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과 정맥/백두대간 (완료)

백두대간 4구간: 주촌리-수정봉-고남산-통안재(2007.04.28)

클리오56 2007. 4. 28.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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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자: 2007.04.28

** 산행지: 백두대간 4구간: 수정봉(804.7M)/고남산(846.5M)

** 산행로: 주촌리(530M) - 수정봉(804.7M) - 입망치 - 여원재(470M) - 고남산(846.5M) - 통안재 - (권포리)

** 산행거리: 약 13.52Km (마루금 13.22Km + 연장 0.3Km)

** 산행시간: 총320분 (산행 270분 + 중식/휴식 50분)

** 산정산악회(김, 주)

 

07:45 양재 출발 (안성 30분 휴식: 12:00 주촌리 도착)  

12:10 산행들머리 주촌리 (노치마을 입구)

12:57 수정봉

13:21 입망치

14:20 여원재 (중식 40 ~15:00)

15:43 (휴식 10)

16:49 고남산

17:13 통안재

17:30 산행날머리 권포리 임도 (알바 10분)

18:05 권포리 출발 (22:00 양재 도착)

 

백두대간 대장정 기념 단체사진

  

 

과연 가능할까하며 망설이다 드디어 대장정에 나섰다. 김형과 주형 두분과 함께 동행이라 훨씬 가벼운 마음이다. 설레임으로 새벽같이 일어나 배낭을 최종 점검하곤 간단한 식사후 버스로 7시쯤 양재 도착. 늦는 분이 있어 출발이 20여분 지체되었는데, 아마도 첫날이라 장소와 차편을 확인하느라 그렇겠지. 경부를 거쳐 대진고속도로로 진입. 인삼랜드에서 아침을 들도록 넉넉히 30분이 제공된다. 커피와 김밥을 추가로 드니 빵빵하다. 12시경에 산행들머리인 남원의 주촌리 도착. 그토록 소망하던 백두대간의 첫 출발 마루금이 농촌의 소로라니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기의 해발이 5백미터이니, 추풍령의 3백미터에 비하면 고지대이다. 이곳을 비백으로 표현하신 분이 있다. 飛白이란 붓글씨의 획에서 희게 드러난 자국인데 바로 주촌의 노치마을이 이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산줄기는 거의 지워졌지만, 대간의 마루금으로서의 위치를 잃지 않으며, 길의 왼쪽에 흐르는 물은 남원시가를 흐르는 요천이 되어 섬진강으로, 오른편은 운봉의 만수천이 되어 진주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여기가 남원땅이지만, 마루금 오른 편은 운봉마을인데 경상도 함양과 교류가 많아 경상도 말씨가 남아있다 한다. 그래서 남원에서 "더워, 추워"라고 하지만, 여기 운봉에서는 "더버, 추버"라고 한다는데...여기서 40여명의 단체사진 촬영후 진군.

 

전형적인 농촌 풍경이라, 낯설지 않고 정겨웁다. 맞은 편 야산의 소나무 숲, 그 중에서도 우뚝 솟은 노송 4그루와 약간의 빈 공터. 바로 저곳이 여러 대간꾼의 후기에 나오는 당산 노송과 제단이리라. 노치마을입구란 표지석을 지나 우마차길을 쭉 이어가면 마을회관이 나오고 좌측으로 백두대간 유일의 마을이란 설명과 함께 우리나라 지도상에 백두대간과 정맥을 표시한 조형물이 독특하다. 여기서 우리 3인은 백두대간 출정 기념사진을 하나 남겼다. 다시 입구에 노치샘이라 고려때부터 이어져오는 샘이라니 이성계가 황산대첩후 여기서 물한잔 했을까? 지금은 많은 대간꾼들의 식수 보충지로 널리 알려졌단다. 하여간 이런 돈 안되는 대간꾼들을 마을의 소란꾼으로 보질않고 반겨주는 마을의 정성에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근사한 노송 4그루와 마을의 제단을 지나면서, 백두대간길의 안산과 즐산의 마음을 빌어보며 산신께서 잘 보살펴주시길 기도한다.     

 

제4구간 들머리 주촌리 

 

노치마을 노송 

3인방 백두대간 출정 기념

 

버스좌석의 옆분과도 얘기를 조금 나누었고 다른 처음뵙는 분들의 소식도 직접 혹은 귀동냥으로 전해진다. 옆분은 부부께서 대간을 하셨고 10구간 정도 땜방 하시는 중이시다. 산행대장께서 소개도 하셨지만 이번 대간이 6번째라는 고문분이 경외롭다. 산행 초반에 인사나눈 한 여성분은 2003년 4월부터 9정간을 시작하여 모두 마치시고 현재 대간도 30회 정도하셨다. 또 다른 한분은 연세가 환갑전후이신데 대간 동행을 권유하셨다가 친구분들로부터 미쳤다는 소릴 들어셨단다. 다른 한분은 67세 정도이신데 6시간 산행정도는 중간 휴식없이 그대로 진행하신다고 쉬지도 점심도 안드시고 날으셨다니.... 대간 초보 3인은 입이 딱벌어질 수 밖에... 이런저런 여러 얘기들을 들으면 기가 죽을만도 하지만, 동네산행을 떠나 큰 물에서 놀게되니 뭔가 기분이 업되고 자신도 생겨난다. 까이껏... 걷는건데.. 할 수 있어~~~

 

노송을 지나며 산비탈을 오르기 시작한다. 소나무 숲이 좌우로 도열하여 기분좋은 시작이다. 질서정연하게 배열된 조림 숲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송림이라 더욱 멋져 보인다. 역시 우리의 대간은 달라도 뭔가 다르지하며 조금씩 경사진 등로를 타 오른다. 숲으로 좌우조망이 트이진 않았지만, 간혹 틈새로 보이는 마을과 저수지가 정겨웁다. 오늘 날씨가 최저 10도, 최고 23도이니 조금은 덥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훔치느라 수건에 연신 손이 간다. 좌측 배낭끈에 수건을 매달아 사용하기 편하도록 머리도 굴려본다. 우측 바래봉의 모습도 보인다. 성삼재에서 쭉 뻗어 올라간 바래봉은 대간의 자리를 수정봉-고남산 능선에 물려주었으니 얼마나 속이 아플까. 1천미터 이상의 고지이자 철쭉으로 이름난 바래봉이 무명의 수정봉에 대간의 지위를 빼겼으니...

 

대간을 탄다는 벅찬 마음과 이런저런 생각하며 비알을 오르며 들머리에서 50여분 후 첫 봉우리 수정봉에 도달한다. 크리스탈이란 수정봉, 대간 첫 봉우리 치곤 우릴 맞는 그 표식이 초라하지만 마음만은 뜨거웠을거라고 믿는다. 

 

수정봉   

 

동네와 친구들에게선 산 열심히 잘 간다고 좋은 소릴 들었을지라도 여기 대간팀에선 왕초보라 쉼없이 진행한다. 제 주제도 모르고 사진찍고 쉬기까지 한다고 핀잔 듣기 싫어서 우린 쉼없이 진행한다. 오르면 내리막이 있는 법, 대간은 능선 산행이라 끝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한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굴곡으로 형성되듯... 어느 새 입망치로 여겨지는 고개를 넘어가고 다시 오르막. 점심시간을 가질 여원재로 향한다. 여원재에 전설아닌 역사가 남겨있으니, 고려말 왜구의 침력이 이곳까지 미쳤고 한 여인이 죽음으로 정절을 지킨 곳이다.  지금은 운성대장군이란 돌장승이 자리를 지킨다.

 

여원재: 돌장승  

 

2시20분 여원재 도착. 산행 2시간 10분만에 휴식을 가지며 점심을 든다. 솔숲 벌통 옆에 자리잡아 주먹밥 2개 간단한 식사이지만 주형께서 김밥을 많이 가져오셨어 과식을 할 수 밖에. 준비해온 큰 포도를 후식 삼아들었고. 물을 가득 준비해왔기에 매실탄 물과 생수 물을 충분히 들며 산행할 수 있었다. 특히 차량이 여원재에서 대기하므로 배낭짐을 줄이며 산행하기에 편했다. 집 나올 때 배낭 무게를 체크하니 6.5Kg. 다음부턴 가방을 따로 하나 준비하여 버스에 남겨두면 산행이 효율적일 것 같다. 다른 분들이 일찍 일어나 산행 시작하는 분위기라 너무 처지지 않도록 우리도 자릴 털고 일어난다.   

 

여원재에서 바라 본 고남산

 

수정봉에서 온 거리보단 조금 길게 가야 고남산이다. 여원재에서도 중계탑과 함께 지척처럼 가까워 보이는 산이다. 하지만 등로는 활처럼 휘어지면서 예의 그 오르내림을 심하게 반복하니 손쉽게 도달하진 않는다. 대간의 첫 답사가 1988년이고 본격적 소개가 90년대 들어서라니 당시 초반의 선배 산꾼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일일이 대간길을 확인했을터이니, 한참을 가다 돌아오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우리야 숱하게 나부끼는 시그날을 봐가면서 길 찾는 수고로움도 없고, 건방지게도 독도 지도나 나침반 하나 들고 오지 않는 후배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고남산 전위봉 오르면서 된비알로 접근하며 처음으로 짧은 암릉이 나타나고 밧줄도 잡아본다. 왼편으로 멋진 바위 하나 보이니 지도를 보면 그 이름이 상투바위이니 그럴 듯하다. 암릉지대 험한 곳은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어렵지 않도록 배려되어 있다. 전망이 탁 트이며 곧 산림감시초소와 더불어 고남삼 정상이다. 정상은 막대형 정상 표지가 있고, 감시인이 우릴 기다리듯 서있다. 왼편 지리산 능선을 가리키며 바래봉과 반야봉, 천왕봉을 물어보니 친절히 가르켜주신다. 그렇게 좋은 답을 들으니 전체가 윤곽이 잡히고 시원한 조망을 좀 더 즐길 수 있다. 멀리 아스라한 봉우리가 천왕봉이다. 반야봉의 원만한 윤곽은 잡히지만 그 특유의 엉덩이 사이의 패인 모습까진 드러나지 않는다. 정상아래 최근 설치한 듯 깨끗하고도 하얀 정상석이 보여 이곳에서 3인이 오늘 등정의 최고봉 자국을 남겼다. 고남산 역시 이성계와 인연이 있으니 태조봉 또는 제왕봉이라고 불리었으며, 황산대첩 당시에 이 산에 천제단을 세우고 전승을 기원했고, 이 산의 기운으로 권세를 널리 펴라하여 아랫마을 이름이 권포가 되었다고 한다.      

 

고남산

 

지나온 산과 능선들

 

등로를 이어오며 틈나는 대로, 그리고 산행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에서 눈에 뜨이는 야생화를 사진으로 남겼다. 우선 각시붓꽃이 짙은 보라색으로 도처에 산재한다. 지난 이맘땐 제법 이름도 외우곤했지만 계절이 지나고 해가 바뀌면서 많은 부분 잊어버렸다. 다시 공부하면서 조금씩 기억을 더듬어보자. 산행 마지막 즈음에 할미꽃을 만난 것도 수확이다. 중계탑 내려오면서 임도라 곧 통안재 도달하겠지 생각했건만, 다음 구간분까지 침범하였다. 조금 이상하다는 일행의 중론에 즉시 전화 연락취해보니 우리가 오버패스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백하여 되돌아가니 많은 분들이 우리와 동일한 착오를 거듭한다. 다시 임도 만나 조금 내려가니 버스 곁에서 일행이 식사중이다. 대간타는 안내산행에선 가이드분의 역할이 최소화되는 듯. 일반 안내산행에서 보여지는 등로의 길안내 표시판도 거의 없고 모두들 자율적으로 잘 알아서... 하긴 동네 산악회의 우수한 우등생들이 모인지라 세밀한 안내는 생략되고 총대장님의 간단한 지휘만으로 자율학습이 진행되는 격이다. 백두대간의 첫구간, 설레임으로 시작하지만 걱정도 내심 많았던 산행, 충분히 즐겁게 안전한 산행으로 끝났으니 마음 뿌듯하다. 시작이 반이라고, 비록 일천한 경력이지만 정성껏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족히 해 낼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함께한 김형, 조형 두분의 동반으로 산행이 더욱 생동감있게 진행되었던 점 감사드린다.

 

잠깐... 정대장께서 산행 지식 몇가지를 말씀하셨는데 기억나는 사항을 남겨두자. 산행시간에 따른 거리를 대충 짐작하는 방법으로 오르막은 시간당 2Km, 평지는 3Km, 그리고 내리막은 4Km 정도란다. 도상거리에 30% 정도 추가한 것이 실제거리, 5만분의 1지도에선 1Cm가 500M, 주먹 4마디가 4Km이다.

 

    

 

백두대간을 시작하면서

 

50대 초반에게도 꿈이 생겼다

아직도 꿈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리고 그 꿈을 향해 첫발을 디딘다

그 꿈은 백두대간 종주

 

2005년 8월 마지막 주말

신들린듯 울산에서 대구를 향해 달렸고

생전부지 초면의 가자산 회원들과 팔공산 서봉을 올랐다

7시간여 산행 길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사진과 산행후기를 남기면서

백대명산 순례를 결심하였고 

동서로 남북으로 설악산도 지리산도 다녀왔다

 

반백년 그 긴 인생동안

초라한 나에게 남은게 무엇이며 앞으로 해야할게 무엇인가

나를 찾고 싶다

스스로 자신을 갖고 싶다

나를 나답게하는 그 무엇인가를 따르고 싶다

백두대간 종주의 꿈을 쫓고자한다

꿈이 몽상으로 끝나지 않는

현실로 변화시키는 나이고 싶다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생떽지베리의 어린 왕자

 

꿈이고 싶고

높이 날으는 갈매기로 멀리 보고도 싶다

세속의 한 인간이지만 적어도 한발자국은 하늘을 딛고자 한다

 

물을 건너지 않는 산마루금을 따라 한없이 걷고 싶다

4월 마지막 봄날 지리산 자락을 출발하여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그 어느 봄날에 진부령 고개에 도달하리라

 

눈부신 산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 그런 친구를 알게되리라

산자락, 고개, 능선마다에 숨어있는 삶의 전설을 소생시키고

때마다 달리 피어나는 수목의 생명에 경탄하리라

 

살아왔던 추억을 반추하고

살아갈 꿈을 전개하는 내일

자유인으로 다시 태어나리라