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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러너: 임지형 (2026.4.1)

클리오56 2026. 4. 1. 09:08

 

내용 및 소감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서 야외 러닝을 재개하였다. 지난 주부터 시작하여 한주에 서너 차례, 이번주에도 비가 내린 날을 제외하곤 계속 진행중이다. 속도보다는 계속한다는데, 즉 꺽이지 않는 꾸준함에 의의를 두지만 그래도 지난 주보다는 조금 속도가 나아지면 기분이 업된다. 인덕원역 스마트도서관에서 우연히 접한 이 소설은 그렇게 높은 평점을 줄만하지는 않지만, 젊은이들의 애환을 접할 수 있어 나에게는 신선하였다. 저성장 상황에서의 취업에 따른 고통이 극심하였다.   

 

인생과 달리기가 닮은 점이 있다는 것. 삶이나 달리기나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일희일비 대신에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그리고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것. 몸에 문제가 생기면 마음은 곧바로 약해지고 심지어는 병든 것처럼 느껴지며, 달릴수록 몸도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더욱 가벼워졌다는데 공감한다. 그리고 달리기 전보다 달리면서 뭐든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든지, 몸을 움직이면 마음을 움직이기가 수월했다는 것 역시 격하게 공감한다. 

30쪽: 운이 좋아지려면 이 세 가지를 바꾸면 됩니다. 그게 뭔가요? 바로 시간, 공간, 인간이에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해도 안 될 땐 공간과 시간을 체크해 봐야 해요. 현관에 신발은 정리가 잘 되어 있는지, 침대 위 이불은 잘 개어져 있는지 등 주변을 깨끗하게 하고 재배치함으로써 운을 바꾸는 거죠. 사실 공간을 재배치할 때 우린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건데......

62쪽: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부제: 나를 살린 달리기. 저자 벨라 마키. 이 책은 고질적인 정신 문제에 이혼까지 겹쳐 20대를 눈물로 마감한 작가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쓰인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두렵고 인생을 수습하기는 커녕 소파에서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던 그녀가 어느 날 생전 안 하던 짓을 하는데 그게 달리기였다. 달리며 그녀의 인생은 조금씩 달라지고 나아졌다. 완벽하게 행복하지는 않아도 더 이상 불안에 좀먹으며 살진 않는다는 서문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책에 빨려 들어갔다.

97쪽: 잘 버티고 있던 수문이 터진 것처럼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어느새 봄밤 속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간 내 안에 힘겹게 있었다는 듯 밤공기를 휘젓고 다녔다. 한바탕 난리굿을 치듯 달리고 나자 기분이 묘했다. 달리다 말고 바닥에 주저앉을 만큼 힘이 들었는데, 뭔지 모르게 가뿐해졌다. 온몸에 흐르는 땀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그다지 창피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꽉 막힌 가슴도 더는 답답하지 않았다. 나는 집으로 가기 전 원래 가려던 편의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112쪽: 어떤 날은 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단 생각이 들 정도로 몸이 가뿐한가 하면, 어떤 날은 몸의 추 하나를 달고 뛰는 것처럼 무거웠다. 그럴 때면 내게 속삭였다. 어쩌면 삶이나 달리기나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일희일비 대신에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142쪽: 그간 달리면서 깨달은 건, 몸과 마음은 하나라는 점이다. 몸에 문제가 생기면 마음은 곧바로 약해지고 심지어는 병든 것처럼 느껴졌다. 달릴수록 몸도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더욱 가벼워졌다. 그리고 달리기 전보다 달리면서 뭐든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몸을 움직이면 마음을 움직이기가 수월했다.

156쪽: 달리기 속도는 딱 지금 우리처럼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정도가 가장 좋아요. 그게 유산소 운동이거든요. 사실 빠르게 달리기는 유산소 운동이 아니에요. 오히려 느리게 달리는 것이 유산소 운동이고, 단거리처럼 속도를 높이는 건 무산소 운동입니다. 그러니까 천천히 달리셔도 됩니다.

157쪽: 존 투 러닝은 유산소 운동 중 하나예요. 존 투는 미국 스포츠 심장 학계에서 심박수 기반 운동을 총 5단계로 나눈 건데요. 말 그대로 두 번째 단계를 말해요. 운동 강도가 최대 심박수 60~70% 정도라 운동도 되지만 아주 쉬워요. 아마 지금 연희씨가 뛰는 속도쯤 될 겁니다. 이 운동은 산소 섭취량을 높이고 체내 대사를 촉진해 체지방을 태우는 데 효과적이라 기본 체력을 향상하는 데 좋아요.

157쪽: 사실 존 투로 했을 때 지방 연소도 많이 돼요. 운동 강도가 낮을수록 몸은 지방을 더 많이 연료로 사용하거든요. 강도가 낮을수록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어서 지방을 천천히 태워 에너지가 활발해져요. 부상 위험도 줄고요. 그리고 천천히 달리면서 주변 풍경도 보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심적으로 안정되잖아요. 그때 엔도르핀이 활성화된대요. 그래서 정신과에선 초기 우울증 환자에게 제일 먼저 달리기를 권한다고 해요. 달리다 보면 우울감이 많이 감소되거든요.

165쪽: 왜 나는 이 역할을 해야 하는지, 왜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지.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질문은 곧 주체적인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어디까지 달릴 것인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167쪽: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무얼 할 때 행복하고 힘들어하는지. 달리기를 하니 그 사소한 것들이 내 손에 잡혔다. 내가 나를 만나는 일이 빈번해졌다.

169쪽: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마다 환한 표정이 깃들어 있어 괜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도시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빛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밤.

184쪽: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내 것이 아니었다. 자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모호한 경계선 위에서 떠도는 기분을 느꼈다.

191쪽: 뻐근해지는 심장에 비해, 머릿속의 잡념들은 점점 더 흐려졌다. 그러자 온전히 달리는 리듬에만 집중하게 됐다. 발이 땅을 차고 나아가는 느낌, 가슴으로 밀려드는 시원한 바람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야말로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온전한 내 것이라는 것.

198쪽: “끝까지 달려본 사람만 아는 감정이 있어요. 인생도 극한의 상황을 지나야 진짜 나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 계속 알아갈 거예요. 달리는 동안만큼 나를 만나는 일이 없거든요.”

212쪽: “너무 소박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주어진 일상을 제가 좋아하는 일로 채울 때 행복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하고, 생맥주 한잔하는 것 같은 거요. 가끔 친구들과 만나 영화를 보고 밀린 수다를 떠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키링을 사서 친구와 나눠 갖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러니까 제겐 특별한 일이 없어도 무탈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행복입니다.”

242쪽: 그 소음 속에서도 마음은 평온했다. 복도 끝 창문 앞에 섰다. 창밖으로 햇빛이 어슴푸레 번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일도 나는 또 흔들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에, 무심한 시선에, 애매한 공기에. 하지만 오늘만큼은 작은 균열 속에서 나를 지켜낸 하루였다.

254쪽: 그래, 가 보자. 나는 에어팟 볼륨을 올렸다. 타닥타닥 발소리와 인디 음악 사운드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심장이 팔딱팔딱 벅차올랐다. 눈을 들어 하늘을 봤다.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겨 드는 노을 속에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세상 안에 오롯이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버거운 세상 속 영원히 좁힐 수 없는 사람과의 거리도 내 두 다리로 디딜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좋을 텐데. 달리는 것은 내게 다시 나아갈 힘을 주었다.

 

257쪽: 달리기는 내 안의 숨겨진 나를 다시 불러냈다. 처음엔 단지 땀을 흘리는 행위였고, 머릿속을 비우기 위한 도망이었다. 하지만 매일 몇 킬로씩 내 발로 길을 밀어내다 보니, 내 삶 전체의 균형이 조금씩 바뀌었다. 숨이 찰 때마다 나는 내 감정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고, 힘들어질수록 ‘포기하지 말자.’라는 말을 내 안에서 꺼낼 수 있었다. 뛰는 동안은 누구의 말도, 평가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내 발소리, 숨소리,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만이 존재했다. 그 시간은 내가 잊고 살던 나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느라, 정작 나에게 필요한 리듬을 잃고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257쪽: 결국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건, 몸을 살아나게 했다. 몸이 살아나서 마음도 따라왔다. 마음이 점점 단단해지면서 사람을 대하는 눈까지 달라졌다. 하 팀장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내게는 큰 변화였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누가 나를 어떻게 보든지 나 자신으로 다시 달리는 것만으로도 내가 소중했다. 모든 것이 소중했다.

261쪽: 홍제폭포는 밤이 더 예뻤다. 인공조명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감쌌고, 물안개가 하늘하늘 떠오르며 주변을 몽환적으로 감쌌다. 물줄기 아래로는 희부연 것이 연기처럼 흘렀고, 그 아래로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빛을 받아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는 마치 잊고 있던 기억을 되짚듯, 천천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269쪽: 우리는 조용히 걸음을 맞췄다. 왼편에선 폭포가 계속해서 떨어졌고, 발아래엔 징검다리가 어둠 속에서 고즈넉이 드러났다. 널찍한 돌이지만 발을 뗄 때마다 징검다리 사이로 퍼지는 물소리가 자꾸만 심장을 두드렸다.

273쪽: “우리 이번 가을에 마라톤 대회에 같이 나가 볼래요? 제가 연희 씨 페이스메이커 해드릴게요.”

289쪽: “결국, 마감도 야근도 달리기도 내 걸음으로 끝내는 거지.”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한 번 더 속도를 올렸다. 눈앞의 공원이 길어지는 듯했고, 햇살 속 먼지 입자들까지 반짝였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이 순간의 나는 충분히 괜찮았다. 서류 더미 위에서가 아니라,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지금이야말로 진짜 자신 같았다. 그러니 오늘도 달린다. 누구의 평가도, 회의록도 없이. 그저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리듬으로.

 

293쪽: 친구들은 그동안 많이 달라진 내가 새로운 모양이었다. 두 사람은 방안과 거실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계속 놀라워했다. 나는 너무 좋았다. 달리면서 내 삶이 달라졌으니까 .무채색 같던 삶이 점점 컬러풀해지고 있었으니까. 재미도, 활력도, 희망도 없던 나날이 어느새 잎을 틔우고, 작은 떨림으로 나를 살게 했다. 단조로움 속에 묻혀 있던 하루를 힘찬 맥박으로 시작하게 된 건 당연했다.


308쪽: 이들의 삶은 어떨까? 팀장을 봐도 그렇고, 서연과 연지 그리고 나를 봐도 삶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사진 속 마라토너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온 시간이 쌓이고 겹쳐, 마침내 단단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낸 사람처럼 보였다.

 

326쪽: “누군가의 앞에서 이끌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는… 옆에서 같이 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더라고요.”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단단했다.
“앞에서 이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호흡 맞추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연희 씨가 힘들 땐 페이스를 맞춰서 천천히 가고, 괜찮을 땐 옆에서 같이 속도를 내는… 그런 사람이요.”

 

331쪽 장강명 작가의 추천의 말
도연희는 달리기를 통해 일상을 회복하고, 관계를 개선하며, 지역 공동체와 일터를 성숙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는 가만히 걷기만 했더라면 절대 몰랐을 감각과 달리면서 나를 만나는 일은 어딘가 다르다는 사실을 깨친다. 자신을 긍정하고 막연하더라도 희망이라는 걸 품고 싶어졌다고 생각한다.

교보문고 책 소개

 

나의 속도를 찾아 나에게로 향하는 걸음

달리며 경험하는 삶의 변화
장강명 작가 강력 추천
임지형 작가 신작 장편소설
⟪연희동 러너⟫는 시사적인 이야기와 문제를 동화와 청소년 소설에서 많이 풀어온 임지형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아이와 어른이 경험하고 겪는 어려움과 고민은 따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이어지고 맞닿아 있다고 하는 임지형 작가가 ‘어른이’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고 단단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는 개개인의 소소한 내면 풍경을 그려낸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라도, ‘나’를 담아낼 수 있다면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을 주인공 연희를 통해 보여 준다. 그렇게 누군가의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다정히 응원한다.

도시인데 도시 같지 않은 이상한 매력을 지닌 동네, ‘연희동’에 사는 도연희는 취업과 꿈, 도전과 안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30대 청년이다. 그녀는 이 시대가 청년에게 안겨준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때때로 흔들리고 무너지지만, 우연한 계기로 러닝을 시작하며 서서히 그만의 속도를 찾아간다.

러닝은 다른 운동에 비해 시간과 장소, 특별한 장비, 투자 비용에 크게 구애 받지 않지만, 운동 효과는 높은 가성비 좋은 스포츠다. 이런 장점 외에 러닝의 본격적인 매력은 ‘공간’에 있다. 달리다 보면 내 주변과 그 너머 공간을 새롭게 보게 되고, 계절별로 다가오는 변화를 체감하며 ‘공간의 환기’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저자(글) 임지형

대학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하고, 무등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09년에는 제1회 목포문학상을 수상했고, 2011년에는 광주문화재단에서 창작지원금을 받아 ⟪진짜 거짓말⟫을 출간했다. 주요 작품으로 ⟪푸하하 달리기 클럽⟫, ⟪유튜브 스타 금은동⟫, ⟪늙은 아이들⟫, ⟪탈탈탈 노트⟫ 등이 있다. 첫 책을 냈을 때처럼 독자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는 작품을 쓰기 위해 여전히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작가의 말

페이지를 채울수록 주인공 연희의 발걸음이 내 발걸음과 겹쳤다. 나 역시 힘겨운 시간을 지나며, 무엇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는지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거창한 성공이나 누군가의 인정이 아니라, 하루하루 이어진 작은 발걸음이었다. 달리기에서 배운 건 '속도'가 아니라 '지속'이었다. 그 경험은 내게 한 가지를 확신하게 했다. 계속 달리는 마음이야말로, 삶을 완주하게 하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_임지형 작가

 

목차

  • 1. 연걸즈
    2. 악순환
    3. 누군가의 좋은 소식은 날 슬프게 해
    4. 서글픈 나이
    5. 차라리 도망가고 싶어
    6. 달리기의 맛
    7. 예상치 못한 만남
    8. 체계적으로 연습하기
    9. 백만 년만의 면접
    10. 다시 운동화 끈을 동여매며
    11. 긴 터널 끝, 드디어 빛!
    12.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
    13. 갈팡질팡
    14. 다시 달리기
    15. 홍제폭포
    16. 마감은 달려야 제맛
    17. 새로운 꿈을 꾸다
    18. 페이스메이커

    추천의 말
    작가의 말
추천사
  • 나는 동화와 청소년 소설에서 임 작가의 씩씩한 주인공들이 ‘지금, 여기’의 문제들을 온몸으로 소화해내며 한 뼘씩 성장하는 모습이 늘 정겹고 사랑스러웠다. 그때마다 ‘밝은데 현실적이야’ 하는 묘한 감상이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 걸까 혼자 의아해하기도 했다. 그것은 의지와 태도의 문제라고 혼자 결론내리기도 했다. 배경이 교실에서 회사와 거리로 넓어졌지만 작가 특유의 씩씩함과 정겨움, 사랑스러움은 그대로다. 소설 속 홍제천은 어느 구간에서는 활기차고 생동감 있게, 어느 구간에서는 사람들의 귀를 간질이며 잔잔하게 흘렀고, 어느 구간에서는 천변 길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내게는 『연희동 러너』가 그런 소설이었다.

책 속으로

왜 나는 이 역할을 해야 하는지, 왜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지. 그저 주어진 대로 살았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질문은 곧 주체적인 삶의 시작이라는 것을. 나는 질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물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가? 어디까지 달릴 것인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지킬 것인가?
_본문 167쪽, ‘백만 년만의 면접’에서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리고 무얼 할 때 행복하고 힘들어하는지. 달리기를 하니 그
사소한 것들이 내 손에 잡혔다. 내가 나를 만나는 일이 빈번해졌다.
_본문 169쪽, ‘백만 년만의 면접’에서

사람들의 얼굴마다 환한 표정이 깃들어 있어 괜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 도시의 일부가 된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빛나고, 모든 것이 가능해 보이는 밤.
_본문 171쪽, ‘백만 년만의 면접’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은 내 것이 아니었다. 자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모호한 경계선 위에서 떠도는 기분을 느꼈다.
_본문 186쪽, ‘다시 운동화 끈을 동여매며’에서

뻐근해지는 심장에 비해, 머릿속의 잡념들은 점점 더 흐려졌다. 그러자 온전히 달리는 리듬에만 집중하게 됐다. 발이 땅을 차고 나아가는 느낌, 가슴으로 밀려드는 시원한 바람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달리기야말로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온전한 내 것이라는 것.
_본문 193쪽, ‘다시 운동화 끈을 동여매며’에서


“끝까지 달려본 사람만 아는 감정이 있어요. 인생도 극한의 상황을 지나야 진짜 나가 있는 것처럼. 앞으로 계속 알아갈 거예요. 달리는 동안만큼 나를 만나는 일이 없거든요.”
_본문 200쪽, ‘다시 운동화 끈을 동여매며’에서

“너무 소박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주어진 일상을 제가 좋아하는 일로 채울 때 행복합니다. 이를테면 제가 좋아하는 달리기를 하고, 생맥주 한잔하는 것 같은 거요. 가끔 친구들과 만나 영화를 보고 밀린 수다를 떠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키링을 사서 친구와 나눠 갖는 것도 행복입니다. 그러니까 제겐 특별한 일이 없어도 무탈하고 평온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행복입니다.”
_본문 214쪽, ‘긴 터널 끝, 드디어 빛!’에서

그 소음 속에서도 마음은 평온했다. 복도 끝 창문 앞에 섰다. 창밖으로 햇빛이 어슴푸레 번지고 있었다. 어쩌면 내일도 나는 또 흔들릴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말에, 무심한 시선에, 애매한 공기에. 하지만 오늘만큼은 작은 균열 속에서 나를 지켜낸 하루였다.
_본문 244쪽, ‘갈팡질팡’에서

“쫌. 요즘은 사무실 문 앞에 서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들어가. 문 하나 미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_본문 246쪽, ‘갈팡질팡’에서

그래, 가 보자. 나는 에어팟 볼륨을 올렸다. 타닥타닥 발소리와 인디 음악 사운드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심장이 팔딱팔딱 벅차올랐다. 눈을 들어 하늘을 봤다.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겨 드는 노을 속에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세상 안에 오롯이 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버거운 세상 속 영원히 좁힐 수 없는 사람과의 거리도 내 두 다리로 디딜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좋을 텐데. 달리는 것은 내게 다시 나아갈 힘을 주었다.
_본문 256쪽, ‘다시 달리기’에서

달리기는 내 안의 숨겨진 나를 다시 불러냈다. 처음엔 단지 땀을 흘리는 행위였고, 머릿속을 비우기 위한 도망이었다. 하지만 매일 몇 킬로씩 내 발로 길을 밀어내다 보니, 내 삶 전체의 균형이 조금씩 바뀌었다. 숨이 찰 때마다 나는 내 감정을 정확히 느낄 수 있었고, 힘들어질수록 ‘포기하지 말자.’라는 말을 내 안에서 꺼낼 수 있었다. 뛰는 동안은 누구의 말도, 평가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내 발소리, 숨소리,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만이 존재했다. 그 시간은 내가 잊고 살던 나 자신과 다시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세상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느라, 정작 나에게 필요한 리듬을 잃고 있었음을 깨닫게 했다.
_본문 259쪽, ‘다시 달리기’에서

홍제폭포는 밤이 더 예뻤다. 인공조명이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감쌌고, 물안개가 하늘하늘 떠오르며 주변을 몽환적으로 감쌌다. 물줄기 아래로는 희부연 것이 연기처럼 흘렀고, 그 아래로 반짝이는 물방울들이 빛을 받아 흔들리고 있었다.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는 마치 잊고 있던 기억을 되짚듯, 천천히 마음에 스며들었다.
_본문 263쪽, ‘홍제폭포’에서

우리는 조용히 걸음을 맞췄다. 왼편에선 폭포가 계속해서 떨어졌고, 발아래엔 징검다리가 어둠 속에서 고즈넉이 드러났다. 널찍한 돌이지만 발을 뗄 때마다 징검다리 사이로 퍼지는 물소리가 자꾸만 심장을 두드렸다.
_본문 271쪽, ‘홍제폭포’에서

“우리 이번 가을에 마라톤 대회에 같이 나가 볼래요? 제가 연희 씨 페이스메이커 해드릴게요.”
_본문 276쪽, ‘홍제폭포’에서

“결국, 마감도 야근도 달리기도 내 걸음으로 끝내는 거지.”
_본문 291쪽, ‘마감은 달려야 제맛’에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한 번 더 속도를 올렸다. 눈앞의 공원이 길어지는 듯했고, 햇살 속 먼지 입자들까지 반짝였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이 순간의 나는 충분히 괜찮았다. 서류 더미 위에서가 아니라,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지금이야말로 진짜 자신 같았다. 그러니 오늘도 달린다. 누구의 평가도, 회의록도 없이. 그저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리듬으로.
_본문 291쪽, ‘마감은 달려야 제맛’에서

이들의 삶은 어떨까? 팀장을 봐도 그렇고, 서연과 연지 그리고 나를 봐도 삶이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였다. 하지만 사진 속 마라토너의 모습은 달라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따라 한 걸음씩 걸어온 시간이 쌓이고 겹쳐, 마침내 단단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 낸 사람처럼 보였다.
_본문 310쪽, ‘새로운 꿈을 꾸다’에서

“누군가의 앞에서 이끌어주고 싶었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는… 옆에서 같이 달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바뀌더라고요.”
그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맑고 단단했다.
“앞에서 이끌고 가는 사람이 아니라, 옆에서 호흡 맞추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연희 씨가 힘들 땐 페이스를 맞춰서 천천히 가고, 괜찮을 땐 옆에서 같이 속도를 내는… 그런 사람이요.”
_본문 328쪽, ‘페이스메이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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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나의 속도를 찾아 나에게로 향하는 걸음
달리며 경험하는 삶의 변화
창의적으로 소비하는 동네 이야기와 새로운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

연희가 달리며 경험하는 연희동은 참으로 이상한 곳이다. 홍대나 합정, 상수 같은 소위 ‘핫플’과 지척이지만, 지방 소도시 같이 한가롭고 수더분한 인상을 주는 동네이니 말이다.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도 하필 자신과 이름이 같은 연희동에 자리 잡은 연희는 어느 날 이곳을 달리게 된다.

⟪연희동 러너⟫의 주인공 연희에게 성장의 주요한 계기와 동력이 되는 러닝은 시간과 장소, 장비, 투자 비용에 크게 구애 받지 않지만, 운동 효과는 높은 가성비 좋은 스포츠다. 이런 장점 외에 러닝의 본격적인 매력은 ‘공간’에 있다. 달리다 보면 내 주변을, 주변 너머의 공간을 새롭게 보게 되고, 계절별로 다가오는 변화를 체감하며 ‘공간의 환기’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연희도 달리며 자신이 살아가는 동네를 주거지 이상으로 창의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소설 속 연희는 러닝을 통해 ‘나와 대화’한다. 그녀는 취업, 가족, 친구 등 여러 고민과 관계가 얽힌 문제를 안고 살다가 러닝을 계기로 하나씩 문제를 털어내고 해소하게 된다. 달리는 동안엔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며, 나를 파헤치고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연희는 자신이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놓치고 살았는지를 알아가며, ‘나’를 직면한다. 한 발 한 발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연희동 러너⟫는 시사적인 이야기와 문제를 동화와 청소년 소설에서 많이 풀어온 임지형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아이와 어른이 경험하고 겪는 어려움과 고민은 따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이어지고 맞닿아 있다고 하는 임지형 작가가 ‘어른이’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백하고 단단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작가는 개개인의 소소한 내면 풍경을 그려낸다. 특별하지 않은 하루라도, ‘나’를 담아낼 수 있다면 충분히 괜찮다는 사실을 주인공 연희를 통해 보여 준다. 그렇게 누군가의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를 다정히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