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의 종로 및 인사동편에
동네골목길 관광코스 중 9코스 문화적 갯벌길, 종로 1.2.3.4가동을 믹스하여 진행하였다.
종로3가역에서 출발하여 종각역까지 탑골공원, 피맛길, 보신각 등 도보 답사 진행하였고
이후 고종즉위40년 칭경기념비에서 시작하는 문화적 갯벌길을 이어갔다.
'노년층이 즐겁고 기쁜 거리'라는 의미의 '락희 거리'로 조성된다는 탑골공원 인근은
아무래도 그 이미지가 노인과 연관되지만 처음으로 둘러보니 의외로 문화재와 역사성을 지녀 나이로 차별함은 부당하다.
숭유배불 정책을 폈던 조선의 세조때 원각사 창건되었고 십층석탑이 세워졌는데
국보 제2호로 지정되어있으며 대리석 탑이라 풍화와 산성비에 약하고 비둘기 배설물로 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유리보호각으로 뒤집어썼어니 관람 환경은 최악의 상태이다.
그리고 용조각이 있는 대원각사비는 보물 제 3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각사는 여러 수난을 거듭하였고 화재로 소실되며 불법가옥들이 들어섰는데
고종 때 영국인 고문 브라운의 건의로 서울에 만들어진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또한 탑골공원은 3.1운동 당시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역사적 의미를 지닌 장소이다.
피맛길은 말을 피한다는 뜻에서 유래하는데 백성들이 고관대작의 행차를 피해 다니던 뒷골목이며
초기에는 폭이 약 6m 정도였지만 집들이 확장되면서 현재는 2.3-3.8m의 작은 길로 좁아졌다.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좌측에 서피맛길, 우측에 동피맛길이 남아있지만 진면목은 밤시간이 되어야 알겠다.
창덕궁 삼거리에서 종로3가역까지의 돈화문로의 좌측에도
남북으로 피맛길이 형성되어 있음을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알게되었다.
피맛골을 나오면 종로타워라는 3개의 기둥이 비행접시를 떠 받들고 있는 듯한 특이한 모양의 빌딩을 보게되는데
이 빌딩의 압권은 무엇보다 비행접시 모양으로 지상에서 134m 상공에 떠 있는 Top Cloud이며
고급 레스토랑이 입주해 있다고 한다. 이처럼 상층부 여덟개 층이 비워진 디자인은 공간을 낭비함으로써
아름다움을 얻는 자본주의의 상징으로 말해지기도 하다고한다. 우루과이 출신의 미국건축가 라파엘 비뇰리의 작품.
하지만 이 건물과 관련한 최정화 작품 '세기의 선물'이라는
황금색 플라스틱 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원각사 십층석탑을 본뜬 작품으로 유리관에 갇혔다는 것,
그리고 그 원각사탑 자체가 경천사 석탑을 모방했고,
그 경천사 석탑은 원나라 석공이 만든 외래문물이라는 것,
작가는 이 플라스틱탑의 아래위를 뒤집어
45도 각도로 땅에 내리꽂고 싶어 했지만
클라이언트 측이 기겁을 하는 바람에 그렇게 추진되진 못했다는
일화 등으로 이 작품이 던지고 있는 문제제기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는듯 하다.
이 작품이 종로 타워 건물 뒷편 주차장에 있다는데 사실 찾을 수가 없었다.
다음 기회에 다시 시도해보리라...
(이틀 후 부근에 들러는 기회에 빌딩 경비분에게 물어보니
건물주가 삼성에서 다른 외국계회사로 바뀌면서 철거되었다고 한다. ㅠㅠ)
하나 더 언급한다면 종로타워가 생길 때 종로서적이 입점을 제의 받았지만 들어오질 않았고
결국 2002년 폐점되었는데, 바로 작년 말 14년만에 여기에 오픈했다니 잘되길 바란다.
종로가 종로로 불리우는 것은 보신각 종이 있어 타종을 했기 때문인데
원래 보신각종은 세조때 만들어져 정릉사에 있다가 원각사로 옮겨졌던 역마살을 띤 종이었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안식중이라고 한다.
보신각 건물은 원래 종로사거리에 2층 누각으로 아주 큰 건물이었는데 전란과 화재를 거듭하였고
1979년 현재의 건물로 지었지만 고종때 하사 된 보신각이라는 이름은 그대로 사용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여기 보신각 앞에는 모든 지하철 깊이의 척도가 되는 수준점이 있다고 하나
뜰안으로 들어가 볼 수가 없어 확인은 못했다.
도로를 건너면 영풍문고인데 그 자리에 대한제국 시절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민간은행인
대한은행이 있었으며 첫 대출자는 당나귀를 담보로 대출하였다는 일화가 있고
여러 번 주인이 바뀐 후 조흥은행이 되었는데 역시 1997년 합병되었으니 장수 기업이란 쉽지 않다.
이제 종각에 당도하여 고종즉위 40년 칭경기념비에서 부터 9코스 문화적 갯벌길을 시작한다.
이 기념비전은 세종로 사거리에 위치하니 눈에 아주 잘 띄지만 무심히 지나쳤는데
우선 그 의미는 고종이 51세가 되고 황제 즉위 40년을 기념해 세운 비로서
대한제국 선포와 기로소에 가입한 것을 아울러 축하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황제의 기념비인 만큼 비석과 석물들이 격을 아주 갖추었으며
비석의 전면은 황태자 순종의 친필 휘호이고 무지개 문의 만세문은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 썼다고 한다.
무지개문 뒤 층계 우측으로 옛 도로원표가 있는데 전국 지역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교보문고 뒷편에 중학천 물길이 형성되어 있는데 전에는 못보았으니 최근에 조성된게 아닌가 생각하고,
탁 트여 북악산이 바라보이는 조망이 좋았지만 물길에 흐르는 물은 없으니 겨울이라 그런가?
신라스테이 빌딩 앞에 '한국만화, 여기서 시작하다'라는 이름의 조형물이 있는데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에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가 게재되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대한민보가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조계사는 1910년 한용운 스님 등에 의해 각황사란 이름으로 중창되었고, 그 뒤 태고사로 개칭되었고
1954년 일제의 잔재를 몰아내려는 불교정화운동이 일어난 후 지금의 조계사로 바뀌었다.
법당 앞에는 1930년에 조성된 7층석탑이 있고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 사리는 스리랑카의 달마바라 스님이 1914년 한국에 모셔온 것이다.
조계사 마당의 오백 년이 된 백송 한 그루는 천연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고
또한 법당 정면에는 사백년된 24m 높이의 회화나무가 있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조계사를 나오면 좌측에 우정총국이 있는데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아한 건물이며
앞 보도의 타일에는 그간 발행된 여러 우표가 그려져 있었다.
이장희의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 서적에서는 우정총국에 대하여
별도로 한 편을 할애하고 있으므로 다시 찾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탑골공원 입구
(삼일문은 독립선언서 글자를 집자하여 만든 편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