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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2022.1.6)

클리오56 2022. 1. 6. 12:09

 

내용 및 소감

- 젊은 작가 정세랑의 글은 편하게 읽을 수 있어 우선 반갑다. 다른 고전 문학작품들 보다 훨씬 시대에 맞는 구어체라 그런가.  작가의 톡톡 튀는 상상력이 부럽고 재밌고 이야기가 짧아서 더더욱.... 그래서 손에 잡으면 반나절이면 한권을 마친다. 트렌디한 어휘는 사전을 찾아가며 확인해보는 것도 솔솔한 재미다. '용기있는 자가 재화를 얻는다'는 마무리 편은 두 주인공 용기와 재화의 운명적 사랑을 확인시킨다. 

 

* 덧니만이 리얼했어: 인생이 테트리스라면, 더 이상 긴 일자 막대는 내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을 안고 버티는 거다.  

 

* 해피 마릴린: 로봇 자녀를 나도 모르게 차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정보통신부가 함께하는 로봇자녀 오류예방법, 피보다 진한 전류 등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육아법 또한 일반교양이 되었다. => 로봇 마릴린은 부모 장례후 애도를 위해 업데이트를 거부하는 로봇의 최초 등장이었다. => 소송으로 발전 (정부는 벌금 부과, 주인은 거부, 회사는 소송제기)... 모두 마릴린을 사랑했다. 인간으로서는 흉내낼 수 없는 연설가였고, 훌륭한 저작들을 남겼으며, 스스로 작동정지를 결정했을 때는 국장이 치러졌다. 

* 해피 마릴린: 지진에서 사무원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붕괴의 순간, 청소 로봇 열두 대가 감싸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사무원은 그 건물에서 유일하게 (재래식) 로봇들에게 아침 인사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 로봇들에게 영혼이 없다고, 저는 도저히 단언할 수 없습니다.

 

* 두산백과 출처: 괴력난신[  ]: 괴이한 것, 힘, 반란, 귀신이란 뜻으로 의심스럽고 정상적이지 않은 이성적으로 설명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 괴이할 괴,  : 힘 력,  : 어지러울 난,  : 귀신 신 =>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께서는 괴이(), 용력(), 반란(), 귀신()에 대한 것을 말씀하지 않으셨다[]."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말을 할 때 무익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공자는 이상하고 의심스러운 것, 상식적이지 않은 괴력, 신하가 임금을 시해하거나 자식이 아비를 시해하는 것과 같은 인륜을 거스르는 행위,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 같은 것들은 교육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여겨 입에 담지 않았다.

 

* 러브 오브 툰드라: 얼음여왕에 도달한 유전개발자는 거꾸로 튄 드릴 조각에 가슴을 관통당했고, 탐험가는 열기에 녹아 부러진 고드름에 머리를 관통당했다. 세번째 연인은 싱어송라이터였고, 열다섯 곡의 사랑 노래를 만들었다. 그 노래들엔 마법도 없고, 구원도 없고, 약속도 없었지만 순도 높은 결정들이 박혀있었다. .... 지구온난화로 얼음 관이 모두 녹았고... 여왕은 미지근하게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기를 짜고는, 드디어 낯선 악기의 소리를 제대로 들었다. 

 

* 뻑큐, 뻑큐, 뻑큐: 용기는 팀장이 되기 싫었다. 다른 사람을 책임질 만한 그릇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시받는 일만하고 자동운전 모드로 살고 싶었다.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걸 알면서도.

 

* 닭 발은 창가에: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엉뚱한 것이 주어지는데 심지어 후자가 더 매력적일 때도 있다. 그렇게 난감한 행운의 패턴이 삶을 장식하는 것이다. 물론 매력적인 후자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최초의 마음, 그 간절한 마음은 쉽게 지워지지 않아 사람을 괴롭히기도. (카레 대신 짜장을 먹을 때)

* 닭 발은 창가에: 단심, 흐리멍덩한 븕은색이 아니라 좌심실의 붉은색, 가장 치명적인 부분을 헤집어 보여주는 것 같은 진지함이 있었다. 그 순간에는 옛날 사람들처럼 고전적으로 진지했다. 


* 용기 있는 자가 재화를 얻는다: 인류가 20만년이나 진화해놓고 뻔하게 악한 부분을 왜 제거하지 못했는지, 이 진부함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쓰는 사람으로서 계속 곱씹어야 하겠지만.

 

책소개

정세랑이 썼으며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의 우주, 그 씨앗!
분야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소설 영토를 종횡무진하는 상상력과 거침없는 필력으로 매체와 독자의 마음을 모두 사로잡은 《지구에서 한아뿐》, 《보건교사 안은영》의 저자 정세랑의 장편소설 『덧니가 보고 싶어』. 8년 만에 전면 개정하여 선보이는 저자의 첫 장편소설로, 장르 소설가 재화가 작품 속에서 헤어진 남자친구 용기를 아홉 번이나 죽이게 되고, 그 죽음의 순간이 용기의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진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장르 소설가로 바쁜 삶을 사는 재화에게 용기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 하루쯤은 함께하고픈 남자다. 이제는 멀리서 소식을 듣는 사이가 되었지만 소재 파악이라도 해둬야 지구가 멸망할 때 연락이라도 해보지 싶어 가끔, 헤어진 그를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일까. 재화가 발표하는 소설마다 용기를 닮은 인물이 들어 있었다.

첫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재화가 작품을 하나씩 퇴고할 때마다 그 죽음의 순간이 용기의 피부에 문신처럼 글씨로 새겨진다. 그러던 어느 날 재화는 자신의 우편물 봉투에서 정교한 칼집을 발견하곤 누군가가 자신의 우편을 뜯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인 선이 언니는 보안업체 출동 요원으로 일하고 있는 용기에게 부탁해 보안 장치를 설치하라고 권하지만 재화는 연락을 망설이는데…….

저자소개

저자 : 정세랑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0년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2013년 『이만큼 가까이』로 창비장편소설상을, 2017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았다.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장편소설 『지구에서 한아뿐』 『재인, 재욱, 재훈』 『보건교사 안은영』이 있다.
 

작가의 말

재화 선배와 선이 언니에게 다시 한번 이름을 빌려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책꽂이 한 칸을 비워두고 이 첫 책부터 나란히 꽂아주셨던 독자분들의 사랑은 언제나 저의 보호막이었습니다.
소설이 낡는 속도는 세계가 나아가는 속도와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한번 더 이 이야기를 통과하며 정교하지 못했던 부분을 깎아낼 수 있어 기뻤습니다. 깎아낸 부분보다 더해진 부분이 더 크길 바랄 뿐입니다.
여전히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 간절히 농담이 되고 싶습니다.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의 입속에서 슈팅스타처럼 톡톡 터지고 싶은 마음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가벼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얻을 수 있는 무게를 가늠하며, 지치지 않고 쓰겠습니다.

2019년 가을
정세랑

목차

재화│시공의 용과 열다섯 연인들 7
용기│바닐라와 피스타치오 21
재화│늑대 숲에 팔을 두고 왔지 29
용기│덧니만이 리얼했어 45
재화│해피 마릴린 53
용기│가스총을 만져봐도 돼요? 65
재화│러브 오브 툰드라 73
용기│뻑큐, 뻑큐, 뻑큐 83
재화│닭 발은 창가에 87
용기│거대 고구마를 꿈꾸다 103
재화│물고기 왕자의 전설 109
용기│총알을 다섯 개 넣고 하는 러시안 룰렛처럼 125
재화│항해사, 선장이 되다 131
용기│지구가 기억하는 러브 스토리 151
재화│나랑 시합을 할래? 163
용기│아무도 안 죽는 이야기를 쓰면 안 되니? 187
재화│마지막 키스를 갱신했어야 했는데 195
용기│절단면이 깨끗해야 다시 이어붙일 수 있어 203
재화│3분 26초 전이었다 209
용기│용기 있는 자가 재화를 얻는다 217

작가의 말 223

책 속으로

결국 남는 건 사랑 이야기야. 다른 이야기들은 희미해지고 흩어지더라. 로맨스만이 유일무이한 거라고. _18쪽

재화씨, 재화씨는 왜 장르를 써? 얼른 재등단해. 쉽잖아. 적절한 주제에 대해 모나지 않게 쓰면 돼.”
그때 재화는 상처를 받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 뿐이었는데, 그건 앞으로도 부적절한 주제에 대해 모나게 쓰리라는 날카로운 예감 같은 것이었다. 용 같은 것 말고, 좀더 부적절한 이야기를 써야지. 모두 입을 모아 부적절하다고 말할 만한 이야기를. _19-20쪽

친밀감이란 기분 좋은, 심지어 약간 맛있는 냄새가 나는 향초 같은 것. _31쪽

“한 사람을, 모두는 무리지만, 한 사람만은 행복하게 해줄 능력이 있는데 그 능력을 쓰지 못하는 건 슈퍼 파워가 있는데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기분이에요. 내 슈퍼 파워를 선이씨를 위해 쓰게 해줘요.” _33쪽

턱밑까지 찰랑찰랑하다가 버틸 수 없어 쏟아지고 마는 그런 고백 같은 것들, 너무 멀게 느껴졌지만 세상에 아직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_34쪽

재화와 함께 있었을 때를 떠올리자면, 가끔 재화가 용기를 보고 웃을 때 살짝 드러나는 덧니만이 이 세계에 속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개 같은 얼굴을 뚫고 단단하게 올라오던, 보석 같은 덧니. _50쪽

인생이 테트리스라면, 더이상 긴 일자 막대는 내려오지 않는다.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_52쪽

재화는 용기의 좁은 세계, 그 건강하고 건전한 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전남친을 자꾸 죽여버리는 짓, 이제 그만하고 싶지만. _63쪽

여성들이 연애를 계속 선택하는 이유는 사실 감정 때문이 아니라 안전 때문 아닐까, 그늘에 도사리고 있는 범죄자들의 타깃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기 위해…… 사실 용기를 가끔 그리워하는 것은 용기와 있을 때 누구도 재화를 공격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그럼 용기가 그리운 게 아니라 안전했던 상태가 그리운 것일 뿐일 텐데. _89쪽

때때로 인생이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없고, 엉뚱한 것이 주어지는데 심지어 후자가 더 매력적일 때도 있다. 그렇게 난감한 행운의 패턴이 삶을 장식하는 것이다. _90쪽

어쩌면, 하고 재화는 엎드려 얼굴을 묻고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 이어져 있는 걸지도 몰라. 성층권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냄새 나는 연기들로부터 안전한 높은 하늘에 우리가 이어져 있는 어떤 망이나 막 같은 게 있는 걸지도. 텔레파시랄 것까진 없지만, 내가 널 오래 생각하면 너도 날 잠시쯤은 생각해줄지 모른다는 가능성. _94쪽

옛날 사람들처럼 편심片心, 촌심寸心, 단심 같은 단어들을 쓸 때마다 지잉, 하고 뭔가 명치께에서 진동하고 만다. 수천 년 동안 쓰여온, 어쩌면 이미 바래버린 말들일지도 모르는데, 마음을 ‘조각’ 혹은 ‘마디’로 표현하고 나면 어쩐지 초콜릿 바를 꺾어주듯이 마음도 뚝 꺾어줄 수 있을 듯해서. 그렇게 일생일대의 마음을 건네면서도 무심한 듯 건넬 수 있을 듯해서. _101쪽

사랑하지 않아야 잘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_114쪽

“미안하다, 집 한 채 못해주고.”
“에이, 엄마, 그런 말이 아니잖아. 집은 됐으니까 안 쓰는 전기담요 있으면 하나만 주라.”
그러자 갑자기, 엄마가 눈을 번뜩였다.
“이불 속에 남편이 있으면 하나도 안 추운데!”
“……그렇게 물건 하나 장만하라는 식으로 말해도 소용없어.”_135쪽

나는 오늘도 네 좌표를 알지 못해. 우리의 좌표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알지 못해. 네가 나빴는지, 내가 나빴는지, 우주가 나빴는지 알지 못해. _150쪽 닫기

출판사 서평

“키스할 때마다 어쩐지 덧니 위주로 했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 거지?”

정세랑 장편의 시작은 이 소설이 열었다.
8년 만에 전면 개정하여 선보이는 그의 첫 장편소설!

2010년 1월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등단한 후 창비장편소설상,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고 미디어 플랫폼 넷플릭스의 러브콜을 받는 등 각종 매체와 독자의 마음을 골고루 사로잡은 작가 정세랑의 ‘첫’ 장편소설이다. 분야와 소재를 가리지 않고 소설 영토를 종횡무진하는 상상력과 거침없는 필력은 이 소설에 아홉 개의 이야기를 짜넣으며 조합한 솜씨로 일찌감치 예고된 것인지 모른다.

장르 소설가 재화가 작품 속에서 헤어진 남자친구 용기를 아홉 번이나 죽이게 되고 그 죽음의 순간이 용기의 피부에 문신처럼 새겨진다는 게 작품의 큰 줄기다. 정세랑의 특장인 생동감 있는 대사의 말맛이 잘 살아 있는 이번 장편은 스릴러적인 긴장과 비판적 시선을 놓지 않으면서도 발랄하게 튀어오르는 탄성과 재치로 읽는 이에게 건강한 웃음을 남긴다.

8년 만에 전면 개정하여 선보인 이 작품은 동세대의 감수성과 달라진 지형을 영리하게 반영하며 거의 모든 문장을 고치고 설정을 세밀하게 다듬었다. 그동안 ‘한국 문학’의 경계가 어디인지 시험하며 다채로운 빛깔로 새로운 종이 되고자 꿈틀거려온 그다. 이제 새로운 독자들의 감수성이 펼쳐둔 지도 위 정세랑이라는 별자리는 그 한가운데서 빛난다. 좋은 이야기는 어려운 선택을 하는 이들의 편에 서는 이야기라고 믿는 작가 정세랑. 그가 썼으며 앞으로 써나갈 이야기의 우주, 그 씨앗이 여기 있다.

“야간근무를 하면 말야, 세상의 망가진 부분들이 보여.”

갑자기 모든 게 좋아질 리가 없다.
이렇게 쌓여서, 해소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안고 버티는 거다.

용기는 장래가 촉망되는 럭비 특기생이었으나 무릎 부상을 당해 지금은 보안업체 출동 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후임을 언제 뽑아줄지 기약 없는 막내 신세인 그에게는 선배들이 미루고 미룬 진상 업무만이 떨어진다. 그럴싸한 긴급상황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채 술에 취한 고객의 갑질을 상대하느라 골치가 아픈 그에겐 연하의 여자친구가 있다. 당돌하게 사랑을 요구하고 모든 것이 분명한 그애에게서는 누구나 좋아할 바닐라 맛이 난다. 그에 비하면 전 연인 재화는 늘 떨떠름한 초록색 맛이었다. 안고 있어도 안은 것 같지 않은, 속을 도무지 보여주지 않는 재화는 딱딱할 정도로 진하고 단맛은 없는 녹차 아이스크림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용기의 피부에 이상한 문장이 하나둘 새겨지기 시작한다.

“안 해. 아무도 안 만날 거고
이 끝나가는 세상에서 읽고 쓰기만 하다가 조용히 죽을 거야.”

뭔가 중요한 부분이 고장나버렸다면 더욱 들켜서는 안 된다.
상대가 알아버리면 바로 도망치고 말 테다.
용기가 그랬던 것처럼.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밤에는 장르 소설가로 바쁜 삶을 사는 재화에게 용기는 지구가 멸망한다면 마지막 하루쯤은 함께하고픈 남자다. 이제는 멀리서 소식을 듣는 사이가 되었지만 소재 파악이라도 해둬야 지구가 멸망할 때 연락이라도 해보지 싶어 가끔, 헤어진 그를 떠올리곤 했다. 그래서일까, 재화가 발표하는 소설마다 용기를 닮은 인물이 들어 있었다. 첫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재화가 작품을 하나씩 퇴고할 때마다 그 죽음의 순간이 용기의 피부에 문신처럼 글씨로 새겨진다. 그러던 어느 날 재화는 자신의 우편물 봉투에서 정교한 칼집을 발견하곤 누군가가 자신의 우편을 뜯어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인 선이 언니는 용기에게 부탁해 보안 장치를 설치하라고 권하지만 재화는 연락을 망설이는데……
재화가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각각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포털을 탄 듯 새로운 시공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그 이야기의 결말에 감도는 끝맛에는 다른 차원에서 살았던,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존재가 만나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에 겪는 슬픔, 후회, 연민, 분노, 원망, 그리움 등 온갖 감정의 스펙트럼이 담겨 있다. 어쩌면 연애는 서로 다른 차원으로 가는 문을 여는 일인지도 모르니까. 이제 작품 속으로 워프할 일만 남았다.


시공의 용과 열다섯 연인들
한 번도 무리한 요구를 해온 적 없는, 품격이 있다고까지 여겨지던 시공의 용이 어느 날 공물로 열다섯 명의 ‘처녀’를 요구해 충격에 빠진 마을. 청년들은 동굴로 그들을 구하러 가고 이 열다섯 연인들에게 시공의 용은 이상한 제안을 한다.

늑대 숲에 팔을 두고 왔지
기이한 병에 걸려 몸집이 거대해진 숲의 늑대들은 숲을 파괴하고 도시를 지으려던 인간들을 몰아낸다. 반면 여전히 숲에 남아 살아가는 사람들은 늑대족으로 불리며 인간과 늑대 양편에서 배척받는다. 어느 날 늑대족은 숲에서 팔을 크게 다친 인간의 아이를 구하게 되는데……

해피 마릴린
환경 악화로 인구정책이 강화돼 아이 대신 진짜 사람처럼 성장할 수 있는 자녀 로봇을 들이게 된 시대. 소녀 로봇 마릴린은 부모를 잃은 뒤 성장 업데이트를 거부한다. 자칫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 강제로라도 로봇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제조사는 소송을 제기하고 퇴임을 앞둔 판사가 이를 맡게 된다.

러브 오브 툰드라
척박한 환경에서 감사하며 살아가는 툰드라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게 결코 끝나지 않을 혹한이 찾아오고 만다. 이를 풀기 위해선 가장 깊은 얼음에 스스로 갇혀야 하는 희생주술이 필요하지만 어떤 부족장들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가장 어린 여성이 자원해 얼음여왕이 된다. 겨울은 물러나고 여왕에게는 세 명의 연인이 차례로 찾아와 그 얼음을 녹이려 한다.

닭 발은 창가에
송도 최고의 시재로 이름난 기생 어홍. 어린 유생 규진에게 마음을 주고 물밑으로 도와준다. 시간이 흘러 첫 발령을 앞둔 규진을 따르기로 마음먹지만 돌아온 것은 배신뿐이다. 이별을 앞두고 어홍은 연인의 목에 매달려 서슬 퍼런 말을 속삭이는데……

물고기 왕자의 전설
언젠가 물고기 왕자가 찾아오면 사막이 물로 가득차리라 믿는 오아시스 사람들. 그들은 성인식으로 몸에 아가미 문신을 새기고 물고기를 먹지 않는 금기를 엄격히 지킨다. 그러던 어느 날 오아시스를 탐낸 동쪽 나라의 군대가 쳐들어오고, 마을 사람들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을 준비한다.

항해사, 선장이 되다
우주여행 크루즈를 운항중인 항해사는 두 번이나 엉뚱한 좌표로 워프를 해 질책을 듣는다. 하지만 항해사 커뮤니티에서도 그와 비슷한 경험담과 배의 실종 소식이 올라온다. 수집한 좌표들을 계산해본 항해사는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변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데……

나랑 시합을 할래?
작은 요새에서 태어난 공주는 결혼하게 된다면 왕국이 영원히 사라지리라는 예언을 받았다. 그녀가 성년이 되자 이웃나라의 왕자들이 찾아와 저마다 자신이 저주를 풀어줄 특별한 상대라고 주장하고. 그들에게 공주는 자신과 시합해서 이기면 결혼하겠다고 제안한다. 대신 그들이 지면 땅의 일부를 내놓는 조건으로.

그리고, 재화와 용기를 이어주는 마지막 단편 알파카 양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