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2017.2.1)
책 따라하기: 이장희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아는 만큼 보인다했으니 책을 읽은 후 답사를 나서면 훨씬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오니
아주 빈번히 서울 나들이에 나서는데 오늘은 청계천과 경복궁이다.
특히 겨울 나들이로 이처럼 가벼운 유적답사가 제격이니
우선 너댓 시간을 걸어도 힘들지 않으며 땀으로 성가시지도 않고
또한 크게 붐비지 않아 느긋하게 임할 수 있음이 가장 큰 장점이다.
청계천을 걷는게 여러 차례였지만 오늘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늘은 전철 동대문역에서 내려 청계6가 사거리의 오간수교에서 청계광장 방향으로 답사를 시작하였다.
서울과 경기 일대에 살아온지 30년이 넘었지만 서울에서 가장 인상적인 변화라면 사실 청계천이지 않을까?
예전 고가도로와 복개, 인근의 공구상 등 부정적 이미지를 단숨에 바꾸어버린 일대 사건이 창계천 복원이었다.
청계천 복원에 대하여 일부 부정적 언급이 상존하지만 전체적으론 MB의 훌륭한 치적이라 평가된다.
지금은 오간수교라 하여 별 특징없는 다리로 보이지만
원래 이 자리는 오간수문이라하여 청계천 위를 지나는 서울성곽 밑에 있던 문이었으며
바로 지척의 동대문, 즉 흥인지문과 연결되었었다.
그 다음은 버들다리, 일명 전태일 다리,
그는 평화시장 의류관련 공장에서 일하였고 1970년 열악한 노동환경에 분개하여 분신자살하였는데
꽃다운 나이에 의로운 죽음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에게 선각자로서 존중의 마음을 보내지만
그 당시에는 누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하였지 않나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 또한 금할 수 없다.
나 역시 아침 7시 출근하여 자정까지 일하는 그런 어려움을 계속 이어갔던 시절이다.
마전교는 마치 학교 정문 형태의 모습인데 붉은 벽돌과 홍살문 스타일이 인상적이며
그 역사는 사뭇 오래되어 세종 때 다리 옆에 牛馬를 매매하였기에 마전교로 불리웠고
다리 옆에 나무로 水標를 만들어 세우면서 다리 이름을 수표교라고도 하였다.
하지만 1958년 청계천 복개가 시작되면서 수표교는 1959년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마전교 남쪽의 청계5가 지하쇼핑센터 3번 출구 부근의 골목 좁은 곳에 성제묘가 숨겨져 있는데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관우를 주신으로 모시는 묘당이며
관우를 모신 전각인 현성전이 심하게 찢어진 창호지와 함께 문틈으로 보였다.
청계천에 다리가 참 많구나 느끼면서 새벽다리, 배오개다리, 세운교, 관수교를 지나면 수표교 다리인데
원래의 수표교는 장소를 옮겨 장충단 공원에 있지만 조선시대 다리의 진수중 하나로서
기능 뿐 만 아니라 돌다리의 아름다움까지 표현되었다는 극찬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재 수표교 이름을 계승한 다리는 문외한인 내가 보더라도 뭔가 어슬프고
다리 아래의 기둥을 보더라도 철제 기둥을 받친 가교처럼 보이니 청계천 물길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청계2가 사거리인 삼일교에서 바라보면 우측에 시꺼먼 31층 빌딩이 산업은행종로지점,
건축가 김중업의 작품으로 1970년 완공 당시만 하더라도 최고층이었으며
단조롭지만 뛰어난 비례감을 가지며 세월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란 평을 받는데
지하주차장이 없다니 정신없는 것인지, 아니면 미래지향적인지?
삼일빌딩 청계천 맞은편에는 베를린 장벽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표시석이 있다.
"베를린 시장이 서울시를 위해 베를린 장벽 일부를 원형 그대로 이 곳에 옮겨와 베를린 광장을 조성했다.
장벽은 독일 분단의 평화로운 극복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대한 희망을 상징한다"
그리고 베를린의 상징동물인 푸른 곰, 독일 전통 가로등, 독일 전통 포장보도와 의자가 함께 세워져있다.
장통교 부근에는 청계천 명물의 하나인 거대한 타일 벽으로 된 능행반차도가 있으니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참배가는 모습을 김홍도가 그린 가로 1.5미터 세로 18미터의 대작을
백자도판 4960장으로 재현하였는데 길이 200미터에 이르며 1779명의 인원과 778 필의 말이 담겼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정조의 필마에는 정조의 모습이 그려져있지 않으니 왕은 지극히 존엄하기에~~
광교사거리 남쪽에 광통관이 있는데 광통교 옆에 있다하여 그렇게 불리우는데
1909년 건축, 1914년 화재로 개조하였고 현재는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이다.
아담하고 정교한 벽돌건물로 문외한인 나에게도 멋져보인다.
광통교에는 태종 이방원과 얽힌 이야기가 있는데 광통교 다리의 교대석으로서
태조의 둘째부인 신덕왕후 묘의 신장석을 거꾸로 놓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니
조선초기 왕권장악을 위해 대립하였던 이른 바 이방원의 복수라고 한다.
청계천의 랜드마크 역할은 복원 청계천의 시작 위치에 설치된 다슬기 조형물로서
원래의 이름은 Spring이니 샘이란 뜻도 지니고 있어 어울리는 선택이다.
부부 조각가 올덴버그와 브루겐의 작품으로
DNA 이중나선 구조를 상징하는 붉은 색과 푸른색 리본은 한복의 옷고름에서 힌트를 얻었으며
이 나선은 생명의 복원을, 그 끝에서 샘물이 흘러나와 발원지를 이룬다는 의미이다.
비평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잘 어울리는 조각품이라 생각된다.
코리아나 호텔옆 한국금융사 박물관 앞에 도로원표가 있는데
축구공을 20면체로 편 의미를 가진 조형물이라고 하며
북한 및 세계 여러도시까지의 거리가 표시되어 있으니 원산 180Km, 함흥 260Km가 보였다.
오간수교
전태일 동상
마전교
성제묘
수표교
삼일빌딩
베를린 장벽
미래에셋센터원 빌딩
장통교
능행반차도
광통관 (우리은행종로지점)
신덕왕후 묘의 신장석을 거꾸로 놓아 광통교 다리 교대석으로 사용 (이방원의 복수)
광통교
모전교 모퉁이의 용 석상
(경복궁 영제교의 서수를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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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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