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독서, 영상

미술관에 간 할미 (2): 할미 (2026.3.23)

클리오56 2026. 3. 23. 20:48

3. 꼭 말로 하지 않아도 느껴졌지

폭풍우 속 도망치는 연인에 얽힌 은밀한 진실
피에르 오귀스트 코트 <폭풍우> 1880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모든 고난을 헤쳐 사랑도 이루고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친부모와도 극적으로 만나게 된단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나타나. 글쎄, 부모를 찾고 보니 둘이 배다른 남매였다는게 밝혀진 거야..... 하지만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던 이 출생의 비밀도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사랑을 막지는 못했단다. 여느 동화같은 이야기의 결말처럼 마침내 둘은 결혼에 성공하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갔다고 하지. 

 

모두가 외면했기에 누구보다 따스했던
툴루즈 로트렉 <침대에서> 1892
어린 시절 로트렉이 온전한 다리를 잃은 건 참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할미생각엔 어쩌면 그 덕분에 화가에게 가장 소중한 하나를 얻었던 것 같아. 그건 바로 세상을 다정하게 바라보고 소외된 이들을 감싸며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귀한 눈이지. 남들은 미쳐보지 못하는 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거야.

 

아무 말 없어도 대답이 들려오는 그림
로렌스 알마 타데마 <더 이상 묻지 말아요> 1906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이야기는 훗날 여러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거든. 그중에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소설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단다. 당대 영국의 유명 시인이었던 알프레드 테니슨 역시 그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서사시로 풀어내기도 했지.

 

전애인과 재회할 수 있을까요?
구스타프 클림트 <더 이상 묻지 말아요> 1906
사랑 그 자체가 쓰라린 고통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랑하지 않는 것도 고통이라오.

헛된 사랑에 빠질 때마다 내 가슴은 쓰라린 비애로 무너져내리지.

이 감정을 나처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다시 없을 거요. 

(에밀리 플뢰게에게 보낸 편지 중)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하고 비웃음을 당한 남자
윌리엄 프리스 <포프 씨가 몬태규 부인에게 구애하다> 1852
매리와 포프의 에피소드가 너무 유명해져서, 무려 백 년이 지난 뒤 화가 윌리엄 프리스가 포프의 고백 장면을 상상해서 그림으로 남기게 된단다. 그림 속 메리가 허리에 두른 터키식 숄은 그녀가 떠난 터키 여행을 상징하고 있어. 반면에 포프는 마치 장례식에 가는 사람처럼 어두운 양복을 입고 있는데, 불안하게 움츠러든 자세와 일그러진 표정은 그의 못마땅한 속마음을 여실히 보여주지. 더욱이 바닥에 떨어진 깃펜은 그의 구애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걸 교묘하게 암시하고 있어.

 

아내를 300번 넘게 그린 사랑꾼의 찝찝한 비밀
피에르 보나르 <정원의 여인> 1946
몰래 사귀었던 금발의 몽샤티가 주인공처럼 앉아 있고, 아내인 마르트는 거의 알아볼 수 없게 잘린 채로 이 여자를 바라보고 있지. 이렇게 두 여인을 함께 그린 보나르의 속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람난 남자친구 때문에 그림을 그만둔 화가
마리안느 폰 베레프킨 <비참한 기분> 1909
가슴 아픈 사실은 그토록 헌신했던 야블렌스키가 고마움도 모르고 결국 그녀를 배신했다는 거야. 그는 베레프킨의 하녀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이 하녀랑 결혼해서 아이까지 낳았지. 그러고는 어느 날 셋이서 아무 말 없이 베레프킨을 떠나버렸단다. 이런 상처 속에서 베레프킨은 46세의 나이에 다시 붓을 들었어. 그저 하염없이 퍼주기만 했던 지난날의 모습을 후회하면서 자신의 비참한 심정을 화폭에 쏟아 냈지. <비참한 기분>은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처절한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단다. 온통 강렬한 붉은색으로 뒤덮여 언뜻 뭉크의 <절규>가 생각나기도 하는 작품이지.

 


얼핏 보면 키스 장면이지만, 멀리서 보면

프란체스코 하예즈 <입맞춤> 1859
 이 그림이 그려질 무렵인 19세기 이탈리아는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는 혼돈에 연속이었어..... 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고 있었지. 이러다가는 나라를 완전히 빼앗기겠다 싶었는지 이탈리아에서는 오스트리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통일 운동 리소르지멘토가 일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프랑스와 힘을 합치게 된단다. 남자의 망토에서는 이탈리아 국기에 들어가는 빨간색과 초록색이, 여인의 드레스에서 프랑스를 상징하는 파란색이 눈에 띄지. 여기에 드레스 소매의 하얀색까지 더해지면서 이들의 옷차림에는 두 나라의 국기 색이 전부 짜 맞추듯 들어가게 된다. 연인의 달콤한 키스 속에 통일을 향한 동맹의 표식을 슬쩍 숨겨둔 거지.

 

감히 이 사랑을 그릴 수 있었던 단 한 사람
신윤복 <월야밀회>
이 남자는 포도청 군관으로 휴대용 무기인 길다란 철편을 들고 있다. 아마 야간 순찰 도중 몰래 빠져나와서 여인을 만난 걸 게야. 한 여인이 두 발이 일자가 되도록 담장 벽에 바싹 붙이고 애정의 현장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는게 상상에 더 힘을 실어준다. 

 

4. 펼치기만 해도 네 마음이 환해질거야

바구니를 들고 기웃거리던 그 아주머니의 정체
아브라함 반 스트리 <문 앞의 체리 상인> 1816
체리 판매상이 방문한 순간을 포착해 특유의 따뜻한 색감으로 담아냈다. 어릴 적 부터 장식 화가였던 아버지 곁에서 그림을 배우며 자랐어. 당시 장식 화가들은 벽이나 천장, 가구에 그림을 그리면서 실내공간을 꾸미는 일을 했어. 아마도 이런 아버지의 작업을 가까이서 보며 자란 덕분에 아브라함도 여유롭고 아름다운 실내공간을 그리는데 마음이 끌렸을지도 모르겠구나. 

 

때로는 이런 그림이 더 좋더라
브리튼 리비에르 <공감> 1878
속상해하는 아이 곁에 잠자코 위로를 전하는 듯한 강아지의 모습을 더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깊은 교감을 섬세하게 담았다. 당대의 저명한 평론가 존 러스킨으로부터 '현대에 들어 단연 최고의 걸작'이라는 어마어마한 찬사를 받았다. 

 

이케아는 그때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칼 라르손 <리스베스> 1894
둘째 딸 리스베스를 태양같이 빛나며 주변에는 반짝이는 웃음이 가득한 아이라고 얘기했는데, 그 말마따나 아버지의 시선에서 담아낸 리스베스는 조그마한 아가 시절부터 훌쩍 커버린 소녀의 모습까지 몹시도 사랑스럽거든.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인 이케아가 자신들의 정신적인 뿌리가 칼 라르손의 그림에 있다고 말했다는 거야. 그가 직접 만든 가구들로 가족들과 정겨운 시간을 보냈던 것처럼, 이케아도 사람들이 스스로 가구를 조립해서 편안한 집을 꾸며볼 수 있게 하니까 말이야. 

 

어느새 웃게 되는 그림 하나
프란스 할스 <웃고 있는 기사> 1624
그는 억지로 근엄한 포즈를 취한 귀족들의 모습보다 자연스러운 표정들 속에 진짜 삶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콧수염 사이로 살짝 비치는 미소가 거만하기도 한 것이, 400년의 시간을 건너 덩달아 우리의 입꼬리까지 슬며시 올라가게 만든다.

 

어떤 순간에도 너는 가치 있는 사람
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
인상파 첫 전시회에 30명의 화가가 참여했는데, 그중 유일한 여성이 바로 베르트 모리조였다. 대표작 요람에는 그녀의 언니 에드마가 자신의 아기를 바라보는 다정한 모습이 담겨 있다. 

 

화가는 왜 평생토록 파란색을 좋아했을까?
라울 뒤피 <레가타의 귀환> 1933
"삶은 나에게 미소짓지 않았지만, 난 언제나 삶에게 미소를 지었다." 라울이 생전에 남긴 말이란다. 새벽 항구의 안개 속에서도, 단조로운 노동의 틈바구니에서도 그는 언제나 색을 그리고 싶어했단다. 특히 파란색을. 어떤 빛 속에서도 본연의 개성을 잃지 않는, 바다처럼 깊고 자유처럼 맑은 색이지. 그렇게 매일의 무게를 견디며 그려낸 그의 그림들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푸른 미소를 씩 지어 보이고 있어.

 

200년전 사람들과 단숨에 친구 되는 법
김홍도 <서당>

훈장님께 혼나고 훌쩍이는 학동과 '저 사고뭉치를 어찌하면 좋을꼬'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훈장님이 그려져 있지. 전날 숙제를 외우지 못해서 혼이 났던 걸까? 옆의 아이는 몰래 답을 알려주려는 듯 슬쩍 책을 밀어주고 있어. 울던 아이도 책을 곁눈질하고 있고. 주변 친구들이 이 모습을 보며 킥킥거리는 게 어쩌면 못된 장난을 치다 걸린 것일 수도 있겠구나. 그림에서 감칠맛이 난다면, 딱 이런 그림이 아닐까?

 

농장 밖으로 나간 76살 할머니의 기적
그랜마 모지스 <이삭 줍는 사람들> 1958

무려 76세에 제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할머니 화가가 있다면 믿어지니? 뉴욕의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보낸 시골 할머니였지만 100세가 넘어서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그녀를 '미국인의 삶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물'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지. 그랜마 모지스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진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란다.

 

"나는 내 삶을 작은 스케치들로 그려왔어요. 오늘 조금, 어제도 조금씩.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마치 기분 좋은 하루를 잘 마친 느낌이에요. 그걸로 충분하지요. 삶이 내게 준 것들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봤으니까요. 인생은 그렇게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고 늘 그래왔듯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