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둘레길/경기둘레길

경기둘레길 42코스 (2022.11.5)

클리오56 2022. 11. 6. 05:54

일자: 2022.11.5 경기둘레길 23회차, 누계 30개코스, 누계거리 441.10km

코스: 경기둘레길 42 코스

등로: 청룡사주차장 정류장  ~ 이해룡 고가 ~ 청룡사 ~ 좌성사 ~ 탕흉대 ~ 서운면주민자치센터

소요시간: 2시간 50분 ( 휴식시간 19분 포함)

도상거리: 7.57km

동반: 홀로

Track_2022-11-05_경기둘레길_42코스.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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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는 경기둘레길 42 코스와 41코스를 함께 답사하는 것이었지만

42코스 안내를 살펴보는 중 안성남사당 설명을 보게되어 42코스 걷기 후 남사당 공연을 보기로 급선회.

 

42코스 들머리인 청룡사를 찾아가는 길은 운이 크게 작용하여 로스타임이 발생하지 않았다.

평촌에서 3330번 광역버스로 아주 수월하게 판교로 이동하였고

다시 8201번 광역버스의 첫차를 7시경 탑승, 안성의 시민회관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카톡맵을 확인하니 1분내로 청룡사행 마을버스가 도착예정이라

재빨리 서광아파트 정류장으로 뛰어서 이동하여 간신히 탑승하였다. 놓치면 거의 1시간 대기.

 

청룡사입구 종점에서 하차하여 걷기를 시작하였는데 첫 방문지는 이해룡 고가,

경기도 문화재 자료로 등록되었고 건축연대가 정조 2년(1797년)으로 입증된 조선후기 살림집이다.

집은 "ㄱ"자형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되었다. 이해룡은 조선 중기 서예가로 특히 해서에 뛰어났으며

당시 대가들로부터 한석봉에 필적하는 명필이라는 격찬을 받았다고 한다.

 

청룡사에 들렀는데 안성 남사당이 봄부터 가을까지 활동하고 겨울에는 이 청룡사에서 지냈다하며

지도를 보니 멀지않은 곳에 남사당의 꼭두쇠였던 바우덕이 사당이 있다.

 

청룡사를 잠시 둘러본다는게 좀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여기 보물이 이렇게 많을줄이야,

우선 대웅전은 고려 원종 6년(1265)으로 출발하며 물론 건물은 조선 후기 다시 세워졌다.

또한 대웅전 안의 삼존불상 역시 임진왜란 이후 1603년의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외에도 감로탱과 영산회 괘불탱도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알려진 보물이었다.

나중 알게되었지만 동종도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1674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으로 보물이다.  

 

이제 본격적인 트레킹을 진행하는데 아뿔사 스탬프를 놓쳤음을 뒤늦게 알아채었고

다행히 다음 41코스 때 기회가 있으니 굳이 되돌아갈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임도 스타일의 숲길을 따라 오르며 단풍 기분을 즐겼고

좌성사라는 작은 절을 지나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조망을 즐겼고

서운 북산리 석조여래입상이 위치한 곳에 마침 정자가 있어 커피를 들며 휴식.

 

여래입상의 얼굴이 온통 시멘트로 수리되어 아쉽지만

귀는 원형 그대로 보존되었고 무엇보다도 미소 띤 모습이 살아있다는게 신기하다.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었고 통일신라 양식으로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는 안내판의 설명.

 

등로는 윗쪽 능선으로 연결되어 조금 지나니 탕흉대, 

오늘 42 코스 트레킹의 최고점으로 산길샘에서는 517m로 찍힌다.

바닥 바위에 한자로 탕흉대라 새겨져있으며, 무엇보다 조망이 탁 트여있다.

 

이후 가파른 내리막길이 전개되는데 조심스럽게 발을 디뎌갔었고

안성이 포도로 유명하니 포도박물관이 있었지만 구경할만한 분위기는 아니라 패스,

그리고 종종 포도밭을 보았지만 안산 대부도만큼 대단위는 아니었다.

 

서운면 주민자체센터에 당도하여 42코스를 종료했는데

이번에는 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거의 1시간을 대기하여 버스에 탑승. 

 

버스 운행 시간표 (안성-야탑 8201번 광역버스, 안성-청룡사 20번 마을버스)

출발지점 창용리 주차장 정류장 

이해룡 고가: 경기도 문화재 자료

청룡사 대웅전: 보물

청룡사는 원래 고려 원종 6년(1265) 명본국사가 세워 대장암(大藏庵)이라 불렀던 곳이다.

공민왕 13년(1364) 나옹화상이 크게 넓히면서 청룡사라 이름을 고쳤는데

청룡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는 광경을 보고 지었다는 전설이 전한다.

절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건물로 추측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 윗몸에 연꽃과 연꽃봉오리를 화려하게 조각해 놓아

장식이 많이 섞인 조선 후기의 특징을 보인다. 기둥은 전혀 가공하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세운 것이 눈길을 끈다.

이 대웅전은 안쪽에 조선 헌종 15년(1674)에 만든 범종을 보관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과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성 청룡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安城 靑龍寺 塑造釋迦如來三尊像): 보물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안성 청룡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은 임란(壬亂) 이후 대형 소조불상의 제작이 유행하기 시작하던 시기의 불상이다.

삼존불상은 갸름한 난형(卵形)의 얼굴에, 가늘고 긴 눈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고,

이마에서 콧등까지가 편평하게 연결되며, 인중이 돌출하였으며, 미소 띤 입꼬리가 위로 살짝 올라갔다.

두부에 비해 어깨는 좁은 편이며 신체는 평판적이다.

본존상은 나발이 크고 투박한데 발제선(髮際線)을 따라서 작은 크기의 나발이 붙어있고

그 위쪽으로는 큰 나발이 붙어있다. 양손은 나무로 제작되었으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설법인을 나타내었다.

내의 윗주름이나 대의 옷주름은 유연하고 복잡하게 표현되었는데, 흙의 가소성(可塑性)이 잘 활용된 듯하다.

좌우협시보살상의 보관은 후보(後補)된 것이며, 목걸이나 수인에 있어서는 서로 닮은꼴에 가깝지만,

착의형식에는 변화를 나타내어 향(向) 좌측 보현보살상은 어깨 뒤로 쇼올 형태의 천의를 두르고

손목 위에 천의자락을 걸친 천의형(天衣形)이고,

향(向) 우측 문수보살상은 여래의 대의(大衣)형태의 옷을 입은 가사형(袈裟形)이다.

삼존불상은 본존불의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을 통해서 만력 31년(1603)화원 광원(廣圓)이

수화승을 맡아 조성한 것이 밝혀졌다. 푸른색 비단에 붉은 경명주사로 쓰여진 발원문에

커다란 글씨로 화원(畵員, 조각승)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는데 6명의 화원 가운데

승려가 아닌 화원(李今貞)도 참여한 것으로 보여 흥미롭다.

이 삼존불상은 조선후기 불교조각의 첫 장을 여는 17세기 초의 소조삼존불상으로

조성원문이 전하여 제작연대와 조각가를 알 수 있다.

청룡사 감로탱[靑龍寺甘露幀]: 보물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감로탱은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그린 불교그림이다.
이 그림은 가로 200㎝ 세로 237.5㎝ 크기이며 3단으로 화면구성을 하고 있다.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가운데 아미타삼존을 포함한 7여래와 극락세계로 영혼을 인도하는 인로왕보살 등을 그려

이상세계를 표현하였다. 특히 불·보살의 몸을 금가루로 칠했는데, 이는 다른 불화에서는 거의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다.

그림의 중간에는 산수(山水)를 배경으로 영혼이 극락으로 인도되길 기원하는 제사상을 차려 공양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고, 아래부분에는 속세의 여러 장면이 생동감 있게 묘사되어 당시 풍속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 숙종 18년(1692)에 제작된 이 불화는 명료한 주제와 안정된 구도, 선명한 색채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중생제도와 유교의 효사상 강조에 따른 종교적 의의 또한 매우 크다.

청룡사 영산회 괘불탱 (靑龍寺 靈山會 掛佛幀): 보물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괘불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회화를 말한다.
이 영산회상도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6대 보살, 10대 제자 등이 에워싼 모습인데,

중앙의 석가불은 머리에서 빛이 나고 특이하게도 오른손은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은 무릎에 올린

시무외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으며, 다리는 결가부좌한 모습이다.

관을 쓴 제석천, 면류관에 홀을 든 범천상, 책과 연꽃·정병 등을 들고 있는 6명의 보살 등이 석가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석가 위로는 여러 제자들과 부처의 수호신인 4명의 금강역사상이 있고,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여러 불상들이 작게 그려져 있다.

주로 진한 붉은색과 청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복잡한 구도로 인해 무거운 느낌이 들지만

윗부분에서 보여주는 화려함과 아랫부분의 무늬로 인해 여유있어 보인다.

이 그림은 효종 9년(1658)에 승려화가인 명옥 등이 그린 것으로

본존의 크기가 매우 컸던 고려말∼조선초의 그림과는 달리 본존인 석가불이 작아져

상대적으로 주변 인물의 크기와 비슷해진 그림으로, 17세기 중엽 영산회상도를 대표할 만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사인비구 제작 동종 - 안성 청룡사 동종 (思印比丘 製作 銅鍾 - 安城 靑龍寺 銅鍾): 보물

출처: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 포털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비구에 의해서 1674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다.

사인비구는 18세기 뛰어난 승려이자 장인으로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다.

현재 그의 작품 8구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며 전해지고 있다.

이 종은 종을 매다는 고리인 용뉴와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다. 또한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어깨 띠 아래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수법이 특히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인비구가 김룡사종, 수타사종(1670)을 제작한 이후

완숙한 기량을 발휘한 수작인 점에서 조선후기 장인 사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좌성사

서운 북산리 석조여래입상: 향토유적

탕흉대 글자

도로변 텃밭이 알차다~

포도밭

서운산 원경

종착점 서운면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