니 작년에 왔던 코스가
여기까지이다.
임걸령 샘터
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향한다. 노루가 많이 다니던 길목이란 설, 혹은 노루가 머리를 든 형상의 바위가 있다는데 바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여기서 주능선을 벗어나 반야봉으로 오른다. 1Km의 거리인데 놓치기 아까운 것이다. 하지만, 코스는 녹녹하지 않다. 배낭을 갈림길에 두고 반야봉으로 행했다. 간 밤에 비가 왔는지 진달래 꽃이 많이 떨어져있다. 한쪽에선 아직 몽아리 상태이고, 또 만개하기도, 또 이미 지기도한다. 한 계절 살아도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이 인간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반야봉에선 전망이 좋으니 동쪽으로 천왕봉이 보이고, 남으로는 불무장등, 서쪽으론 이미 지나온 능선과 노고단이 펼쳐진다. 좋은 전망터이니 또 한잔, 이름하여 반야주이다.
반야봉 정상
반야봉에서 바라 본 천왕봉
이쁜 궁디위에서 반야주를 들었으니 한껏 흥취된 기분으로 다시 노루목터로 하산한다. 배낭을 다시 둘러매고 삼도봉을 지난다. 삼도봉은 경남, 전북, 전남의 세개도의 경계에서 비롯된 명칭이다. 자그마한 삼각뿔 형태의 동판이 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를 거쳐 토끼봉으로 향한다. 화개재 가는 길에 나무계단이 연속되는데, 황 프로가 헤아려보니 548계단이란다. 대단하다. 그 헤아릴 정신이 있으니. 산 오르내리기도 바쁜데. 화개재 북쪽방향이 그 유명한 뱀사골이고, 아마도 이 재를 넘어 화개장터에 다녀오지 않았을까. 화개에서 구한 소금과 뱀사골의 쌀이 물물교환 되었을 거라는 얘기다. 화개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매실주와 소주의 혼합주를 들었다.
해발 1,533M인 토끼봉까지는 고도를 높여가는 제법 오르막길이다. 토끼봉 명칭은 반야봉의 정동쪽에 위치하여 묘방(卯方)에서 유래한다. 토끼가 많다는 그런 이름이 아니다.
삼도봉 삼각뿔
나무계단
토끼봉 이정표
토끼봉에서 연하천 대피소까지는 2.4Km, 70여분 거리이다. 적당한 구름과 기온으로 산행은 최적의 상태로 진행된다. 앞뒤간격이 멀어지지 않고 모두가 함께 한다. 두 프로는 모두들 잘 따라오니 리더가 재미가 없다며 우스개를 늘어놓는다. 명선봉이 있다는데, 어딘지 모르게 지나쳐 연화천에 도달했다. 연하천 대피소는 다른 대피소에 비하면 간이산장 정도이다. 여기서 배낭을 풀고 두루치기, 라면, 김치를 반찬으로 밥을 먹으니, 모두들 허기가 진 탓인지 엄청난 양을 소화한다.
연화천대피소
점심준비
* 연하천대피소(11:32) - 형제봉(12:32) - 벽소령대피소(13:15/13:30) - 덕평봉 - 칠선봉(15:22) - 영신봉(16:12) - 세석대피소(16:23)
점심을 든든히 들곤 벽소령대피소를 향한다. 거리는 4.4Km이며 도중에 형제봉을 지난다. 산죽길이 제법 이어지고 바위봉 2개로 구성된 형제봉이 보인다. 암석에 뿌리박은 소나무가 고고하다. 너덜지대가 30여분 이어진다. 지리종주의 중간지점이라는 암벽 사이길을 지나니, 이제 반을 넘었구나... 종주의 자신감도 붙기 시작하고 산행이 탄력을 받는다. 아담한 벽소령대피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숨을 고른다.
형제봉
지리종주 중간지점
벽소령대피소
이젠 마지막 구간. 벽소령에서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세석대피소까진 4.6Km이지만 험한 코스라 3시간을 예상한다. 50여분만에 선비샘 도착하여 목을 축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황프로는 체력은 되지만 주력이 부족하다며 술을 한잔 걸치잔다. 명란젓을 안주삼아 돌려가며 한잔한다. 선비샘에 일화가 있다. 옛날 한 노인이 천대받은 생활을 하던 차에 선비대접을 받고 싶었는데, 죽어 샘터 위에 무덤을 자리잡게하였다. 이후 산꾼들이 샘물을 마실려면 고개를 숙이에게 되니 죽어서나마 대접받은 것이다. 실제로 예전엔 무덤이 자리잡고 있었다한다. 역시 프로다. 이런 얘기를 적절하게 들려주니 산행이 즐거워진다.
선비샘
선비샘을 출발하여 험한 길을 이어간다. 덕평봉을 모르게 지나가고 또 한번 3시부터 10여분 휴식을 취한 후 줄 곧 나아가니 새카만 바위들이 줄지어있다. 해발 1,558M의 칠선봉이다. 선녀의 서있는 모습이라는 나의 상상력이 부족하다.
칠선봉
칠선봉을 지나고 길은 험해져 긴 계단과 쇠줄을 잡고 오르기도 한다. 높은 지대지만 산행로는 진달래꽃이 많이 피어있다. 영신봉을 지나 10여분만에 세석평전이 보인다. 진달래가 치마자락인양 넓게 자리잡고 있다. 12시간 15분에 걸친 긴 산행후의 휴식처인 산장에 도착하여 취사장 제일 안구석 명당에 우선 자리잡았다. 김총무가 안내소에서 예약을 확인하지만 우린 대기자 명단이라 늦게 자리를 배정한단다. 어제의 비로 오늘 산행 취소가 많아 숙소배정엔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두 프로의 지휘하에 일사불란하게 저녁준비를 하고 또 한번 엄청난 식욕을 불태우고, 술자리 또한 거창하다. 무거운 술병들 어디에 감추어 두었던지 끝없이 나온다. 미사일 대병까지 등장한다. 이미 한계를 느낀 난 먼저 산장 숙소에서 잠을 청했다.
세석산장
오늘 산행에서 프로 명품과 아마 짝투의 비교가 많이 거론되었다. 명품은 박과장과 황대리 두 프로를 가리키고, 김총무를 제외한 나머지 3사람이 짝퉁이다. 김총무는 준 프로. 명품과 짝퉁의 차이를 보면, 우선 명품은 코펠과 버너를 준비해오고 밥을 하고 찌게를 준비하는 솜씨가 탁월하다. 박 프로는 워낙 밥 솜씨가 좋아 일명 밥프로이다. 짝퉁들은 그저 시키는대로 따라하기만 하면 된다. 또한 명품은 스틱 두개를 사용한다. 평소엔 스틱을 갖고 다니지 않은 것 같았는데, 이런 종주산행에선 두 스택을 적절히 사용한다. 짝퉁들은 하나만 달랑 들고 온다. 그리고 명품들은 명소 곳곳에서 설을 풀고, 나무나 꽃의 이름들을 안다. 짝퉁들이 물으면 바로 답이 나오니 짧은 산행 경력의 짝퉁들은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래도 짝퉁들이 오늘 산행에서 명품들과 간격이 멀어지지 않고 바싹 붙어 따라왔으니, 곧 머지않아 명품대열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 5월 14일 (일)
세석대피소(05:27) - 촛대봉(05:42) - 연하봉(06:32) - 장터목대피소(06:52/07:09) - 천왕봉(08:00/09:00) - 장터목대피소(09:48/10:05)
산장에서 밤을 보내기는 처음이다. 낭만적인 지리산 산장을 연상케하지만, 사내들만 모였으니 지난 밤은 술로 시작하고 술로 끝을 맺었다. 새벽 3시경에 잠이 깨어 조용히 복장을 갖추어 바깥으로 나갔다. 겨울마냥 날은 춥고 바람은 더세다. 하늘의 별을 보며 무언가를 기원하려지만, 구름과 안개 자욱하여 별은 고사하고 지척이 분간되지 않는다. 취사장에 들러니 4개 정도의 그룹과 사진작가께서 아침 식사를 준비 중이다. 사진작가분은 마산의 권맹호 선생님이신데, 연세가 66세, 아직도 정정하신게 너무 보기 좋으시고, 전문적 취미를 현업으로 하시니 아름답게 노년을 보내신다는 생각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자리를 잡으나 잠은 오질 않는다. 4시가 지나자 약간 부산해지기 시작하고 우리팀도 서둘러 나섰다. 새벽 날이 좋지않아 일출을 보지못한다는 생각에서인지 식사준비와 식사시간이 의외로 길어졌다. 아침 주메뉴는 카레와 짜장이다. 지난 밤 해둔 그득한 밥이 남지 않을 정도로 모두를 식성이 대단하다. 장시간 산행이라 든든히 먹어두야한다.
세석평전에는 진달래가 만개하였다. 장대한 군락은 아니지만 멀리서도 분홍빛으로 물들인다. 황과 박 두 프로도 세석에서 진달래 만개한 모습은 처음이란다. 매년 5월15일까지는 산불방지기간으로 산행이 폐쇄되기 때문인데, 금년은 비가 제법있어 조기에 개방한 탓으로 진달래 만개한 모습을 보게된 것이다.
세석평전의 진달래
혹시나 일출을 볼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끝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는지하여 촛대봉을 향하여 서둔다. 이미 해는 천왕봉 높이 만큼이나 솟아올랐다.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지리10경 중 으뜸이라지만, 덕을 3대나 쌓아야한다니 범부에겐 차례가 돌아오기 힘들겠다. 노고단 산장에서 만난 한 수원 아주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지리산을 찾았는데, 해마다 천왕봉에 500원 동전을 묻어두면 일출을 보게되는 행운을 갖게된다고 귀뜸한다. 천왕봉은 고사하고 촛대봉에서도 일출을 놓쳤으니 우린 얼마나 오래 덕을 쌓아야하는가.
촛대봉
천왕봉과 일출(05:44)
무엇이 삼신봉인 줄 모르고 지나치고 연하봉에 접어든다. 연하봉은 해발 1,730M, 연하선경으로 불릴 정도로 빼어난 곳으로 기암괴석이 산재한다. 지리산은 그저 긴 능선과 장쾌한 조망으로만 이어졌다고 섭섭하던 차에 기암과 주목이 나타나면서 세밀한 아름다움도 전개된다.
연하선경의 기암괴석
천왕봉 오르기 전 마지막 산장인 장터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제석봉을 향한다. 정상에 오른 후 백무동으로 하산하기 위해선 장터목을 다시 오기 때문에 무거운 배낭은 장터목에 그대로 두었다. 왕복에 3시간 이상 소요되어 은근히 걱정도 되지만, 황프로 왈: 자기 배낭도 무거운데 누가 남의 배낭 가져가겠나? 하지만, 두 프로의 배낭은 워낙 무거워 가져갈 사람도 없겠지만, 내 배낭은 빌린 것이지만 새 것이라 탐스러워 할텐데하는 걱정. 하지만, 정상길이 험하니 산꾼들의 양심에 맡긴 채 나도 배낭을 두고 떠났다.
장터목 대피소
정상을 향하면서 고도는 더욱 높아져 제석봉은 1,808M. 겨울 자켓을 입어도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제석봉엔 고사목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인간의 탐욕이 자연훼손을 가져온 안타까운 설명이 뒤따른다. "50년 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의 청년같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 불을 질러 그 불이 제석봉을 태워 지금처럼 제석봉을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고사목 군락지
통천문을 앞두고 종주팀 전원 6명에 새로운 지령이 하달된다. 정상은 추워 일행을 오래 기다릴 수 없으므로 함께 행동하고, 정상까진 사진 찍는 것늘 멈추어 지체를 방지하고, 사진은 하산시 찍기로 하였다. 급경사의 철사다리를 타고 바위를 넘는 마지막 험로를 넘어 드디어 정상 천왕봉에 도달한다. 장터목을 떠난지 50여분이 지난 정각 8시. 정상석의 멋진 글귀가 눈을 끈다.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
맑은 날엔 동으로 가지산, 서로 무등산, 북으로 덕유산이 보인다지만, 하늘 끝자락 구름으로 그렇게까지는 아니다. 어제부터 걸어온 지리산 주능선상으로 반야봉이 뚜렷하고, 그 넘어가 노고단이다. 노고단을 거쳐 오는 이번 산행도중 천왕일출, 반야낙조, 노고운해 그 어느 하나도 보지는 못했지만, 덕을 쌓으면 언젠가 볼 수 있겠지......
지리산 주능선
남쪽 구례 방향. 멀리 뾰족한 산이 백운산
천왕봉 아래 암벽 앞의 양지바른 자리에서 정상주를 들었다. 두루치기 남은 것과 라면을 끓여 안주삼고, 소주와 맥주가 1:1 비율인 혼합주로 건배를 들어 정상에 무사히 도달하였음을 자축한다. 지리산의 장대함과 넉넉함에 대한 예찬이 뒤를 따른다. 설악이 급하고, 화려하고, 날라리 같아 여러 번 가면 물리지만, 지리는 매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오면 올수록 다시 오고 싶은 산이다. 설악은 무박종주가 가능하고 능선엔 물이 없지만, 지리는 산이 커서 무박종주가 불가능하고 주능선상에서 물을 구할 수 있다.
1시간 정도 정성에서 머무른 후 하산을 재촉하였다. 느긋하게 사진도 찍어가며 험로와 통천문과 제석봉을 지나 장터목 대피소에서 배낭을 다시 챙겼다.
하산길 험로
통천문
장터목대피소(10:05) - 망바위(10:40/50) - 참샘(11:36) - 하동바위(11:58) - 백무동(12:41)
장터목대피소에서 백무동까지는 5.8Km, 하산길 3시간 거리이다. 하지만 길이 험하고 너덜지대가 길게 이어져 3시간 반은 족히 소요될 것으로 전망한다. 장터목을 출발하여 줄곧 내리막길은 아니다. 제석봉 산허리에서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제법 많은 바위들을 짚어가며 하산길을 이어간다. 고사목 지대가 지나고 우리나라 산중에서 흔히 보는 산죽길이 길게 이어진다. 하산 출발하여 35분쯤 지나 망바위에 도달, 10여분간 휴식을 취하며 가장자리 바위에 걸터앉아 개별 사진을 찍는다. 조망이 멋져 망바위일게고.
망바위에서
깊은 산중이라 수령 오랜 나무들이 큰 둥치에서 여러 가지를 뻗은 채 고사목 상태로 많이 볼 수 있다. 수목이 우거져 땡볕을 막아주고 그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니 끝없이 걷는 길이건만 땀이 별로 나지 않는다. 어느 새 돌길이 시작되는데, 평평하기도 하고 계단으로, 그리곤 자연 그대로 울퉁불퉁하게 이어지기도 한다. 참샘에서 라면 끓여 허기를 채우자고 했지만, 화기 사용이 금지되어 물 한 병만 보충하곤 계속 하산한다. 곧 백무동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오고, 하긴 이 물소리만 없었다면 1시간 이상 지속되는 그 짜증스런 너덜길에 미친 듯 고함 크게 지르고 싶은 그런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기도 했다.
참샘
이어지는 너덜길
백무동 계곡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서 우측에 큰 바위가 있으니 하동바위다. 함양땅에 하동바위라 좀 특이하다. 하동군수와 관련한 두가지 전설이 있는데,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전설이 각각 있다. 우선 긍정적인 전설을 보면 옛날 장터목에 장이 서던 날 함양원님과 하동 원님이 뜻밖에 만나 장기를 두게 됐는데 하동 원님이 이겼다. 내기에 진 함양 원님은 수중에 내놓을 만한 변변한 것이 없던 터에 승자를 놀려줄 요량으로 눈 앞에 우뚝 선 바위를 가져 가라고 말했다. 설마 바위를 가져갈 수야 있겠느냐는 투였다. 하동 원님은 이에 뒤질세라 고맙다며 그 자리에서 이 바위를 하동의 지명을 따 하동 사람들의 바위란 뜻으로「하동바위」로 이름해 버린 것이 그만 함양 땅에 있으면서도 산 너머 하동바위가 되고 말았다 한다. 하지만, 부정적인 전설 하나가 있으니, 하동군수가 지리산 구경왔다가 떨어져 죽은데서 유래한다는 것인데, 그 출처가 마천애향지인 것을 보면 함양 마천 사람들의 질투가 빚어낸 전설 아닌가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전자가 더욱 귀에 솔깃하고 재밌다.
하동바위
하동바위를 지나서도 너덜지대는 한없이 계속된다. 무릎이 시큰할 정도이다. 계곡에 발을 담그고 쉬었으면 하지만, 마지막 지점에서 쉬자는 말에 좀 더 참고 내려갔고, 아쉽게도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한 터이라 결국 찬 계곡물에서 마사지할 기회를 놓쳤다. 암릉이 아닌 너덜길에, 그도 마지막 순간에 혹사를 당한 격이니, 지리산 종주가 만만치 않음을 마지막 순간에 한번 더 각인시키려는 것인지. 백무동 매표소가 나타나고 이제 1박3일에 걸친 지리산 대종주의 막을 내린다.
백무동 매표소 옆에 핀 금낭화
하산후
백무동으로 하산하니 12시30분, 여기서부터 버스정류장까지는 400여 미터, 가게가 하나 있다. 막걸리와 두부, 백숙을 시켜 1박3일간 지리산 종주 35.5Km를 완주한 기념으로 건배한다. 술은 울산으로 오는 차안에서도, 울산 도착후 저녁식사에서도 이어진다. 마셔도 마셔도 산사랑에 대한 갈증을 식히거나, 열망을 채우기엔 부족하다. 6인의 전사 모두들에게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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