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로: 광장 - 산장로 - 칠갑산 정상 - 사찰로 - 장곡사 - 장승공원
** 산행시간: 09:54 - 13:24 (총 210분: 산행 160분 + 휴식 50분)
** 재경대학동문산악회 (20명)
07:40 서울 교대앞 출발 (-09:47 칠갑산 도립공원 광장 도착)
09:54 산행들머리 광장 출발
11:08 정상도착 (-11:35 간식)
12:42 장곡사 (-13:05 사찰탐방)
13:24 산행날머리 장승공원 도착
14:48 장승공원 출발 (-16:50 서울 도착)
대학의 재경동문 산악회와의 첫 산행이다. 매월 세째 일요일엔 버스를 타고 원거리, 첫째 토요일은 서울 소재의 근거리 산행을 10여년째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오늘 참석한 최고참 선배님 부부가 54학번이시니 나보다 20년이 앞선다. 그런 노령에도 불구하시고 산행엔 지치시거나 어려움을 보이지 않으시니, 건강한 모습이 보기에 너무 좋다. 오늘 면식있는 동문은 없었으나, 서로 소개하니 이리저리 걸쳐져 연결이 된다. 그게 동문인가 보다. 또한 아내와의 산행이다. 나이가 들면 취미가 같아야한다고 설득해서 산행에 자주 함께 하기로 하였다.
** 칠갑산광장(09:54) - 산장로 - 정상(11:08/11:35)
콩밭 메는 아낙네야 베적삼이 흠뻑 젖는다
무슨 설움 그리 많아 포기마다 눈물 심누나
홀어머니 두고 시집가던 날 칠갑산 산마루에
울어주던 산새소리만 어린 가슴 속을 태웠소
칠갑산은 노래로 더 유명해진게 아닌가 한다. 산 자체는 그리 험하지도 높지도 않고, 유별한 특징을 가진 것은 아닌 듯하다. 다만, 전형적인 육산이고 힘든 고비의 깔딱고개 한번 없이 평이하게 진행된다. 벗꽃과 진달래가 이름나다 했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든지 눈을 끌만큼 규모가 있거나 만발하진 못했다. 광장에서 출발하여 칠갑문과 최익현 동상을 지나면 곧 콩밭메는 아낙네의 동상을 만난다. 독특한 동상이라 모두들 한 컷하기에 바쁘다. 조금 오르니 칠갑산 유래비가 있다. "우리겨례는 옛부터 하늘과 산악을 숭앙하여 왔다. 백제는 이 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생성의 7대 근원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 七甲山이라 경칭하여 왔다. 또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는 산이라고도 전한다."
* 콩밭 메는 아낙네 상
칠갑산 광장에서 정상까진 3Km, 가파른 산행로가 아니라 약 1시간 거리이다. 쉬엄쉬엄 주변을 살피고 얘기 꽃을 피우는 느림보 산행이다. 암릉 한번 만나지 않고, 깔딱고개 또한 없으니 느슨하다. 키 큰 나무들로 산행로를 둘러쌓고 있다. 74학번 동기도 2명 만나고, 후배도, 그리고 많은 선배들의 얘기를 귀기울여 듣는다.
* 칠갑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 산행로
어느 산행에서 보다도 이른 1시간 10여분만에 도착한 정상에서 정상주를 간단히 들고, 경관을 조망한다. 바로 앞으론 작은 칠갑산이라는 삼형제봉이, 오른 편으론 아흔 아홉골이, 왼편으론 천장호 호수가 보인다.
* 칠갑산 정상에서
* 칠갑산 정상에서 바라 본 작은 칠갑산 삼형제봉
*아니골(99골)
** 정상(11:35) - 장곡사(12:42/13:05) - 장승공원(13:24)
하산길 역시 부드럽게 이어진다. 진달래 군락지라 하지만 아직 만개하진 않았고 거센 바람에 차가운 날씨다. 어제 강화도 마니산은 바닷가지만 바람이 없고 따스한 날과는 사뭇 대비된다. 오늘 기온이 내려간다는 일기예보가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아니골(99골)을 살펴보며 굽이굽이 펼쳐진 계곡을 즐긴다.
* 장곡사 전경
하지만, 아마도 장곡사가 없었더라면 칠갑산 산행은 그 의미가 반감될 지 모르겠다. 그만큼 장곡사는 매력적이지만, 아쉽게도 탐방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은 주어지지 않는다. 20분간의 짧은 시간에 둘러보아야 하니, 재빠르게 움직일 수 밖에 없다. 장곡사엔 국보 2점, 보물 5점을 가졌지만, 입장료는 없다. 하대웅전을 얼핏 살피고 상대웅전을 향했다. 장곡사엔 대웅전이 둘이고 모시는 부처님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불이 아니다. 하대웅전에는 약사여래, 상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불이 주불이고, 이럴 경우 약사전, 그리고 대적광전이라고 부르는게 통칭인데 대웅전이라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어느 분의 설명이 멋지다. "약사여래를 주불로 모신 하대웅전은 우리들이 사는 예토세계를, 비로자나부처님이 주불로 모신 상대웅전은 부처님나라인 정토세계를 조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약사여래는 병들어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쾌유라는 희망을 주는 부처님이고, 비로자나부처님은 우리들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면 가는 연화장세계에 계신 부처님입니다. 장곡사는 약사여래와 비로자나부처님을 통해 중생들이 사는 예토의 세계와 깨달음을 이룬 정토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장곡사는 약사여래불이 봉안된 하대웅전을 통해 중생들이 질병으로 고통받는 현실의 아픔을 해결해 주고 있습니다. 비로자나부처님이 봉안된 상대웅전을 통해서는 출가한 스님들이 게으름이 없이 수행에 용맹정진하여 깨달음을 증득할 것을 경책하고 있습니다. 장곡사의 두 대웅전을 참배하여 현재 받고 있는 질병의 고통을 부처님 가피로 치유하고,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체험해보십시오."
여느 사찰과 다른 이러한 파격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장곡사가 신라시대 850년에 보조선사가 창건되었다는데, 선불교가 당시의 주류 불교인 화엄사상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고, 파격적이라 경주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 성했고, 지방 호족들의 혁명사상에 영향주었다는 해석도 있다.
* 상대웅전
이외 장곡사엔 여러 관람 포인트가 있다. 상대웅전 바닥은 나무가 아닌 벽돌이 깔려 있고, 벽돌엔 연꽃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상대웅전 앞엔 850년된 느티나무가 있어 사찰의 연륜을 확인해 준다.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법고가 범종루에 걸려있고, 길이 7미터, 폭 1미터의 미자나무 밥통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설선당은 단청 없는 고촐한 모습인데, 요사채로 사용되는 듯하다.
* 하대웅전 옆 바위에 넝쿨처럼 기어붙은 꽃(??)
* 느티나무
* 코끼리 가죽 법고
* 미자나무 밥통 (콩나물 기르는 통이었다는 분도 있음)
골짜기가 길어 장곡사인지, 일주문까지 긴 거리이다. 재주 많은 동문들이라 들꽃 이름과 용도까지 세세하게 설명하는가 하면, 확대경으로 세밀한 모습까지 보여준다. 사진을 담당하는 전 선배는 지나가는 낯선 이를 끌어들여 사진찍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가 있다. 제법 큰 복잡한 사진기를 잡는 법부터 호통치며 가르치는 듯하다.
논갈이하여 흙을 뒤집어 놓은 논도 제법 보인다. 벌판에 장승들 듬성듬성 세워놓곤 장승공원이다. 지자체의 이름 알리기라든지 경제 활성화라는 먹고살려는 노력이 느껴진다. 관광객의 무병장수와 평안을 기원한단다. 점심으로 비빔밥과 동동주를 들었다. 바깥엔 바람이 많이 불어 벌판의 모래가 세게 날린다.
* 흙갈이한 논
* 장승공원
** 산행후
돌아오는 버스에서도 그리고 서울에 도착해서도 거나하게 한잔 걸쳤다. 동문들이라 초면이지만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다. 어제에 이어 산행후 취하도록 마시게 되었다. 산행은 가벼웠지만, 술은 과했나보다. 선후배가 어울려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고, 산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장곡사의 문화재들>
• 명칭 : 장곡사미륵불괘불탱(長谷寺彌勒佛掛佛幀)
• 지정정보 : 국보 제300호
• 위치 :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 소유 : 장곡사
• 규모 : 8.69mx 5.99m
• 재료 : 麻本
• 시대 : 1673년(현종 14년)
괘불은 야외에서 법회(法會)를 거행할 때 본존불상(本尊佛像) 대신 법당(法堂) 앞에 높이 거는 불화(佛畵)이다. 미륵불은 석가 입멸(入滅)후 56억 7천만년 뒤에 인간세상에 내려와 중생(衆生)을 구제한다(彌勒下生成佛經)는 미래불이다. 중앙의 미륵존불(彌勒尊彿)을 중심으로 육대여래(六大如來)와 육대보살(六大菩薩), 제석(帝釋)과 범천(梵天) 등을 좌우대칭의 구도를 잡아 배치하였으나, 십대제자(十代弟子)와 용왕(龍王)과 용녀(龍女) 등의 배치는 좌우대칭 구도를 벗어나고자 한 점이 돋보인다. 미륵불의 형상은 원형 두광(頭光)과 거신광배(擧身光背)를 지고 있으며, 상체를 크게 묘사하고 길고 큰 두 손에 용화수(龍華樹) 가지를 들고 서 있다. 사각형의 얼굴에 마름모꼴의 화관(花冠)에는 4구의 화불(化佛)을 안치하고 영락(瓔珞)과 꽃으로 장식하는 등 세부적으로 화려하게 표현하였다. 1673년(현종 14년) 승옥(勝玉) 스님의 지도아래 철학(哲學) 등 5인의 스님이 안료(顔料)로 채색하였다. 길이 8.69m, 폭5.99m의 대형으로 삼베(麻)에 그
• 명칭 : 장곡사 철조약사여래좌상 부 석조대좌(長谷事鐵造藥師如來坐像附石造臺座)
• 지정정보 : 국보 제 58호
• 위치 : 충남 청양군 대치면
• 소유 : 장곡사
• 규모 : 전체 높이 232㎝, 대좌 91㎝
• 재료 : 철(불상), 화강암(대좌)
• 시대 : 고려시대
상대웅전(上大雄殿)의 석조대좌(石造臺座)에 안치된 철조약사여래좌상이다. 화강암으로된 사각형 대좌(臺座)의 네 귀퉁이에는 기둥을 세웠던 둥근 자리가 있다. 3단의 지대석 위에는 다시 귀꽃으로 장식하였다. 중대는 전후에 2개씩, 그리고 좌우에 1개씩의 안상(眼象)을 조각 장식하여 화려한 느낌이 든다. 불상은 대좌에 비해 작은 편이나 단정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螺髮)이며 법의(法衣)는 오른쪽 가슴이 드러난 우견편단(右肩偏袒)이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놓았고,왼손에는 질병과 무지(無知)의 병까지 고쳐준다는 약사여래에서 볼 수 있는 약단지를 들고 있다. 불상 뒤에 있는 광배(光背)는 나무로 된 배 모양(舟形)인데, 연꽃과 모란으로 장식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의 주변을 불꽃문양으로 꾸몄다
• 명칭 :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長谷寺 金銅藥師如來坐像)
• 지정정보 : 보물 제337호
• 위치 :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29 장곡사
• 소유 : 장곡사
• 규모 : 전체 높이 88cm
• 재료 : 금동
• 시대 : 고려시대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오랜 세월 동안에 변천이 있어 지금은 대웅전이 상·하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불상은 하대웅전(下大雄殿)에 모셔져 있다. 약사불은 질병과 무지(無知)의 병가지 치료해 준다는 불상으로 약단지를 들고 있다. 머리는 곱슬머리의 형태가 뚜렷하고 앞에는 장엄구(莊嚴具)가 있다. 얼굴은 긴 타원형으로 윤곽이 뚜렷하고 우아한 모습이다. 오른손은 가슴 위로 올라와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손톱에 이르기가지세밀하게 묘사되어있다. 두터운 옷자락은 양쪽 어깨에 걸쳤으며, 배에는 치마와 띠 매듭이 율동감있게 나타나 있다. 1959년 불상의 내부 조사에서 1346년(고려 충목왕 2년)에 조성된 사실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나왔다
• 명칭 : 장곡사 철조비로사나불좌상 부 석조대좌(長谷寺 鐵造毘盧遮那佛座像 附 石造臺座)
• 지정정보 : 보물 제174호
• 위치 :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장곡사
• 소유 : 장곡사
• 규모 : 전체높이 226cm, 불상높이 61cm
• 재료 : 철(불상), 화강암(대좌)
• 시대 : 고려시대
불교의 진리(眞理)를 상징하는 비로사나불좌상(毘盧舍那佛座像)은 상대웅전(上大雄殿)의 높은 석등대석(石燈臺石) 위에 양쪽 발을 각각 무릎 위에 올려놓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모습이다. 머리는 곱슬머리이며 얼굴은 이마가 좁은 느낌을 주는데, 얼굴의 전체 모습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점차 좁아진 삼각형의 모양이다. 법의(法衣)는 왼쪽 어깨에 걸쳐있고, 두 손은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나무로 새긴 배 모양(舟形)인데,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연꽃 무늬로 꾸몄고 둘레에는 불꽃 무늬를 새겼다. 대좌는 3단으로 하단은 엎어진 연꽃, 중단은 8각의 돌기둥, 그리고 상단은 위로 핀 연꽃을 화강석에 새겨조성하였다. 대좌(臺座)에 비해 불상의전체적인 모습이 빈약하고, 얼굴의 세부는 불명확하다. 원래 토제(土製) 불상이었으나, 1960년 8월에 겉의 진흙을 제거하여 철조 불상으로 변하였다. 현재 몸 전체에 석회가 칠해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신라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 명칭 : 장곡사 하대웅전(長谷寺 下大雄殿)
• 지정정보 : 보물 제181호
• 위치 :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장곡사
• 소유 : 장곡사
• 규모 : 정면 3칸, 측면 2칸
• 재료 : 목조
• 시대 : 조선 중기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에 보조선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변천이있어 지금은 대웅전(大雄殿)이 상·하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하대웅전(下大雄殿)은 중기에 건립되었다. 이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식으로 되어 있다. 대체로 소규모의 맞배식 건물에는 주심포(柱心包) 양식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건물은 특이하게 다포식(多包式)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拱包)가 배치되어 있는데, 특히 중앙칸은 간격이 넓어서 공포가 두 개 배치되어 있다. 자연석의 기단(基壇) 위에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앞면에는 배흘림의 둥근 기둥을 세웠으나 뒷면의 2개와 옆면의 중앙에 세운 기둥 중 한 개는 사각 기둥이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이 건물 내에는 금동약사여래좌상(金銅藥師如來坐像)을 모시고 있다.
• 명칭 : 장곡사 상대웅전(長谷寺 上大雄殿)
• 지정정보 : 보물 제162호
• 위치 :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장곡사
• 소유 : 장곡사
• 규모 : 정면 3칸, 측면 2칸
• 재료 : 목조
• 시대 : 고려시대 창건, 조선 말기 중수
장곡사는 850년(신라 문성왕 12년)에 보조선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는데, 오랜 세월 동안에 변천이 있어 지금은 대웅전이 상·하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상대웅전은 고려시대에 처음 건립되었고 조선 말기에 고쳐지었다. 건물은 약간 높이 설치된 기단 위에 둥근 자리가 있는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뚜렷한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다포(多包)식이지만 평방(平枋)이 없고, 기둥 사이에 공간포(空間包)가 하나씩만 배치되는 등 주심포(柱心包) 양식의 특징도 함께 갖고 있다. 기둥머리에 있는 굽받침 등 고려시대의 특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쇠서(牛舌)와 보머리는 조선 중기 이후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중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주존으로 모시는 것이 보통이나, 이 곳에는 2기(基)의 석조대좌(石造臺座) 위에 철조약사여래좌상(鐵造藥師如來坐像)과 철조비로사나불(鐵造毘盧舍那佛)을 모시고있다.
• 명칭 : 장곡사 설선당(長谷寺 說禪堂)
• 지정정보 : 유형문화재 제151호
• 위치 :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15
• 수량 : 1동
• 소유 : 장곡사
• 규모 :
• 재료 : 목조
• 시대 : 조선 중기
설선당은 스님들이 거처하던 승방(僧房)으로, 하대웅전(下大雄殿)과 거의 같은 때인 조 선 중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본래 정면 4칸 측면 3칸의 ‘ㅡ’자형이었으나, 건물의 남쪽과 서쪽으로 2부분을 증축 하여 현재는 ‘ㄱ’자형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면의 4칸 중 북쪽 3칸 부분이 다포 (多包)의 형식이지만 간포(間包)가 없는 주심포(柱心包)와 배흘림 기둥으로 지어진 본래의 설선당이다. 부엌인 남쪽 1칸은 맞배집 부분을 고쳐지은 부분이고, 여기에 동서(東西)로 서익사(西翼舍) 3칸을 잇대어 늘려지었다. 서익사는 민간 주택 구조를 취한 요사(寮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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