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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1): 유홍준 교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권, 서울편 4 (2023.12.27)

클리오56 2023. 12. 28. 17:43

 

일자: 2023.12.27

코스: 한성대입구역~성북천~선잠단지~길상사~덕수교회~금왕돈까스

거리: 6.93km

소요시간: 2시간31분 (휴식 6분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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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대학동기들과 현충원 길을 걷고 사당 통영바다풍경에서 거하게 점심식사를 한 후

별도로 안국역으로 이동, 최박사를 만나 성북동 답사에 나섰다.

 

유홍준 교수가 성북동에 할애한 지면이 상당하니 세 편에 나누어 140여 페이지에 달한다.

여기에 '동네 한바퀴'에서 언급한 가게들도 겉모습이나마 살펴보기도 하면서

해가 짧은 시즌이라 날도 빨리 어두워지고 저녁식사도 해야하고 밤에는 빛 축제 구경도 해야하니

나머지 미답사 코스는 다음 기회로 남겨야했다.

 

다른 글들에서도  언급했지만 여기 글들은 거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옮겨왔기에 일일이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권, 서울편 4 
성북동1: 성저십리 마전골의 북둔도화
서울 성북동 / 성저십리 / 선잠단 / 성북둔의 설치 / 성북동 주민의 마전과 메주 / 북둔도화의 복사꽃 마을
/ 채제공의 성북동 유람기 / 성북동의 별서들 / ‘성락원’에서 ‘서울 성북동 별서’로 / 춘파 황윤명
/ 의친왕 이강의 별서로 / 1930년대 ‘성북의 향기’ / 성북동 문인촌의 형성


성북동2: 『문장』과 ‘호고일당’의 동네
성북동 문인촌의 형성 / 이태준의 수연산방 / 이태준의 상고 취미 / 성장소설 「사상의 월야」
/ 이태준의 문학세계 / 「만주기행」 / 배정국의 승설암 / 인곡 배정국의 삶 / 호고일당의 분원 답사 / 해방공간의 백양당 출판사
/ 근원의 노시산방 / 『근원 김용준 전집』에 부쳐 / 김용준의 그림과 수필 / 『문장』 전26호


성북동3: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노시산방에서 수향산방으로 / 수화 김환기의 백자 사랑 / 김향안, 또는 변동림 여사 / 대사관로와 ‘꿩의 바다’의 대저택들
/ 우리옛돌박물관과 한국가구박물관 / 김자야와 백석의 사랑 / 대원각에서 길상사로 / 조지훈의 방우산장
/ 조지훈 시, 윤이상 작곡 「고풍의상」 / 최순우 옛집 / 박태원의 고현학 /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 /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

 

1394년 한양도성을 쌓을 때 성곽 바깥쪽 10리 이내는 자연녹지로 보존했다. 조선시대의 그린벨트격이다. 
이를 城底十里라고 했는데, 세종 때는 여기에 분묘와 벌목을 금지하는 금표를 여러 곳에 설치했고,
세조 7년(1461)에는 성저십리 전 지역을 한성부 산하의 방으로 관리하도록 했다. 
세종 10년(1428) 때 기록에 호구 1만 6,921가구, 인구 10만 3,328명으로 나와 있다.

 

한성대입구역 2번 출구로 나와 분수광장과 성북천을 살펴보았다. 

1960년대 말부터 복개를 시작하여 1990년대 청계천 합류 지역까지 진행되었으나

2002년부터는 다시 단계적으로 복원 작업이 시작되었으니 세상 트렌드는 변화무쌍하다.

 

성북천 하류를 잠시 다녀왔는데 KBS  방영의 '동네 한바퀴'에서 소개된 가게들을 겉모습이나마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김영철, 최근에는 이만기가 리드 하는데 가게들은 구분없이 혼합되어졌다. 

 

분수광장

성북천

동네 한바퀴에서 소개된 주변의 가게들

 

길 맞은 편에 나폴레옹제과점이 보인다. 최박사 왈, 오래 전 박사 논문 심사때

어느 교수는 나폴레옹 과자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하여 별도로 준비한 적이 있단다.

우리나라 제과 명장 10명 중 4명이 나폴레옹 출신일 정도로 사관학교 구실을 한다니 대단하긴하네.

 

담벼락에 미워도 다시한번, 하숙생 등 흘러간 옛 영화 포스트가 그려져 있다. 

해동꽃조경 앞 보도 역시 멋진 꽃 풍겨으로 소개된 바 있는데 시즌이 아닌게 아쉽다. 

남해 멸치 육수의 구포국수 또한 노포로 알려졌다는데 시간이 맞질 않으니 유감스럽다. 

옛날 치킨을 제공하는 호프 가게 역시 동네 한바퀴에 소개되었다.

간판에 26년이라니 상당한 내공이 축적되었지 않았을까. 치맥이 그리울 때~~

 

방우산장: 조지훈 집터 '시인의 집' .

조지훈의 집터에는 시인의 방이라는 설치물이 꾸며져 있다. 한옥의 마루와 처마 이미지를 살린 기둥과 벽면으로

실내공간을 연출하면서 석재 패턴을 리듬감 있게 배치해 한국적 서정을 노래한 조지훈의 시적 분위기를 담아냈다. 

 

최순우 옛집

성북동에서 전통 가옥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한옥으로 수연산방과 쌍벽을 이룬다. 

하지만 동계시즌(2023년 12월 1일 ~ 2024년 3월 31일)은 휴무인 줄 알았지만 대문이라도 보고 싶었다.

마전터 표시석

성저십리의 성북동 자연녹지에 정식으로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된 것은

영조 41년(1765)에 선잠단 근처에 성북둔이라는 둔전을 시행하면서부터였다.

이후 둔전 주민들의 생계를 위하여 추가로 마전(베나 무명을 빨아 말리는 일)과 메주 일을 하며 살아갔다.

그 흔적으로 성북초등학교 길 건너 횡단보도 한쪽에는 마전터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마전은 193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선잠단: 국가의 중요한 의례를 행하는 제단이었다.

정종 2년(1400)부터 매년 3월 초사일 선잠단에서는 양잠을 보살피는 선잠제가 행해졌다. 

운우미술관

성북동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과 아내 우향 박래현의 호 앞글자를 딴 운우미술관이 있다.

출입하는 어느 회사원인 듯한 분에게 물으니 지금은 기업의 건물로 미술관 역할은 없다고 한다.

성북동 성당은 빨간 벽돌의 아담한 규모이다.

성탄을 맞이하여 자그마한 장식이 있었고 스테인드글러스가 아름답다는데 바깥에서만 보았다.

 

성북동별서 (현재 미공개라 입장이 불가)

성북동에 있던 많은 별장, 별서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영벽지를 중심으로 건물을 위쪽으로 배치해 창밖으로 이 못 풍경을 즐기게 되어 있다. 
별서의 주인은 고종의 내시 고관이었던 춘파 황윤명이며 1916년 세상을 떠난 후 의친왕 이강의 별궁이 되었다. 

별서 위쪽에는 송석정이라는 제법 큰 건물이 있어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이 송석정은 특히 늦가을 단풍잎들이 붉게 물들 때가 아름답다

성북구청에서 운영하는 사이트인데 현재 입장이 되지 않는다는 언급이 전혀없다. 

인터넷 강국이라는 한국이 이런 운영 측면에서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강국이 된다.

길상사
자야는 1987년에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다가 불현듯 대원각을 절로 만들겠다고 결심하고

도움을 청할 생각으로 법정 스님을 찾아갔다. 이후 10년뒤 세워진 절이 길상사다. 

1997년 12월4일 개원법회를 할 때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해 축사를 했고,

법정 스님은 이에 대한 답례로 1998년 2월24일에 축성 100주년을 맞은 명동성당을 찾아 법문을 설법했다.

관음보살상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가 명동성당과 혜화동 성당에 조성한 성모마리아 상과 많이 닮았다. 

설법전

대웅전

진영각: 생전 법정 스님의 거처로 영정과 원고 등 다수의 유물이 보관 전시되고 있다.

사진촬영은 금지라 남기지 못했다. 

 

길상화 사당 

 

길상사를 나오니 어스름하며, 길상사 오기 전에 방문했던 성북동성당은 불을 밝혔다. 

오랜 연륜을 지닌 덕수교회 역시 트리의 전구가 밝아졌다.

덕수교회와 연해있는 이종석 별장과 한국 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옛 본원은 다음에 방문해야겠다.

성북동 1차 답사는 여기서 종료하고 인근의 금왕돈까스에서 식사했는데 정말 빅 사이즈~

덕수교회

 

참고: 원래의 답사 플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