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는 털이 옷인데, 옷을 입히는게 뭐하다. 사람이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개 자체에게는 좋지 않을거다. 개는 자칼에서 진화했는데, 가축화되면서 뇌기능 70%가 사라졌다. 주인이 먹이를 주니 스스로 먹이를 찾는 기능이 퇴화했다. 극단적으로 개는 충성만 발달하니, 주인이 죽으면 모든게 붕괴되어 죽는 경우가 많다.
* 커뮤니케이션은 공감하는 능력인데 서로 소통하는 것으로 존재 간에 서로 어떤 의견이라든지 생각과 감정을 전하고 받는거니까 이렇게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다. 로렌츠 같은 경우에는 결국 가장 중요한 게 우리가 이제 뭘 알기 위해서는 관찰을 잘 해야 된다. 정치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주입시키려기 때문인데, 로렌츠는 관찰을 아주 잘하고 있거든요, 결국 애정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이 관찰을 제일 잘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게을러야 된다는거다. 아예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는거고, 야생 동물에서 제일 부지런함의 대명사가 꿀벌인데, 사실은 부지런하지 않고 하루종일 무의도식하면서 보낸다. 개미도 마찬가지이고. 로렌츠에 따르면 하루 종일 바라봤는데 우리가 일을 할 때만 봐서 그렇지, 대부분은 집에 들어가 있다는거다. 동물을 관찰하려면 이 야생동물의 템포에 맞춰야 되는데, 게으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 우리가 코알라를 게으르다고 하는 대표적인 동물인데 왜냐면 유칼립투스를 많이 먹어 하루종일 잔다는데, 기러기 등 대체로 동물은 대체로 다 게으르다. 기러기도 먹이를 찾기 위해 1시간만 활동하며 나머지는 논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러기를 관찰하려면 지겹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만이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마사이족을 연구해보면 우리가 생각한 만큼 이 사람들이 일을 많이 하는게 아니다. 극단적인 경우 하루에 1시간 정도만 일을 해도 충분히 먹고 살았다는거다. 잉여생산이 늘어나면서 농업을 하고 또 전기가 만들어져 밤을 활용하면서 일이 많아졌다. 사자도 극히 게을러서 먹이를 먹은 후 배 꺼지게하려고 어슬렁거릴 뿐이라 사자 우리를 크게 만들 필요도 없다고한다. 인간의 경우도 임꺽정이 기골장대하다는게 타고난 것이지 예전 사람들이 운동을 해서 몸을 다지는게 아니다. 사자들도 동물의 세계에서 먹이 잡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니 맨날 부지런하게 보이는거지 실제로는 게으르기 때문에 동물원에서 계속 자는 모습만 본다.
* 로렌츠에 따르면 집안에 가장 생기가 있고 자연의 한 조각을 정말 집에 놓고 싶으면 수족관을 두라고 한다. 수족관에 물고기를 키우면 식물도 자라며, 수조에서 식물과 동물들이 어울려 하나의 완벽한 생태계가 구축된다. 완벽한 자연은 연못이지만 연못을 집에 못들여 놓으니 수족돤이 좋은 사례가 된다. 수족관에서 가장 무자비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데 자기가 본 자연계의 가장 잔인한 동물은 물방개 유충이다. 이 유충은 유선형으로 길이 6센티미터 정도인데, 머리에 집게 모양의 턱이 있고 사냥감이 나타나면 밑으로 들어가 턱을 치켜들고 주사바늘처럼 독을 투입해 사냥감의 내장을 녹여 빨아먹고 껍질만 남기니, 마치 무협소설의 흡성대법이다.
* 싸움고기는 두 마리가 쳐다보는 순간 무지개처럼 현란한 색채를 보여주며 싸움이 시작되는데, 지느러미가 찢어지고 수족관 벽에 쿵 소리가 날 정도이다. 물고기는 굼뜨고 평화로워 보인다는 속설은 잘못되었다. 물고기는 전염에 약하고 아주 공격적이다.
* 개는 잡종이 튼튼하고 순종은 병약한데, 국가도 마찬가지다.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은 이슬람이 지배하다가 물리친 후 유대인까지도 축축하였는데, 이 유대인들이 네덜란드로 이주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네덜란드는 문화와 산업이 크게 부흥하였다. 유태인을 쫒아낸 스페인은 쇠망하고 받아들인 네덜란드는 해상강국으로 도약하였다. 고대 그리스도 아테네가 주변국가에 비해 별 볼일 없었지만, 주변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강국이 되었다. 우리 민족, 우리 종교, 우리 국가 이런면을 너무 강조하면 발전이 없다. 뒤섞이면서 발전한다. 우리가 다문화를 차별하는 듯한 그런 태도는 우리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다르면 차별하고 떼어내려는게 본능적으로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종간에서 보다 동종간에서 더 치열한 전쟁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의 중동이나 발칸반도도 이종이라기 보다는 동종이다. 조그마한 차이라도 부각시켜 서로 싸운다. 아예 다르면 무관심인데, 동질성이 강할수록 더욱 강하게 충돌한다. 영화 아메리칸 싸이코에서 등장인물들은 뉴욕의 아주 잘나가는 애들이고 비슷하게 집안도 좋지만, 누구 명함이 멋진 디자인과 멋진 금박을 입혔다 이런 별거 아닌 것으로 사람을 죽인다. 나랑 비슷한 환경에 있으면서도 이 안에서 누가 더 나은지, 누가 더 별로인지 이걸 가지고 서로 경쟁하고 겨룬다.
*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말이나 언어가 아닌 다른 커뮤니케이션으로 교감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도 교류가 원만히 잘 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떤 다른 문화권에서도 커뮤니케이션과 공감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나을거다. 공자는 군자가 닦아야 할 여섯 가지 기예, 즉 6예(六藝)를 언급했는데, 예법(禮), 음악(樂), 활쏘기(射), 말 다루기(御), 글씨(書), 산술(數). 이중에 말 다루기는 마차를 모는 방법인데 말이 통하지 않는 말과 교감을 하며 말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한다. 예는 제사지내는 것인데 죽은 사람과 커뮤니케이션 하는거고, 악은 음악을 통해서 시간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활은 내 신경과 근육을 컨트롤하여 자신을 다룬다. 말을 잘 다루면 전투력이 수십배 증가한다.
* 로렌츠는 짐승, 새, 물고기와 대화했다. 인내심과 애정을 가지고 대화했다. 우리는 비둘기는 좀 안전하고, 늑대는 위험하다고 생각하는데 정반대이다. 비둘기가 싸우는 것을 보면 부리가 뭉퉁하여 상대방에게 치명타는 주지못하지만 머리부터 꼬리까지 계속 쪼아대며 털을 다 뽑을지경까지 만든다. 보통 이겼다고 생각하면 자제력을 발휘하는데, 비둘기는 그러하지 못한다. 늑대는 한방에 그냥 목줄을 무너뜨리는데, 늑대는 싸우다가 잡히면 약자가 자기 목을 내민다는 것이다. 맹수는 치명타를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상대가 약자로 고개를 숙이면 오히려 봐준는 자제력을 발휘한다. 노루도 공격성이 강하여 뿔로 들이받는 경우가 아주 많다.
* 검정색은 중세 때 수도사들의 상징이었는데 검정이란 항상 내가 가장 낮은 자세로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떠받드는 직업, 즉 공무원도 공복이라고 하는데, 항상 하찮고 초라하고 낮은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지금은 문화가 달라져 조폭들이 검정색을 입고 있다. 예전에는 칼과 총으로 싸울 때는 대면하여 싸우는 것인데, 근대이후 기관총이 나오고 나서부터 사람이 되게 이상해지고, 지금은 미사일이 나오다 보니까 무감각해져서 단추 하나에 수십만 명이 사상을 입게된다. 이젠 동물보다 못한 지경이다. 동양에서는 降者不殺(항자불살)이라하여 항복하는 적은 죽이지 않는 법인데, 그런데 역사를 보면 항우가 조나라와의 전투에서 항복한 50만명을 모두 죽여 천하의 인심을 잃어버린다.
*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결국 이 세계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그리고 전기줄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진정한 자연의 한 조각을 집에 놓는 행위 입니다. 당신의 눈이 자연의 초원과 생물의 아름다움을 동경 한다면 수족관을 사라. 주택이 생기를 원한다면 새 몇 마리를 사라. 당신의 고독한 귀가를 반기고 말상대를 원한다면 개를 사라.
- 내용
* 처음에 동물과의 생활에 대해 어두운 면을 이야기: 이 어두운 면을 감내하고 희생하는 마음의 크기야말로 동물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나타내기 때문 => 학생 때 집에 동물 데려오도록 인내해준 부모께 감사, 아내의 긴 세월 동안의 인내 (회색 기러기가 침실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에 창밖으로 나가기, 새들의 가구와 커텐 위 배설물) => 고등의 정신적으로 활발한 동물은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해 줄 때에만 참모습을 보여준다. 우리 속에 살 때는 위축되고 가련해 보인다. => 전도된 창살효과: 까마귀와 함께 두면 위험하므로 정원에 큼직한 우리를 만들고, 그 속에 보행기와 함께 아이를 집어 넣었다.
* 집 암기러기 마르타니는 야생의 약혼자가 의당 갖게되는 마음속의 거리낌을 무시하고 완전히 자유스럽게, 그리고 두려움없이 그를 데리고 우리 집의 모든 곳을 돌아다녔다. => 수기러기가 낯선 공간, 그것도 문을 통해 홀 안으로 다시 계단을 올라 침실까지 들어왔다면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었고, 가히 작은 영웅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 수족관은 세계다. 왜냐하면 자연적인 연뭇이나 호수에서처럼, 아니 우리 전체 지구에서처럼 수족관 속에는 동물과 식물이 생물학적 균형을 이루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식물은 동물이 내놓은 이산화탄소를 사용하고 거기서 산소를 분리해 낸다. 식물도 마찬가지로 산소를 빨아들이고 이산화탄소를 내놓는다. 그러나 성장하는 식물은 그와 관계없이 이산화탄소를 취한다. 이것은 식물이 자신의 신체를 구성하기 위한 탄소를 필요로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에서 산소를 분리해낸다는 말이다. 산소는 식물이 필요로하는 양보다 초과 생산된다. 결국 식물은 동물의 배설물과 시체를 이용할 줄 알고 그를 통해 물질대사를 가능하게 해준다. => 연못 수족관이 가장 자연적이고 가장 완전한 생명 공동체가 들어있다.
* 수족관 속의 두 맹충: 호랑이나 사자같은 맹수들은 물방개 유충에 비하면 순한 양이다. 그것은 날씬한 곤충으로 길이 6센티미터, 여섯개의 다리에 붙은 여섯개의 털로 된 노는 물 속에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한다. 넓고 평평한 머리에는 한쌍의 집게 모양의 턱이 있다. 이것은 속이 비어 있어서 독을 주입하는 주사기로 쓰임은 물론 먹이를 빨아들이는 관으로도 쓰인다. 이놈은 수초에 조용히 매복하고 있다가 갑자기 사냥감을 향해 돌진한다. 그것도 사냥감 밑으로 가서 머리를 번개같이 위로 치켜든다. 그러면 사냥감은 집게 속에 이미 들어와 있게 된다. 유독한 소화액 주사는 사람에게도 엄청난 아픔을 준다. 이놈이 속이 빈 집게를 통해 사냥감에게 주사하는 분비액은 사냥감의 내장을 모두 걸쭉한 수프로 녹여 버린다. 이 수프는 집게 속의 같은 통로를 통해 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사냥감은 부풀어오르면서 처음에는 커지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다가 차차 줄어들어 속 빈 자루처럼 집게 끝에 매달려있다가 떨어진다. => 좁은 수족관 내에서 몇 마리만 있어도 수일 내 0.5센티미터 이상의 큰 동물은 남김없이 잡아 먹고,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잡아먹는데 먼저 공격하느냐가 중요하다.
* 또다른 맹충은 몸집 큰 애슈나잠자리 유충이다. 이놈은 화려하게 청색, 황색으로 치장한 이른바 악마의 바늘이다. 혀같은 것이 유충의 머리에서 나와 사냥감에게 빠르게 움직요 가서 사냥감을 턱 근처에서 잡아 찢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 모든 물고기는 맨 처음 검역 수조를 거치지 않으면 백의 아흔아홉은 전염병을 옮긴다. 가시고기와 싸움고기는 화려한 색채를 지니며, 다혈질의 기질과 격정을 갖는다. 싸움고기는 평소에는 강렬한 색채가 없다가, 다른 싸움고기가 나타나면 색채가 빠르게 펼쳐지는데, 즐거운 춤이 아니라 삶과 죽음, 생성이냐 파멸이냐의 아주 심각한 춤이다. 암수컷은 사랑의 교미에 이를 수도 있고, 수컷 두마리는 처절한 혈투에 이를 수도 있다. 싸움고기의 돌진력은 너무나 강하고 커서, 수족관의 유리창에 부딪히면 똑똑히 들릴 정도의 소리가 난다.
* 갈가마귀와는 24년간 동거. 상심하여 지를 때 소리가 촉이라 촉으로 이름지음. 촉이 따르는 것은 저자가 까마귀 소리를 잘 흉내내기 때문. 자기 종족을 전혀 본 일이 없이 혼자 자란 새는 그의 친교 충동이나 성애는 성장기의 어떤 예민한 시기에 같이 살게 된 존재에게 향하는데, 대개는 사람이 그 대상이다. 촉이 성장했을 때, 가정부에게 연정을 느끼고 삼 킬로미터 떨어진 그녀 집에 가 죽치고 살았다. 갈가마귀의 사랑과 산란의 시기가 지난 후 집에 돌아왔다. 촉에게 양자를 들였는데, 정상적인 어미가 자기 새끼에게 하는 것과 똑같은 정성으로 보살폈다. 모성애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임에 틀림없다. 갈가마귀 집단에도 서열이 존재하며, 새로 왕이 되면 그 암컷도 마찬가지 지위를 획득. 떠돌이 갈까마귀 떼들과 섞여 있었지만, 리드 2마리의 역할로 나머지 집에서 키우던 어린 갈까마귀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 옴. 갈까마귀는 소리에 따라 의사소통하며, 저자는 이런 소리드을 구분하고 소리를 내기도 한다. > 조류 결핵에 걸렸던 여섯 마리의 거위 새끼중 유일한 생존 암거위가 닭들 사이에서 성장했는데, 새로 사들인 잘 생긴 수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수탉 한 마리에게 반해서 쫓아 다님. 어느 동물원에서 일기가 나빠 죽은 공작 새끼중 유일한 생존 숫컷을 큰 거북이 자라는 따뜻한 방에서 키웠더니, 이 가련한 공작은 아름다운 암공작의 매력에는 장님이고 거북 앞에서만 발정을 했다.
* 당신의 눈이 자연속의 초원과 생물의 아름다움을 동경한다면 수족관을 사라. 당신의 주택이 생기를 얻기 원한다면 작은 새 몇 마리를 사라. 고독한 사람으로서 당신의 귀가를 반기는 누군가를 집에 두고 말상대를 하고 싶다면 개를 사라. 주택에서 개를 기르는 것이 잔인하다고 생각은 하지마라. 그의 행복은 당신이 얼마나 오래 그와 같이 있어 주느냐, 또 당신이 얼마나 많은 길을 그를 데리고 다니느냐에 달려있다. 다만, 수명이 짧아 십년이나 십오년 후에 슬픈 이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유의하라. 이런 걱정이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면, 가장 사육하기 쉬운 토종새 찌르레기가 있다. 큰 새장을 요구하는 찌르레기가 너무 버겁다면 공간과 시간과 수고를 크게 요구하지 않으면서 말상대가 되어줄 작은 새를 원한다면 검은방울새를 권한다..... 동물의 죽음은 자연을 이해하는데 둔감한 사람이라도 동정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므로 천천히 죽어가는 동물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실제로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을 제발 구입하기 바란다. 실망이 너무 커서 동물 사육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는 대개 처음에 동물 선택을 잘못한데 원인이 있다. 금빛햄스터는 즐거움을 우습고 우아하게 표현할 줄 아는 존재이며, 방 친구로서 좋은데 갉지도 않기 때문에 방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해도 무방하다.
* 사자는 모든 육식동물 중에서 가장 게으르다. 그래서 작은 우리에 갇혀 있어도 고통스럽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먹은 것을 소화시키려는 산책의 성격이다. 여우와 늑대는 옮겨다니는 강한 충동을 억제당하기 때문에 동물원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이다. 동물원에서 백조들은 날개죽지를 잘라버리는데 철새로서 날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철새 이동 시즌이 오면 백조들이 날개를 퍼득거리고마는 모습은 참으로 눈물겹다. 앵무새는 영리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극히 활발한 동물이지만, 작은 새장에 갇혀 있는 권태를 느낀다. 앵무새가 되풀이하여 목을 앞으로 숙이는 동작은 새장을 빠져 나가려하는 헛된 동작이다. 좁은 우리 속에서 생활하는 가장 불쌍한 동물은 원숭이이다. 원숭이는 아마도 정신적 고통을 통하여 심각하고 뚜렷한 육체적 병을 얻게되는 유일한 동물이다.
* 늑대의 싸움은 이빨로 물려는 입질이 빠르게 오가며 입술에만 약간 상처를 주며, 싸움의 승패는 수세에 몰린 늑대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목덜미를 상대방 이빨에 내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실제 이빨로 물지는 않는다. 약자의 공손한 태도가 유지되는 동안 강자는 무는 것을 자제한다. 하지만 비둘기는 상대를 부리로 쪼아서 죽도록 껍질을 벗기는 지경에 이른다. 칠면조와 공작은 인척 관계로 비슷하기에 수컷의 표현 동작으로 적대관계를 알아차릴 수 있어서 싸움이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칠면조가 힘이나 몸무게에서 더 강하지만, 공작이 더 잘 날 수 있고 또 상이한 공격법을 지녀 항상 칠면조가 지게된다. 칠면조의 항복의 몸짓을 알지못하기 때문에 공작은 계속해서 쪼고 밟기 때문에 사람이 개입하지 않으면 칠면조 인생은 끝장이 난다. 칠면조는 많이 밟힐수록 자기 순종 반응에 더 단단히 죄어들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작은 그 순종 반응을 모르기에 자제력이 통제되지 못한다. => 1935년 11월 '동물의 윤리와 무기" 전쟁을 하는 두 적수가 상대를 완전히 파멸시켜 버릴 능력을 갖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전인류가 두 진영으로 갈라질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는 토끼처럼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늑대처럼 행동할 것인가? 인류의 운명은 이 질문의 향방으로 결정될 것이다. 진실로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 고양이는 오늘날에도 아직 진정한 가축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가축은 예속된 노예이다. 오직 개만 친구일 따름이다. 물론 복종하는 친구, 하위의 친구다..... 오늘날 개가 인간을 위해서 갖는 가치는 사냥꾼과 경찰관 정도의 몇몇 직업을 제외하고는 순전히 정신적인 것이다. 당신의 개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숲 속에서 나를 따르는 야생 동물이 나에게 줄 수 있는 것과 아주 흡사하다. 즉 인간이 문명을 가지면서 잃어버렸던 자연의 실체를 다시금 인간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 마음의 안정, 그것은 고향의 깊은 숲을 생각하며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과 같다.
* 회색기러기의 새끼는 태어나서 제일 먼저 사람을 만나게되면 그 사람을 엄마로 생각하고 줄곧 따라다니게 된다. 그런데 천둥오리 새끼들은 그와 반대로 따르지 않았다. 여기서, 실험을 하였는데, 천둥오리 새끼들이 부화하여 나오면 새끼들 앞에서 꽥꽥 소리를 내어보니 무리를 이루어 따라왔다. 즉 시각적인 모습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부르는 소리에 천성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